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우 후지모토 (Sou Fujimoto)

개요

<img src="https://d2xsxph8kpxj0f.cloudfront.net/310519663429662740/ffcjRzrXsTCDKgX6s8aDwC/articles/1786082439787-7d2309439d0a1bbd.webp" alt="" data-orientation="original" data-original-src="https://d2xsxph8kpxj0f.cloudfront.net/310519663429662740/ffcjRzrXsTCDKgX6s8aDwC/articles/1786082442009-728d7f963175de07.webp" width="600" />

소우 후지모토(Sou Fujimoto)는 벽과 문으로 공간을 구획하는 근대 건축의 관성을 깨고, 다양한 높낮이와 간격을 통해 머물 자리를 입체적으로 흩뿌리는 일본의 건축가다. 1971년 홋카이도에서 태어나 도쿄대학교 건축학과를 졸업한 뒤, 2000년 소우 후지모토 아키텍츠를 설립했다. 현재 도쿄, 파리, 선전을 무대로 실험적인 소규모 주택부터 문화시설, 고층 주거, 엑스포 행사장에 이르는 거대한 도시 프로젝트를 전개하고 있다.

그의 초기 주택들은 바닥, 벽, 계단, 가구의 고정된 경계를 지우는 데 집중했다. 굵은 목재의 단차를 계단이자 의자, 바닥으로 혼용하거나(파이널 우든 하우스), 서로 다른 높이의 수많은 플랫폼으로 방과 복도를 대신하게 했다(하우스 NA). 건축가가 용도를 확정 짓기보다, 거주자가 자신의 몸에 맞는 자리를 능동적으로 찾게 하는 방식이다.

후지모토는 이 공간론을 ‘원시적 미래(Primitive Future)’로 정의한다. 용도가 정해지지 않아 몸을 맞춰야 하는 '동굴'과, 신체를 안전하게 감싸는 '둥지'의 경계에서, 자연과 건축, 사적 공간과 공용 공간을 느슨하게 엮어낸다. 2025 오사카·간사이 엑스포에서는 이 미시적인 공간 철학을 둘레 2km에 달하는 거대한 '그랜드 링'으로 확장하며 스케일의 도약을 증명했다.

약력·연혁

홋카이도의 거대한 숲과 도쿄의 초고밀도 도시라는 상반된 환경을 두루 경험한 후지모토는, 작은 대지 안에 나무 사이의 빈 공간처럼 복합적인 생활의 장면들을 압축하는 방식을 터득했다. 1994년 도쿄대학교 졸업 후 대형 설계사무소의 획일적인 시스템에 편입되는 대신 곧바로 독립을 택했고, 2000년 자신의 사무소를 세운 뒤 수많은 소규모 주택 공모전을 거치며 독자적인 공간 원리를 실험했다.

2000년대 '파이널 우든 하우스', '하우스 N', '하우스 NA' 등 상자를 겹치거나 단차를 조각낸 파격적인 주택들로 입지를 다진 그는, 2013년 41세의 나이로 역대 최연소 런던 서펜타인 파빌리온 건축가로 선정되며 국제 무대에 화려하게 등극했다. 이후 프랑스 몽펠리에의 '라르브 블랑', 부다페스트의 '하우스 오브 뮤직 헝가리' 등 굵직한 공공·주거 프로젝트를 성공적으로 이끌었다. 2025년에는 오사카·간사이 엑스포 행사장 디자인 프로듀서를 맡아, 세계 최대 규모의 목조 구조물인 '그랜드 링'을 총괄 설계하며 소형 주택의 실험을 거대 도시 인프라 단위로 팽창시키는 궤적을 완성했다.

디자인 철학·시그니처

동굴과 둥지의 경계

후지모토는 건축을 '동굴'과 '둥지'라는 메타포로 치환한다. '둥지'가 거주자의 편의에 맞춰 정교하게 직조된 공간이라면, '동굴'은 인간이 지형에 몸을 구겨 넣으며 스스로 쓸모를 발견해야 하는 거친 공간이다. 그는 이 둘을 융합해 기둥과 바닥이라는 물리적 뼈대만 제공할 뿐, 특정 공간의 용도를 강요하지 않는다. 거주자는 단차가 빚어내는 다양한 플랫폼을 책상, 침대, 전망대 등으로 능동적으로 전용한다.

단차를 통한 공간 분할

수직적인 벽면 대신 미세하게 어긋나는 바닥의 높낮이로 공간의 위계를 분할한다. 이는 좁은 평면 안에서도 무수한 시선과 자리를 창출해 내는 영리한 해법이다. 앉거나 눕는 신체의 높이에 따라 하나의 열린 공간이 거실이 되기도, 다이닝이 되기도 한다. 다만 공간이 완벽히 구획되지 않아 시각, 청각, 후각이 섞이며, 프라이버시가 희생된다는 전통적 주거 관점의 치명적인 약점을 수반한다.

기본 단위의 반복

거대한 단일 형태를 빚기보다 작은 기본 단위를 끝없이 반복해 전체를 구축한다. 각재(파이널 우든 하우스), 철제 격자(서펜타인 파빌리온), 목조 기둥과 보(그랜드 링)의 배열이 그것이다. 근거리에서는 접합부의 구조적 그리드가 투명하게 보이고, 원거리에서는 구름이나 숲처럼 비정형적이고 투명한 기하학으로 수렴하는 이중적 조형미를 만들어낸다.

주요 작업

그랜드 링 (2025)

2025 오사카·간사이 엑스포 행사장을 둥글게 둘러싼 둘레 약 2km, 안팎 지름 600m대에 달하는 거대한 원형 목조 구조물이다. 일본 전통 건축의 '누키(貫)' 접합 방식을 현대화해 일본산 삼나무와 유럽산 적송을 정교하게 엮어냈다. 세계 최대 규모의 목조 건축물로 기네스북에 등재되었으며, 파빌리온 간의 동선이자 햇빛을 가리는 거대한 캐노피, 그리고 오사카만을 조망하는 공중 산책로의 역할을 단 하나의 압도적인 구조물로 통합했다.

라르브 블랑 (2019)

프랑스 몽펠리에에 지어진 주거·상업 복합 타워로, 건물의 중심 코어 밖으로 나뭇가지처럼 거대한 발코니들이 사방으로 뻗어 나간 파격적인 외형을 지녔다. '하얀 나무'라는 뜻의 이름처럼 뻗어 나간 발코니는 지중해의 강렬한 볕을 가리는 차양인 동시에, 세대마다 외부 공간을 폭발적으로 확장한다. 단순한 타워의 형태를 지우고, 발코니의 깊이와 방향만으로 입면을 완성한 독창적 프로젝트다.

서펜타인 파빌리온 (2013)

지름 20mm의 얇은 백색 철제 파이프를 3차원 격자망으로 직조해 런던 켄싱턴 가든에 반투명한 건축적 구름을 띄웠다. 격자의 밀도 차이만으로 지붕, 벽, 입구의 기능을 구분했으며, 관람객들이 구조물 사이를 오르내리고 걸터앉으며 거대한 정글짐처럼 사용하도록 유도했다. 후지모토 특유의 '투명한 지형'이라는 개념을 가장 미니멀하고도 급진적으로 증명해 낸 기념비적 설치물이다.

하우스 NA (2011)

도쿄의 좁은 도심 대지(약 59㎡) 위에 얇은 철골 프레임과 유리를 세우고, 내부에 높이와 면적이 각기 다른 20여 개의 하얀색 플랫폼을 부유하듯 배치한 주택이다. 명확한 방과 복도의 구분이 없으며, 단차와 사다리를 통해 공간 사이를 유영하도록 설계되었다. 투명한 외벽 덕분에 거주자의 일상이 나무 위 둥지처럼 도시 가로에 적나라하게 노출되는, 주거의 극단적 개방성을 실험한 문제작이다.

파이널 우든 하우스 (2006)

구마모토에 위치한 작은 숙박 시설로, 단면 350mm의 굵은 삼나무 각재를 가로세로로 엇갈려 쌓아 올린 큐브 형태다. 돌출되거나 움푹 파인 나무토막 자체가 의자, 계단, 침대, 천장의 역할을 동시에 수행한다. 구조재, 마감재, 가구의 구분을 완전히 철폐하고 오직 목재 덩어리의 요철과 두께만으로 인간이 거주할 빈 공간을 빚어낸 급진적인 조형이다.

영향 관계

후지모토는 이토 도요와 SANAA 등 선배 세대가 개척한 구조의 경량화와 경계의 모호함을 물려받았으나, 거기서 멈추지 않고 바닥을 입체적으로 쪼개어 건축을 '등반 가능한 지형'으로 치환하는 독보적인 영역을 개척했다. 2013년 서펜타인 파빌리온을 기점으로 가는 부재의 반복, 투명한 격자망, 건물과 공원의 경계를 지우는 그의 작법은 전 세계 젊은 건축가들과 문화시설 설계 공모에 지대한 영감을 미쳤다. 더 나아가, 소규모 주택의 실험적 단차를 도시 단위 인프라로 팽창시킨 '그랜드 링'은 건축물이 곧 거대한 광장이자 지형이 될 수 있음을 입증하며 현대 건축의 척도를 넓혔다.

수상·전시 이력

2006년 영국의 아키텍처럴 리뷰 어워드 대상, 2008년 일본건축학회상 수상을 통해 일찍이 조형적 성취를 인정받았다. 2013년 마커스 프라이즈를 수상했고, 2025년에는 홀심 재단 어워드 아시아·태평양 심사위원장으로 위촉되며 글로벌 건축계의 중진으로 자리매김했다. 같은 해 모리미술관에서 열린 대규모 회고전은 소규모 주택에서 출발해 세계 최대 목조 건축물(그랜드 링 기네스 기록)로 귀결된 그의 치열한 확장기를 학술적으로 조명하는 뜻깊은 무대가 되었다.

반응과 평가

벽과 복도를 지우고 인간과 공간의 능동적 관계 맺기를 유도하는 소우 후지모토의 시도는 현대 주거와 공공건축에 신선한 해방감을 불어넣었다는 찬사를 받는다. 극도로 얇은 부재의 반복이 만들어내는 반투명한 시각적 효과와, 테라스와 녹지를 결합해 건축을 지형으로 탈바꿈시키는 솜씨는 독보적이다.

그러나 '동굴'처럼 거주자의 적응을 강요하는 공간은 치명적인 모순을 품고 있다. 단차가 수반하는 불규칙한 동선과 높은 사다리 등은 신체적 약자(노인, 어린이, 장애인)의 접근성을 원천 차단하며, 열린 공간이 결코 ‘모두에게 평등한 공간’은 아님을 방증한다. '하우스 NA'로 대변되는 극단적 개방성과 시야의 겹침은 실생활에서의 수납, 냉난방, 프라이버시 보호에 치명적인 불편을 초래한다. 아울러 '그랜드 링'은 세계 최대 목조 건축이라는 타이틀 이면에, 6개월의 엑스포 직후 철거되어야 하는 메가 스트럭처의 태생적 반환경성 논란을 안고 있다. 후지모토 본인조차 폐목재의 땔감 전락을 반대하며 재사용을 강력히 촉구하고 있으나, 2026년 현재까지도 링의 존치와 해체, 재활용의 명확한 행방을 두고 팽팽한 핑퐁 게임이 이어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