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토 도요 (Toyo Ito)

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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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Fujitsuka Mitsumasa

이토 도요(Toyo Ito)는 기둥, 벽, 바닥으로 단단하게 구획되던 근대 모더니즘 건축의 고정된 질서를 해체하고, 사람과 정보가 액체처럼 자유롭게 유영하는 공간을 창조해 온 일본의 건축가다. 1941년 경성부(현 서울)에서 태어나 일본에서 성장했으며, 도쿄대학교 건축학과 졸업 후 메타볼리즘의 거장 기쿠타케 기요노리 사무소에서 수학했다. 1971년 '어번 로봇'으로 독립한 뒤 1979년 이토 도요 건축설계사무소로 이름을 바꿨고, 2013년 건축계의 노벨상인 프리츠커 건축상을 수상했다.

그의 궤적은 단일한 외형이나 양식으로 요약되지 않는다. 초기에는 얇은 금속과 빛을 활용해 도시 정보의 흐름을 반영하는 미디어적 외피에 집중했다면, 2001년 '센다이 미디어테크'를 분기점으로 벽과 기둥을 통합한 유기적인 구조체의 실험으로 나아갔다. 수직 기둥을 대체한 거대한 튜브(센다이 미디어테크), 서로 겹치는 콘크리트 아치(다마미술대학교 도서관), 연속되는 동굴 같은 굽은 벽(타이중 국가가극원) 등은 구조를 감추는 대신 구조 자체가 동선과 쉼터가 되도록 건축의 문법을 완전히 뒤바꾼 결과물이다.

약력·연혁

도쿄대학교를 졸업하고 합류한 기쿠타케 기요노리의 사무소에서, 이토는 건축을 고정된 완결체가 아닌 성장하고 변화하는 유기체로 보는 메타볼리즘 철학을 체득했다. 그러나 1971년 독립 이후에는 거대 담론이나 도시 스케일에 매몰되지 않고, 알루미늄 하우스나 화이트 U처럼 얇은 재료와 개인의 신체 감각에 집중한 소규모 주택을 선보였다. 1980년대에는 건축의 물리적 무게를 소거하는 실험에 몰두했다. 환기탑을 알루미늄과 조명으로 감싸 도시의 바람과 소리에 반응하게 한 '바람의 탑(1986)'은 무거운 콘크리트 상자를 가볍고 투명한 정보의 막으로 치환한 이 시기의 대표작이다.

2000년대 이후 이토의 건축은 거대한 구조적 혁신을 맞이한다. 센다이 미디어테크를 통해 수직 기둥과 벽의 개념을 해체한 그는, 직교 그리드(Grid)를 구부리고 비틀어 다마미술대학교 도서관과 타이중 국가가극원으로 이어지는 유기적 공간 실험을 만개시켰다. 2011년 동일본대지진 이후에는 화려한 조형 실험을 내려놓고, 구마 겐고, 세지마 가즈요 등과 함께 이재민들을 위한 임시 소통 공간인 '모두의 집' 프로젝트를 주도하며 건축가의 사회적 책임과 건축의 근원적 쓸모를 되묻는 행보를 보였다.

디자인 철학·시그니처

직교 그리드의 해체와 유기적 구조

20세기 건축을 지배한 직교 그리드의 효율성이 인간의 삶마저 규격화했다고 비판한다. 그는 그리드를 완전히 폐기하기보다 이를 구부리고 겹쳐 공간에 다채로운 우연성을 부여한다. 다마미술대학교 도서관에서 규칙적으로 정렬되지 않고 서로 어긋나게 겹치는 아치 구조는, 중심 복도라는 강요된 동선을 지우고 사용자가 스스로 여러 갈래의 길을 선택하도록 유도한다.

구조와 외피, 설비의 통합

이토의 건축에서 벽은 실내를 나누는 칸막이나 외관을 장식하는 껍데기가 아니다. 도즈 오모테산도 빌딩의 나뭇가지 형태 외벽은 그물망처럼 얽혀 건물 전체의 하중을 지탱하는 동시에 자유로운 입면 창문이 된다. 센다이 미디어테크의 거대한 튜브 역시 지붕을 떠받치는 기둥이자, 엘리베이터가 오르내리고 빛과 공조 배관이 통과하는 거대한 수직 설비 통로로 기능한다.

프로그램 간 경계의 무효화

미술관, 도서관, 극장 등 공공시설의 프로그램을 닫힌 방 안에 가두지 않는다. 벽을 최소화하고 가구나 이동식 칸막이, 서로 다른 곡률의 아치 등으로 구역을 느슨하게 엮어낸다. 이는 건축가가 공간의 용도를 미리 확정 짓지 않음으로써, 이용자들이 우연히 마주치고 새로운 활동을 자발적으로 조직하게 만드는 열린 평면(Open Plan)의 극대화다.

주요 작업

타이중 국가가극원 (2016)

대만 타이중에 위치한 대규모 복합 공연장이다. 직선 복도와 사각의 방 대신, 바닥과 벽, 천장의 경계가 끊임없이 이어지는 동굴 같은 거대한 곡면 콘크리트 구조체로 건물 전체를 빚어냈다. 소리와 공기가 유기적인 관을 따라 흐르듯, 사람의 동선과 시야가 매 순간 변화하는 경이로운 공간 경험을 선사한다. 단, 극도로 난해한 3차원 곡면 설계 탓에 전례 없는 시공 난이도를 요구했던 프로젝트이기도 하다.

다마미술대학교 도서관 하치오지 캠퍼스 (2007)

경사진 대지에 들어선 2층 규모의 미술대학 도서관이다. 서로 다른 폭과 곡률을 지닌 콘크리트 아치들을 교차 배열해 기둥과 벽의 역할을 통합했다. 규칙을 벗어난 아치들이 겹치는 지점마다 책장, 열람석, 통로가 자연스럽게 형성되며, 마치 언덕 위 숲속의 나무 사이를 거니는 듯한 공간감을 연출한다. 1층을 외부로 개방해 캠퍼스의 산책로와 도서관의 기능을 하나로 묶어냈다.

도즈 오모테산도 빌딩 (2004)

도쿄 오모테산도 거리에 세워진 명품 브랜드 사옥이다. 가로수길의 느티나무 가지가 뻗어 나가는 형태를 콘크리트 구조체로 형상화해 건물의 외벽을 감쌌다. 장식적인 그래픽이 아니라 건물을 지탱하는 실제 하중 구조이며, 나뭇가지 사이의 여백이 그대로 창문과 출입구가 된다. 구조와 입면을 일체화시킨 이 작업은 이후 유행처럼 번진 기하학적 외피 건축의 선구적 모델이 되었다.

센다이 미디어테크 (2001)

도서관, 갤러리, 영상센터 등을 통합한 복합문화시설이자 이토 건축의 역사적 전환점이다. 7장의 얇은 철골 바닥판을 불규칙한 형태의 13개 철골 튜브가 관통하며 뚫고 올라가는 전위적인 구조를 채택했다. 육중한 콘크리트 기둥 없이 튜브만으로 지지되는 이 건물은 내부의 고정 벽을 완전히 소거해, 디지털 시대에 걸맞은 투명하고 가변적인 공공 공간의 새로운 전형을 제시했다.

영향 관계

이토 도요는 일본 근대 건축의 거장 기쿠타케 기요노리의 문하에서 변화하는 건축적 관점을 물려받은 뒤, 세지마 가즈요, 니시자와 류에(SANAA), 이시가미 준야 등 세계 건축계를 주름잡는 후배 세대를 배출하며 현대 일본 건축의 가장 강력한 계보를 형성했다. SANAA가 이토의 투명성과 가벼움을 극한으로 밀어붙여 실내외 경계를 지웠다면, 이시가미는 구조 자체를 기상 현상이나 조경의 일부로 해체하며 진화했다. 세실 발몬드 등 세계적인 구조 엔지니어와의 협업은, 엔지니어링이 형태를 보조하는 수준을 넘어 초기 아이디어 단계부터 공간의 외형을 함께 발명하는 수준으로 건축과 공학의 경계를 허무는 결정적 동력이 되었다.

수상·전시 이력

2002년 베니스 건축비엔날레 평생공로 황금사자상, 2006년 영국왕립건축가협회(RIBA) 로열 골드 메달, 2010년 세계문화상 등 권위 있는 건축상을 차례로 섭렵했다. 마침내 2013년 프리츠커 건축상을 수상하며 전 생애에 걸친 구조적 혁신을 공인받았다. 당시 심사위원단은 그가 고착화된 스타일에 머물지 않고 매 프로젝트마다 한계를 돌파했으며, 공공시설의 사용 방식을 근본적으로 뒤바꿨다고 극찬했다. 에히메현 오미시마에 설립된 이토 도요 건축박물관은 그의 유산을 보존하는 동시에 지역 공동체와 젊은 건축가들의 실험 무대로 기능하고 있다.

반응과 평가

이토 도요는 1980년대 얇고 가벼운 미디어적 건축에서 출발해, 2000년대 이후 튜브와 연속된 아치 등 중량감 있는 콘크리트와 철골을 유기적으로 주무르며 구조 실험의 최전선을 개척한 입지전적인 거장이다. 센다이 미디어테크와 타이중 국가가극원은 현대 건축이 도달할 수 있는 형태적 자유로움과 공공 공간의 가능성을 극단으로 밀어붙인 기념비적 성취로 꼽힌다. 특정한 시그니처 조형에 안주하지 않고 끊임없이 변모하는 그의 작법은 건축의 영원한 젊음을 상징하는 동시에, 관찰자로 하여금 한 사람의 일관된 작품군으로 인식하기 어렵게 만드는 독특한 매력이기도 하다.

그러나 자연의 유기적인 흐름을 구현하겠다는 이상과, 이를 실현하기 위해 투입되는 막대한 산업적 자원 사이의 모순은 피할 수 없는 비판의 대상이다. 복잡하게 굽이치는 3차원 곡면이나 불규칙한 튜브 구조는 고도로 숙련된 수작업과 값비싼 맞춤형 거푸집, 잦은 설계 변경을 요구하며 경제적 효용성을 크게 떨어뜨린다. 또한 고정된 벽을 없앤 열린 평면은 시각적 자유를 선사하지만, 공공시설의 운영자 입장에서는 방음, 냉난방, 보안, 동선 통제 등에 있어 끊임없는 피로와 운영 난이도를 감수해야 한다. 가볍고 자유로워 보이는 공간을 탄생시키기 위해 보이지 않는 곳에서 감당해야 하는 시공의 무게와 유지관리의 중압감은, 이토 건축의 아방가르드한 성취 이면에 드리운 현실적인 그림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