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브 베하 (Yves Béhar)
개요
<img src="https://d2xsxph8kpxj0f.cloudfront.net/310519663429662740/ffcjRzrXsTCDKgX6s8aDwC/articles/1786251128809-185c30bb4eded9c0.webp" alt="" data-orientation="portrait" data-original-src="https://d2xsxph8kpxj0f.cloudfront.net/310519663429662740/ffcjRzrXsTCDKgX6s8aDwC/articles/1786251130588-690a4bf30cbdbacb.webp" width="600" />
© dezeen이브 베하는 스위스 출신의 미국 디자이너다. 실리콘밸리의 기술 기업과 산업 디자인 그리고 브랜드를 한 번에 엮어내는 방식으로 유명하다. 1967년 스위스 로잔에서 태어나 미국 아트센터 칼리지 오브 디자인에서 공부했다. 1999년 샌프란시스코에 퓨즈프로젝트를 세우고 지금까지 대표를 맡고 있다.
그의 디자인은 겉모습을 예쁘게 꾸미는 일에만 머물지 않는다. 어려운 최신 기술을 사람들이 일상에서 편하게 쓰도록 바꾸는 일에 집중한다. 저개발 국가 어린이를 위한 XO 노트북이나 현수교 원리를 가져온 허먼밀러 세일 체어 그리고 꺼진 TV 화면을 그림 액자로 바꾼 삼성 더 프레임이 대표적이다.
퓨즈프로젝트는 껍데기만 디자인하는 하청 업체가 아니다. 제품 기획부터 브랜드 이름과 스마트폰 앱 그리고 사업 전략까지 한꺼번에 기획한다. 나아가 스타트업의 지분을 받아 제품의 성공과 실패를 함께 나누는 벤처 디자인 방식을 아주 적극적으로 쓴다.
약력·연혁
스위스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베하는 1989년 캘리포니아로 넘어와 디자인을 공부했다. 졸업 후 실리콘밸리의 유명 디자인 회사들에서 일하며 아무리 좋은 기술이라도 디자인과 브랜드가 따로 놀면 결국 실패한다는 사실을 크게 깨달았다. 이를 바탕으로 1999년 모든 과정을 하나로 묶겠다는 뜻을 담아 퓨즈프로젝트를 세웠다.
2000년대 중반 그가 이끈 OLPC 프로젝트의 XO 노트북은 전 세계의 큰 칭찬을 받았다. 험한 환경과 아이들의 신체 조건을 정확히 이해한 디자인이었다. 이 일을 계기로 그는 기술과 사회 문제를 연결하는 뜻깊은 디자이너로 떠올랐다.
2010년에는 허먼밀러와 세일 체어를 선보이며 가구 디자인으로 영역을 넓혔다. 이후 스마트 도어록이나 로봇 요람처럼 기계와 소프트웨어가 합쳐진 제품 디자인에 집중했다. 현재 퓨즈프로젝트는 100개가 넘는 스타트업의 시작을 도우며 스마트홈과 AI 로봇 프로젝트를 이끌고 있다.
디자인 철학·시그니처
이브 베하의 디자인은 어려운 첨단 기술의 차가운 느낌을 지우고 사용자가 편안하게 다가갈 수 있는 모양을 만드는 데 집중한다. 삼성 더 프레임은 거실의 시커먼 TV 화면을 예쁜 액자로 바꿨고 스누 요람은 로봇 기술의 차가움을 나무와 천으로 감싸 아늑한 가구처럼 만들었다. 또한 환경 문제를 단순히 재활용 소재를 쓰는 수준으로 풀지 않는다. 허먼밀러 세일 체어처럼 부품과 재료를 확 줄여 생산 단가를 낮추면서 친환경도 이뤄내는 방식을 쓴다.
그는 제품을 다 만들고 나중에 로고를 붙이는 옛날 방식을 피한다. 픽업트럭을 설계할 때 이름과 로고 그리고 스마트폰 앱까지 한꺼번에 기획해 진짜 형태와 디지털 경험이 매끄럽게 이어지게 만든다. 특히 돈만 받고 끝내는 외부인 역할을 거부하고 스타트업의 지분을 직접 확보해 사업의 위험을 함께 나눈다. 디자이너가 처음부터 사업 결정에 참여해 자신의 디자인 철학을 끝까지 지킬 수 있는 구조를 만드는 것이 그의 가장 큰 특징이다.
주요 작업
도마 (Doma, 2026)
스마트홈 기기를 벽에 지저분하게 붙이는 대신 문과 창문 틀 안에 센서와 모터를 아예 숨겼다. 공간을 복잡하게 만드는 기계들을 치워버리고 건축물 자체가 지능을 갖게 만드는 스마트홈 시스템이다.
TELO MT1 (2025)
도시에 딱 맞는 소형 전기 픽업트럭이다. 미국 트럭 특유의 큰 덩치를 버리고 짧은 길이 안에 넓은 실내와 짐칸을 모두 확보했다. 퓨즈프로젝트가 차량 안팎의 디자인은 물론 브랜드 이름과 디지털 화면 경험까지 모두 책임졌다.
삼성 더 프레임 (2017)
TV를 보지 않는 시간에 주목한 획기적인 제품이다. TV를 끄면 화면이 유화나 사진처럼 변한다. 나무 질감의 테두리를 갈아 끼울 수 있어 전자기기가 아닌 진짜 인테리어 액자처럼 보인다.
스누 스마트 슬리퍼 (2016)
소아과 의사의 조언을 바탕으로 아기를 달래주는 로봇 요람이다. 마이크와 모터가 들어간 최첨단 기계지만 따뜻한 느낌의 나무와 부드러운 천으로 겉을 감쌌다. 기계 느낌을 지우고 침실 가구로 자연스럽게 어울리게 만들었다.
세일 체어 (2010)
금문교 같은 현수교의 원리를 빌려와 등받이 테두리를 없앤 허먼밀러 사무용 의자다. 굵기와 탄력이 부위별로 다른 그물망이 척추를 유연하게 받쳐준다. 부품을 크게 줄여 허먼밀러의 까다로운 기준을 맞추면서도 가격은 훌쩍 낮췄다.
OLPC XO 노트북 (2005)
가난한 나라 아이들의 교육을 위해 기획된 저가형 노트북이다. 어른용 노트북을 크기만 줄인 것이 아니다. 모래와 잦은 충격을 견디도록 덮개를 아주 튼튼하게 만들고 아이들 손에 맞는 손잡이를 달았다. 뉴욕 현대미술관에 소장된 의미 있는 작품이다.
영향 관계
베하는 여러 분야를 가리지 않고 종합적인 결과를 만들었던 과거 미국 디자인 스튜디오의 정신을 물려받았다. 동시에 실리콘밸리 특유의 빠른 소프트웨어와 하드웨어 개발 환경을 자신의 사업 방식으로 흡수했다. 단순히 예쁜 모양을 잡아주는 사람을 넘어 스타트업의 지분을 나누는 공동 창업자로 디자이너의 역할을 넓힌 점은 후배들에게 큰 영향을 미쳤다.
수상·전시 이력
2004년 미국 최고의 디자인 상인 쿠퍼 휴잇 내셔널 디자인 어워드를 받았다. XO 노트북 등 사회를 위한 디자인으로 인덱스 어워드를 두 번이나 받았다. XO 노트북과 잼박스 같은 주요 작품은 뉴욕 현대미술관에 영구 소장되어 있다. 2021년에는 모교인 아트센터 칼리지 오브 디자인에서 주는 훌륭한 동문상을 받았다.
반응과 평가
이브 베하는 차가운 기계 기술을 사람의 온도로 부드럽게 바꿔내는 데 아주 뛰어난 전문가다. 가구나 가전제품 그리고 로봇 등 종류를 가리지 않고 제품이 일상 공간에 자연스럽게 스며들게 만든다. 디자이너를 단순한 외주 작업자에서 사업을 함께 키우는 파트너로 끌어올린 점도 아주 높게 평가받는다.
하지만 단점도 있다. 특정한 스타일이 없어서 디자이너 개인의 색깔을 한눈에 알아보기 어렵다. 스타트업에 투자하며 깊게 참여하는 방식도 양날의 검이다. 아무리 좋은 제품이라도 회사가 망하거나 앱 서비스가 끝나면 기계가 순식간에 쓸모없는 고철로 변해버리기 때문이다. 요즘은 로봇이나 스마트홈처럼 사람의 민감한 정보와 영상을 모으는 제품을 많이 다루고 있다. 기계를 친근하게 포장하는 것을 넘어 정보 보안과 장기적인 신뢰 문제를 디자이너가 앞으로 어떻게 풀어갈지가 가장 큰 숙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