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마스 헤더윅 (Thomas Heatherwick)

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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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hil Fisk/The Observer

토마스 헤더윅(Thomas Heatherwick)은 건축, 가구, 제품, 공공 조형물의 경계를 허물고 사람이 교감하는 입체적인 환경 전체를 빚어내는 영국의 디자이너다. 맨체스터 폴리테크닉과 왕립예술학교에서 입체 디자인을 전공한 뒤, 1994년 자신의 이름을 건 헤더윅 스튜디오를 설립했다. 현재 이 스튜디오는 디자이너, 건축가, 엔지니어, 조경가 등 수백 명의 전문가가 유기적으로 얽힌 거대한 제작 집단으로 성장했다.

그의 작업은 건물의 2차원적인 평면이나 매끈한 파사드를 앞세우지 않는다. 사람들이 공간 안에서 무엇을 만지고, 오르고, 통과할 것인지를 먼저 상상한다. 16층 높이의 거대한 계단 장치인 뉴욕의 '베슬', 화분 형태의 기둥이 수면 위로 솟아오른 인공 섬 '리틀 아일랜드', 버려진 곡물 저장고 속을 파내어 웅장한 아치로 만든 케이프타운의 '자이츠 현대미술관' 등은 모두 인간의 행동과 경험을 건축의 뼈대로 삼은 결과물이다.

헤더윅의 건축은 단번에 시선을 사로잡는 강력한 시각적 스펙터클을 창출하지만, 그 이면에는 천문학적 공사비, 안전 및 접근성 문제, 민간 거대 자본이 주도하는 공공 공간의 사유화라는 현대 도시 건축의 논쟁적인 단면들이 극명하게 얽혀 있다.

약력·연혁

전통적인 건축학도가 아닌 입체 디자인과 가구 제작에서 출발한 헤더윅은, 도면 위에서 구조를 풀기보다 재료를 직접 자르고 구부리며 물리적 한계를 시험하는 '제작자(Maker)'의 태도를 견지해 왔다. 1994년 스튜디오 설립 초기에는 회전 의자, 다리, 조형물 등 스케일이 작은 작업에 몰두하며 구조적 직관을 다듬었다.

그의 이름이 국제적인 조명을 받게 된 결정적 무대는 2010 상하이 엑스포 영국관이었다. 수만 개의 투명 아크릴 막대 끝에 실제 씨앗을 담아낸 이 파빌리온은 바람에 흔들리는 털 뭉치 같은 경이로운 질감을 구현해 냈다. 이를 기점으로 2012 런던 올림픽 성화대 디자인 등을 거치며 국가적 스케일의 디자이너로 체급을 키웠다. 2010년대에 들어서며 콜 드롭스 야드, 베슬, 리틀 아일랜드 등 굵직한 메가 프로젝트를 연이어 쏟아내며 글로벌 건축 씬의 정점에 섰고, 최근에는 《휴머니즈(Humanise)》 출간과 강연을 통해 무표정한 현대 건축을 비판하며 도시의 정서적 회복을 묻는 인문학적 담론까지 주도하고 있다.

디자인 철학·시그니처

단일 요소의 폭발적 스케일업

헤더윅 건축의 가장 큰 특징은 단숨에 요약할 수 있는 '직관적인 구조 하나'가 건물 전체를 집어삼킨다는 점이다. 자이츠 현대미술관은 잘려 나간 사일로의 빈 공간이, 콜 드롭스 야드는 서로 입맞춤하듯 들어 올려진 거대한 지붕이, 베슬은 얽히고설킨 계단 자체가 건축의 전부다. 조형 의도가 명확해 대중이 즉각적으로 공간을 소비할 수 있지만, 반대로 이 거대한 단일 아이디어에 짓눌려 건물의 세부적인 프로그램이나 유지 관리, 안전 요건들이 부차적인 문제로 밀려나는 맹점도 안고 있다.

집요한 실물 목업과 스튜디오 제작주의

디지털 렌더링에 의존하는 대신 전용 작업실에서 끊임없이 모형과 재료 샘플, 1:1 실물 부품을 생산해 내며 구조를 검증한다. 이는 가구 제작자 출신 특유의 장인주의적 태도로, 곡면 지붕의 결합 방식이나 화분 형태 교각의 수압 견딤 여부를 실제 시공업체와 함께 증명해 나간다. 콜 드롭스 야드의 유려한 지붕 곡선이나 리틀 아일랜드의 각기 다른 교각 모듈은 이러한 집요한 물리적 실험의 산물이다.

걷고 오르는 입체적 공공 공간

멀리서 관조하는 기념비적 오브제가 아닌, 관람객의 신체가 물리적으로 닿고 통과하는 체험적 구조를 지향한다. 베슬은 계단을 오르는 노동 행위 자체가 공간의 소비 방식이며, 리틀 아일랜드의 구불구불한 산책로는 짧은 반경 안에서 도시와 강을 조망하는 수십 개의 각도를 창출한다. 하지만 형태적 체험을 앞세운 이런 공간은, 계단과 경사로에 제약을 받는 노약자나 장애인에게 폭력적인 단절로 작용할 위험을 내포한다.

주요 작업

리틀 아일랜드 (2021)

뉴욕 허드슨강의 폐기된 부두를 수면 위로 띄워 올린 2.4에이커 규모의 인공 섬이자 공원이다. 튤립이나 화분을 연상시키는 132개의 거대한 콘크리트 교각이 서로 다른 높이로 솟아올라 흙과 나무, 산책로를 든든하게 받친다. 평면적인 부두에 입체적인 등고선을 부여해 뉴욕의 스카이라인을 다채롭게 감상할 수 있게 한 탁월한 조경적 성취를 이뤘으나, 천문학적인 민간 기부금으로 조성된 탓에 공공 공간의 소유와 운영 방식에 대한 뜨거운 논쟁을 촉발하기도 했다.

베슬 (2019)

뉴욕 허드슨 야즈 중심부에 세워진 거대한 계단 조형물이다. 인도의 전통 계단식 우물에서 영감을 받아 154개의 계단, 80개의 참을 16층 높이로 끝없이 직조했다. 구릿빛 철골 뼈대가 드러난 벌집 형태의 구조물을 오르내리며 방문객 스스로가 건축의 역동적인 파사드가 되도록 기획되었다. 그러나 낮은 난간 설계 탓에 개장 직후 연이은 추락 사망 사고가 발생하며 폐쇄되었고, 2024년 흉물스러운 안전 철망을 덧댄 채 재개장하며 초기 설계의 시각적 쾌감과 개방성은 참혹하게 훼손되었다.

콜 드롭스 야드 (2018)

런던 킹스크로스 지역의 19세기 빅토리아 시대 석탄 창고 두 동을 대형 상업 시설로 소생시킨 프로젝트다. 낡은 벽돌과 주철 구조를 정교하게 복원하는 한편, 서로 평행하게 마주 보던 두 건물의 박공지붕을 활처럼 위로 휘어 올려 공중에서 맞닿게 했다. 새롭게 형성된 지붕 아래는 비를 피할 수 있는 활기찬 이벤트 광장으로 변모했다. 근대 산업 유산을 우아하게 봉합한 명작으로 꼽히지만, 젠트리피케이션을 통한 노동 공간의 고급화라는 비판도 존재한다.

자이츠 현대미술관 (2017)

남아프리카공화국 케이프타운의 방치된 거대 곡물 저장고(사일로) 단지를 세계 최대 규모의 아프리카 현대미술관으로 재건했다. 빽빽하게 붙어 있는 42개의 낡은 콘크리트 원통 내부를 타원형으로 정교하게 도려내어, 마치 곡물 알갱이를 뚫고 들어간 듯한 압도적인 공간감의 아트리움을 빚어냈다. 산업 시대의 거친 물성을 현대적 아우라로 뒤바꾼 스펙터클은 찬사를 받았으나, 강렬한 아트리움의 형태가 정작 내부에 전시된 미술 작품을 압도해 버린다는 비평도 적지 않다.

영국관 (2010)

상하이 엑스포에 세워진 '씨앗 대성당(Seed Cathedral)'은 헤더윅의 이름을 세계에 각인시킨 파빌리온이다. 6만 개의 투명 아크릴 막대를 건물 밖으로 털뭉치처럼 뻗어 나오게 하고, 막대 끝부분마다 수십만 종의 실제 식물 씨앗을 담았다. 딱딱한 외벽 대신 바람에 미세하게 흔들리는 부드럽고 촉각적인 외피를 구현했으며, 내부로는 아크릴을 타고 들어온 신비로운 자연광이 전시 공간을 채우는 시적이고 기적적인 조형물이다.

영향 관계

헤더윅의 작업 방식은 건축보다는 제품 디자이너나 가구 장인의 스케일업(Scale-up)에 가깝다. 부품 하나를 깎아 전체의 구조를 유추하는 그의 방식은, 개념적인 형태만 던지는 기존 건축가들의 문법에 신선한 충격을 가하며 제품 디자인과 대형 건축의 경계를 허무는 촉매제가 되었다. 아울러 그의 결과물은 천재 디자이너 1인의 독단적 스케치가 아니라 구조, 조경, 제작 전문가들이 뒤섞인 스튜디오의 집단 지성이 빚어낸 산물이다. 그럼에도 수백 명이 동원된 메가 프로젝트의 영광이 '헤더윅'이라는 단일한 스타의 이름으로 귀결되는 산업의 한계는 여전히 과제로 남아 있다.

수상·전시 이력

2004년 영국 왕립산업디자이너로 최연소 선정되며 일찍이 재능을 공인받았고, 대영제국 훈장(CBE) 및 왕립예술원 회원의 영예를 안았다. 2019년 콜 드롭스 야드로 RIBA 내셔널 어워드, 2022년 리틀 아일랜드로 디진 어워드를 수상하는 등 상업과 공공을 넘나들며 최정상의 평가를 유지하고 있다. 2023년 서울 문화역서울284에서 열린 대규모 전시를 통해 가구부터 도시 인프라까지 경계 없이 팽창하는 그의 디자인 철학을 집대성해 보여주었다.

반응과 평가

토마스 헤더윅은 밋밋한 사각 유리 상자로 전락한 현대 도시의 무표정함을 가장 직관적이고 감각적인 입체 스펙터클로 깨부수는 디자이너다. 구조의 뼈대를 대중이 한눈에 파악할 수 있는 인스타그래머블한 아이콘으로 치환하는 능력은 독보적이며, 낡은 산업 유산을 감각적인 상업·문화 시설로 둔갑시키는 솜씨는 전 세계 디벨로퍼들이 그를 앞다투어 섭외하는 이유다.

하지만 강력한 시각적 쾌감 이면에는 값비싼 대가가 따른다. 극단적인 외형을 구현하기 위해 천문학적인 공사비가 소요되며, 이는 거대 자본의 후원 없이는 불가능한 작업 방식이다. 리틀 아일랜드나 베슬의 사례처럼, 억만장자의 기부로 지어진 파격적인 조형물은 민간 개발이 도시의 공공성을 어디까지 사유화할 수 있는가에 대한 무거운 정치적 논쟁을 동반한다. 더욱 치명적인 것은 형태적 과장이 불러온 기능의 상실이다. 베슬의 끔찍한 연속 추락 사고와 휠체어 이용자를 배제한 수직적 설계는, 시각적 아름다움에 매몰되어 공공건축이 지녀야 할 최우선 가치인 '안전'과 '접근성'을 방기했다는 지울 수 없는 흠집을 남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