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센트 반 두이센 (Vincent Van Duysen)
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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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iet Albert Goethals빈센트 반 두이센(Vincent Van Duysen)은 따뜻한 회색과 베이지, 거친 석재, 짙은 목재와 두꺼운 벽체를 통해 벨기에식 미니멀리즘의 정수를 구현해 온 건축가 겸 디자이너다. 1962년 벨기에 로케런에서 태어나 겐트 신트루카스(Sint-Lucas) 건축학교를 졸업했고, 밀라노에서 알도 치비크(Aldo Cibic)와 실무를 거쳐 1989년 자신의 스튜디오를 설립했다. 현재 앤트워프 기반의 빈센트 반 두이센 아키텍츠(Vincent Van Duysen Architects)는 약 40명의 전문 인력과 함께 건축, 인테리어, 제품, 호스피탈리티, 크리에이티브 디렉션을 포괄적으로 수행하고 있다.
그의 작업은 흰 벽과 가구의 형태를 극단적으로 소거하는 차가운 미니멀리즘과 궤를 달리한다. 회벽, 오크, 석회석, 청동처럼 시간이 흐르며 표면이 산화하고 변색하는 재료를 선호하며, 창과 문을 두꺼운 벽면 안쪽으로 깊숙이 배치해 공간에 극적인 그림자를 드리운다. 형태적 절제를 추구하되, 재료 고유의 촉감과 빛의 농도는 극대화하는 방식이다. 공식 스튜디오 역시 순수하고 촉각적인 재료, 맥락과 전통, 내구성과 편안함을 작업의 철학적 뼈대로 명시하고 있다.
2016년부터 몰테니앤씨(Molteni&C)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를 역임하며 2026년 취임 10주년을 맞이했다. 제품 라인업뿐만 아니라 쇼룸 공간, 광고 캠페인, 인테리어, 브랜드 커뮤니케이션 전체를 통제하며 몰테니앤씨의 체질을 완전히 뒤바꿨다. 아울러 2022년부터는 자라홈(Zara Home)과의 장기 파트너십을 통해 글로벌 리테일 마켓으로 자신의 디자인론을 확장하고 있다.
약력·연혁
반 두이센은 겐트에서 건축을 수학한 후 1986년 밀라노로 이주해 알도 치비크의 스튜디오에 합류했다. 멤피스(Memphis) 그룹과 연대했던 치비크의 환경에 속해 있었으나, 그는 화려한 색상이나 과장된 장식보다는 건축의 본질적인 침묵을 택했다. 다만 건축 설계와 가구, 소품 디자인을 단일 프로젝트의 연장선으로 취급하는 이탈리아 특유의 '토털 디자인(Total Design)' 방법론은 그의 작업관에 깊게 각인되었다. 브뤼셀과 앤트워프의 건축사무소를 거친 뒤 1989년 독립했으며, 공식 경력은 1990년부터 자신의 건축사무소를 본격적으로 운영한 것으로 기술하고 있다.
독립 초기부터 주거 건축에 주력하며, 가구를 실내에 부유하는 개별 오브제가 아닌 바닥과 벽이 연장된 건축의 일부로 편입시켰다. 이 방식은 이후 가구와 조명 디자인으로 고스란히 이식되었다. 제품을 스케치할 때 단독 조형물로서의 완결성보다 실제 건축 환경에 놓였을 때 벽, 바닥과의 재료적·비례적 정합성을 우선 검토한다. 앤트워프의 어거스트 호텔(August Hotel) 프로젝트는 이러한 주거 철학이 호스피탈리티 영역으로 확장된 상징적 기점이다. 구 수도원 건축물을 개조하며 기존의 벽돌, 목재 계단, 창호의 흔적을 보존하고 무채색과 세이지 그린(Sage Green)만을 제한적으로 운용하여, 호텔 특유의 과장된 장식 대신 역사적 건축물의 본원적 비례와 재료가 발화하도록 유도했다.
2016년 몰테니앤씨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부임은 그의 영향력이 글로벌 산업 가구 씬 전체로 팽창한 결정적 계기다. 베이지, 브라운, 짙은 목재와 석재를 브랜드의 핵심 시각 언어로 교체하고, 쇼룸을 제품이 나열된 매장이 아닌 실제 거주 공간처럼 유기적으로 연출했다. 과거 지오 폰티(Gio Ponti) 등 거장의 아카이브를 신제품 기획과 병행 검토하며 브랜드의 역사적 맥락도 함께 조율한다. 2026년 취임 10주년을 기념해 자신이 직접 설계한 줄리안(Julian) 소파, 피시스(Physis) 키친, 에테르(Eter) 테이블 등을 헌정 컬렉션으로 선보였다. 이와 대비되는 행보로 2022년부터 자라홈과의 협업(Zara Home+ by Vincent Van Duysen)을 이어가고 있다. 거실 가구에서 다이닝, 생활 소품으로 영역을 넓혀 2025년 네 번째 컬렉션을 공개했으며, 하이엔드 브랜드에서 구사하던 비례와 물성을 글로벌 유통 인프라의 가격대로 이식하는 의미 있는 실험을 진행 중이다.
디자인 철학·시그니처
형태를 소거한 자리에 재료의 물성을 짙게 채워 넣는다. 그의 공간은 가구의 밀도가 낮음에도 빈약해 보이지 않는다. 회벽 특유의 거친 입자감, 거친 자연석의 결, 오크의 적나라한 나뭇결을 여과 없이 드러내어 부가적인 장식 없이도 공간의 층위를 발생시킨다. 스튜디오가 '촉각적인 재료'를 디자인의 핵심 동력으로 꼽는 이유 역시 시각적 형상보다 손발에 닿는 감각이 공간의 정서를 지배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특히 두꺼운 벽면과 깊은 그림자는 반 두이센 건축의 명백한 시그니처다. 창호와 문을 얇은 벽체 표면에 부착하지 않고 두터운 옹벽 안쪽으로 깊게 후퇴시켜 빛의 틈과 짙은 그림자를 유도한다. 가구 설계에서도 얇고 날렵한 실루엣보다 육중한 팔걸이와 깊고 너른 좌판을 채택하여, 비워진 공간 안에 묵직한 물성이 병존하는 특유의 밀도를 형성한다.
제품을 건축과 분절하여 사유하지 않는다. 대규모 공간에는 낮고 육중한 비례의 소파를 안착시키고, 소형 가구 역시 주변 벽과 바닥의 선형에 순응하도록 높이와 두께를 통제한다. 몰테니앤씨에서 제품 단품이 아닌 매장과 광고 캠페인까지 포괄적으로 쥐고 있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가구 자체의 조형미보다 그것이 결합되어 산출하는 공간의 총체적 비례를 지휘한다.
아울러 오래된 유산과 새로운 재료를 구분 짓지 않는다. 건축 레노베이션 과정에서 원형의 벽돌과 석재를 그대로 노출하며, 신규 가구의 마감재 역시 새것의 광택을 의도적으로 배제한다. 신축 프로젝트라 할지라도 세월의 풍화에 따라 표면이 에이징(Aging)되는 목재와 석재를 최우선으로 선별한다. 일시적인 색상이나 그래픽 유행을 거부하고, 수십 년 후 재료의 표면이 어떻게 변모할 것인가에 대한 내구성과 지속성의 관점이 설계의 바탕을 이룬다.
주요 작업
몰테니앤씨(Molteni&C) 2026 컬렉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취임 10주년을 기리며 직접 디자인을 관장한 컬렉션이다. 줄리안 소파, 피시스 키친, 에테르 커피 테이블 등으로 구성되며, 지난 10년간 그가 몰테니앤씨에 이식해 온 낮고 넓은 비례, 짙은 목재, 천연 석재와 패브릭의 조합을 더욱 유연한 볼륨으로 진화시켰다.
자라홈+(Zara Home+) 컬렉션 04
2022년부터 지속된 자라홈과의 파트너십 중 2025년에 공개된 네 번째 에디션이다. 가구, 오브제, 테이블웨어를 아우르며 반 두이센 고유의 건축적 비례와 촉각적 물성을 글로벌 리테일 마켓의 양산품으로 번역했다.
팔라초 몰테니(Palazzo Molteni)
2025년 밀라노의 유서 깊은 건축물을 몰테니앤씨의 신규 플래그십 스토어로 전면 개조한 프로젝트다. 반 두이센이 건축 수선과 실내 설계를 총괄하여 기계적인 제품 나열식 쇼룸을 탈피하고, 실제 하이엔드 저택의 동선을 거니는 듯한 주거적 스페이스를 구현했다.
어거스트 호텔(August Hotel)
벨기에 앤트워프에 위치한 구 수도원을 호스피탈리티 시설로 레노베이션한 수작이다. 원형 건물의 조적벽, 창호, 계단을 보존한 채 현대적 가구와 조명을 극도로 절제하여 삽입했다. 반 두이센이 주거에서 갈고닦은 명암과 재료의 다루는 방식이 상업 공간으로 완벽히 이식된 상징적 작업이다.
몰테니앤씨 통합 크리에이티브 디렉션
2016년 이후 몰테니앤씨의 단독 제품 론칭을 넘어 브랜드 아카이브 복원, 신제품 큐레이션, 쇼룸 인테리어, 글로벌 캠페인 화보의 색감과 소재까지 모든 아웃풋의 톤 앤 매너를 단일한 방향으로 조율하고 통제하는 거시적 브랜드 작업이다.
영향 관계
반 두이센의 철학은 1980년대 밀라노에서 알도 치비크와 실무를 경험하며 이탈리아 산업계의 '토털 디자인' 공정을 체화한 데서 기인한다. 그러나 방법론은 이탈리아 멤피스 그룹의 키치(Kitsch)적 화려함에 동조하지 않고, 플랑드르 건축 특유의 두꺼운 물성과 절제된 색채의 전통을 따랐다.
특히 2010년대 이후 전 세계를 강타한 '웜 미니멀리즘(Warm Minimalism)' 흐름의 중추로 거론된다. 차갑고 멸균된 흑백의 미니멀리즘을 해체하고, 그 자리에 회색, 베이지, 브라운의 톤 온 톤 배색과 목재, 석재의 거친 촉감을 부여한 것이다. 국내 인테리어 산업 내에서도 어거스트 호텔의 미감과 자라홈 컬렉션이 이른바 '반 두이센 스타일'의 레퍼런스로 강력하게 차용되고 있다.
수상·전시 이력
플랑드르 문화 디자인상(Flemish Culture Award for Design), 벨기에 올해의 디자이너(Belgian Designer of the Year), 헨리 반 데 벨데 평생공로상(Henry van de Velde Lifetime Achievement Award) 등 자국의 최고 영예를 석권했다. 글로벌 전문지 《아키텍처럴 다이제스트(Architectural Digest)》의 'AD100'과 《엘르 데코(Elle Decor)》의 'A-List'에 장기 랭크되며 국제적 명성을 유지하고 있다.
반응과 평가
반 두이센은 건축가, 제품 디자이너, 하이엔드 가구 제조사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직함을 40여 명의 스튜디오 체제 안에서 완벽히 통제하는 최정상급 현역이다. 2026년 현재 한 디자이너가 무려 10년간 특정 가구 브랜드(몰테니앤씨)의 디자인부터 공간, 커뮤니케이션을 장기 독점하며 체질을 혁신한 사례는 동시대 산업계에서 매우 이례적인 성취로 평가받는다.
그의 미학은 차갑지 않은 미니멀리즘, 즉 장식을 비워낸 자리에 재료의 텍스처와 빛의 농도만으로 풍성한 밀도를 채우는 데서 찬사를 받는다. 석재와 목재, 회벽이 빚어내는 촉각적 앙상블은 텅 빈 공간조차 충만하게 느끼게 한다. 반면 무광 석재, 베이지, 브라운, 짙은 원목이라는 형태적 코드가 고급 주거와 호텔 씬에 무차별적으로 확산되면서, 전 세계 럭셔리 공간이 획일적인 '반 두이센풍'으로 수렴된다는 볼멘소리도 따른다. '조용한 럭셔리(Quiet Luxury)' 트렌드와 맞물려 그의 고유한 작법이 손쉬운 유행 공식처럼 복제되고 있는 실정이다.
또한 그가 구사하는 미니멀리즘의 비용적·환경적 이면도 직시해야 한다. 형태는 비워냈을지언정 이를 구현하기 위해서는 거대한 천연 석재, 두꺼운 통원목, 정교한 하이엔드 맞춤 가구와 정밀한 시공 디테일이 수반되므로, 실제 자원 소모와 건축 비용은 극도로 높다. 이런 맥락에서 자라홈과의 협업은 대량 생산 인프라와 중가 마켓의 한계 속에서 그가 천착하는 '재료의 깊이'를 어떻게 보존할 것인지 묻는 날카로운 반대 실험이다.
아울러 몰테니앤씨의 10년 체제는 브랜드 아이덴티티 확립이라는 긍정적 측면 이면에, 브랜드 전체가 디렉터 1인의 편향된 취향으로 종속될 위험을 내포한다. 아트디렉터의 맹렬한 장악력과 하우스 고유성의 희석은 종이 한 장 차이의 딜레마를 남긴다. 그럼에도 반 두이센 디자인의 진정한 위력은 형태를 소거하는 무조건적 미니멀리즘에 있지 않다. 벽의 육중한 두께, 돌의 결, 빛의 파고 등 무엇을 공간에 남겨야 할지 정확히 타진하는 큐레이션 역량이다. 결국 그의 미니멀리즘은 '적게 보이는 디자인'이 아니라, '적은 요소를 오래도록 바라보게 만드는 디자인'으로 귀결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