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MA (OMA)
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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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Taipei Performing Arts Center / OMA
OMA(Office for Metropolitan Architecture, 메트로폴리탄 건축 사무소)는 1975년 렘 콜하스(Rem Koolhaas)를 중심으로 세워진 건축·도시 사무소다. 본사는 네덜란드 로테르담에 있고, 뉴욕·홍콩·호주에 지사를 둔다. 설립자는 콜하스와 엘리아 젱겔리스(Elia Zenghelis), 마들롱 프리센도르프(Madelon Vriesendorp), 조에 젱겔리스(Zoe Zenghelis) 네 사람이다. 1998년에는 건축 바깥의 일을 맡는 연구 조직 AMO를 사무소 안에 세웠다.
OMA의 출발점은 건물이 아니라 책이었다. 콜하스는 건축가가 되기 전 헤이그의 신문 하흐서 포스트(Haagse Post) 기자였고 영화 시나리오를 썼다. 그는 런던 건축협회학교(Architectural Association, AA)를 1972년에 졸업했고, 첫 건물을 짓기도 전인 1978년에 책 『정신착란의 뉴욕(Delirious New York)』을 펴내 건축계에서 이름을 얻었다. 이 순서가 OMA의 성격을 규정한다. OMA는 짓는 일과 생각하는 일을 한 몸으로 묶은 사무소이며, 그 점에서 다른 거장 사무소들과 갈린다.
OMA에는 정해진 외형이 없다. 프랭크 게리나 자하 하디드가 한눈에 알아볼 수 있는 자기 양식을 평생 다듬은 것과 달리, 콜하스는 프로젝트마다 대지·의뢰인·쓰임에 따라 전혀 다른 답을 낸다. 그래서 OMA의 시그니처는 특정한 모양이 아니라 건물을 푸는 방법이다. 쓰임을 잘게 쪼개 도표로 만든 뒤 그 도표를 건물의 구조와 동선으로 옮기는 방식이다. 시애틀 도서관의 다섯 단, CCTV 본사의 고리, 도서관 안을 한 줄로 도는 책의 나선이 모두 이 방법에서 나왔다.
OMA의 또 다른 무게중심은 사람이다. 이 사무소는 매년 신입 인력을 대거 채용해 단련시키는 구조로 운영돼 왔고, 그 결과 자하 하디드, 윈디 마스, 비야케 잉겔스, 조슈아 프린스 라무스, 조민석 같은 이름들이 OMA를 거쳐 독립했다. 언론이 이들을 베이비 렘(Baby Rems)이라 부를 만큼, OMA는 21세기 건축의 인재 양성소 역할을 했다.
약력·연혁
건축 이전의 콜하스
콜하스는 1944년 로테르담에서 태어났고, 유년기 일부를 인도네시아에서 보냈다. 기자·시나리오 작가로 일하다 뒤늦게 건축으로 방향을 틀어 런던 AA에 들어갔고, 거기서 강사 엘리아 젱겔리스와 학생 콜하스가 함께 작업하기 시작했다. 두 사람의 첫 주요 작업은 1972년의 가상 프로젝트 엑소더스, 혹은 건축의 자발적 수인들(Exodus, or the Voluntary Prisoners of Architecture)이다. 런던을 칼처럼 가르는 선형 구조물을 제안한 이 작업은 지을 의도가 없는 종이 건축이었다.
콜하스는 AA 졸업 후 하크니스 장학금(Harkness Fellowship)으로 미국에 건너가 뉴욕의 건축도시연구소(IAUS)에 머물렀고, 코넬대학교에서 독일 건축가 오스발트 마티아스 웅거스(Oswald Mathias Ungers) 밑에서 공부했다. 이 시기 그는 맨해튼을 소재로 한 『정신착란의 뉴욕』 원고를 썼다. 1975년 콜하스는 엘리아·조에 젱겔리스 부부, 그리고 당시 그의 아내였던 화가 마들롱 프리센도르프와 함께 런던에서 OMA를 정식으로 세웠다. 사무소 초기에는 반쯤 농담처럼 칼리가리 박사의 메트로폴리탄 건축 실험실(Office for Metropolitan Architecture, The Laboratory of Dr. Caligari)이라는 긴 이름을 붙이기도 했다.
종이 건축의 시대
OMA의 출범은 1978년 헤이그 의사당 증축 설계 경기 참가와 맞물려 있었다. OMA는 이 경기에서 1등작 가운데 하나로 뽑혀 크게 회자됐지만, 정작 일감은 경기에 참여하지도 않은 다른 건축가에게 돌아갔다. 이 일은 1980년대 내내 이어진 패턴의 시작이었다. OMA는 국제 설계 경기에서 화제를 일으키고도 정작 그 안을 짓지 못하는 일이 반복됐다. 명성은 도면과 모형으로 쌓였고, 실물은 좀처럼 따라오지 못했다.
이 시기 OMA의 첫 실제 일감은 헤이그의 네덜란드 댄스 시어터와 암스테르담 IJ 광장 도시계획이었다. 1980년대에 실제로 지어진 것은 알메러 경찰서, 로테르담 버스터미널, 베를린의 체크포인트 찰리 주거 정도로 많지 않았다. AA를 1977년에 졸업한 자하 하디드(Zaha Hadid)가 이 무렵 OMA의 초기 작업에 참여했다가 1980년 독립했다.
첫 건물들
1987년 완공된 네덜란드 댄스 시어터는 콜하스의 생각이 처음으로 실물로 드러난 건물이다. 이후 10여 년 동안 OMA는 종이에서 건물로 무게중심을 옮겼다. 파리의 빌라 달라바, 일본 후쿠오카의 넥서스 주거, 로테르담의 쿤스탈(Kunsthal), 위트레흐트대학교의 에듀카토리움(Educatorium), 프랑스 릴의 도시 마스터플랜과 그랑 팔레가 이 시기 대표작이다. 릴 계획은 콜하스가 실현한 가장 큰 규모의 도시계획 작업이다.
1995년에는 그래픽 디자이너 브루스 마우(Bruce Mau)와 함께 1,300쪽이 넘는 책 『S,M,L,XL』을 펴냈다. OMA의 작업을 사진, 도면, 소설, 만평, 단상과 뒤섞은 이 책은 건축에 관한 소설로 불렸다. 1998년 완공된 보르도 주택(Maison à Bordeaux)은 이 시기 OMA의 정점이다. 같은 해 콜하스와 레이니르 더 흐라프는 건축 바깥의 일을 맡는 연구 조직 AMO를 사무소 안에 세웠다.
아이콘의 시대
2000년 콜하스의 프리츠커상 수상을 전후로 OMA는 큰 공공 건물을 잇따라 실현하며 전성기에 들어섰다. 패션 브랜드 프라다(Prada)의 매장, 베를린의 네덜란드 대사관, 시애틀 중앙도서관, 포르투의 카사 다 무지카가 이어졌다. 이 흐름의 정점이 2012년 완공된 베이징 CCTV 본사다. 두 동의 타워가 기운 채 공중에서 맞물리는 고리형 건물로, OMA는 초고층 건축의 형태 자체를 다시 논쟁거리로 만들었다.
전 지구적 사무소
2010년대 이후 OMA는 유럽·아시아·미주·중동을 아우르는 다국적 사무소로 자리 잡았다. 네덜란드 최대 규모 건물인 로테르담의 데 로테르담(De Rotterdam), 밀라노의 폰다치오네 프라다, 모스크바의 가라지 현대미술관, 도하의 카타르 국립도서관, 베를린의 악셀 슈프링거 캠퍼스, 스톡홀름의 노라 토르넨이 이 시기에 완공됐다. 2009년 1월 설계 경기에서 따낸 타이베이 공연예술센터는 약 10년의 공사를 거쳐 2022년 8월 문을 열었다.
가장 최근 흐름으로는 맨체스터의 아비바 스튜디오(Factory International), 버펄로 AKG 미술관, 도쿄의 도라노몬 힐스 스테이션 타워, 보르도의 시몬 베유 다리, 디트로이트의 랜턴(LANTERN), 뉴욕 뉴 뮤지엄 증축이 있다. 운영 면에서는 2024년 7월, 1998년 합류해 2002년 파트너가 된 엘런 판 론(Ellen van Loon)이 26년 만에 파트너직에서 물러났다. 오랫동안 OMA의 유일한 여성 파트너였던 그는 카사 다 무지카, 네덜란드 대사관, 데 로테르담, 아비바 스튜디오를 이끌었다.
현재 OMA는 콜하스, 레이니르 더 흐라프(Reinier de Graaf), 쇼헤이 시게마쓰(Shohei Shigematsu), 이야드 알사카(Iyad Alsaka), 크리스 판 다윈(Chris van Duijn), 제이슨 롱(Jason Long), 매니징 파트너 다비트 히아노턴(David Gianotten)을 중심으로 운영된다.
디자인 철학·시그니처
고정된 양식의 부재
OMA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고정된 외형이 없다는 점이다. 콜하스는 과거 양식을 인용하지 않으면서도, 매 프로젝트에서 대지·의뢰인·쓰임이 요구하는 답을 따로 찾는다. 보르도 주택의 움직이는 유리방, 시애틀 도서관의 각진 외피, CCTV 본사의 고리는 같은 손에서 나왔다고 보기 어려울 만큼 다르다. 비평가들이 콜하스를 한 가지 미감을 평생 다듬는 건축가가 아니라, 끝없이 다른 아이디어를 끌어다 쓰는 개념 미술가에 빗대는 이유다.
혼잡의 문화와 맨해튼주의
OMA의 이론적 뿌리는 『정신착란의 뉴욕』에 있다. 콜하스는 맨해튼을 혼잡의 문화(Culture of Congestion)가 작동하는 실험실로 봤다. 인구, 정보, 기술이 한 섬에 몰리면서 위로만 자랄 수밖에 없었던 격자와 마천루가 밀도 자체를 가치로 바꿔 놓았다는 해석이다.
그는 이 밀도의 문화를 풀어야 할 문제가 아니라 끌어안아야 할 자원으로 봤고, 이렇게 밀도를 의도적으로 끌어올리는 도시적 태도를 맨해튼주의(Manhattanism)라 불렀다. 마천루를 도시 안의 도시로 보는 시각, 코니아일랜드를 도시적 환상의 원형으로 보는 관점이 여기서 나왔다.
프로그램과 다이어그램
OMA가 건물을 푸는 출발점은 형태가 아니라 프로그램, 즉 쓰임의 분류다. 시애틀 중앙도서관에서 OMA는 도서관의 기능을 다섯 개의 안정적 덩어리와 네 개의 불안정한 덩어리로 나눈 뒤, 안정적 덩어리를 단으로 쌓고 그 사이에 나머지를 끼워 넣었다.
건물의 각진 겉모양은 이 분류의 결과물일 뿐, 미리 정해진 모양이 아니다. 비평가들이 OMA의 이 방식을 서사가 아니라 데이터베이스의 미학에 비유하는 까닭이다.
비그니스
콜하스는 건물이 일정 규모를 넘어서면 그 자체로 하나의 도시가 된다는 비그니스(Bigness, 거대함) 개념을 『S,M,L,XL』에서 제시했다. 이 규모에서는 겉, 즉 외피가 더 이상 속, 즉 내부를 설명하지 못하고 둘이 분리된다는 것이다.
이 논리의 연장선에서 콜하스는 맥락에 얽매이지 않겠다는 도발적 태도를 내세웠다. CCTV 본사가 거리와의 관계를 끊고 도시 속이 아니라 하나의 도시처럼 서 있는 것이 비그니스의 전형이다.
정크스페이스와 제네릭 시티
콜하스의 비평은 도시 전체로 확장된다. 그는 근대화가 남긴 찌꺼기 같은 공간, 공항과 쇼핑몰처럼 어디서나 똑같이 반복되는 환경을 정크스페이스(Junkspace)라 불렀다.
또 고유한 정체성을 잃고 공항을 새로운 표준으로 삼는 도시를 제네릭 시티(Generic City, 일반 도시)로 규정했다. 이 글들은 OMA가 단지 건물을 짓는 사무소가 아니라, 전 지구적 도시 조건을 읽는 비평 기구이기도 하다는 점을 보여준다.
OMA와 AMO
OMA가 건축을 한다면, 부설 조직 AMO는 건축을 뺀 거의 모든 것을 한다. 1998년 콜하스와 더 흐라프가 세운 AMO는 전시, 브랜딩, 출판, 에너지 계획, 정치 자문을 맡는 연구 조직이다.
AMO는 유럽연합을 위해 회원국 깃발을 한데 모은 바코드 깃발을 디자인했고, 프라다의 매장 기술과 전시를 함께 설계했으며, 유럽 전역의 재생에너지 그리드를 구상한 로드맵 2050(Roadmap 2050), 일본 메타볼리즘 운동을 정리한 『프로젝트 재팬(Project Japan)』을 내놓았다. 잡지 『와이어드』와 『도무스』의 객원 편집, 구겐하임 미술관의 전시 컨트리사이드: 미래(Countryside: The Future)도 AMO의 작업이다.
주요 작업
정신착란의 뉴욕
『정신착란의 뉴욕(Delirious New York, 1978)』은 OMA의 사실상 출발점이 된 책이다. 콜하스는 맨해튼의 역사를 격자, 코니아일랜드, 마천루, 록펠러 센터 같은 장면들로 잘라 몽타주처럼 엮으며, 도시가 거대한 인공 경험의 공장이라고 주장했다.
표지에는 아내 마들롱 프리센도르프가 그린 그림이 쓰였고, 본문에는 크라이슬러 빌딩과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이 한 침대에 누운 듯한 이미지가 등장한다. 『타임』은 훗날 콜하스의 책들을 두고 MTV와 데리다를 함께 보고 자란 세대를 위한 책이라 평했다.
네덜란드 댄스 시어터
네덜란드 댄스 시어터(Netherlands Dance Theater, 1987)는 헤이그에 지어진 OMA의 첫 완공작이다.
무대와 객석, 리허설 스튜디오, 사무·분장 공간을 한데 묶은 극장이다. 첫 실수들로 가득 차 있다는 평을 들으면서도, 콜하스의 생각이 처음으로 실물이 됐다는 점에서 국제적 주목을 받았다.
빌라 달라바
빌라 달라바(Villa dall’Ava, 1991)는 파리에 지은 단독주택이다. OMA가 그 시점까지 내놓은 가장 무르익은 설계로 꼽힌다.
의뢰인은 걸작을 원했고, 남편은 유리 집을, 아내는 옥상 수영장을 원했다. 거듭된 지연 끝에 완성된 이 집을 콜하스는 OMA가 성장한 기록이라 불렀다.
보르도 주택
보르도 주택(Maison à Bordeaux, 1998)은 OMA의 대표작 가운데 가장 사적인 건물이다. 의뢰인은 교통사고로 휠체어를 쓰게 된 남성이었고, 그는 콜하스에게 자신의 세계를 규정할 복잡한 집을 원한다고 했다.
OMA의 답은 3개 층을 관통해 위아래로 움직이는 3m×3.5m 유리방이었다. 이 방은 엘리베이터이자 독립된 서재로, 한쪽 벽 전체가 책장이어서 어느 층에서든 책에 손이 닿는다. 『타임』은 이 집을 1998년 최고의 디자인으로 꼽았다. 2000년 프리츠커상 심사평은 보르도 주택 하나만으로도 그의 건축사적 자리는 확고했을 것이라고 적었다.
네덜란드 대사관
네덜란드 대사관(Netherlands Embassy, 2003)은 통일 후 베를린으로 옮긴 네덜란드 대사관 건물이다.
OMA는 건물 내부를 가로지르는 연속된 동선을 만들어 주변 도시와 관계 맺는 방식으로 풀었다. 이 개념으로 2003년 베를린 건축상과 2005년 유럽연합 미스 반 데어 로에 건축상(Mies van der Rohe Award)을 받았다.
시애틀 중앙도서관
시애틀 중앙도서관(Seattle Central Library, 2004)은 OMA가 프로그램을 건물로 옮긴 방식을 가장 선명하게 보여주는 작업이다.
OMA는 도서관의 기능을 다섯 개의 단과 그 사이의 네 개 면으로 나눴고, 이 분류가 건물의 각진 외형을 결정했다. 핵심은 책의 나선(Book Spiral)이다. 듀이십진분류 000에서 999까지를 한 줄의 경사로로 이어 놓아, 장서가 늘어도 분류가 끊기지 않고 위층으로 연속해 흐르도록 했다.
개관 당시 6,233개의 서가에 78만 권이 꽂혔고, 서가를 늘리지 않고도 145만 권까지 수용할 수 있게 설계됐다. 시애틀 도서관은 OMA의 뉴욕 사무소를 이끈 조슈아 프린스 라무스(Joshua Prince-Ramus)가 책임 파트너였고, 당시 OMA에 있던 비야케 잉겔스도 설계에 참여했다. 『뉴욕 타임스』 비평가 허버트 머스챔프는 30년간 건축을 써 오며 평한 가장 흥미로운 새 건물이라고 적었다.
카사 다 무지카
카사 다 무지카(Casa da Música, 2005)는 포르투가 2001년 유럽 문화수도로 선정되며 시작된 공연장 설계 경기의 당선작이다.
이 건물은 본래 다른 안에서 출발했다. OMA는 한 부호를 위해 설계했다가 짓지 못한 Y2K 주택 안을 콘서트홀 규모로 키워 카사 다 무지카로 발전시켰다. 결과물은 흰 콘크리트의 다면체 덩어리로, 두께 40cm의 외피와 1m 두께의 주 홀 벽이 구조를 떠받친다.
안에는 1,300석 규모의 직육면체 대강당이 들어 있다. OMA는 음향 연구 끝에 직육면체 홀이 음향에 가장 유리하다는 결론에 이르렀고, 형태를 바꾸는 대신 강당 양 끝을 물결치는 유리벽으로 열어 포르투의 도시 풍경을 공연의 배경으로 끌어들였다. 이 건물은 2007년 RIBA 유럽상을 받았다.
CCTV 본사
CCTV 본사(CCTV Headquarters, 2012)는 중국 국영방송 CCTV의 본사로, OMA의 가장 논쟁적인 건물이다. 콜하스와 당시 베이징 사무소를 이끌던 올레 셰렌(Ole Scheeren)이 설계를 주도했고, 다비트 히아노턴과 여러 파트너가 함께했다.
높이 약 234m의 두 타워가 각각 약 6도씩 두 방향으로 기운 채, 9층부터 13층 규모의 75m 길이 캔틸레버로 공중에서 맞물려 하나의 고리를 이룬다. 구조는 아럽(ARUP)의 세실 발몬드(Cecil Balmond)가 맡았다.
건물 표면의 사선 격자, 즉 다이어그리드는 단순한 무늬가 아니라 구조에 걸리는 힘의 지도다. 힘이 큰 곳은 격자가 촘촘하고 작은 곳은 성글다. 지진대에 짓는 고리형 구조의 안정성을 위해 외피 전체를 하나의 구조 튜브로 만들었고, 진도 8의 지진을 견디도록 설계됐다.
공중의 캔틸레버는 두 타워의 강철이 같은 온도에 이른 새벽 시간에 정밀하게 맞춰 연결됐다. 두 타워의 온도 차가 만들 응력을 피하기 위해서였다. 베이징 시민들은 이 건물을 큰 바지(大裤衩)라 불렀고, 2013년 세계초고층도시건축학회(CTBUH)의 세계 최고 고층 건물로 선정됐다.
데 로테르담
데 로테르담(De Rotterdam, 2013)은 로테르담 마스강 변에 선 복합 건물이다. 사무실, 호텔, 주거를 담는다.
44개 층, 약 16만 제곱미터 규모로 네덜란드 최대 건물이다. 6개 층 높이의 공통 기단 위에 세 개의 타워가 서로 어긋나게 맞물려, 보는 각도에 따라 한 덩어리로도, 세 동으로도 보인다.
폰다치오네 프라다
폰다치오네 프라다(Fondazione Prada, 2015/2018)는 밀라노의 옛 증류소 단지를 미술 재단의 복합 공간으로 바꾼 작업이다.
기존 건물과 새 건물을 한자리에 엮었고, 2015년 1차 개관에 이어 2018년 탑 형태의 토레(Torre)가 더해졌다. 브랜드 재단의 미술 공간을 단순한 전시장보다 도시 안의 복합 문화 지구에 가깝게 다룬 사례다.
타이베이 공연예술센터
타이베이 공연예술센터(Taipei Performing Arts Center, 2022)는 약 10년의 공사를 거쳐 문을 연 공연장이다. 콜하스와 히아노턴이 주도했고, 타이베이의 스린 야시장 옆에 자리한다.
중앙의 정육면체 본체에 세 개의 극장이 꽂힌 구조다. 구 형태의 800석 글로브 플레이하우스, 1,500석 대극장, 800석 블루 박스가 들어간다. 본체에는 세 극장의 무대와 백스테이지가 모여 있어, 대극장과 블루 박스를 이어 붙이면 거대한 슈퍼 극장이 만들어진다.
아비바 스튜디오
아비바 스튜디오(Aviva Studios, Factory International, 2023)는 맨체스터에 지어진 예술센터다. 엘런 판 론이 이끌었다.
변형이 자유로운 공연 공간을 갖춘 시설로, 공연·전시·이벤트가 하나의 고정된 홀에 갇히지 않도록 설계됐다. OMA가 프로그램의 가변성을 공연장 유형 안에서 다룬 최근 사례다.
시몬 베유 다리
시몬 베유 다리(Pont Simone Veil, 2024)는 프랑스 보르도에 지어진 다리다. 두 지구를 잇는 약 170m 보행 교량이다.
교통 인프라에 머무르기보다 시민이 걸어 다니고 머무를 수 있는 넓은 도시 표면으로 설계됐다. OMA가 건물을 넘어 도시 인프라를 공공 공간으로 다루는 방식을 보여준다.
뉴 뮤지엄 증축
뉴 뮤지엄 증축(New Museum Expansion, 2026)은 뉴욕에 완공된 OMA의 주요 공공 건축 프로젝트다. 쇼헤이 시게마쓰와 콜하스가 이끌었다.
기존 뉴 뮤지엄 옆에 새 전시 공간을 더해, 미술관의 동선과 공공 기능을 확장한 작업이다. OMA가 뉴욕에 남긴 주요 공공 건물로 볼 수 있다.
영향 관계
스승과 사조
콜하스의 건축에는 출처가 여럿 겹쳐 있다. 런던 AA에서는 강사였던 엘리아 젱겔리스와 함께 OMA의 씨앗을 키웠다. 미국에서는 피터 아이젠먼이 이끌던 뉴욕 IAUS에 머물렀고, 코넬에서 오스발트 마티아스 웅거스에게 배웠다.
기자·시나리오 작가 출신이라는 이력은 도시를 장면들로 잘라 몽타주처럼 엮는 그의 서술 방식으로 이어졌다. 화가 마들롱 프리센도르프를 통해 초현실주의적 이미지도 초기 작업에 스며들었다. 미스 반 데어 로에의 영향도 분명해서, OMA는 로테르담의 초기 파티오 주택과 미스가 설계한 일리노이공대(IIT) 캠퍼스의 학생회관에서 그 흔적을 드러낸다.
베이비 렘과 OMA 디아스포라
OMA를 거쳐 독립한 건축가들은 21세기 건축의 지형을 바꿔 놓았다. 자하 하디드는 AA 동문으로 OMA의 가장 이른 작업에 참여했다가 1980년 자하 하디드 아키텍츠를 세웠다. 윈디 마스(Winy Maas)와 야코프 판 레이스는 콜하스 밑에서 일한 뒤 나탈리 더 프리스와 함께 1993년 네덜란드의 MVRDV를 차렸다.
비야케 잉겔스(Bjarke Ingels)는 1998년부터 2000년까지 OMA에서 시애틀 도서관 설계에 참여한 뒤, 율리엔 더 스메트와 PLOT을 거쳐 BIG를 세웠다. 조슈아 프린스 라무스는 1996년 합류해 시애틀 도서관의 책임 파트너를 맡았고, 2006년 OMA 뉴욕 사무소를 들고 나가 REX를 설립했다. CCTV 본사를 이끈 올레 셰렌은 2010년 독립해 부로 올레 셰렌을 세웠다.
이 명단은 더 길다. 미국의 잔 갱(Studio Gang), 멕시코의 페르난도 로메로(FR-EE), 파시드 무사비와 알레한드로 자에라폴로의 FOA, 댄 우드와 아말레 안드라오스의 WorkAC가 모두 OMA에서 출발했다. 한국에서는 매스 스터디스(Mass Studies)를 이끄는 조민석이 OMA를 거쳤다. 2011년 잡지 『메트로폴리스』는 이런 OMA 출신 사무소들을 한 장의 계보도로 정리하며 약 46개의 이름을 담았고, 이들을 베이비 렘이라 불렀다.
수상·전시 이력
콜하스 개인은 건축계의 주요 상을 대부분 받았다. 2000년 프리츠커 건축상이 대표적이다. 시상식은 예루살렘의 성전산 일대 고고학 유적에서 열렸고, 하얏트 재단 이사장 토머스 프리츠커는 그를 새로운 근대 건축의 예언자라고 표현했다. 심사평은 그를 건물만큼이나 책, 도시계획, 학문적 탐구로 유명한 인물로 규정했다.
이후 2003년 일본미술협회의 프레미엄 임페리알레(Praemium Imperiale), 2004년 영국 왕립건축가협회(RIBA)의 로열 골드 메달(Royal Gold Medal), 2005년 유럽연합 미스 반 데어 로에 건축상, 2010년 베네치아 비엔날레 평생공로 황금사자상, 2013년 요하네스 페르메이르상을 받았다.
작품 단위 수상으로는 CCTV 본사의 2013년 CTBUH 세계 최고 고층 건물, 카사 다 무지카의 2007년 RIBA 유럽상, 베를린 네덜란드 대사관의 2005년 미스 반 데어 로에 건축상이 있다.
전시·기획 이력도 두텁다. 콜하스는 2014년 제14회 베네치아 건축 비엔날레의 총감독을 맡아 주제 펀더멘털스(Fundamentals)를 내걸었다. 이 비엔날레는 중앙관의 건축의 요소들(Elements of Architecture), 아르세날레의 몬디탈리아(Monditalia), 각국관의 근대성 흡수 1914–2014(Absorbing Modernity) 세 갈래로 짜였다.
2020년에는 비도시 지역을 다룬 전시 컨트리사이드: 미래를 뉴욕 구겐하임에서 선보였다. 2011년 런던 바비컨 갤러리의 OMA/Progress는 영국에서 처음 열린 OMA의 대규모 회고전이었다.
반응과 평가
디자인
OMA의 디자인 역량은 작품 단위 수상과 평단의 평가로 인정받았다. CCTV 본사는 2013년 CTBUH로부터 그해 세계 최고 고층 건물로 뽑혔고, 일부 비평가는 이를 금세기에 지어진 가장 위대한 건축으로 꼽았다. 카사 다 무지카는 2007년 RIBA 유럽상을, 베를린 네덜란드 대사관은 2005년 미스 반 데어 로에 건축상을 받았다.
시애틀 중앙도서관은 개관 당시 『뉴욕 타임스』를 비롯한 평단의 호평을 받으며 2000년대 초의 대표 건물로 자리 잡았다. 사무소 차원의 위상은 콜하스의 2000년 프리츠커상으로 대표된다.
품질·안전
OMA의 구조와 시공이 가장 시험대에 오른 사례는 CCTV 본사다. 지진대에 고리형 구조를 세우는 일은 중국 규정이 평가할 수 있는 범위를 벗어났고, 아럽은 비선형 시뮬레이션으로 4만 개의 구조 부재가 지진에 어떻게 반응하는지를 계산해 진도 8을 견디는 설계를 내놓았다.
공중의 75m 캔틸레버는 두 타워의 강철 온도가 같아진 시점에 맞춰 연결하는 정밀 시공으로 완성됐다. 카사 다 무지카는 두께 40cm의 흰 콘크리트 외피와 1m 두께의 주 홀 벽이 구조를 함께 떠받치도록 한 사례다.
브랜드·인물
OMA의 영향력은 건물 목록보다 인물 계보에서 더 크게 드러난다는 평가를 받는다. 콜하스는 여러 비평에서 현존하는 가장 영향력 있는 건축가로 거론됐고, 2000년 프리츠커 후보군은 500명을 넘었다.
자하 하디드, MVRDV, BIG, REX, 매스 스터디스로 이어지는 출신 사무소 계보는 단일 사무소가 한 세대 건축에 미친 영향으로는 드문 사례다. 평가 단위는 구분해 봐야 한다. 프리츠커상과 로열 골드 메달 같은 영예는 콜하스 개인의 것이고, 인재 양성소로서의 위상은 OMA라는 조직의 것이다.
설계 경기 성적은 양면적이다. OMA는 1978년 헤이그 의사당 경기에서 1등작에 들고도 짓지 못했고, 1980년대 내내 화제작을 내고도 실현하지 못한 안이 많았다. 명성이 실물보다 앞섰던 시기다.
디자인 반응
OMA의 건물은 찬반이 뚜렷하게 갈리는 쪽이다. CCTV 본사가 대표적이다. 한쪽에서는 이를 금세기 최고의 건축으로 추켜세웠지만, 다른 쪽에서는 괴물 같은 건물이라 비판했고, 베이징 시민들은 큰 바지라는 별명으로 불렀다.
콜하스 자신은 이 건물을 두고 중국인이 구상할 수도, 유럽인이 지을 수도 없었던 혼종이라고 말했다. 비그니스의 논리, 즉 거대한 건물이 거리와의 관계를 끊고 스스로 하나의 도시가 되는 방식 역시 찬사와 우려를 동시에 받았다.
비판
1980년대에는 OMA가 도면과 글로만 유명한 종이 건축 사무소라는 지적이 따라다녔다. 설계 경기에서 화제를 일으키고도 실물을 좀처럼 짓지 못했기 때문이다.
2000년대 이후에는 프로그램과 다이어그램의 논리가 때로 의도적으로 낯설거나 거리를 두는 아이콘을 낳는다는 비판이 나왔다. 『플레이시스 저널』의 한 비평은 CCTV 본사가 콜하스 자신이 옹호한 혼잡의 문화를 버리고, 거리를 잔여물로 취급하며 도시 속이 아니라 도시 위에 선 대상이 됐다고 지적했다.
외국 건축가가 베이징의 상징적 건물을 설계하는 일을 둘러싼 논쟁도 있었다. 칭화대 건축학과 교수 우량융은 외국 건축가를 거장처럼 떠받드는 풍토를 비판했다고 『더 뉴요커』가 전했다. 이 흐름은 상징적 건축이 권력의 이미지와 어떻게 결합하는가라는 건축 담론 내부의 오래된 쟁점과 맞닿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