펜타그램 (Pentagram)

개요

펜타그램은 1972년 런던에서 시작한 독립 디자인 스튜디오다. 브랜드 아이덴티티와 그래픽디자인으로 가장 널리 알려졌지만 제품, 패키지, 전시, 공간 그래픽, 디지털 경험, 데이터 시각화, 서체와 사운드까지 다룬다.

펜타그램을 다른 대형 디자인 회사와 구분하는 것은 특정한 스타일보다 조직 구조다. 회사의 소유주가 곧 현업 디자이너인 파트너들이며 각 파트너가 자신의 팀을 이끌고 클라이언트와 직접 일한다. 별도의 경영진이 디자인 조직을 위에서 통제하는 구조와 다르다.

이 때문에 파울라 셰어와 마이클 비어루트, 애벗 밀러, 나타샤 젠, 조르지아 루피처럼 성격이 전혀 다른 디자이너가 같은 회사 안에서 활동한다. 펜타그램이라는 하나의 시각 스타일보다 서로 다른 디자이너가 같은 파트너십을 공유한다는 점 자체가 회사의 정체성이다.

설립·전개

런던의 다섯 파트너

펜타그램은 1972년 6월 12일 테오 크로스비, 앨런 플레처, 콜린 포브스, 머빈 컬란스키, 케네스 그레인지가 런던에서 설립했다.

다섯 명의 배경도 달랐다. 크로스비는 건축가, 플레처·포브스·컬란스키는 그래픽디자이너, 그레인지는 산업디자이너였다. 처음부터 그래픽만 다루는 회사가 아니라 여러 디자인 분야가 한 조직 안에 들어간 구조였다.

각 파트너는 자신의 작업과 팀에 높은 자율성을 가지면서 사무실과 인력, 사업 기반을 함께 사용했다. 한 명의 창업자가 회사를 키운 뒤 후임자에게 넘기는 일반적인 스튜디오와 달리 파트너가 새 파트너를 받아들이며 조직을 이어가는 방식이 만들어졌다.

뉴욕과 세대교체

이후 펜타그램은 미국으로 확장했고 뉴욕이 런던과 함께 중요한 거점이 됐다. 파울라 셰어는 1991년 뉴욕 파트너가 됐고 마이클 비어루트 역시 이후 합류해 미국의 기업·문화기관 브랜딩을 크게 확장했다.

창립자들이 물러난 뒤에도 회사 이름을 특정 디자이너의 이름으로 바꾸지 않았다. 새로운 세대의 파트너가 지분과 책임을 이어받으며 조직 자체가 존속했다.

현재 펜타그램은 런던, 뉴욕, 오스틴, 베를린을 중심으로 운영되고 있다. 각 사무소 안에서도 파트너별 팀이 독립적으로 움직인다.

브랜드에서 데이터와 디지털까지

초기 펜타그램은 그래픽과 제품, 건축을 함께 다뤘지만 디지털 환경이 커지면서 브랜드 시스템의 범위도 크게 넓어졌다.

오늘날 프로젝트에는 로고뿐 아니라 전용 서체, 웹사이트와 앱, 모션그래픽, 데이터 시각화, 공간 사인, 음향까지 포함된다. 조르지아 루피처럼 데이터디자인을 주력으로 하는 파트너나 유리 스즈키처럼 사운드를 다루는 디자이너도 파트너십 안에 들어왔다.

디자인 철학·작업 방식

하나의 회사, 여러 스타일

펜타그램에는 모든 프로젝트에 적용하는 공통 스타일이 거의 없다. 파울라 셰어의 대담한 타이포그래피와 마이클 비어루트의 체계적인 아이덴티티, 조르지아 루피의 데이터 시각화는 같은 회사의 결과물이라고 보기 어려울 만큼 다르다.

대신 프로젝트를 맡은 파트너가 직접 방향을 정하고 끝까지 책임진다는 원칙을 공유한다.

파트너가 직접 맡는 프로젝트

대형 컨설팅 회사에서는 영업과 전략 단계에서 만난 시니어가 실제 제작 단계에서는 빠지는 경우가 있다. 펜타그램은 파트너가 프로젝트의 핵심 클라이언트 창구이자 실제 디자이너로 참여한다는 점을 조직 원칙으로 내세운다.

회사의 소유와 디자인 의사결정을 같은 사람에게 묶은 구조다.

로고보다 시스템

대형 브랜드 작업에서는 로고 하나를 만드는 것보다 로고가 어떤 크기와 화면, 패키지와 공간에서 계속 작동할 수 있는지를 설계한다.

색과 서체, 레이아웃, 모션, 이미지, 데이터와 사인을 규칙으로 묶어 브랜드가 수천 개의 접점에서도 같은 조직으로 보이게 만든다.

분야를 넘나드는 팀

건축가와 제품디자이너, 그래픽디자이너가 함께 출발한 회사답게 프로젝트 경계도 비교적 느슨하다. 그래픽 아이덴티티가 건물 사인으로 이어지고, 전시가 출판물과 웹사이트로 확장되며, 데이터가 공간 설치물로 바뀐다.

주요 작업

퍼블릭 시어터

파울라 셰어가 1994년부터 진행한 뉴욕 퍼블릭 시어터 아이덴티티는 펜타그램의 대표적인 장기 프로젝트다.

굵은 목판 인쇄 계열 서체와 크기가 다른 글자를 충돌시키고 공연마다 구성을 계속 바꾸면서 극장 하나에 고정 로고보다 변화 가능한 타이포그래피 체계를 만들었다.

이 작업은 이후 문화기관과 공연 브랜딩에서 타이포그래피 자체를 이미지처럼 사용하는 흐름에 큰 영향을 줬다.

씨티은행

씨티은행 아이덴티티는 기존 Citi 워드마크 위에 붉은 아치를 결합했다. 복잡한 금융기업의 합병 상황에서 최소한의 형태로 기존 이름과 새로운 조직을 연결했다.

로고가 만들어진 과정까지 널리 알려지면서 펜타그램이 복잡한 기업 전략을 단순한 그래픽으로 압축하는 대표 사례가 됐다.

마스터카드

2016년 마스터카드 리브랜딩에서는 오랫동안 사용해 온 빨간색과 노란색 두 원을 버리지 않고 겹치는 구조를 더 단순하게 정리했다.

작은 스마트폰 화면과 결제 단말기에서도 알아볼 수 있도록 워드마크 의존도를 줄였고, 이후에는 두 원만으로도 브랜드를 표시할 수 있을 만큼 심벌을 독립시켰다.

브랜드 자산을 교체하기보다 디지털 환경에 맞게 덜어낸 사례다.

화이자

2026년 나타샤 젠과 여러 펜타그램 팀은 화이자의 브랜드 아키텍처와 디자인 시스템을 다시 정리했다.

웹사이트와 앱, 패키지, 영상, 내부 플랫폼처럼 규제 조건과 대상 사용자가 다른 접점을 하나의 시스템으로 묶었다. 하나의 유명 로고를 만드는 펜타그램의 과거 이미지에서 벗어나 대규모 조직이 실제로 운영할 수 있는 디자인 규칙을 설계하는 현재 작업 방식을 보여준다.

영향 관계

펜타그램의 초기 구조에는 영국 그래픽디자인뿐 아니라 건축과 산업디자인의 사고가 함께 들어갔다. 앨런 플레처의 그래픽, 테오 크로스비의 건축, 케네스 그레인지의 제품디자인이 한 회사에서 동등한 분야로 출발했다.

후대에는 파울라 셰어와 마이클 비어루트 같은 파트너가 문화기관과 기업 브랜딩에서 강한 영향을 남겼고, 펜타그램 출신 디자이너들도 세계 각지의 스튜디오와 기업 디자인 조직으로 퍼졌다.

무엇보다 창업자 개인의 이름을 회사명으로 사용하지 않고 파트너가 세대를 교체하며 조직을 이어온 방식 자체가 디자인 회사 운영의 독특한 모델로 남았다.

수상·전시 이력

펜타그램과 소속 파트너들은 AIGA, D&AD, ADC, Cooper Hewitt 등 그래픽·산업·커뮤니케이션 디자인 분야의 주요 상을 지속적으로 받아 왔다.

2022년 창립 50주년을 맞아 1972년부터 이어진 파트너와 프로젝트를 정리한 《Pentagram: Living by Design》이 출간됐다. 이전 파트너까지 포함한 작업을 통해 하나의 스타일보다 파트너십이 회사를 어떻게 이어왔는지를 기록했다.

개별 작업 역시 뉴욕 현대미술관과 여러 디자인뮤지엄의 컬렉션과 전시에서 다뤄지고 있다.

반응과 평가

위상과 영향

펜타그램은 대형 디자인 회사가 반드시 경영회사처럼 운영될 필요가 없다는 사례를 보여준다. 규모가 커져도 프로젝트 책임과 회사 소유권을 현업 디자이너에게 남겼다.

그래픽·제품·공간·디지털을 한 조직에서 함께 다루는 현재의 다학제 디자인 스튜디오 모델을 일찍부터 실천한 회사이기도 하다.

디자인 반응

펜타그램의 강점은 결과물이 서로 닮지 않는다는 데 있다. 클라이언트보다 스튜디오 스타일이 먼저 보이는 회사와 달리 프로젝트마다 전혀 다른 답이 나온다.

반대로 유명 파트너의 작업에서는 디자이너 개인의 성향이 강하게 드러난다. 펜타그램을 하나의 회사로 보기보다 여러 유명 스튜디오가 한 지붕 아래 모인 집단처럼 받아들이는 사람도 많다.

비판

파트너 중심 구조는 디자인 책임을 분명하게 만들지만 파트너 개인의 명성과 수주 능력에 대한 의존도도 높인다. 프로젝트 경험 역시 어느 파트너를 만나는지에 따라 상당히 달라질 수 있다.

대형 글로벌 기업과 문화기관을 오랫동안 맡아 온 만큼 현대 브랜딩의 기준을 만든 회사인 동시에, 비슷한 방식이 업계 전체에서 반복되면서 펜타그램식 시스템 브랜딩이 지나치게 표준으로 받아들여졌다는 비판도 가능하다.

같이 보기

파울라 셰어

마이클 비어루트

앨런 플레처

케네스 그레인지

브랜드 아이덴티티

그래픽디자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