샘 헥트 & 킴 콜린 (Sam Hecht & Kim Colin)
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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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AKT샘 헥트(Sam Hecht)와 킴 콜린(Kim Colin)은 2002년 런던에 '인더스트리얼 퍼실리티(Industrial Facility)'를 공동 설립한 디자인 듀오다. 영국에서 산업디자인을 전공하며 디테일을 파고든 헥트와 미국에서 건축을 수학하며 공간과 사람의 행위를 거시적으로 조망한 콜린의 이력이 결합되어, 작고 치밀하면서도 공간을 거스르지 않는 특유의 방법론을 완성했다.
이들의 제품은 첫눈에 작가적 에고(Ego)를 과시하지 않는다. 경쟁 제품과 다르게 보이려 기이한 조형을 뽐내기보다, 기존 사물이 왜 불편한지, 어떤 부품이 불필요한지를 묵묵히 관찰하고 덜어낸다. "다른 것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더 나은 것을 만드는 것"이 이들 스튜디오의 변하지 않는 슬로건이다.
무인양품(MUJI)의 생활용품, 마티아치의 정교한 목재 가구, 허먼밀러의 복잡한 사무 시스템까지 작업 반경은 매우 넓다. 그러나 부품을 덜어내 사용법을 직관적으로 조율하고, 사물이 주변 환경을 억압하지 않도록 숨죽이게 한다는 일관된 철학을 공유한다. 단순한 외주 설계자를 넘어 무인양품, 마티아치를 거쳐 2026년 허먼밀러 글로벌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에 선임되며 제조사 전체의 비전을 그리는 설계자로 맹활약 중이다.
약력·연혁
왕립예술학교에서 산업디자인을 배운 헥트는 IDEO와 후카사와 나오토 등과 교류하며 사물과 기계의 디테일을 다루는 내공을 다졌다. 반면 콜린은 건축을 전공해 단일 제품보다 사물이 놓인 공간과 사용자의 동선을 폭넓게 읽어내는 안목을 지녔다. 2002년 런던에 스튜디오를 설립한 두 사람은 단발성 제품 출시보다 무인양품, 허먼밀러 등과 장기간 파트너십을 맺고 제품군 전체의 DNA를 개조하는 심도 깊은 협업을 고수해 왔다.
2010년 이탈리아 마티아치와 협업한 '브랑카 체어'를 통해 가구 씬에 성공적으로 안착했다. 이들은 로봇 CNC 가공의 정밀함을 공예적인 조형으로 승화시키며 제조사의 기술력을 끌어올렸고, 2020년 마티아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임명됐다. 허먼밀러와는 2008년부터 크리에이티브 어드바이저로 인연을 맺어, '로케일'과 'OE1' 등 기존 오피스 가구의 무거운 문법을 해체하고 유연한 모듈 시스템을 제시했다. 마침내 2026년 허먼밀러 글로벌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선임되며 브랜드의 근간을 책임지고 있다. 아울러 2016년 스마트 기기 전문 연구 조직인 '퓨처 퍼실리티(Future Facility)'를 신설해, AI와 IoT 제품이 공간 안에서 기술적 위화감 없이 스며드는 방식을 치열하게 탐구하고 있다.
디자인 철학·시그니처
다름이 아닌 더 나은 진화
시각적 충격을 위해 억지스러운 조형을 짜내지 않는다. 이미 검증된 익숙한 형태를 존중하되 사용자가 무의식적으로 겪는 불편함만 정밀하게 타격해 교정한다. 사진상으로는 지루할 만큼 평범해 보일 수 있으나, 제품을 직접 손에 쥐고 사용할 때 부품이 줄어든 이유와 곡률의 변화가 주는 쾌감이 비로소 선명하게 전해진다.
제품을 포용하는 공간적 사고
콜린의 건축적 배경이 짙게 묻어나는 대목으로, 책상 하나를 디자인할 때도 단순히 가구의 조형에 갇히지 않고 사람들이 모이고 대화하고 흩어지는 오피스 전체의 생태계를 먼저 살핀다. 개별 사물이 주변 환경과 어떻게 관계 맺고 조응하는지를 끊임없이 묻는다.
행동을 간결하게 유도하는 통합
이들의 '단순함'은 기계적인 미니멀리즘과 궤를 달리한다. 버튼을 무작정 지우는 것이 아니라, 사용자의 필수적인 행동 반경 안에 조작의 기능을 영리하게 숨겨 넣는다. 무인양품의 유선 전화기에서 수화기를 들어 올리는 동작 자체를 통화 버튼으로 통합해 버린 직관적인 설계가 대표적이다.
고정형 시스템의 모듈화
육중한 시스템을 파편화된 개별 모듈로 쪼개어 사용자의 자율성을 극대화한다. 허먼밀러의 'OE1' 시스템처럼 고정된 거대 파티션 대신 이동형 테이블과 보드로 분해해 공간의 재배치를 용이하게 한다. 사물이 특정 인테리어의 부속품으로 박제되지 않고, 변화하는 환경 속에서 길게 살아남게 하는 전략이다.
주요 작업
OE1 워크스페이스 컬렉션 (2021)
허먼밀러를 위해 개발한 민첩하고 유연한 사무 가구 시스템이다. 한 번 설치하면 움직이기 어려운 거대 시스템의 관성을 부수고 이동형 데스크, 수납함, 파티션 등 독립된 작은 모듈로 쪼갰다. 전문 설치 기사 없이도 직원들이 조직 개편에 맞춰 스스로 가구를 재배치할 수 있도록 해 유연한 현대 오피스의 표준을 제시했다.
브랑카 체어 (2010)
이탈리아 마티아치와 협업한 목재 의자로 나무의 나뭇가지가 유기적으로 뻗고 결합하는 듯한 매끄러운 이음새가 돋보인다. 얼핏 고도의 장인이 깎아낸 수공예품 같지만 실은 5축 CNC 로봇 가공을 극한으로 활용한 철저한 산업 공산품이다. 장인 정신의 유려한 조형을 기계적인 대량 생산 라인에 완벽하게 안착시킨 혁신적 명작으로, 2011년 런던 디자인뮤지엄 올해의 가구에 선정됐다.
로케일 오피스 시스템 (2013)
단절된 파티션 사각지대에 갇혀 일하던 전통적인 허먼밀러식 사무 공간에 수평적 협업의 개념을 불어넣은 프로젝트다. 날카로운 책상 모서리를 곡면 처리하고 여러 개의 테이블을 하나의 긴 척추 구조에 묶어냈다. 사용자가 개인 작업에 몰두하다가 자연스럽게 의자만 돌려 옆 사람과 협업할 수 있도록 동선의 유연성을 극대화했다.
리노 체어 (2018)
허먼밀러가 지닌 고성능 인체공학 기술을 보다 합리적인 가격과 대중적인 조형으로 번역해 낸 태스크 체어다. 좌판 하부의 복잡한 기계 장치를 겉으로 드러내지 않고 차분히 숨겼다. 특히 등판은 값비싼 기계식 요추 지지대 대신 장력이 각기 다른 두 섬유를 결합한 '듀오 서스펜션' 구조를 도입해 비용과 무게, 시각적 피로도를 모두 덜어냈다.
무인양품 세컨드 폰
무인양품의 본질주의와 듀오의 철학이 완벽히 조율된 초기 명작이다. 본체 위에 납작하게 엎드린 형태의 유선 전화기로 통화 연결 스위치 등 불필요한 장식을 걷어냈다. 수화기를 들어 올리는 물리적 행위 자체가 스위치를 작동하게 만들어 형태의 직관성이 곧 기능이 됨을 입증했다.
영향 관계
이들 듀오는 후카사와 나오토와 나오토의 '슈퍼 노멀(Super Normal)' 개념, 즉 평범함 속에 숨겨진 비범함을 끄집어내는 일본 특유의 관찰주의에 강하게 빚지고 있다. 여기에 콜린의 건축적 감각이 결합되면서 제품이 고립된 오브제에서 벗어나 공간의 흐름 속에 자연스레 녹아드는 그들만의 시너지가 완성되었다. 이들의 가장 강력한 방법론은 찰스 & 레이 임스 부부나 조지 넬슨이 그랬듯 제조사와 장기적인 파트너십을 맺고 브랜드를 밑바닥부터 뜯어고치는 컨설턴트로서의 역할이다. 외부인의 시선으로 브랜드를 해부하고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서 전체 조직의 방향키를 쥐는 전략은 현대 산업 디자인 스튜디오가 지향해야 할 가장 이상적인 모델로 꼽힌다.
수상·전시 이력
2008년 샘 헥트가, 2015년 킴 콜린이 차례로 영국 왕립산업디자이너(RDI)의 칭호를 받았으며, 특히 콜린은 제품 디자인 부문에서 RDI에 선정된 최초의 여성 디자이너로 역사에 남았다. 2011년 런던 디자인뮤지엄 올해의 가구(브랑카 체어), 2019년 iF 디자인상(리노 체어) 등 수많은 어워드를 석권했다. 뉴욕 MoMA, 퐁피두센터, 런던 V&A 뮤지엄 등 전 세계 주요 미술관 영구 소장품 목록에 이름을 올렸으며, 2018년 파이돈(Phaidon) 출판사를 통해 스튜디오의 결과물을 집대성한 모노그래프 《Industrial Facility》를 출간했다.
반응과 평가
인더스트리얼 퍼실리티는 시끄럽고 장식적인 조형으로 대중의 시선을 낚아채는 화려한 스타 디자이너와 완벽한 대척점에 서 있다. 눈에 띄지 않게 침묵하지만 무인양품이나 허먼밀러 같은 거대 브랜드의 시스템을 통해 일상 곳곳에 가장 조용하고 강력하게 스며들어 있다. 제품이 주변 공간과 과하게 충돌하지 않아 시간이 흘러도 질리지 않는 영속성을 확보했다는 점에서 업계의 압도적인 신뢰를 받는다.
하지만 이들의 '더 나은 진화' 방식은 때로 너무 조심스럽고 점진적이라는 맹점을 띤다. 제품 외형만으로는 시각적인 쾌감이나 새로운 라이프스타일에 대한 파괴적 제안을 찾아보기 어려워 즉각적인 자극을 쫓는 소비 시장에서는 밋밋하게 다가올 수 있다. 아울러 미디어 인터뷰에 샘 헥트가 단독으로 등장하는 빈도가 잦아지면서, 공간과 시스템을 직조하는 킴 콜린의 핵심적인 기여도가 간과되는 불균형적 시선 역시 비평계가 경계하는 대목이다. IoT와 스마트 기기까지 설계 반경이 팽창한 오늘날, 매끈하고 눈에 띄지 않는 하드웨어의 형태를 넘어 개인 정보나 소프트웨어 수명 등 복잡한 무형의 문제까지 이들의 미니멀리즘으로 완벽히 통제할 수 있을지에 대한 새로운 시험대에 올라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