자하 하디드 아키텍츠 (Zaha Hadid Architects)
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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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하 하디드 아키텍츠(Zaha Hadid Architects)는 이라크 출신 영국 건축가 자하 하디드(Zaha Hadid, 1950년부터 2016년까지)가 1979년 런던에 설립한 건축·디자인 스튜디오다. 2차원 도면과 회화 속에 머물던 급진적 형태를 실제 건물로 구현하며, 20세기 말과 21세기 초 현대 건축의 흐름을 바꾼 사무소로 평가받는다.
설립자 자하 하디드는 비선형 곡선과 유동적인 형태를 고유한 건축 언어로 발전시켰고, 이 때문에 '곡선의 여왕(Queen of Curves)'이라 불렸다. 2004년에는 여성 건축가로는 처음으로 프리츠커상(Pritzker Architecture Prize)을 받았다. 한국에서는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의 설계자로 널리 알려져 있다.
창립자 타계 이후 사무소는 오랜 협업자였던 파트릭 슈마허(Patrik Schumacher)의 리더십 아래 운영되고 있다. 2016년 하디드가 세상을 떠난 뒤에도 베이징 다싱 국제공항, 마카오 모피어스 호텔, 리쩌 소호 같은 대형 프로젝트를 완공하며 글로벌 설계 사무소로서의 위상을 이어 갔다.
2026년 6월 사무소는 창업자의 이름을 떼고 'ZHA'로 공식 사명을 변경했다. 법인명은 ZHA Architects Limited다. 이 변화는 하디드 재단(Zaha Hadid Foundation)에 매출 일부를 라이선스 로열티로 지급하던 구조를 둘러싼 법적 분쟁 이후 이루어졌다. 현재는 6개 대륙에서 100건이 넘는 프로젝트를 동시에 진행하는 약 500명 규모의 직원 소유 설계 조직으로 운영된다.
약력·연혁
설립과 종이 건축가 시기
하디드는 1972년 런던 건축협회 건축학교(Architectural Association, AA)에 입학했다. 이곳에서 렘 콜하스(Rem Koolhaas), 엘리아 젱겔리스(Elia Zenghelis), 베르나르 추미(Bernard Tschumi) 등에게 배웠고, 1977년 졸업 후 콜하스와 젱겔리스가 이끄는 OMA(Office for Metropolitan Architecture)에 파트너로 합류했다.
1979년에는 런던에 자신의 이름을 건 사무소를 열었다. 1983년 홍콩 '더 피크(The Peak)' 클럽 국제 설계공모에서 당선되며 국제 건축계의 주목을 받았다. 가파른 산비탈을 가로지르는 수평 구조와 파편화된 형태는 하디드의 급진적인 조형 감각을 알린 대표적인 초기 작업이었다. 다만 더 피크는 실제로 지어지지 못하고 도면과 회화로 남았다.
1988년 뉴욕 현대미술관(MoMA)이 기획한 '해체주의 건축(Deconstructivist Architecture)' 전시에 참여하며 하디드는 해체주의 건축을 대표하는 인물 가운데 한 명으로 소개됐다. 당시 그의 출품작은 완공 건축물이 아니라 더 피크의 회화와 드로잉이었다. 이 시기 하디드는 실제로 지은 건물보다 도면과 회화로 더 유명한 '페이퍼 아키텍트(Paper Architect, 종이 건축가)'로 불렸다.
첫 완공과 실무 검증
1993년 독일 바일암라인의 비트라 소방서(Vitra Fire Station)가 준공되며 하디드의 첫 완공작이 나왔다. 이 건물은 날카로운 콘크리트 판이 서로 교차하고 충돌하는 듯한 형태로, 하디드의 해체주의적 조형이 실제 건축물로 구현될 수 있음을 보여줬다.
1994년에는 영국 카디프 베이 오페라하우스 공모에서도 우승했다. 그러나 정치적 논란과 자금 조달 문제로 프로젝트는 끝내 무산됐다. 이 사건은 하디드가 높은 평가를 받으면서도 실제 건축으로 이어지기 어려운 설계자라는 인식을 한동안 강화했다.
이후 2002년 오스트리아 인스브루크의 베르크이젤 스키점프대(Bergisel Ski Jump), 2003년 미국 신시내티의 로젠탈 현대미술센터(Lois & Richard Rosenthal Center for Contemporary Art)를 완공하며 실무 역량을 입증했다. 로젠탈 현대미술센터는 여성이 설계한 미국 최초의 주요 미술관 건물로도 자주 언급된다.
프리츠커상과 대형 프로젝트 확대
2004년 하디드는 여성 건축가 최초로 프리츠커상을 받았다. 이 수상 이후 사무소는 미술관, 오페라하우스, 교통 인프라, 대형 복합시설로 작업 규모를 빠르게 넓혔다.
2005년에는 독일 볼프스부르크의 파에노 과학센터와 라이프치히 BMW 중앙동을 완공했다. 2010년에는 이탈리아 로마의 국립 21세기 미술관 막시(MAXXI)와 중국 광저우 오페라하우스를 준공했다. 막시는 2010년 영국 스털링상(Stirling Prize)을 받았고, 2011년에는 런던 브릭스턴의 에벌린 그레이스 아카데미(Evelyn Grace Academy)로 다시 스털링상을 받았다.
2012년에는 런던 올림픽 수영센터(London Aquatics Centre)와 베이징 갤럭시 소호(Galaxy SOHO)를 완공했다. 2013년에는 아제르바이잔 바쿠의 헤이다르 알리예프 센터(Heydar Aliyev Center)를 완공했고, 2014년 3월 21일에는 서울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가 개관했다.
도쿄 올림픽 주경기장 논란
2012년 ZHA는 도쿄 2020 올림픽 주경기장 설계공모에서 당선됐다. 그러나 거대한 규모와 높은 시공비, 주변 경관과의 충돌 문제를 둘러싸고 일본 건축계와 시민사회에서 거센 비판이 이어졌다.
설계안은 진구 가이엔 일대의 경관을 해친다는 지적을 받았고, 예산 역시 크게 늘어났다. 결국 일본 정부는 2015년 해당 설계안을 백지화했다. 최종 설계권은 일본 건축가 구마 겐고(Kengo Kuma)의 안으로 넘어갔다. 이 사건은 하디드 사무소가 대형 프로젝트에서 자주 맞닥뜨린 장소성, 비용, 공공성 논쟁을 대표하는 사례가 됐다.
하디드 타계와 사후 완공작
2016년 2월 3일 하디드는 여성 단독 수상자로는 처음으로 영국왕립건축가협회(RIBA) 로열 골드 메달을 받았다. 그러나 같은 해 3월 31일 미국 마이애미의 병원에서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났다. 향년 65세였다.
하디드 사후 사무소는 수석 파트너 파트릭 슈마허 체제로 재편됐다. 이후 하디드 생전에 진행되던 프로젝트들이 차례로 완공됐다. 2018년 마카오 모피어스 호텔, 2019년 베이징 다싱 국제공항, 리쩌 소호, 카타르 알 자누브 스타디움이 대표적이다.
이 사후 완공작들은 하디드 개인의 이름에 크게 의존하던 사무소가 조직적 설계 시스템으로 계속 작동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시험대이기도 했다. ZHA는 대형 프로젝트를 계속 수행하며 글로벌 설계 조직으로서의 존재감을 유지했다.
ZHA 사명 변경
2016년 창업자 타계 이후 사무소는 하디드 재단과 맺은 라이선스 계약에 따라 전체 매출의 6퍼센트를 로열티로 지급하며 '자하 하디드 아키텍츠'라는 이름을 유지해 왔다. 2013년에 맺어진 이 계약은 이후 큰 비용 부담으로 이어졌고, 사무소와 재단 사이의 법적 분쟁으로 번졌다.
2024년 1심 재판부는 계약 유지를 명령했으나, 2026년 2월 항소법원은 이를 뒤집었다. 사무소는 재단과의 재계약을 포기하고 리브랜딩을 택했다. 2026년 6월 공식 사명은 'ZHA'로 바뀌었다.
이 변화는 단순한 이름 변경이 아니라, 창업자 개인의 이름을 앞세운 사무소에서 직원 소유의 글로벌 설계 조직으로 정체성을 다시 정리하는 과정으로 볼 수 있다.
디자인 철학·시그니처
회화에서 출발한 건축
하디드의 초기 건축은 관습적인 평면 도면보다 추상 회화에서 출발했다. AA 졸업작품인 '말레비치의 테크토닉(Malevich’s Tektonik)'은 런던 헝거포드 다리 위에 가상의 호텔을 얹는 프로젝트였다. 이 작업은 러시아 화가 카지미르 말레비치(Kazimir Malevich)의 절대주의(Suprematism) 회화를 건축적 조형으로 옮긴 시도였다.
하디드는 회화의 다중 원근법과 추상을 설계 도구로 사용했다. 중력에 묶인 도면 대신, 공간이 기울고 충돌하고 떠오르는 것처럼 보이는 이미지를 만들었다. 스승이었던 젱겔리스는 그를 '89도의 발명가'라고 불렀다. 하디드의 도면에서는 90도로 직각 교차하는 안정된 선보다, 비스듬히 미끄러지고 부딪히는 선이 중심이 됐다.
해체주의와 러시아 아방가르드
하디드 초기 작업은 해체주의(Deconstructivism) 건축과 함께 설명된다. 형태의 파편화, 불안정한 구조감, 극적인 운동감이 주요 특징이다. 비트라 소방서의 날카로운 예각과 충돌하는 직선은 이 시기를 대표한다.
이 조형 언어의 바탕에는 러시아 아방가르드가 있다. 말레비치의 절대주의, 블라디미르 타틀린(Vladimir Tatlin)의 구축주의(Constructivism), 로드첸코의 실험적 구성은 하디드의 초기 드로잉에 강한 영향을 줬다. 하디드는 회화의 추상적 구성 원리를 건축의 공간과 매스로 확장했다.
유동적 곡면과 연속 표면
2000년대 이후 ZHA의 조형 언어는 날카로운 파편에서 매끄럽게 흐르는 유동적 형태로 이동했다. 강철, 유리, 콘크리트 같은 단단한 재료가 찰흙처럼 휘어지고 이어지는 표면으로 표현됐다.
광저우 오페라하우스는 강물에 씻긴 조약돌을 닮은 두 개의 매스로 구성됐고, 헤이다르 알리예프 센터는 땅에서 솟아올라 벽과 지붕으로 이어지는 백색 표면을 만들었다. 이 시기 ZHA의 건축은 건물과 바닥, 벽과 지붕, 외부와 내부의 경계를 흐리게 만드는 방향으로 발전했다.
파라메트리시즘
파트릭 슈마허는 2008년 베네치아 건축비엔날레에서 '파라메트리시즘(Parametricism)'을 선언했다. 그는 풍향, 일조량, 동선, 구조 조건 같은 여러 설계 변수를 컴퓨터 알고리즘으로 연결해 유기적인 형태를 만들어 내는 방식을 21세기의 새로운 건축 양식으로 설명했다.
ZHA의 곡면 매스와 복잡한 구조는 이러한 연산 기반 설계와 밀접하게 연결된다. 파라메트릭 설계는 비정형 곡면을 시각적으로 그리는 데 그치지 않고, 구조, 외피, 패널, 시공 정보를 함께 조정하는 도구가 됐다.
다만 파라메트리시즘을 둘러싼 평가는 엇갈린다. 지지자들은 복잡한 현대 도시 조건을 다루는 새로운 설계 언어로 보지만, 비판자들은 알고리즘이 만든 형태를 미학의 정답처럼 다루는 태도라고 지적한다.
디지털 설계와 수작업의 병행
ZHA는 첨단 디지털 설계로 유명하지만, 하디드 개인의 작업 방식은 손 드로잉과 물리 모형에 깊게 연결돼 있었다. 그는 타계하기 전까지 손으로 스케치를 그리고 종이 모형을 만들며 형태를 탐색했다.
이 점은 ZHA 작업의 중요한 특징이다. 컴퓨터는 복잡한 형태를 계산하고 시공 가능하게 만드는 도구였지만, 형태의 출발점은 하디드의 회화적 상상력과 손의 움직임에 있었다. 디지털 기술과 수작업이 함께 작동했기 때문에 ZHA의 조형은 기계적 계산물이라기보다 회화와 공학이 결합된 결과에 가까웠다.
비정형 구조와 엔지니어링
ZHA의 건축은 비정형 곡선, 곡면, 캔틸레버(Cantilever), 연속 표면으로 강한 인상을 만든다. 하지만 이 형태는 단순히 시각적으로 튀기 위한 장치만은 아니다. 많은 프로젝트가 주변 지형, 보행 동선, 도시 흐름에서 형태의 모티프를 끌어낸다고 설명된다.
동시에 이 형태들은 높은 수준의 구조 계산과 시공 기술이 없으면 구현하기 어렵다. BIM(Building Information Modeling), 파라메트릭 구조 최적화, 복잡한 외장 패널 제작, 대형 강철 구조는 ZHA 건축의 중요한 조건이다. ZHA의 작업은 현대 건축에서 비정형 조형과 엔지니어링이 얼마나 밀접하게 연결됐는지를 보여준다.
주요 작업
더 피크
더 피크(The Peak)는 1983년 홍콩 클럽 국제 설계공모에서 당선된 미완공 프로젝트다. 가파른 산비탈을 가로지르는 수평 구조와 파편화된 형태를 통해, 하디드의 급진적인 회화적 건축 언어를 처음으로 국제 무대에 알렸다.
건물은 실제로 지어지지 않았지만, 하디드의 초기 경력을 대표하는 작업으로 남았다. 더 피크는 하디드가 왜 '종이 건축가'로 불렸는지, 그리고 그의 도면이 왜 건축계에 충격을 주었는지를 보여주는 사례다.
비트라 소방서
비트라 소방서(Vitra Fire Station, 1993)는 독일 바일암라인 비트라 디자인 캠퍼스 안에 지어진 ZHA의 첫 완공작이다.
노출 콘크리트 판들이 예리한 각도로 교차하는 형태는 정지와 운동 사이의 긴장감을 만든다. 실제 소방서로 쓰인 기간은 짧았고, 현재는 전시 및 이벤트 공간으로 활용된다. 이 건물은 도면 속에 있던 하디드의 해체주의적 비전이 실제 건축으로 구현될 수 있음을 보여준 분기점이다.
로젠탈 현대미술센터
로젠탈 현대미술센터(Lois & Richard Rosenthal Center for Contemporary Art, 2003)는 미국 오하이오주 신시내티 도심에 들어선 현대미술관이다. 여성이 설계한 미국 최초의 주요 미술관 건물로 자주 언급된다.
이 건물은 입방체 매스와 비어 있는 공간을 수직으로 교차시켜 쌓은 구조를 갖는다. 도로의 보도블록이 미술관 로비 안으로 이어지는 '어반 카펫(Urban Carpet)' 개념을 통해 도시와 건축의 경계를 흐리게 했다. 검은색 스틸 계단은 갤러리 내부를 지그재그로 관통하며 강한 동선 경험을 만든다.
파에노 과학센터
파에노 과학센터(Phaeno Science Center, 2005)는 독일 볼프스부르크에 지어진 과학 전시 시설이다. 거대한 콘크리트 매스가 지면에서 떠 있는 듯한 형태로, 아래쪽에는 보행자가 지날 수 있는 열린 공간을 만들었다.
건물은 기울어진 벽, 불규칙한 개구부, 복잡한 내부 동선을 통해 하나의 실험적인 지형처럼 구성된다. 파에노는 하디드의 유동적인 공간 감각이 대형 공공 건축으로 확장된 사례다.
BMW 중앙동
BMW 중앙동(BMW Central Building, 2005)은 독일 라이프치히 BMW 공장에 들어선 업무·생산 지원 건물이다. 생산 라인과 사무 공간, 직원 동선을 하나의 흐름으로 연결하는 건물이다.
컨베이어 위의 자동차가 건물 내부를 지나가며, 생산 과정이 업무 공간과 시각적으로 연결된다. 이 작업은 ZHA가 조형적 형태뿐 아니라 산업 시설의 동선과 조직 방식까지 설계 대상으로 삼았음을 보여준다.
막시
막시(MAXXI, 2010)는 이탈리아 로마 플라미니오 지구에 지어진 국립 21세기 현대미술관이다. 국제 공모를 통해 선정됐고, 완공까지 약 10년이 걸렸다. 2010년에는 영국 스털링상을 받았다.
막시는 여러 개의 콘크리트 튜브가 겹치며 흐르는 듯한 동선을 만든다. 블랙 스틸 계단과 브리지는 보이드 공간을 가로지르며 관람 동선을 입체적으로 연결한다. 고대 로마의 역사적 도시 안에 들어선 강한 현대 건축이라는 점에서 평가와 논쟁을 함께 불렀다.
광저우 오페라하우스
광저우 오페라하우스(Guangzhou Opera House, 2010)는 중국 광저우 주강(Pearl River) 변에 지어진 대형 공연장이다. 2002년 국제 설계공모에서 당선된 뒤 완공됐다.
강물에 씻겨 마모된 두 개의 조약돌을 시각적 모티프로 삼았다. 노출 콘크리트 구조 위에 유리와 강철 프레임을 삼각형 패널로 나눈 외피를 씌웠다. 이 프로젝트는 ZHA가 중국 대형 건축 시장에 본격적으로 진입한 상징적인 작업으로 꼽힌다.
런던 올림픽 수영센터
런던 올림픽 수영센터(London Aquatics Centre, 2012)는 2012년 런던 올림픽을 위해 지어진 수영 경기장이다. 물결을 연상시키는 큰 지붕이 경기장 전체를 덮는 형태다.
올림픽 기간에는 임시 관람석을 붙여 대규모 관중을 수용했고, 이후에는 지역 주민을 위한 공공 수영장으로 전환됐다. 이 프로젝트는 ZHA의 곡면 지붕이 대형 스포츠 시설에 적용된 대표 사례다.
갤럭시 소호
갤럭시 소호(Galaxy SOHO, 2012)는 중국 베이징에 지어진 복합 상업 시설이다. 여러 개의 둥근 매스가 브리지와 중정으로 연결되며, 외부와 내부가 연속적으로 흐르는 구성을 만든다.
이 프로젝트는 ZHA의 유동적 곡면 언어가 대형 상업 건축에 적용된 사례다. 동시에 베이징 기존 도시 조직과의 관계를 둘러싸고 장소성 논란을 낳기도 했다.
헤이다르 알리예프 센터
헤이다르 알리예프 센터(Heydar Aliyev Center, 2013)는 아제르바이잔 바쿠에 지어진 문화 시설이다. 박물관, 도서관, 1,000석 규모 오디토리움을 하나의 유동적인 백색 표면으로 감싼다.
건축물과 바깥 광장 사이의 경계가 흐려지는 것이 특징이다. 대지의 표면이 솟아올라 벽과 지붕이 되고, 다시 땅으로 내려앉는 듯한 형태를 만든다. 2014년 런던 디자인 뮤지엄의 '올해의 디자인(Design of the Year)' 대상을 받았다.
동대문디자인플라자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 2014)는 서울 동대문에 지어진 복합문화공간이다. 2014년 3월 21일 공식 개관했으며, 서울의 대표적인 현대 건축 랜드마크 가운데 하나로 자리 잡았다.
설계 개념은 '환유의 풍경(Metonymic Landscape)'이다. 동대문 일대의 도시 에너지와 성곽의 역사적 흔적을 건축 매스 안으로 끌어들이려는 시도였다. 시공 과정에서 발견된 한양도성 성곽, 이간수문, 하도감 터 등 유구를 보존하기 위해 건물의 형태가 일부 조정됐다.
DDP는 국내 건축 및 시공업계에 BIM 설계가 널리 알려지는 계기가 됐다. 외장 패널 4만 5천 장이 모두 다른 곡률을 가진 비정형 건축물이었기 때문에, 2차원 도면만으로는 시공이 어려웠다. 서울시, 서울디자인재단, 삼성물산은 구조, 인테리어, 설비, 조경에 이르는 전 공정에 BIM 시스템을 적용했다.
모피어스 호텔
모피어스 호텔(Morpheus Hotel, 2018)은 마카오 코타이 스트립에 지어진 고급 호텔이다. 건물의 외골격 구조를 외부에 드러낸 것이 특징이다.
두 개의 수직 매스를 알루미늄 그물망 같은 구조가 감싸고, 가운데에는 비정형 보이드가 세 군데 뚫려 있다. 내부 코어에만 의존하지 않고 외부 구조가 하중을 나누는 방식으로, 호텔 건축에 조형성과 구조 실험을 결합한 사례다.
베이징 다싱 국제공항
베이징 다싱 국제공항(Beijing Daxing International Airport, 2019)은 ZHA의 대표적인 초대형 교통 인프라 프로젝트다. 2019년 9월 25일 공식 개항했으며, 단일 여객 터미널 지붕 아래 여러 기능을 통합했다.
6개의 탑승 윙이 중앙 허브에서 방사형으로 뻗어 나가며, 이 때문에 '불가사리(Starfish)'라는 별칭으로 불린다. 방사형 동선 덕분에 승객은 중앙 허브에서 먼 게이트까지도 비교적 짧은 시간 안에 이동할 수 있다.
프랑스 파리공항운영공단 엔지니어링(ADPI)과 함께 설계했으며, 곡면 지붕과 대형 C자형 기둥이 넓은 내부 공간을 만든다. 복잡한 구조와 대규모 여객 흐름을 함께 다룬 ZHA의 대표적인 사후 완공작이다.
리쩌 소호
리쩌 소호(Leeza SOHO, 2019)는 중국 베이징 펑타이구 중심업무지구에 지어진 45층 규모의 오피스 타워다.
부지 한가운데를 대각선으로 지나는 지하철 터널 때문에 건물은 두 개의 타워 매스로 나뉘었다. ZHA는 이 제약을 활용해 두 매스 사이에 거대한 아트리움을 만들었다. 아트리움은 상층부로 올라가며 나선형으로 비틀리고, 완공 당시 세계에서 가장 높은 단일 아트리움으로 소개됐다.
알 자누브 스타디움
알 자누브 스타디움(Al Janoub Stadium, 2019)은 카타르 알와크라에 지어진 4만 석 규모의 경기장이다. 2022년 카타르 FIFA 월드컵 경기장으로 사용됐다.
형태는 카타르의 전통 어선인 다우(Dhow)의 돛에서 모티프를 가져왔다. 곡면 지붕과 유선형 외피는 ZHA 특유의 흐르는 형태를 대형 스포츠 인프라로 확장한 사례다.
영향 관계
렘 콜하스와 AA 스쿨
하디드는 AA 스쿨 시절 렘 콜하스, 엘리아 젱겔리스, 베르나르 추미에게 배웠다. 이후 OMA에서 콜하스와 함께 일하며 도시 조직과 건축 형태에 대한 급진적인 사고를 익혔다.
콜하스는 졸업 무렵의 하디드를 두고 "독자적인 궤도를 공전하는 행성"이라고 표현했다. 이 말은 하디드가 당대 건축 교육 안에서도 독립적인 조형 감각을 가진 인물로 받아들여졌음을 보여준다.
러시아 아방가르드
하디드 조형의 중요한 출발점은 러시아 아방가르드 회화다. 말레비치의 절대주의 기하학, 타틀린과 로드첸코의 구축주의 스케치는 하디드의 초기 드로잉과 공간 구성에 강한 영향을 줬다.
하디드는 이 회화적 유산을 단순히 이미지로 차용하지 않고, 건축의 평면, 단면, 동선, 매스 구성으로 옮겼다. 더 피크와 말레비치의 테크토닉은 이 영향이 가장 직접적으로 드러나는 작업이다.
이라크와 이슬람 시각문화
하디드의 형태 감각에는 어린 시절 이라크에서 접한 풍경과 시각문화도 영향을 준 것으로 설명된다. 이라크 남부의 고대 유적, 습지 마을, 이슬람 서예의 유려한 선, 아라베스크 장식 패턴은 공간을 유동적으로 상상하는 데 배경이 됐다.
이 영향은 러시아 아방가르드처럼 직접적인 양식으로 드러나지는 않는다. 다만 하디드가 직선적 질서보다 흐르는 선과 연속적인 공간을 선호하게 된 배경으로 자주 언급된다.
파트릭 슈마허와 내부 계보
ZHA의 설계 리더십은 자하 하디드와 파트릭 슈마허의 협업으로 구축됐다. 슈마허는 독일 출신의 건축 이론가로, 철학, 수학, 건축을 공부했다. 1988년 비트라 소방서 스케치 작업에 합류했고, 2003년 수석 파트너가 됐다.
슈마허는 하디드의 회화적 조형을 디지털 설계와 이론 체계로 정리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1996년에는 브렛 스틸(Brett Steele)과 함께 AA 스쿨 내 DRL(Design Research Laboratory) 과정을 설립해 파라메트릭 설계 세대를 길러냈다.
2016년 하디드 타계 이후 슈마허는 ZHA의 대표적인 리더가 됐다. 이 과정에서 사무소는 창업자 개인의 카리스마에 기대던 조직에서 파라메트릭 설계와 대형 프로젝트 수행 능력을 갖춘 글로벌 회사로 재정비됐다.
파라메트릭 건축에 남긴 영향
ZHA는 컴퓨터 화면 속 비정형 곡면을 실제 현장에서 시공 가능한 건축으로 옮긴 대표적인 사무소다. 복잡한 곡면, 비정형 외장 패널, 대형 구조를 구현하기 위해 BIM과 파라메트릭 설계 도구가 적극적으로 사용됐다.
서울 DDP처럼 극단적인 비정형 건축은 국내 시공사와 공공 발주처가 3D BIM 시스템을 본격적으로 경험하는 계기가 됐다. ZHA의 작업은 건축 디자인뿐 아니라 시공 기술, 외장 제작, 구조 엔지니어링의 발전과도 연결된다.
ZHAI와 설계 연구
ZHA는 2020년대 들어 ZHAI(Zaha Hadid Analytics + Insights)라는 사내 연구 조직을 운영하고 있다. 이 조직은 데이터 분석, 알고리즘, 인공지능 기반 도구를 공간 기획과 워크플레이스 설계에 접목하는 역할을 맡는다.
이는 ZHA가 단순히 곡면 형태를 만드는 사무소를 넘어, 설계 방법론과 데이터 기반 공간 분석까지 확장하려는 흐름으로 볼 수 있다.
수상·전시 이력
자하 하디드는 2004년 프리츠커상을 받으며 여성 최초 수상자가 됐다. 2010년에는 막시로, 2011년에는 에벌린 그레이스 아카데미로 영국 스털링상을 2년 연속 받았다. 2016년 초에는 영국왕립건축가협회(RIBA) 로열 골드 메달을 여성 단독 수상자로는 처음 받았다.
2012년에는 건축과 예술에 기여한 공로로 영국 왕실로부터 데임(DBE, 대영제국 2등급 훈장) 작위를 받았다. 2013년에는 포브스가 선정한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여성 100인' 명단에 올랐다.
전시 이력에서도 하디드의 초기 드로잉은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1983년 런던 AA 스쿨에서는 그의 급진적인 드로잉을 모은 전시가 열렸고, 1988년에는 뉴욕 현대미술관의 '해체주의 건축' 전시에 참여했다.
사후에도 하디드의 이름은 여러 디자인과 전시에서 다시 다뤄졌다. 2014년 완공된 헤이다르 알리예프 센터는 런던 디자인 뮤지엄의 '올해의 디자인 대상'을 받았고, 2017년에는 브릿 어워드(BRIT Awards) 트로피 디자인이 하디드를 기리며 사후 헌정됐다.
사무소 차원에서도 막시, 에벌린 그레이스 아카데미, 모피어스 호텔, 베이징 다싱 국제공항, 리쩌 소호 등 여러 완공작이 글로벌 건축상에서 수상하거나 후보에 올랐다.
반응과 평가
위상과 영향
자하 하디드와 ZHA는 현대 건축계에서 가장 강한 시각적 인지도를 가진 이름 가운데 하나다. 프리츠커상, 스털링상 2년 연속 수상, RIBA 로열 골드 메달은 하디드가 건축 제도권 안에서도 높은 평가를 받았음을 보여준다. 이 수상 이력에는 '여성 최초' 또는 '여성 단독 첫 수상'이라는 기록이 함께 따라붙는다.
하디드의 이름 자체도 강한 브랜드가 됐다. 패션계의 유명 디자이너처럼, 그는 성보다 이름인 '자하'만으로도 통용되는 건축가가 됐다. ZHA는 창업자의 강한 이미지와 대형 랜드마크 프로젝트를 바탕으로 동시대 가장 인지도 높은 건축 설계 사무소 가운데 하나로 자리 잡았다.
디자인 반응
ZHA의 비정형 곡면과 유동적인 매스는 대중과 평단의 반응을 크게 갈라 놓았다. 지지자들은 사각형 박스 중심의 건축에서 벗어나, 공간을 더 역동적이고 감각적으로 경험하게 만든다고 평가한다.
막시, 헤이다르 알리예프 센터, 베이징 다싱 국제공항은 21세기 하이테크 건축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이미지로 자주 소개된다. 광저우 오페라하우스는 산업 도시였던 광저우에 문화적 상징성을 더한 작업으로 평가받는다.
반면 비판자들은 ZHA의 건축이 어느 도시에서나 비슷한 유선형 아이콘으로 보인다고 지적한다. 로마, 서울, 바쿠, 베이징처럼 서로 다른 맥락의 도시에 유사한 조형 언어가 반복된다는 점이 주요 비판이다.
기술과 시공 평가
ZHA는 비정형 건축을 실제로 시공 가능한 수준으로 끌어올린 사무소로 평가된다. 복잡한 곡면, 대형 캔틸레버, 비정형 외장 패널, 곡면 지붕을 구현하기 위해 BIM, 파라메트릭 설계, 구조 최적화 기술을 적극적으로 사용했다.
DDP는 국내 건설사가 전 공정에 BIM을 적용한 대표 사례로 자주 언급된다. 베이징 다싱 국제공항은 대형 곡면 지붕과 방사형 동선을 결합해 초대형 공항 터미널을 하나의 유기적 공간처럼 구성했다.
다만 이런 기술적 성취가 항상 사용성과 유지관리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아니다. ZHA의 건축은 형태가 강한 만큼, 공간의 실질적 사용성, 비용, 유지보수 측면에서 비판을 받기도 한다.
장소성과 기능 비판
ZHA를 향한 가장 큰 비판 가운데 하나는 장소성과 기능의 문제다. 초기에는 하디드의 도면이 현실의 중력을 무시한 그래픽에 가깝다는 회의론이 있었다. 이후 디지털 설계와 시공 기술이 발전하면서 형태는 현실화됐지만, 비판의 초점은 조형적 스펙터클이 기능과 장소성을 압도한다는 쪽으로 옮겨 갔다.
도쿄 2020 올림픽 주경기장 설계안은 대표적인 사례다. 일본 건축계는 이 설계안이 진구 가이엔의 경관과 맞지 않고, 규모와 비용이 지나치게 크다고 비판했다. 결국 프로젝트는 백지화됐다.
서울 DDP 역시 건립 초기에는 동대문 상권의 복잡한 도시 조직과 한양도성 유적지의 맥락에 충분히 맞지 않는다는 비판을 받았다. 은빛의 거대한 비정형 건축물이 동대문 일대에 갑자기 들어섰다는 반응도 있었다. 반면 하디드는 큰 연면적의 건물을 단순한 박스 형태로 쌓았다면 오히려 더 무거운 장벽처럼 보였을 것이라고 반박했다.
윤리와 정치성 논란
ZHA의 일부 프로젝트는 정치적 맥락 때문에 논란을 낳았다. 헤이다르 알리예프 센터는 아제르바이잔 전직 통치자의 이름을 딴 국가 프로젝트였고, 권위주의 체제의 상징물로 해석될 수 있다는 비판을 받았다.
이 논란은 건축가와 설계 사무소가 어떤 발주를 받아들일 수 있는지, 정치적 권력과 랜드마크 건축이 어떻게 연결되는지에 대한 질문으로 이어졌다. ZHA의 건축은 조형적 성취와 별개로, 대형 국가 프로젝트가 가진 정치성과 윤리 문제에서 자유롭지 않다는 평가를 받는다.
관련·혼동 용어
Zaha Hadid Architects
Zaha Hadid Architects는 자하 하디드가 1979년 런던에 설립한 건축·디자인 스튜디오의 기존 공식 명칭이다. 한국어로는 자하 하디드 아키텍츠로 표기한다.
ZHA
ZHA는 자하 하디드 아키텍츠가 2026년 6월부터 사용한 공식 사명이다. 창업자의 풀네임을 전면에 내세운 기존 명칭에서 벗어나, 직원 소유의 글로벌 설계 조직으로 정체성을 다시 정리한 이름이다.
자하 하디드
자하 하디드는 이라크 출신 영국 건축가로, ZHA의 창립자다. 비정형 곡선과 유동적 형태를 통해 현대 건축의 조형 언어를 크게 확장한 인물로 평가된다.
파트릭 슈마허
파트릭 슈마허는 ZHA의 수석 파트너이자 이론가다. 하디드의 주요 협업자였으며, 파라메트리시즘 이론을 주창했다. 하디드 타계 이후 ZHA의 운영을 이끌고 있다.
해체주의
해체주의(Deconstructivism)는 1980년대 후반 부상한 건축 사조다. 비대칭, 파편화, 불안정한 구조를 통해 모더니즘의 질서와 기능주의를 흔든다. 하디드의 초기작 비트라 소방서는 이 흐름과 자주 함께 언급된다.
파라메트리시즘
파라메트리시즘(Parametricism)은 파트릭 슈마허가 주창한 건축 이론이다. 다양한 설계 변수(Parameter)를 컴퓨터 알고리즘으로 연결해 복잡하고 유기적인 건축 형태를 만든다는 개념이다.
절대주의
절대주의(Suprematism)는 카지미르 말레비치가 창시한 20세기 초 러시아 전위 예술 사조다. 현실 세계의 구체적 재현보다 원, 사각형, 십자 같은 기하학적 형태와 색채를 통해 순수한 감각을 표현하려 했다. 하디드의 초기 회화와 건축 형태에 큰 영향을 줬다.
BIM
BIM(Building Information Modeling)은 건축물의 3차원 형상에 자재, 물성, 공정, 비용 등의 정보를 결합하는 건축 정보 모델링 기술이다. ZHA의 비정형 곡면을 실제 시공 현장에서 구현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프리츠커상
프리츠커상(Pritzker Architecture Prize)은 건축계의 최고 권위 상 가운데 하나다. 하디드는 2004년 이 상을 받으며 여성 최초 수상자가 됐다.
동대문디자인플라자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는 하디드가 설계해 2014년 완공된 서울의 복합문화공간이다. 곡선으로 이루어진 대형 비정형 건축물로, 국내 건설업계에 BIM 설계가 본격적으로 알려지는 계기가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