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스 램 (Max Lamb)

개요

막스 램(Max Lamb)은 재료를 깎고, 주조하고, 녹이고, 절단하는 제작 과정 그 자체를 형태의 결과물로 치환하는 영국의 디자이너다. 1980년 영국 콘월에서 태어나 노섬브리아대학교(Northumbria University)에서 3D 디자인을 전공했고, 2006년 왕립예술학교(RCA) 디자인 프로덕츠 석사 과정을 졸업했다. 현재 런던을 기반으로 활동하며 수작업 중심의 실험적 오브제부터 상업 양산 가구까지 스펙트럼을 넓히고 있다.

그의 작업은 완결된 조형성보다 '어떻게 만들어졌는가'라는 물성에 대한 서사가 전면에 드러난다. 해변의 모래에 구덩이를 파고 녹인 주석을 부어 굳힌 '퓨터 스툴(Pewter Stool)', 채석장의 바위를 절단한 의자, 공장 폐플라스틱을 겹겹이 녹여 단면의 결을 노출한 '스크랩 폴리(Scrap Poly)', 수명 다한 물푸레나무 한 그루를 부위별로 해체해 가구로 치환한 '마이 그랜드파더스 트리(My Grandfather's Tree)' 등이 대표적이다. 갤러리 푸미(Gallery FUMI) 역시 램의 작업을 자르기, 깎기, 주조하기, 접기 등 물리적이고 직접적인 행위의 결과물로 정의한다.

램은 갤러리 중심의 '아트 퍼니처 디자이너'로 한정되지 않는다. 한정판 피스를 제작하는 동시에 헴(Hem), 1882 Ltd, 포테이토 헤드(Potato Head) 등의 기업과 협력해 양산 가능성을 타진한다. 2026년에는 헴과 함께 목재 사용량을 최적화한 '민 체어(Min Chair)'를 공개했으며, 포테이토 헤드와는 휴양지 폐기물을 가구 및 생활용품으로 자원화하는 '웨이스티드(Wasted)' 프로젝트를 전개하며 지속 가능한 산업 구조로 시야를 넓히고 있다.

약력·연혁

영국 콘월 지방 특유의 해안선과 채석장, 농장이 인접한 환경에서 성장하며 어린 시절부터 자연물을 직접 채집하고 가공하는 수공예적 감각을 체화했다. 노섬브리아대학교를 거쳐 2006년 RCA를 졸업한 직후, 당시 RCA 교수였던 톰 딕슨(Tom Dixon)의 프로젝트에 참여하며 산업 실무를 익혔다.

초기 대표작인 '퓨터 스툴'은 전통적인 금형 주조 방식을 야생으로 끌어낸 역작이다. 해변의 모래를 손으로 파내어 거푸집을 만들고 주석을 부어 완성한 이 스툴은, 디자이너의 작위적 형태 조율을 배제하고 모래의 질감과 중력의 법칙을 고스란히 표면에 남겼다. 이 '제작 공정이 곧 디자인'이라는 태도는 이후 램의 커리어를 관통하는 핵심 이데올로기가 되었다.

이후 돌과 폐플라스틱 등 산업 부산물로 실험의 외연을 넓혔다. 중국, 영국, 미국의 채석장을 돌며 현장의 육중한 절삭 장비로 바위를 가공한 프로젝트, 공장 부산물인 폴리에틸렌 조각들을 무작위로 열접합하여 새로운 텍스처를 창출한 '스크랩 폴리' 연작이 대표적이다. 2015년 밀라노 디자인 위크에서 선보인 《Exercises in Seating》은 약 10년간 돌, 나무, 금속, 플라스틱 등 상이한 물성으로 제작한 40여 점의 의자를 원형으로 병치하여, 의자라는 단일 품목을 재료 실험의 척도로 삼는 그의 기조를 증명했다.

같은 해 공개한 '마이 그랜드파더스 트리'는 일반적인 가구 목공의 경제성을 역행한 프로젝트다. 할아버지 농장의 187년 된 고사(枯死)한 물푸레나무 한 그루를 기둥부터 잔가지까지 크기순으로 절단하여 130여 개의 스툴과 오브제로 보존했다. 2024년 뉴욕 살롱 94 디자인(Salon 94 Design)에서 개최한 《Inventory》 전시는 17년간 다룬 33종의 재료와 282점의 작품을 아카이빙하며, 하나의 고정된 스타일보다 다양한 재료의 문법을 탐구해 온 여정을 집대성했다.

2026년 현재 램은 실험과 양산의 경계를 더욱 적극적으로 횡단 중이다. 헴과 론칭한 '민 체어'는 소나무 각재를 대각선으로 절단하여 목재 로스율을 최소화한 설계로 구조적 경제성을 확보했다. SCAD 미술관에서 개최된 《Elements》 전시는 그의 방대한 재료 실험을 소재별로 체계화하며 동시대 '메이커(Maker) 디자이너'로서의 입지를 공고히 했다.

디자인 철학·시그니처

램의 디자인은 조형을 먼저 스케치하고 공법을 끼워 맞추는 관습적 프로세스를 거부한다. 모래에 금속을 붓거나 석고를 직접 깎아내는 물리적 '행위'를 선행하고, 그 과정에서 파생되는 우발적 형태를 기꺼이 수용한다. 결과물의 미감은 디자이너의 의도된 연출이 아니라 재료와 공정이 부딪혀 발생한 흔적들의 집합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제작 과정의 흠집이나 거친 질감은 소거 대상이 아니다. '퓨터 스툴'의 모래 자국, 1882 Ltd와 협업한 '크로커리(Crockery)' 식기 외면의 투박한 석고 절삭면 등은 제품을 매끈하게 연마해야 한다는 산업 디자인의 강박에 정면으로 대치한다. 스튜디오 랩실에서의 작업 역시 3D 모델링이 아닌 실제 재료를 톱질하고 녹이는 실물 프로토타이핑을 통해 즉각적인 구조 수정이 이루어진다.

단일 재료의 물성을 극한까지 소진하는 집요함도 특징이다. '마이 그랜드파더스 트리'에서 나무의 모든 잔여물을 활용했듯, 포테이토 헤드와의 협업에서는 유리, 플라스틱, 음식물 쓰레기 등 각각의 폐기물 특성에 맞춘 별도의 가공법을 개별적으로 맵핑한다. 폐기물을 단순한 재활용 소재로 뭉뚱그리지 않고 각 물성의 잠재력을 개별 타진하는 방식이다. 그가 의자를 주된 실험 장치로 삼는 이유도 명확하다. 인체를 지지해야 한다는 최소한의 기능적 제약 안에서, 재료와 공정의 무한한 변수를 비교 분석하기 가장 적합한 플랫폼이기 때문이다.

주요 작업

소나무 의자 '민 체어(Min Chair)'

2026년 헴과 함께 선보인 친환경 설계 의자다. 단일 소나무 각재를 대각선으로 분할하여 다리, 등받이, 좌판 등 뼈대의 추출 효율을 극대화했다. 시각적인 두께감을 줄이기보다 동일한 목재량으로 더 많은 구조를 얻어내는 공학적 재단법이 핵심이다.

폐기물 자원화 프로젝트 '웨이스티드(Wasted)'

발리의 포테이토 헤드 리조트에서 배출되는 폐기물을 가구 및 생활 기물로 전환하는 순환 경제 프로젝트다. 2026년 33점의 컬렉션 및 독립 브랜드로 규모를 격상시켰으며, 해외 위탁이 아닌 발리 현지의 자체 가공 인프라를 구축하는 데 방점을 찍었다.

도자기 의자 '크로커리 체어(Crockery Chair)'

2025년 1882 Ltd와 공개한 대형 슬립캐스팅 도자 의자다. 램이 손수 조각한 석고 원형을 바탕으로 스토크온트렌트 장인들이 복제했다. 도자기의 취성(脆性)으로 인해 대형 좌석 가구로 기피되는 한계를 깨고, 고도의 건조 및 소성 기술을 통해 조형의 내구성을 확보했다.

골판지 가구 '박스(Box)' 연작

물류 폐기물인 포장용 골판지를 재단하고 적층하여 의자, 테이블, 소파로 재탄생시킨 시리즈다. 밀가루 기반의 천연 접착제로 겹겹이 굳혀 견고한 강성을 확보했다. 가장 저렴한 잉여 자재에 막대한 시간과 수공예적 노동을 투입하는 가치 역전의 역설을 보여준다.

'마이 그랜드파더스 트리(My Grandfather's Tree)'

2015년 고사한 187년 수령의 물푸레나무 한 그루를 온전히 해체해 130여 개의 스툴과 오브제로 분절한 작업이다. 나이테와 옹이의 흔적을 통해 나무의 생장 순서를 시각적으로 역추적할 수 있도록 보존했다.

본차이나 식기 '크로커리(Crockery)'

1882 Ltd와 지속 전개 중인 도자 컬렉션이다. 램이 석고를 깎아 만든 원형의 비정형적이고 거친 외면(비스킷 표면)은 질감 그대로 남겨두고, 음식물이 닿는 내부만 유약 처리하여 촉각적 대비를 극대화했다.

주석 주조 '퓨터 스툴(Pewter Stool)'

해변 모래사장의 구덩이를 자연 거푸집 삼아 용융된 주석을 붓고 굳혀 낸 그의 초기 상징작이다. 정밀 금형을 배제하고 중력과 지형의 우발적 요건을 수용해 '제작 과정의 노출'이라는 램의 뚜렷한 이정표를 세웠다.

영향 관계

영국 공예의 전통적 물성 탐구와 RCA의 전위적인 산업 디자인 방법론이 그 안에서 충돌하고 융합한다. 톰 딕슨 스튜디오에서의 실무 경험은 산업 생산의 생태계를 이해하는 토대가 되었으나, 독립 이후 그는 제도권의 양산 체제보다 자신의 작업실에서 물성을 직접 타격하는 1차원적 제작 방식에 몰두했다. 현재 그는 스케치업과 렌더링에 의존하는 동시대 디자인 조류에 반기를 들고, 디자이너가 곧 제작자(Maker)가 되는 직관적인 행동주의를 주창하며 후학들에게 강렬한 영감을 발신하고 있다.

수상·전시 이력

2008년 디자인 마이애미/바젤(Design Miami/Basel)에서 '미래의 디자이너(Designer of the Future)'로 선정되며 일찌감치 국제적 이목을 끌었다. 2018년 시카고 아트 인스티튜트 《Max Lamb: Exercises in Seating》, 2024년 뉴욕 살롱 94 디자인 《Inventory》, 2026년 SCAD 미술관 《Elements》 등 굵직한 단독 기획전을 통해 물성 실험의 연대기를 정리했다. 쿠퍼 휴잇 내셔널 디자인 뮤지엄, 비트라 디자인 뮤지엄, 파리 장식미술관 등 주요 공공 기관에 다수의 피스가 영구 소장되어 있다.

반응과 평가

막스 램은 컬렉터블 크래프트와 상업 양산 가구의 영토를 가장 거침없이 횡단하는 독보적 현역이다. 갤러리 피스를 통해 날것의 실험을 감행하고, 헴이나 포테이토 헤드 같은 상업 주체들을 통해 이를 실용적인 일상의 도구로 번역해 낸다. 2026년 《Elements》 전시가 방증하듯, 그는 고정된 시각적 스타일이 아닌 '재료를 굴복시키는 태도' 자체로 묶이는 유일무이한 카테고리다.

그의 아웃풋은 제품의 표면만으로도 디자이너의 고단한 노동과 제작 공정을 직관적으로 유추할 수 있다는 점에서 강력한 진정성을 획득한다. 가공의 흔적을 지우는 기성 산업 디자인의 표백주의에 대한 명쾌한 반발이다. 그러나 역으로 거칠고 투박한 조형이 의도적인 기행이나 키치적인 '반(反)디자인'으로 오독될 여지도 다분하다. 치밀한 물성 연구의 산물임에도 겉보기엔 아이들의 조악한 찰흙 놀이처럼 비치는 시각적 진입 장벽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그가 직면한 가장 흥미로운 논쟁거리는 '노동과 재료 가치의 역설'이다. 버려진 골판지(Box 연작)나 폐기물을 주재료로 삼으나, 정작 이를 견고한 기물로 성형하는 과정에는 막대한 시간과 고도의 수공예적 노동력이 투입된다. 잉여 자재를 활용한다고 해서 필연적으로 저렴한 단가나 친환경적 결과물이 보장되지 않는다는 딜레마를 안고 있다. 신소재 개발을 핑계로 수많은 프로토타입을 파기해야 하는 디자이너의 숙명적 모순에 대해 램 본인 역시 무거운 책임감을 피력한 바 있다.

다만 최근 2026년에 선보인 '민 체어'의 자재 로스 최소화 설계나 '웨이스티드' 프로젝트의 로컬 순환 경제 구축망은, 재료를 유희의 대상으로 소비하던 단계를 지나 산업의 실질적 폐기물 감축과 생산 효율로 고민의 중심축이 이동하고 있음을 시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