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르조그 & 드 뫼롱 (Herzog & de Meuron)

개요

<img src="https://d2xsxph8kpxj0f.cloudfront.net/310519663429662740/ffcjRzrXsTCDKgX6s8aDwC/articles/1783396342285-27a0eb64c8331cbd.webp" alt="헤르조그 & 드 뫼롱" data-orientation="landscape_16_10" data-original-src="https://d2xsxph8kpxj0f.cloudfront.net/310519663429662740/ffcjRzrXsTCDKgX6s8aDwC/articles/1783302658433-92a8e2d0c7dca41c.webp" data-source-url="https://arquitecturaviva.com/articles/herzog-de-meuron-3323" width="600" />

출처: Arquitectura Viva

헤르조그 & 드 뫼롱(Herzog & de Meuron)은 스위스 바젤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건축 스튜디오다. 자크 헤르조그(Jacques Herzog)와 피에르 드 뫼롱(Pierre de Meuron)이 1978년 바젤에서 설립했다.

두 사람은 모두 1950년 바젤에서 태어났고, 어릴 때부터 알고 지낸 사이였다. 이후 스위스 연방공과대학교 취리히 캠퍼스에서 건축을 공부했고, 알도 로시(Aldo Rossi)와 돌프 슈네블리(Dolf Schnebli)에게 배웠다.

헤르조그 & 드 뫼롱은 특정한 외형이나 단일한 스타일로 규정되는 사무소가 아니다. 프로젝트마다 각기 다른 재료, 표면, 구조, 그리고 도시적 맥락을 끌어들여 건축물을 완성한다. 이로 인해 리콜라 보관동, 도미누스 와이너리, 테이트 모던, 프라다 아오야마, 알리안츠 아레나, 베이징 국가체육장, 엘프필하모니는 외형적으로 서로 확연히 다른 형태를 띤다.

그럼에도 이들을 관통하는 공통된 철학은 있다. 건물의 겉면, 곧 외피를 단순한 마감이 아니라 건축의 핵심 주제로 다룬다는 점이다. 돌, 벽돌, 구리, 유리, 폴리카보네이트, 세라믹, 철골, 빛나는 막은 이들에게 단순히 건물을 덮는 포장재가 아니라 공간과 도시를 유기적으로 연결하는 능동적인 매개체다.

2001년 자크 헤르조그와 피에르 드 뫼롱은 프리츠커 건축상을 공동 수상했다. 런던 테이트 모던, 베이징 국가체육장, 함부르크 엘프필하모니는 이들을 세계적 건축가의 반열에 올린 대표작이다.

약력·연혁

바젤에서 시작된 관계

자크 헤르조그는 1950년 4월 19일, 피에르 드 뫼롱은 1950년 5월 8일 스위스 바젤에서 태어났다. 두 사람은 1956년 바젤의 초등학교에서 처음 만났다.

두 사람 모두 처음부터 건축을 전공한 것은 아니었다. 헤르조그는 상업 디자인을 공부한 뒤 바젤 대학교에서 생물학과 화학을 전공했고, 드 뫼롱은 토목공학으로 진로를 잡았다. 그러나 두 사람 모두 처음 택한 전공에 오래 머물지 않고, 건축으로 방향을 바꿨다.

이들은 로잔의 스위스 연방공과대학교를 거쳐 취리히 캠퍼스에서 수학했고, 1975년에 졸업했다. 재학 시절 알도 로시와 돌프 슈네블리에게 가르침을 받은 경험은 이후 스튜디오의 건축적 사고를 형성하는 데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사무소 설립

1978년 두 사람은 바젤에 자신들의 사무소를 세웠다. 출발은 소규모 작업이었다. 초기에는 주택, 보관동, 산업 시설, 작은 공공 건물처럼 비교적 제한된 규모의 프로젝트로 경력을 쌓기 시작했다.

1980년 스위스 오버빌의 블루 하우스(Blue House), 1988년 이탈리아 타볼레의 스톤 하우스(Stone House)는 초기에 국제적 관심을 얻은 작업이다. 이 시기부터 이들은 건물을 하나의 양식으로 통일하기보다, 소재와 표면이 공간의 성격을 어떻게 변화시키는지 실험했다.

사무소의 초기 돌파구는 1987년 스위스 라우펜의 리콜라 보관동(Ricola Storage Building)이었다. 반복되는 외피와 얇은 켜, 산업 시설의 단순한 매스는 이후 헤르조그 & 드 뫼롱이 건축의 표면을 다루는 방식을 미리 보여준 중요한 기점이었다.

국제적 도약

1990년대에는 활동 영역이 유럽을 넘어 세계로 확장되었다. 1991년 해리 구거(Harry Gugger)가 첫 파트너로 합류했고, 1994년에는 크리스티네 빈스방거(Christine Binswanger)가 파트너가 됐다.

1995년 헤르조그 & 드 뫼롱은 런던 뱅크사이드 발전소를 현대미술관으로 탈바꿈시키는 테이트 모던 설계자로 선정됐다. 당시 이들은 대중적으로 널리 알려진 건축가가 아니었다. 그러나 발전소의 거대한 터빈 홀과 벽돌 매스를 그대로 살려낸 제안이 테이트 미술관이 추구하는 방향과 완벽히 맞아떨어졌다.

미국 내 명성은 1998년 캘리포니아의 도미누스 와이너리(Dominus Winery)를 통해 확고해졌다. 이 건물은 철망 안에 현지 돌을 채운 돌망태(Gabion) 외벽으로 유명하다. 포도밭 한가운데 놓인 긴 건물은 단순한 돌벽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빛과 공기, 온도를 조절하는 기능적 외피로 작동했다.

1999년에는 건축가 로저 디너, 마르셀 마일리와 함께 ETH 스튜디오 바젤을 공동 설립했다. 두 사람은 1999년부터 2018년까지 ETH 취리히 교수로 재직하며 도시 연구와 건축 교육에도 적극적으로 관여했다.

테이트 모던과 프리츠커상

2000년 5월 테이트 모던이 개관했다. 이 프로젝트는 헤르조그 & 드 뫼롱을 세계적 건축가로 도약시킨 결정적 작업이었다.

테이트 모던은 기존 발전소의 흔적을 완전히 지우지 않았다. 과거의 벽돌 건물과 굴뚝, 터빈 홀을 보존하고, 그 안에 현대미술관의 전시 공간과 공공 동선을 자연스럽게 녹여냈다. 산업 건축의 거대한 스케일이 현대미술관의 공공적 공간으로 치환된 것이다.

개관 이후 테이트 모던은 런던 사우스뱅크 일대의 도시 이미지를 크게 혁신했다. 헤르조그 & 드 뫼롱은 이 성과를 바탕으로 2001년 프리츠커 건축상을 수상했다. 프리츠커 심사위원단은 이들이 오래된 재료를 새롭게 해석하고, 건축의 외피를 창의적으로 다룬 점을 높이 평가했다.

대형 문화·스포츠 시설

2000년대 들어 작업의 스케일이 대폭 커졌다. 2003년 도쿄 프라다 아오야마 에피센터, 런던 라반 댄스 센터, 바젤 인근 샤울라거가 이어졌다. 2005년에는 뮌헨 알리안츠 아레나와 샌프란시스코 드 영 미술관이 완공됐다.

2003년 4월에는 베이징 국가체육장 설계안이 선정됐다. 이 경기장은 2008년 베이징 올림픽의 상징으로 사용됐고, 비틀린 강철 격자 구조 때문에 '새 둥지(Bird's Nest)'라는 별칭을 얻었다. 구조와 장식, 그리고 도시 이미지가 완벽하게 통합된 대표적 사례다.

함부르크 엘프필하모니는 2007년 4월 초석을 놓았고, 2017년 1월 개관했다. 옛 항만 창고 위에 유리 콘서트홀을 얹은 이 건물은 막대한 공사비 증액과 지연으로 오랜 논란을 겪었지만, 완공 뒤에는 함부르크를 대표하는 새로운 랜드마크로 자리 잡았다.

글로벌 스튜디오 체제

2010년대 이후 헤르조그 & 드 뫼롱은 더 방대한 조직으로 확장됐다. 바젤 본사 외에도 베를린, 홍콩, 런던, 뮌헨, 뉴욕, 파리, 샌프란시스코 등에 사무소를 운영하고 있다.

2015년 두 사람은 비영리 재단 '자크 헤르조그·피에르 드 뫼롱 카비넷(Kabinett, Basel)'을 공동 설립했다. 이 재단은 사진, 문서, 모형, 소재 실험물, 디자인 과정의 방대한 자료를 보존하는 건축 아카이브이자 실험실에 가깝다.

홍콩 M+ 미술관은 2021년 완공되어 대중에게 공개됐다. 짙은 세라믹 외피와 거대한 LED 미디어 파사드는 홍콩 서구룡 문화지구에서 건축물 자체가 도시를 향한 거대한 스크린처럼 작동하게 만들었다.

2020년대 사무소는 창립자 두 사람만이 아니라 여러 파트너가 이끄는 협의체 구조로 운영된다. 크리스티네 빈스방거, 아스칸 메르겐탈러, 슈테판 마르바흐, 제이슨 프란첸, 안드레아스 프리스, 빔 발스합 등 시니어 파트너들이 주요 프로젝트와 조직 운영을 공동으로 책임지고 있다.

디자인 철학·시그니처

고정된 양식을 거부하는 태도

헤르조그 & 드 뫼롱에게는 한눈에 파악되는 고정된 양식이 없다. 어떤 사무소는 특정한 곡선, 구조, 색상, 재료로 즉각적인 인식을 유도하지만, 이들은 스스로를 특정한 시각적 틀에 가두지 않는다.

대신 프로젝트마다 대지와 프로그램, 기존 건축물, 재료, 기후, 도시 이미지를 새롭게 탐구한다. 테이트 모던은 발전소의 벽돌과 터빈 홀을 살렸고, 도미누스 와이너리는 포도밭의 돌과 기후를 외피로 승화시켰다. 프라다 아오야마는 매장을 유리 표면의 실험장으로 만들었고, 알리안츠 아레나는 축구장을 빛나는 도시 오브제로 변모시켰다.

따라서 이들 작업의 공통점은 외형이 아니라 방법론에 있다. 정형화된 답을 반복하는 대신, 재료와 표면을 통해 해당 장소에 최적화된 고유한 건축 언어를 발굴해 낸다.

외피를 건축의 주제로 만드는 방식

이들의 가장 뚜렷한 시그니처는 외피(Skin)다. 여기서 외피는 단순한 마감재가 아니다. 건물과 도시, 내부와 외부, 구조와 이미지, 그리고 빛과 사람의 시선을 유기적으로 연결하는 매개체다.

리콜라 보관동에서는 반복되는 패널이 암석의 층리를 연상시킨다. 도미누스 와이너리에서는 철망 안에 현지의 돌을 채워 벽을 구축하고, 돌 사이의 틈으로 빛과 공기가 유입되도록 했다. 드 영 미술관에서는 구리 외피에 타공을 내어 빛과 시선을 굴절시키고, 세월의 흐름에 따라 자연스럽게 녹청이 스며들도록 의도했다.

이런 외피는 표면이지만 결코 얇지 않다. 두께, 타공, 반사, 투과, 변색, 빛의 움직임 등 복합적인 층위를 품고 있다. 그래서 헤르조그 & 드 뫼롱의 건축은 겉면 자체가 곧 건축적 서사가 되는 경우가 많다.

소재 실험

헤르조그 & 드 뫼롱은 재료를 관습적으로 다루지 않는다. 벽돌은 벽돌처럼, 돌은 돌처럼, 구리는 구리처럼 보이게 하되 결코 익숙한 방식으로는 소비하지 않는다.

도미누스 와이너리의 돌망태 벽은 토목 구조물에서 쓰이던 공법을 정교한 건축 외피로 차용했다. 에버스발데 도서관에서는 사진 이미지를 콘크리트와 유리 표면에 전사(Transfer)하는 실험을 감행했다. 프라다 아오야마에서는 마름모꼴 유리 패널을 오목하고 볼록하게 성형해 도시의 빛과 내부 활동을 감각적으로 왜곡시켜 보여주었다.

이들에게 재료는 형태를 완성하는 마지막 치장 단계가 아니다. 프로젝트의 개념을 촉발하는 핵심 기제다. 재료를 어떻게 절단하고 타공하며, 쌓아 올리거나 빛을 투과시키느냐에 따라 건축물의 정체성이 결정된다.

장식과 구조의 통합

헤르조그 & 드 뫼롱은 장식과 구조를 이분법적으로 분리하지 않는다. 훌륭한 프로젝트에서는 장식처럼 보이는 요소가 구조를 지탱하고, 구조처럼 보이는 요소가 강력한 도시적 이미지를 형성한다.

베이징 국가체육장이 대표적인 사례다. 경기장을 감싸는 강철 격자는 새 둥지처럼 보이는 강렬한 외관을 띠지만, 단순한 장식용 껍데기가 아니다. 거대한 구조물과 외부 이미지가 하나의 유기체처럼 작동한다.

알리안츠 아레나 역시 마찬가지다. 부풀어 오른 막(Membrane)처럼 보이는 외피는 경기장의 표정이자 조명 장치다. 경기 때마다 색상이 변하며 구단과 도시의 아이덴티티를 발산한다. 표면은 단순한 덮개가 아니라 건축물의 정체성을 능동적으로 발화하는 장치다.

기존 건물과 새 프로그램의 결합

헤르조그 & 드 뫼롱은 기존 건축물을 지워버리기보다 새로운 프로그램과 유기적으로 결합하는 데 탁월한 역량을 발휘한다. 테이트 모던, 카이샤포룸 마드리드, 엘프필하모니가 이 궤를 같이한다.

테이트 모던은 폐발전소를 세계적인 미술관으로 탈바꿈시켰다. 카이샤포룸 마드리드는 옛 발전소의 벽돌 매스를 공중으로 부양시킨 듯 처리해 지상 레벨에 열린 공공 광장을 조성했다. 엘프필하모니는 옛 창고 위에 거대한 유리 콘서트홀을 얹어 항구 도시의 산업 유산과 최첨단 문화시설을 완벽하게 포개어 놓았다.

이들은 보존을 단순한 과거의 복원으로 여기지 않는다. 기존 건물이 간직한 물리적 기억을 새로운 프로그램의 뼈대로 재활용한다. 오래된 건물은 배경으로 물러나는 것이 아니라 새 건축의 가장 핵심적인 텍스처로 부활한다.

예술과의 협업

예술가들과의 적극적인 협업은 이들 방법론의 핵심 축이다. 요제프 보이스(Joseph Beuys)와 알도 로시는 초기 사유에 깊은 영향을 미쳤고, 다수의 프로젝트에 예술가들이 직접 참여했다.

레미 자우그, 토마스 루프, 마이클 크레이그마틴, 아이 웨이웨이 같은 작가들이 개별 프로젝트에 깊숙이 관여했다. 에버스발데 도서관의 이미지 전사, 베이징 국가체육장의 예술 자문, 서펜타인 파빌리온의 협업은 건축이 미술과 동떨어져 있지 않음을 증명한다.

이들에게 예술은 건물의 빈 벽에 작품을 걸어두는 행위가 아니다. 건축이 재료, 이미지, 인식, 도시적 경험을 다루는 방식을 무한히 확장시키는 구조적 협업이다.

후기 작업의 적층과 도시 스케일

후기 작업으로 갈수록 디자인의 무게중심은 2차원적 외피에서 슬래브와 매스의 입체적 적층으로 확장된다. 초기 건축이 파사드가 주는 표면적 자극으로 형태를 규정했다면, 후기작에서는 바닥 슬래브와 매스의 쌓임이 건축물의 묵직한 인상을 주도한다.

비트라하우스는 집 모양의 박스를 여러 방향으로 겹쳐 쌓은 형상을 띤다. 56 레너드 스트리트는 층마다 미세하게 어긋나는 슬래브와 매스가 젠가(Jenga)처럼 쌓아 올려지며 고층 주거의 새로운 전형을 제시한다. 1111 링컨 로드는 숨겨야 할 주차장의 슬래브를 과감히 노출해 거대한 도시적 무대로 치환한다.

이러한 흐름은 헤르조그 & 드 뫼롱이 단지 표면 건축에만 매몰되지 않았음을 방증한다. 외피를 넘어 층, 바닥판, 구조, 도시 동선까지 엮어내며 다차원적으로 조형을 빚어낸다.

주요 작업

리콜라 보관동

리콜라 보관동(Ricola Storage Building, 1987)은 스위스 라우펜에 지어진 초기 대표작이다.

층층이 겹쳐진 패널 파사드로 소재와 표면을 다루는 이들의 초기 실험 정신을 뚜렷하게 보여준다. 구조적 과시를 배제하고, 외피의 질감만으로 건축적 인상을 구축하는 방식이 이 프로젝트에서 본격적으로 발현되었다.

창고라는 지극히 기능적인 프로그램을 가졌지만, 외피의 섬세한 비례와 리듬을 통해 건축적 긴장감을 창출했다. 평범한 산업 시설도 표면과 재료의 훌륭한 실험장이 될 수 있음을 증명한 사례다.

스톤 하우스

스톤 하우스(Stone House, 1988)는 이탈리아 타볼레에 지어진 주택이다. 천연 돌과 콘크리트의 결합, 그리고 직관적인 구조를 통해 헤르조그 & 드 뫼롱의 초기 재료 감각을 엿볼 수 있다.

이 주택은 대지의 지형과 재료를 가감 없이 수용한다. 돌은 표면을 꾸미는 장식이 아니라 벽을 세우고 장소의 질감을 직조하는 본질적 재료로 쓰였다. 훗날 도미누스 와이너리의 돌 외피 설계와도 궤를 같이하는 의미 있는 초기작이다.

괴츠 컬렉션

괴츠 컬렉션(Goetz Collection, 1992)은 독일 뮌헨에 지어진 미술관이다.

이 프로젝트는 헤르조그 & 드 뫼롱이 향후 전개할 미술관 건축의 미학적 출발점으로 평가된다. 단순한 박스형 매스와 극도로 절제된 표면 처리를 통해 전시 공간이 내부의 예술 작품을 압도하지 않도록 섬세하게 조율했다.

외관은 크거나 화려하지 않다. 대신 완벽한 비례, 은은한 빛, 표면의 질감적 절제가 작품을 위한 최적의 배경을 제공한다. 이후에 선보인 스펙터클한 테이트 모던이나 샤울라거와는 대조되는, 깊고 정적인 분위기의 미술관이다.

철도 신호소

철도 신호소(Signal Box auf dem Wolf, 1994)는 스위스 바젤에 지어진 철도 인프라 시설이다.

건물 외부 전체를 구리 동판 띠로 감싸, 건조한 기능 시설에 강렬한 물성과 시각적 리듬을 부여했다. 도시의 배경으로 잊히기 쉬운 인프라 시설을 표면의 조작만으로 매력적인 도시 랜드마크로 격상시켰다.

이 작업은 헤르조그 & 드 뫼롱이 산업 시설의 디자인에서도 외피와 물성을 건축의 최우선 요소로 배치했음을 명확히 보여준다.

도미누스 와이너리

도미누스 와이너리(Dominus Winery, 1998)는 미국 캘리포니아 욘트빌에 지어진 와이너리다.

광활한 포도밭을 가로지르며 낮고 길게 자리 잡았다. 건물의 외피는 철망 안에 현지의 화산석을 가득 채운 돌망태(Gabion) 벽으로 이루어졌다. 이 돌벽은 단순히 거친 텍스처를 연출하기 위한 표면 장식이 아니다. 캘리포니아 특유의 큰 일교차에 자연적으로 대응하며, 돌 틈 사이로 미세한 빛과 공기를 실내로 투과시킨다.

헤르조그 & 드 뫼롱의 이름을 미국 전역에 각인시킨 기념비적 프로젝트다. 와이너리라는 특수 프로그램, 현지의 지질학적 특성, 혹독한 기후 조건이 하나의 지능적인 외피 안으로 완벽히 수렴되었다.

테이트 모던

테이트 모던(Tate Modern, 2000)은 런던 템스강변의 뱅크사이드 발전소를 개조해 만든 현대미술관이다.

이 작업은 건축 듀오에게 프리츠커상과 더불어 세계적인 명성을 안겼다. 기존 발전소가 품고 있던 압도적 규모의 터빈 홀을 모두에게 열린 공공 광장으로 탈바꿈시켰으며, 투박한 벽돌 매스와 거대한 굴뚝은 런던의 역사적 랜드마크로 보존했다.

테이트 모던은 낡은 산업 유산을 첨단 현대미술관으로 재생시킨 가장 완벽한 선례로 꼽힌다. 건물을 신축하는 대신 과거의 거대한 구조를 현대의 다이내믹한 문화 프로그램과 정교하게 맞물리게 한 기획력이 돋보인다.

장크트야코프 파크

장크트야코프 파크(St. Jakob-Park, 2001)는 스위스 바젤에 지어진 대형 축구장이다.

폐쇄적인 성향이 강한 대형 스포츠 인프라를 도시의 일상적인 상업 시설과 촘촘히 엮어낸 프로젝트다. 스포츠 관람은 물론 쇼핑, 여가, 대중교통 동선이 맞물리며 거대한 경기장이 도시 안에서 어떻게 기능할 수 있는지를 성공적으로 증명했다.

헤르조그 & 드 뫼롱이 미술관뿐 아니라 메가스케일의 스포츠 시설에서도 파사드의 미학과 공공적 사용성을 탁월하게 조율할 수 있음을 입증한 사례다.

프라다 아오야마

프라다 아오야마(Prada Aoyama, 2003)는 일본 도쿄 아오야마에 지어진 하이엔드 패션 매장이다.

마름모꼴 유리 패널 띠가 건물의 모든 면을 그물망처럼 감싸며, 일부 유리 패널은 볼록하거나 오목하게 특수 성형됐다. 이 투명한 외피는 단절의 벽이 아니다. 도시의 분주한 풍경과 내부의 쇼핑 경험, 그리고 사람들의 역동적인 움직임을 다각도로 굴절시키고 증폭시킨다.

매장을 상품 진열 공간에 국한하지 않고, 브랜드의 정체성을 발신하는 거대한 입체 스크린으로 격상시킨 사례다. 상업 건축물 자체가 빛나는 쇼윈도이자 도심 속 크리스털 조형물처럼 기능한다.

라반 댄스 센터

라반 댄스 센터(Laban Dance Centre, 2003)는 런던 뎁트퍼드 지역에 지어진 무용 전문 교육 시설이다.

반투명한 폴리카보네이트 외피와 파스텔 톤의 부드러운 내부 색채 구성을 통해, 무용을 위한 건축이 인간의 움직임과 자연광을 어떻게 포용할 수 있는지 섬세하게 제시했다. 화려한 무대 공연보다 연습과 교육의 일상적인 신체 활동을 중심에 둔 배려가 돋보인다.

이 건축물은 2003년 영국 건축계 최고 권위의 RIBA 스털링상을 수상했다. 이들의 외피 실험이 갤러리나 경기장 같은 스펙터클을 넘어, 고요한 교육 시설에서도 깊은 설득력을 지님을 입증했다.

샤울라거

샤울라거(Schaulager, 2003)는 스위스 바젤 외곽의 뮌헨슈타인에 지어진 미술품 수장 및 연구 시설이다.

보편적인 미술관처럼 상설 전시를 전면에 내세우지 않고, 작품의 엄격한 보존과 학술 연구, 그리고 제한적인 공개 전시를 결합한 특수 목적 공간이다. 작품을 보존하는 수장고(Lager)와 감상하는 전시 공간(Schau)의 경계를 허문 혁신적인 사례다.

육중한 콘크리트 외벽은 토성을 파낸 듯 거칠고 다듬어지지 않은 물성을 띤다. 요새처럼 예술품을 견고하게 보호하는 창고의 형태를 띠면서도, 내부에는 학자들과 관람객을 위한 우아한 공공성을 품고 있다.

알리안츠 아레나

알리안츠 아레나(Allianz Arena, 2005)는 독일 뮌헨에 지어진 매머드급 축구장이다.

ETFE 포일 쿠션으로 부풀려진 반투명 외피가 거대한 타이어처럼 경기장을 부드럽게 감싼다. 내부 조명 시스템을 통해 표면 전체의 색상을 바꿀 수 있어, 압도적인 야간 경관을 구축했다. 홈팀의 경기가 열릴 때마다 색상이 전환되며 구단의 아이덴티티를 시각적으로 발산한다.

이 건축물에서 외피는 기후를 막는 수동적 덮개가 아니다. 경기 일정, 사용 구단, 밤의 도시 스카이라인에 즉각적으로 반응하는 초거대 시각 매체다. 대형 경기장이 어떻게 도시 전체를 비추는 등대가 될 수 있는지 시사한다.

드 영 미술관

드 영 미술관(de Young Museum, 2005)은 미국 샌프란시스코 골든게이트 파크 중심부에 지어진 미술관이다.

무수한 구멍이 타공된 구리 외피와 공원을 굽어보는 비틀린 전망탑이 돋보인다. 구리 패널에 뚫린 타공은 주변 숲의 나뭇잎 사이로 떨어지는 빛의 산란을 시뮬레이션해 시선과 햇빛을 섬세하게 걸러낸다. 무엇보다 세월이 흐르며 구리가 산화되어 녹청으로 덮이도록 설계해, 건물이 점진적으로 공원 풍경 속에 동화되도록 의도했다.

건축 자재가 시간의 흐름에 따라 변화(Aging)하는 생태적 과정을 디자인의 필수 요소로 포용한 상징적인 작업이다.

베이징 국가체육장

베이징 국가체육장(Beijing National Stadium, 2008)은 2008년 베이징 올림픽을 위해 건립된 메인 스타디움이다. 무작위로 얽힌 듯한 거대한 강철 격자가 나뭇가지로 엮은 둥지를 연상시켜 '새 둥지(Bird's Nest)'라는 확고한 별칭을 얻었다.

내부의 붉은 콘크리트 관람석 그릇과 그것을 감싸는 은빛 강철 골조가 시각적 대비를 이룬다. 구조체와 외관의 파사드가 분리되지 않고 하나로 통합된 점이 핵심이다. 강철 격자는 지붕을 지탱하는 본연의 구조체인 동시에 올림픽의 스펙터클을 대변하는 파워풀한 상징 기호가 됐다.

이 프로젝트의 예술 자문으로 현대미술가 아이 웨이웨이(Ai Weiwei)가 참여해 형태의 완성도를 높였다. 독보적인 건축적 성취와 올림픽이라는 정치적 맥락이 가장 강렬하게 교차한 현대 건축의 마스터피스다.

카이샤포룸 마드리드

카이샤포룸 마드리드(CaixaForum Madrid, 2008)는 스페인 마드리드 도심의 낡은 벽돌 발전소를 개조해 조성한 복합 문화공간이다.

무거운 기존 벽돌 건물의 하단부를 과감하게 잘라내어, 마치 건물 전체가 지면에서 공중으로 부양한 듯한 극적인 착시를 일으킨다. 확보된 1층의 빈 공간은 보행자들을 위한 쾌적한 도심 그늘 광장으로 환원되었다. 건물 측면의 맹지 벽면에는 거대한 수직 정원(Vertical Garden)을 조성해 생기를 불어넣었다.

오래된 산업 유산을 보존하는 동시에, 빽빽한 도심 속 보행자에게 쉴 공간을 제공하는 재생 건축의 모범적 해법을 제시했다. 하부의 과거 벽돌 매스와 상부의 녹슨 코르텐강 증축부가 이루는 시각적 대비가 압권이다.

1111 링컨 로드

1111 링컨 로드(1111 Lincoln Road, 2010)는 미국 마이애미비치의 중심 상권에 지어진 복합 주차 타워다.

일반적으로 어두운 후면으로 숨겨지기 마련인 주차장을 도시를 향해 완전하게 개방된 구조물로 역전시킨 파격적인 작업이다. 얇고 날렵한 콘크리트 슬래브와 불규칙한 각도의 기둥들, 탁 트인 층간 구성이 주차 공간을 상업 및 이벤트가 열리는 도시의 무대로 탈바꿈시켰다.

자동차를 보관하는 인프라 시설도 충분히 도시의 매력적인 조각품이자 공공 라운지가 될 수 있음을 증명했다. 외벽 없이 뼈대만 남긴 과감함이 마이애미의 따뜻한 기후와 완벽한 조화를 이룬다.

비트라하우스

비트라하우스(VitraHaus, 2010)는 독일 바일암라인 비트라 캠퍼스(Vitra Campus) 내에 지어진 가구 전시 및 판매 시설이다.

박공지붕을 얹은 길쭉한 집 모양의 튜브 박스 12개를 다양한 각도로 겹겹이 쌓아 올린 독창적인 조형을 자랑한다. 가구와 생활 공간을 전시하는 쇼룸의 본질에 맞춰, '주택'이라는 가장 원초적인 실루엣을 압출하고 비틀어 하나의 통합된 건축물로 엮어냈다.

단일한 외피 디자인보다 매스의 입체적인 적층과 교차가 공간을 주도한다. 겹쳐진 박스들의 양 끝단 유리를 통해 캠퍼스 전경을 입체적으로 조망하며 브랜드를 경험할 수 있다.

테이트 모던 증축동

테이트 모던 증축동은 2016년 런던 테이트 모던 부지 남쪽에 개관한 새로운 전시 타워다. 개관 당시에는 스위치 하우스(Switch House)로 명명되었으나, 현재는 블라바트니크 빌딩(Blavatnik Building)으로 불린다.

기존 발전소 본관 뒤편에 다면체로 비틀려 올라가는 피라미드 형태의 벽돌 탑을 솟아오르게 해 물리적 공간을 대폭 확장했다. 새 건물은 오리지널 건물의 직육면체 매스와 형태적으로는 확연히 대비되지만, 33만 장의 벽돌이라는 공통된 물성을 통해 시각적인 연속성을 획득했다.

이 증축 작업은 테이트 모던이 단일한 갤러리를 넘어, 다양한 퍼포먼스와 시민 참여가 이루어지는 복합 문화 허브로 진화하는 과정을 공간적으로 훌륭히 뒷받침한다.

엘프필하모니

엘프필하모니(Elbphilharmonie, 2017)는 독일 함부르크 항구 끄트머리에 우뚝 선 거대한 복합 콘서트홀이다.

과거 코코아 등을 보관하던 묵직한 카이슈파이허 A(Kaispeicher A) 적벽돌 창고 위에, 마치 파도나 거대한 빙산을 연상시키는 다면체 유리 매스를 과감히 얹었다. 하부의 산업 유산과 상부의 초현대적 문화시설이 빚어내는 극명한 대비가 항구 도시 함부르크의 역동성을 압축해 보여준다.

내부에는 최고 수준의 음향을 자랑하는 대공연장을 비롯해 소공연장, 5성급 호텔, 고급 주거 시설, 파노라마 전망 테라스(Plaza)가 집약되어 있다. 메인 홀은 무대를 객석이 에워싸는 빈야드(Vineyard) 방식을 채택했으며, 세계적인 음향 설계자 야스히사 토요타(Yasuhisa Toyota)가 합류해 공간의 청각적 디테일을 완성했다.

시공 과정에서 천문학적인 공사비 초과와 공기 지연으로 거센 비판을 받았으나, 개관 직후에는 함부르크를 세계 지도에 다시 각인시킨 기념비적 랜드마크로 압도적인 찬사를 받았다.

56 레너드 스트리트

56 레너드 스트리트(56 Leonard Street, 2017)는 뉴욕 맨해튼 트라이베카 지역에 솟아오른 60층 규모의 최고급 주거 타워다.

매끈한 직육면체 타워의 공식을 깨고, 층마다 미세하게 어긋나며 돌출된 큐브 매스들로 인해 '젠가 타워(Jenga Tower)'라는 별칭을 얻었다. 반복적이고 단조로운 스카이스크래퍼 외관의 공식을 과감히 탈피해 수직적 리듬감을 창조한 수작이다.

이 타워는 매끈한 유리 스킨이 아니라, 각 세대가 밖으로 뻗어 낸 테라스의 바닥판과 조각적 볼륨이 건물의 형태를 결정한다. 프라이버시를 유지하면서도 거주자의 조망권을 극대화하는 방식이 건물의 외관 그 자체가 되었다.

M+ 미술관

M+ 미술관(M+, 2021)은 홍콩 서구룡 문화지구 해안가에 지어진 아시아 최대 규모의 시각문화 미술관이다. 아시아의 현대미술, 디자인, 건축, 무빙 이미지를 총체적으로 조명한다.

거대한 캔틸레버식 수평 기단 위에 슬림한 수직 타워를 직각으로 세워 강건한 역T자형 실루엣을 완성했다. 건물의 외벽은 햇빛의 각도에 따라 오묘하게 빛나는 짙은 녹색 세라믹 타일로 마감했다. 타워의 남쪽 파사드 전면에는 폭 110m의 거대한 LED 미디어 스크린을 이식했다.

이 거대한 스크린은 빅토리아 항구 너머 홍콩섬 스카이라인의 화려한 상업 광고판에 화답하듯, 미술관의 큐레이션 영상과 예술 작품을 도심을 향해 발산한다. 건물 자체가 도시 규모의 미디어 플랫폼으로 작동하는 선구적 사례다.

로슈 타워

로슈 타워(Roche Towers)는 스위스 바젤 라인강변에 건립된 글로벌 제약사 로슈(Roche)의 본사 오피스 타워다. 1관(Building 1)은 2015년에, 더 높은 2관(Building 2)은 2022년에 완공됐다.

계단식으로 폭이 좁아지는 비대칭의 쐐기형(Wedge) 흰색 매스가 특징이며, 바젤의 비교적 낮은 스카이라인 위로 압도적인 존재감을 드러낸다. 화려한 장식이나 기교를 배제하고, 수평 창의 반복과 계단식 볼륨만으로 글로벌 기업의 단단하고 투명한 신뢰감을 시각화했다.

이 프로젝트는 헤르조그 & 드 뫼롱이 초고층 업무 시설을 다룰 때, 표면의 유희보다는 구조의 명료함과 매스의 순수함을 앞세운다는 점을 잘 보여준다.

송은문화재단 신사옥

송은문화재단 신사옥(ST International HQ and SONGEUN Art Space, 2021)은 서울 청담동 도산대로변에 지어진 전시 및 업무 복합 시설이다.

대지의 엄격한 법규와 사선 제한 요건을 오히려 디자인의 동력으로 삼아, 날카롭고 조각적인 삼각형 모노리스(Monolith) 매스를 빚어냈다. 특히 외벽은 소나무 거푸집을 사용해 콘크리트 표면에 나무결의 디테일과 세로 방향의 거친 질감을 생생하게 찍어냈다.

이 프로젝트는 헤르조그 & 드 뫼롱이 한국에 완성한 첫 번째 랜드마크라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외국 스타 건축가의 특정한 조형을 한국 대지에 무분별하게 이식했다기보다, 도심의 좁고 엄격한 제약을 예리한 콘크리트 조형으로 정면 돌파한 영리한 해법이다.

영향 관계

알도 로시

스승이자 선구자로서 알도 로시(Aldo Rossi)의 그늘이 짙다. 로시는 ETH 취리히에서 이들을 지도했으며, 그가 주창한 유형학(Typology)과 도시의 기억, 형태의 영속성에 관한 이론은 헤르조그 & 드 뫼롱의 건축 철학 기저에 깔려 있다.

다만 이 듀오는 로시의 이탈리아적 건축 언어를 그대로 답습하지 않았다. 로시가 도시의 기억을 구체적이고 기하학적인 덩어리로 재현했다면, 이들은 그 보이지 않는 기억을 재료의 물성, 표면의 텍스처, 기존 건물의 물리적 흔적을 통해 훨씬 더 다감각적으로 치환해 냈다.

요제프 보이스와 미술 장면

현대미술가 요제프 보이스(Joseph Beuys)는 이들에게 지속적인 영감의 원천이었다. 자크 헤르조그는 1970년대에 타르, 아스팔트, 합판, 펠트 같은 비건축적 재료를 활용해 드로잉이나 설치 작업을 직접 전시할 만큼 미술 씬과 밀착되어 있었다.

이러한 미술적 백그라운드는 재료를 대하는 독창적인 태도로 이어졌다. 이들에게 건축 재료는 비를 막고 구조를 감추는 껍데기가 아니라, 인간의 감각을 자극하고 의미를 생산하는 능동적 매체다. 이들의 설계 과정이 때때로 예술가의 조형 작업과 몹시 흡사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스위스 건축과의 관계

이들은 스위스 현대 건축 특유의 미니멀리즘, 소재에 대한 극단적인 정직성, 그리고 대지 특정성(Site-specificity)을 존중하는 흐름을 공유한다. 특히 같은 스위스 출신의 거장 페터 춤토어(Peter Zumthor)와 대조되며 자주 언급된다.

페터 춤토어가 산속의 작은 예배당이나 온천장처럼 극도로 정적이고 사색적인 스케일에서 재료의 본질을 파고든다면, 헤르조그 & 드 뫼롱은 그와 유사한 치열한 소재 탐구를 메가스케일의 미술관, 대형 스타디움, 고층 타워 등 거대 자본과 결합된 글로벌 인프라로 확장시켰다.

예술가 협업

건축의 한계를 넘기 위해 당대의 가장 도발적인 예술가들과 쉴 새 없이 협업했다. 레미 자우그, 토마스 루프, 마이클 크레이그마틴, 아이 웨이웨이는 단발성 자문을 넘어 프로젝트의 개념 자체를 함께 빚어냈다.

에버스발데 도서관에서는 토마스 루프가 큐레이션한 보도사진 이미지들을 콘크리트 표면에 실크스크린처럼 전사했다. 베이징 국가체육장의 유기적인 골조 패턴은 아이 웨이웨이의 직관이 더해진 결과물이다. 이는 건축이 독립적인 기술 공학의 산물이 아니라, 이미지, 정치, 미술이 복잡하게 교차하는 종합 예술임을 뚜렷하게 시사한다.

교육과 후대 영향

실무와 학계의 연결 고리도 단단했다. 두 사람은 하버드 대학교 디자인대학원(GSD) 객원교수를 역임했고, 1999년부터 2018년까지 모교인 ETH 취리히 교수로 재직하며 수많은 후학을 양성했다.

바젤의 작은 사무소에서 출발한 H&deM 스튜디오 자체도 거대한 교육 기관이자 인큐베이터 역할을 했다. 이들을 거쳐 간 수많은 파트너와 스태프들이 독립해 글로벌 건축 씬에서 맹활약하고 있다.

후대 건축계에 이들이 남긴 가장 압도적인 유산은 단연 '외피(Skin)의 재발견'이다. 이들의 등장 이후, 현대 건축의 파사드는 단순히 창문을 내고 바람을 막는 방어막이 아니라 브랜드, 환경 시스템, 도시의 이미지를 발신하는 능동적인 미디어 플랫폼으로 격상되었다.

수상·전시 이력

2001년 자크 헤르조그와 피에르 드 뫼롱은 건축계 최고 권위의 프리츠커 건축상을 공동 수상했다. 이는 스위스 국적 건축가로서는 최초의 프리츠커상 수상 기록이었다.

2003년에는 라반 댄스 센터 설계의 공로로 영국 RIBA 스털링상을 품에 안았다. 2007년에는 RIBA 로열 골드 메달을, 같은 해 일본미술협회가 수여하는 프레미엄 임페리얼레 건축 부문상을 연달아 휩쓸었다.

2014년 1111 링컨 로드로 미스 크라운 홀 아메리카스상(MCHAP)을, 2015년에는 건축과 예술의 경계를 융합한 공로로 젱크스상(Jencks Award)을 수상했다. 가장 최근인 2025년에는 프랑스 미술 아카데미 건축 대상을 수여받았다.

전시 활동 역시 활발했다. 1988년 바젤 건축박물관의 전시를 시작으로, 1995년 파리 퐁피두센터 초청 전시, 2002년 몬트리올 캐나다건축센터(CCA) 기획 전시 등이 대표적이다.

특히 2023년 영국 런던 로열 아카데미 오브 아츠(Royal Academy of Arts)에서 열린 대규모 회고전은 수천 개의 작업 모형과 소재 샘플, 1:1 스케일 목업(Mock-up), 증강현실(AR) 기술을 총동원해 이들의 방대하고 치열한 설계 과정을 입체적으로 조명했다.

반응과 평가

디자인

헤르조그 & 드 뫼롱은 동시대 건축에서 표면(Surface)과 소재(Material)의 잠재력을 가장 집요하고 혁신적으로 탐구해 온 마스터로 평가받는다. 프리츠커 심사위원단 역시 벽돌, 돌, 유리, 강철 같은 원초적이고 전통적인 재료에서 누구도 상상하지 못한 현대적 해법을 도출해 낸 탁월한 연금술을 높이 평가했다.

폐발전소를 테이트 모던으로 재생해 글로벌한 성공 신화를 썼고, 베이징 국가체육장은 21세기 아시아 건축의 가장 압도적인 심볼이 되었다. 엘프필하모니는 치열한 논란 끝에 완공되었으나, 현재는 함부르크의 낭만적인 해양 스카이라인을 규정하는 보물로 칭송받는다.

이들의 건축은 대개 실루엣이나 평면이 아닌 '표면의 촉각'에서 출발한다. 건물이 멀리서 어떤 형태를 띠는지보다, 어떤 물성으로 덮여 있고 햇빛과 만나 어떻게 산란하며, 세월이 흘러 어떻게 변색되어 가는지를 집요하게 파고든다.

구조와 성능

이들의 거대한 건축물들은 수치화된 단일 등급이나 평면적 잣대만으로 온전히 평가될 수 없다. 엔지니어링의 한계를 시험하는 거대한 구조와 미시적인 소재 성능, 그리고 도시적 스펙터클이 한 몸처럼 움직여야 하기 때문이다.

베이징 국가체육장은 중력에 저항하는 거대한 강철 격자를 조형적 모티프이자 하중을 견디는 실제 구조체로 동시에 활용했다. 엘프필하모니 대공연장은 파도의 물결처럼 정교하게 3D 가공된 수만 개의 음향 패널을 덧붙여 최고 수준의 청각적 경험을 구현했다.

드 영 미술관의 타공 구리 패널, 도미누스 와이너리의 돌망태 벽, M+ 미술관의 매트한 세라믹 타일과 화려한 미디어 파사드는 이들이 각기 다른 대지의 기후와 도시적 욕망을 얼마나 정밀하게 컨트롤하는지 보여주는 기술적 증명서다.

브랜드와 도시 이미지

이들의 건축은 침체된 도시나 보수적인 기관의 브랜드 이미지를 단숨에 역동적으로 쇄신하는 강력한 촉매제 역할을 해왔다. 테이트 모던은 슬럼화되던 런던 사우스뱅크 지역을 세계 1위의 문화 중심지로 견인했고, 베이징 국가체육장은 신흥 대국 중국의 굴기를 전 세계에 시각적으로 발신했다.

사무소의 고향 바젤 역시 이들의 거대한 전시장이 다름없다. 바젤의 수많은 문화 복합 시설, 로슈 본사 타워 1·2관, 축구장과 마스터플랜에 이르기까지 이들의 터치가 바젤 스카이라인과 도시 경제를 직접적으로 지탱하고 있다.

그러나 건축이 도시의 스펙터클을 이토록 강력하게 좌우할 때, 그 이면에는 천문학적인 자본, 젠트리피케이션, 관광지화, 극단적 공공성 논쟁이 그림자처럼 수반되기 마련이다.

디자인 반응

당연하게도 극단적인 찬반양론을 몰고 다니는 프로젝트가 대다수다. 엘프필하모니의 역동적인 조형을 두고 한편에서는 "함부르크 항구에 띄워진 눈부신 빙산과 돛을 닮은 시적인 실루엣"이라 극찬한 반면, 다른 한편에서는 "콘서트홀 내부를 권위적으로 숨겨버린 배타적인 유리 괴물"이라 비판하기도 했다.

56 레너드 스트리트 타워 역시 불규칙한 발코니 큐브의 조각적 성취로 찬사를 받았지만, 뉴욕의 지독한 양극화를 상징하는 억만장자 전용 트로피 하우스에 불과하다는 뼈아픈 지적을 피할 수 없었다.

헤르조그 & 드 뫼롱의 결과물은 결코 얌전히 소비되고 잊히지 않는다. 압도적인 표면, 타협 없는 재료, 강렬한 도시적 제스처를 들이밀기 때문에 대중의 열광과 비평가들의 서늘한 질타를 동시에 흡수한다.

비판

베이징 국가체육장의 건립 과정에서는 첨예한 정치적 비판이 일었다. 설계에 결정적 영감을 제공했던 반체제 예술가 아이 웨이웨이는 이후 이 프로젝트와 공개적으로 거리를 두며, "새 둥지가 독재 정부의 체제 선전 도구로 전락했다"고 신랄하게 비판했다.

이 사건은 "건축가가 자신이 설계한 공공 건축물이 특정 정치 체제의 프로파간다로 활용될 때, 어디까지 책임을 져야 하는가"라는 묵직한 윤리적 질문을 남겼다. 헤르조그 & 드 뫼롱은 '건축물을 향한 해석은 특정 이데올로기에 독점될 수 없다'는 열린 입장을 고수했지만, 이 정치적 꼬리표는 여전히 그들의 화려한 포트폴리오 한구석에 끈질기게 따라붙어 있다.

또한, 엘프필하모니 프로젝트에서는 극단적인 디자인 야심이 시공의 현실성과 예산 통제를 완전히 상실했다는 비판이 따랐다. 초기 예산은 턱없이 과소 계상되었고, 준공은 기약 없이 지연되었으며 최종 공사비는 무려 10배 가까이 폭등해 지방의회 청문회까지 열리는 홍역을 치렀다.

물론 완공 이후 폭발적인 관광객 유치와 도시 상징성의 성공으로 여론은 반전되었다. 그러나 이 사례는 스타 건축가의 예술적 야망, 막대한 세금이 투입되는 공공 예산, 건설 관리, 그리고 완공 후의 파급 효과가 현실 세계에서 얼마나 첨예하고 복잡하게 얽혀 있는지를 뚜렷하게 보여준다.

헤르조그 & 드 뫼롱의 건축은 단순히 시각적으로 아름다운 껍데기를 세우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 그 매혹적인 표면은 거대 자본, 정치 역학, 브랜드 가치, 관광과 공공성이라는 현대 사회의 가장 뜨거운 논쟁들을 예외 없이 블랙홀처럼 빨아들인다.

관련·혼동 용어

Herzog & de Meuron

Herzog & de Meuron은 자크 헤르조그와 피에르 드 뫼롱이 1978년 바젤에서 설립한 글로벌 건축 스튜디오다. 한국어 표기로는 주로 '헤르조그 & 드 뫼롱' 또는 '헤르조그 앤 드 뫼롱'으로 기재한다.

자크 헤르조그

자크 헤르조그는 헤르조그 & 드 뫼롱의 공동 창립자다. 1950년 스위스 바젤에서 출생했으며, 피에르 드 뫼롱과 함께 2001년 프리츠커 건축상을 공동 수상했다.

피에르 드 뫼롱

피에르 드 뫼롱은 헤르조그 & 드 뫼롱의 공동 창립자다. 자크 헤르조그와 동갑내기로 1950년 바젤에서 출생했으며, 스튜디오의 굵직한 설계 방향과 글로벌 프로젝트의 뼈대를 주도해 왔다.

스킨 건축

스킨 건축(Skin Architecture)은 건물의 외피를 단순한 방어막이나 마감재로 덮어두지 않고, 건축의 미학적, 환경적 핵심 주제로 끌어올리는 접근을 지칭하는 개념이다. 헤르조그 & 드 뫼롱은 질감, 투명도, 반사, 타공, 산화 작용을 융합해 이 기조를 가장 선구적으로 이끌었다.

부지 특정성

부지 특정성(Site-specificity)은 단순히 빈 땅에 건물을 올리는 것이 아니라, 해당 장소가 지닌 고유한 지형, 지질학적 재료, 역사적 흔적, 기후 조건에서 고유한 건축 논리를 도출해 내는 태도를 말한다. 헤르조그 & 드 뫼롱이 하나의 시그니처 스타일에 얽매이지 않고 대지마다 전혀 다른 파사드와 해법을 제시하는 이유가 바로 이 개념에 닿아 있다.

게비온

게비온(Gabion, 돌망태)은 철망 안에 깬돌이나 자연석을 채워 넣은 구조물이다. 본래 사면 붕괴를 막는 토목용 옹벽 재료로 주로 쓰였으나, 헤르조그 & 드 뫼롱은 도미누스 와이너리 설계에서 이를 주건물의 파사드 전체에 파격적으로 차용하여 빛, 공기, 온도를 조율하는 친환경적이고 지능적인 건축 표면으로 재탄생시켰다.

테이트 모던

테이트 모던(Tate Modern)은 런던 템스강변의 옛 뱅크사이드 화력발전소 본체를 보존 및 리노베이션하여 완성한 영국 런던의 현대미술관이다. 헤르조그 & 드 뫼롱의 이름을 전 세계에 알린 역작이자, 방치된 산업 유산을 최첨단 문화 인프라로 탈바꿈시킨 도시 재생 건축의 바이블로 통한다.

엘프필하모니

엘프필하모니(Elbphilharmonie)는 독일 함부르크 항구의 옛 적벽돌 적재 창고 위에 유리 매스를 증축해 얹어 올린 랜드마크 콘서트홀이다. 기록적인 예산 초과와 공기 지연으로 건립 과정 내내 혹독한 비판을 받았으나, 개관 직후 압도적인 음향 성능과 시각적 파괴력으로 함부르크 항구를 상징하는 새로운 아이콘으로 군림하게 되었다.

베이징 국가체육장

베이징 국가체육장(Beijing National Stadium)은 2008년 베이징 하계 올림픽의 개·폐막식과 육상 경기를 위해 건립된 메인 스타디움이다. 수만 톤의 강철 빔이 무작위로 얽힌 듯한 외관 덕에 '새 둥지(Bird's Nest)'라는 확고한 별칭으로 불리며, 건물을 지탱하는 구조(Structure)와 표면을 꾸미는 장식(Ornament)을 완벽하게 일체화시킨 21세기 하이테크 건축의 걸작으로 평가받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