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르마판타스마 (Formafantasma)

개요

포르마판타스마(Formafantasma)는 안드레아 트리마르키(Andrea Trimarchi)와 시모네 파레신(Simone Farresin)이 이끄는 이탈리아 디자인 스튜디오다. 이들은 기물의 외형을 스케치하기에 앞서, 재료의 채굴, 가공 주체, 유통망의 경로, 폐기의 사이클을 끈질기게 추적한다. 스스로를 '리서치 기반 디자인 스튜디오(Research-based design studio)'라 명명하며, 생태적, 역사적, 정치·사회적 역학이 동시대 디자인의 산출물을 어떻게 결정짓는지 해부한다.

2009년 네덜란드 디자인 아카데미 에인트호번(DAE)을 졸업한 후 네덜란드에서 활동을 시작했고, 현재는 밀라노를 거점으로 둔다. 초기에는 화산석, 식물성 수지 등 비주류 소재 실험으로 이목을 끌었으나, 점차 개별 제품의 생산을 넘어 전자폐기물 산업을 조망한 '오어 스트림스(Ore Streams)', 목재 산업의 글로벌 공급망을 고발한 '캄비오(Cambio)', 양모 생태계를 추적한 '올트레 테라(Oltre Terra)' 등 거시적인 산업 구조 자체를 비평하는 프로젝트로 궤도를 옮겼다.

기업과의 연대 방식 또한 이례적이다. 핀란드 가구사 아르텍(Artek)에는 신규 의자 도면 대신 산림 자원의 수급 전략을 역제안했고, 프라다(Prada)와는 다학제 심포지엄 '프라다 프레임스(Prada Frames)'를 기획하여 생태 및 문화 담론의 의제를 설정한다. 2026년 현재 5회째를 맞은 프라다 프레임스를 비롯해 B&B 이탈리아, 페라리(Ferrari), 만테코(Manteco) 등의 상업 공간과 전시 프로젝트를 전방위적으로 조율하고 있다.

약력·연혁

안드레아 트리마르키와 시모네 파레신은 2000년대 초 피렌체에서 수학하며 조우했다. 이후 이탈리아 전통 교육을 떠나 콘셉추얼 디자인의 산실인 네덜란드 DAE 석사 과정에 진학하며 디자인관의 변곡점을 맞았다. 2009년 졸업과 함께 설립한 스튜디오의 명칭 '포르마판타스마(이탈리아어로 유령의 형태)'는 외형이라는 껍데기 뒤에 은폐된 재료, 역사, 자본의 구조를 먼저 투시하겠다는 선언과 다름없었다.

졸업 프로젝트 '몰딩 트래디션(Moulding Tradition)'은 시칠리아 도예 유산을 아랍 문화권의 영향력과 현대 이민자 문제로 직조해 냈다. 지역의 고유한 전통 공예가 실은 오랜 문화 교류와 이주의 산물임을 폭로하며, '누가 어떤 기술을 전파했고, 그것이 어떻게 제도로 안착했는가'라는 문화인류학적 질문을 디자인의 영역으로 끌어들였다. 이후 '보타니카(Botanica)', '크라프티카(Craftica)' 등의 프로젝트를 통해 동물 가죽, 뼈, 화산석 등 잊혀진 원시 재료의 산업화 이전 궤적을 발굴했다. 이들의 결과물에는 언제나 가공품 옆에 원재료 샘플, 리서치 아카이브, 다큐멘터리 영상이 부속물처럼 따라붙었다.

2017년의 '오어 스트림스'는 전자폐기물의 글로벌 이동 경로와 광물 회수 산업의 권력망을 추적했다. 폐가전 부품을 재활용한 가구 제안에 그치지 않고, 기획 단계부터 수리와 분해가 용이한 하드웨어 설계의 필요성을 입법적, 산업적 차원에서 촉구했다. 2020년 런던 서펜타인 갤러리(Serpentine Galleries)에서 선보인 '캄비오'는 산림 벌목부터 가구 유통에 이르는 목재 산업의 착취적 구조를 아카이빙한 기념비적 역작이다. 이 리서치는 추후 아르텍과의 실제 비즈니스 컨설팅으로 이어지며, 기후 변화에 따른 북유럽 목재 품질 저하에 대응하는 기업의 자원 수급 전략에 직접적으로 개입하는 결과를 낳았다.

네덜란드에서의 10여 년을 뒤로하고 2021년경 밀라노로 거점을 옮긴 이후, 이들은 글로벌 대기업의 시스템에 더욱 노골적으로 개입하고 있다. 프라다와는 2022년부터 '프라다 프레임스'를 운영 중이며, 2026년 제5회 행사에서는 인간과 AI의 이미지 생산, 데이터 센터가 유발하는 자원 고갈 노동 문제까지 의제를 확장했다. 모노클(Monocle)은 2026년 이들을 '올해의 디자이너(Designers of the Year)'로 선정하며, 생태학과 정치, 산업 구조를 디자인의 최전선 화두로 끌어올린 공로를 치하했다.

디자인 철학·시그니처

포르마판타스마의 작업은 결과물의 형태를 도출하기 전에 촘촘한 리서치의 사슬을 먼저 직조한다. '오어 스트림스'가 폐가전을, '캄비오'가 목재를, '올트레 테라'가 양모 생태계를 추적했듯, 물건의 산출은 이 방대한 조사 과정을 시각적으로 증명하는 마지막 퍼즐일 뿐이다.

이들은 디자이너의 직무가 클라이언트와 소비자를 잇는 일차원적 매개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고 주장한다. 원자재를 가공하는 제3세계 노동자, 재료를 공급하는 생태계의 비인간 생명체까지를 디자인의 이해관계자로 편입시킨다. 이를 위해 산림 생태학자, 인류학자, 기후 과학자 등 전통적인 디자인 스튜디오에서 배제되었던 이종(異種)의 지식인들과 연대한다. 아울러 프로젝트가 일회성 전시로 소모되지 않도록 웹사이트, 다큐멘터리, 서적 형태의 오픈 소스 아카이브로 영구 보존하여 산업계 전체의 공공재로 헌납한다.

단, 리서치의 무거움이 조형적 빈곤을 정당화하는 변명이 되지는 않는다. 플로스(Flos)와 협업한 조명 '와이어라인(WireLine)', '슈퍼와이어(SuperWire)'에서 보듯, 완결된 산업 제품에서는 고도의 형태적 정밀도와 구조적 우아함을 잃지 않는다.

또한 이들이 주창하는 지속 가능성은 섣부른 신소재나 바이오 물질의 발명에 있지 않다. 기성 산업이 무가치하다고 판정해 폐기하는 양모나 B급 목재의 쓸모를 재분류하고, 시스템의 편견을 재조정하는 데서 대안을 찾는다. '좋은 재료'에 대한 산업계의 기존 잣대 자체를 교정하는 일이다.

주요 작업

심포지엄 '프라다 프레임스(Prada Frames)'

2022년부터 프라다와 공동 주관하는 다학제 심포지엄이다. 밀라노 디자인 위크 기간에 가구가 아닌 철학자, 건축가, 과학자들을 소집해 환경과 물질 문화의 담론을 형성한다. 2026년 주제인 'In Sight'는 AI 이미지 생성과 이면의 데이터 자원 소모 문제를 조명하며, 디자인 스튜디오가 담론의 의제와 공론장 자체를 기획한 선도적 사례로 꼽힌다.

장기 리서치 프로젝트 '올트레 테라(Oltre Terra)'

양모를 산업의 원자재가 아닌 목축, 진화, 섬유 및 가구 산업이 얽힌 생태계적 매개체로 해석한 전시다. 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잉여 양모를 가구 완충재로 치환하는 소재 실험을 병행하며, 이론적 비평을 기업의 생산 전략으로 연결시켰다.

목재 산업 아카이브 '캄비오(Cambio)'

2020년 발표한 리서치 프로젝트로 숲의 벌목부터 목재 인증, 국제 거래 자본의 이동까지 산림 산업의 권력구조 전반을 고발했다. 이 방대한 전시 아카이브는 이후 아르텍(Artek)의 목재 수급 컨설팅 자료로 실용화되었다.

전자폐기물 조사 '오어 스트림스(Ore Streams)'

2017년부터 전개한 리서치 작업으로, 글로벌 전자폐기물의 폐기 경로와 금속 회수 산업을 추적했다. 해체된 스마트폰 부품으로 가구를 제작하는 한편, 전자 제품의 설계 초기 단계부터 수리와 분해를 의무화해야 한다는 근본적인 시스템 혁신을 주장했다.

상업 조명 '와이어라인(WireLine)'

플로스를 통해 양산된 조명으로, 보통 벽 뒤로 은폐하는 고무 전원 케이블을 오히려 제품의 가장 거대한 시각적 구조재로 노출시켰다. 개념적 리서치 스튜디오라는 편견을 불식시키고 하이엔드 상업 조형에서도 명쾌한 솔루션을 제시할 수 있음을 증명한 상징적 피스다.

영향 관계

2000년대 이후 네덜란드 디자인계(DAE) 특유의 강렬한 콘셉추얼 디자인과 사회참여적 태도가 이들 사상의 뿌리다. 그러나 갤러리에 도발적 오브제를 던져두고 비평적 우월감에 취하는 네덜란드식 전위에 머물지 않았다. 플로스, 아르텍, 프라다, B&B 이탈리아 등 가장 자본 집약적인 글로벌 기업의 내부로 침투하여 실제 공급망과 생산 기조를 타격하는 방식으로 방법론을 진화시켰다. 오늘날 이들의 족적은 디자이너의 롤모델을 '새로운 의자의 형태를 그리는 자'에서 '공급망의 모순을 감시하고 자원의 흐름을 통제하는 전략가'로 완벽하게 갱신해 냈다.

수상·전시 이력

포르마판타스마의 아카이브는 뉴욕 현대미술관(MoMA), 런던 빅토리아 앤 알버트 박물관(V&A), 파리 퐁피두 센터,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등 세계구급 기관에 영구 소장되어 있다. 2021년 《월페이퍼(Wallpaper*)》 올해의 디자이너 선정에 이어, 2026년 《모노클》의 'Designers of the Year'를 수상하며 동시대 가장 전위적인 스튜디오로서의 위상을 확립했다.

반응과 평가

포르마판타스마는 디자인 산업 내에 '리서치 기반 디자인'이라는 이데올로기를 가장 선명하게 각인시킨 스튜디오다. 디자인의 윤리를 외형과 사용성에서 원료, 노동, 물류의 차원으로 강제 이동시켰다. 친환경 플라스틱을 차용하는 수준의 표층적 그린워싱(Greenwashing)에 일침을 가하며, 산업 구조의 심연을 해부하는 이들의 지적 치열함은 압도적인 찬사를 받는다.

반면, 방대한 텍스트와 다큐멘터리 서사에 의존하는 이들의 결과물은 직관적인 시각적 쾌감을 좇는 일반 소비자의 진입을 차단하는 높은 장벽으로 작용한다. 전시장 패널의 맥락을 독해하지 않으면 제품 단품의 매력을 체감하기 어려운 탓에, 엘리트주의적 관념 디자인이라는 불만도 뒤따른다.

가장 첨예한 논쟁거리는 이들의 '체제 순응적 비판' 모델이다. 럭셔리 자본의 무분별한 자원 채취를 고발하면서도, 프라다, B&B 이탈리아, 페라리 등 자본 생태계의 최정점에 있는 글로벌 기업의 대형 수주를 병행하는 행보는 모순적이다. 비평가와 상업 컨설턴트 사이의 아슬아슬한 줄타기다. 그러나 이들은 산업 외곽에서 순결한 대안을 제시하는 대신, 거대 자본의 뱃속으로 침투해 기업의 조향 장치를 조금씩 비틀어내는 '트로이의 목마' 전략을 택했다. 이것이 자본의 세련된 면죄부로 전락할지, 실질적인 생태계의 감축을 이뤄낼지는 개별 프로젝트의 지속성을 통해 검증되어야 한다. 그럼에도 이들의 가치는 명확하다. 의자를 깎기 전에 "우리는 이 의자가 지불한 생태적 비용을 투명하게 알고 있는가?"를 업계 전반에 뼈아프게 추궁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그들의 존재 이유는 충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