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이 가와쿠보 (Rei Kawakubo)
개요
<img src="https://d2xsxph8kpxj0f.cloudfront.net/310519663429662740/ffcjRzrXsTCDKgX6s8aDwC/articles/1784556118648-072509b337f9ed90.webp" alt="" data-orientation="original" data-original-src="https://d2xsxph8kpxj0f.cloudfront.net/310519663429662740/ffcjRzrXsTCDKgX6s8aDwC/articles/1784556119493-a5469fb834875319.webp" width="600" />
레이 가와쿠보(Rei Kawakubo)는 정형화된 아름다움을 생산하는 대신 ‘옷이 반드시 예뻐야 하는가’라는 근원적 질문을 던진 일본 패션 디자이너다. 1969년 꼼데가르송(Comme des Garçons)을 설립해 무채색, 의도된 구멍, 비대칭과 과장된 볼륨을 패션의 주류 문법으로 편입시켰고, 80대에 접어든 현재까지도 여성복과 옴므 플러스 컬렉션을 직접 지휘하고 있다.
가와쿠보의 옷은 인체를 전통적인 방식으로 보정하지 않는다. 등과 배에 비정형적인 형태가 돌출되고, 소매와 스커트가 인체를 덮을 만큼 비대해지며, 때로는 착용 방식조차 직관적으로 알기 어렵게 설계된다. 의복이 신체를 돋보이게 해야 한다는 관습적 규범을 해체하고, 신체와 의복이 충돌하며 빚어내는 조형미에 집중한다.
이러한 실험적 태도는 비즈니스 모델에도 동일하게 적용되었다. 준야 와타나베(Junya Watanabe)와 케이 니노미야(Kei Ninomiya) 등 내부 디자이너들이 독자적인 산하 레이블을 운영하게 했으며, 편집숍 '도버 스트리트 마켓(Dover Street Market)'을 통해 하이엔드 럭셔리, 스트리트웨어, 신진 브랜드, 설치 미술을 수평적으로 혼합했다. 꼼데가르송은 단일 디자이너의 레이블을 넘어 지속적으로 새로운 브랜드가 자생하는 패션 생태계를 구축했다.
약력·연혁
미술과 문학에서 광고로
1942년 도쿄에서 태어났다. 게이오대학교에서 미술, 문학, 미학사를 전공했으며 정규 패션 스쿨 교육은 거치지 않았다.
대학 졸업 후 섬유 기업 아사히카세이 광고부에서 직장 생활을 시작했다. 광고 비주얼을 기획하는 과정에서 원하는 스타일의 의상을 구하지 못하자 직접 옷을 제작하기 시작했고, 이후 프리랜스 스타일리스트로 전향하며 패션계에 발을 들였다.
꼼데가르송의 시작
1969년 '꼼데가르송'이라는 레이블로 여성복 라인을 전개하기 시작했다. 프랑스어로 ‘소년들처럼’을 의미하지만, 남성복 스타일의 여성복을 만들겠다는 직접적인 선언은 아니었다. 가와쿠보는 단어의 어감과 타이포그래피의 시각적 형태에 이끌렸고, 디자이너 개인의 이름보다 조직 전체를 포괄할 수 있는 네이밍을 원했다.
1973년 정식 법인을 설립했고, 1975년 도쿄에서 첫 컬렉션을 개최했다. 이는 일본 패션계가 서구의 트렌드를 답습하던 관행에서 벗어나, 독자적인 디자이너 브랜드를 태동시키던 과도기와 맞물린다.
파리 진출과 반향
1981년 파리 패션위크에 데뷔했다. 이듬해 요지 야마모토(Yohji Yamamoto)와 함께 선보인 올 블랙 팔레트, 낡은 텍스처, 인체를 완전히 은폐하는 거대한 실루엣은 1980년대를 지배하던 화려한 파워 드레싱과 대비되었다.
당시 서구 언론은 이를 전쟁과 빈곤의 은유라며 '보로 룩(Boro Look, 누더기 룩)'으로 지칭했고, 구멍 난 니트 조직과 마감되지 않은 헴라인을 미완성이나 결함으로 취급하기도 했다. 그러나 동시대의 젊은 디자이너와 소비자들은 그 흑색과 해체주의적 비대칭에서 기존 질서를 대체하는 새로운 대안을 발견했다.
남성복과 여러 개의 꼼데가르송
1978년 꼼데가르송 옴므를 론칭했고, 1980년대에는 실험성이 짙은 남성복 라인 옴므 플러스를 파리에서 선보였다. 테일러드 수트를 남성적 권위의 상징으로 고정하지 않고, 재킷을 자르고 뒤집거나 스커트와 레이스 패널을 결합하는 등 젠더 규범에 질문을 던졌다.
사세가 확장됨에 따라 준야 와타나베, 간류 후미토(Fumito Ganryu), 구리하라 다오(Tao Kurihara), 케이 니노미야 등 휘하 디자이너들에게 개별 라인의 디렉팅을 일임했다. 창립자가 모든 디자인을 독점하는 구조를 탈피하고, 다수의 디자이너가 기업 내에서 경쟁하며 성장하는 내부 육성 시스템을 구축했다.
향수와 도버 스트리트 마켓
1990년대부터 향수, 가방, 지갑, 셔츠 라인으로 카테고리를 확장했다. 특히 향수 부문에서는 전통적인 플로럴이나 프루티 노트 대신 잉크, 메탈, 차고지, 드라이클리닝 향 등 비정형적인 후각적 경험을 조향했다.
2004년 가와쿠보와 에이드리언 조프(Adrian Joffe)는 런던에 도버 스트리트 마켓을 설립했다. 기존 백화점의 정돈된 문법을 거부하고, 거친 벽체와 철제 계단, 설치 미술 사이에 꼼데가르송, 신진 디자이너 브랜드, 스트리트웨어, 하이엔드 럭셔리를 혼합했다. 이들이 표방한 숍의 아이덴티티는 ‘아름다운 혼돈(Beautiful Chaos)’이었다.
현재까지 이어지는 컬렉션
가와쿠보는 브랜드가 안착한 이후에도 상업적 타협보다 실험적인 접근을 이어갔다. 2013년 무렵부터는 실제 착용이 가능한 의류의 개념을 넘어, 조각과 의복의 경계에 놓인 ‘몸을 위한 오브제(Objects for the Body)’에 집중했다.
2026년 현재까지도 여성 기성복과 옴므 플러스 런웨이를 직접 지휘한다. 시그니처인 흑색과 거대한 볼륨은 핵심 요소로 유지하되, 전쟁과 파괴, 완벽함의 손상, 희망과 평화 등의 주제를 매 시즌 새로운 소재와 조형적 구조로 풀어낸다.
디자인 철학·시그니처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기
가와쿠보는 새 시즌을 구상할 때 과거의 상업적 성공 방식을 답습하는 것을 경계한다. 현존하는 패션의 문법과 본인의 전작을 배제하고, 단어 하나 혹은 짤막한 구문에서 영감을 받아 새로운 형태를 도출하는 데 집중한다.
완전한 무(無)에서의 창조는 불가능에 가깝지만, 이러한 태도가 브랜드의 원동력이 된다. 꼼데가르송의 런웨이가 동일한 하우스임에도 검은 해체주의 룩, 핑크 볼륨, 순백의 웨딩 오브제 등으로 확연히 대비되는 결과를 낳는 이유다.
검정과 구멍
1980년대 초반 가와쿠보가 런웨이에 올린 검은색은 우아한 이브닝웨어보다 빛을 흡수하는 작업복의 색에 가까웠다. 색채를 제한하자 봉제선, 의도된 구멍, 원단의 물성, 그리고 인체 주변의 네거티브 스페이스(Negative Space)가 선명하게 부각되었다.
니트의 구멍 역시 단순한 파손이 아닌 조형의 일부로 다루어졌다. 엉성한 직조와 마감되지 않은 가장자리는 완성품과 불량품의 위계를 섞으며 패션의 미학적 기준을 재편했다.
몸을 고치는 대신 새 몸 만들기
전통적인 패션이 허리를 조이고 다리를 길어 보이게 하는 비례에 집중했다면, 가와쿠보는 복부, 등, 어깨, 골반에 패드를 삽입해 인체에 존재하지 않는 비정형적인 굴곡을 만든다.
이러한 볼륨은 아름다운 바디라인의 제시와는 거리가 멀다. 의복과 신체가 결합하여 내부와 외부의 경계를 흐리고, 모델을 낯설고 새로운 형태의 실루엣으로 재구성한다.
옷과 옷 아닌 것 사이
가와쿠보는 의복의 기본적인 기능을 일부 보존하면서도 현대 미술 조각에 가까운 결과물을 만든다. 팔을 뺄 수 없는 구조물, 신체 전면을 덮는 패널, 머리와 어깨를 가두는 원통형 피스가 런웨이를 채운다.
그러나 그녀는 자신의 작업을 '순수 예술'이라 규정하지 않는다. 인간이 착용함으로써 비로소 완성된다는 패션의 전제를 지키며, 착용이 불편한 구조조차 모델의 보폭, 직물의 마찰을 통해 패션의 영역으로 위치시킨다.
아름다움과 불편함을 붙여놓기
꼼데가르송의 작업물은 아름다움이나 추함이라는 단일한 잣대로 평가하기 어렵다. 비닐봉지를 연상시키는 텍스처에 수공예 장미가 결합되거나, 베이비 핑크 깅엄 체크 위로 거대한 혹이 솟아오르는 식이다.
가와쿠보는 이른바 '굿 테이스트'와 '배드 테이스트'의 장벽을 흐린다. 초기 대중의 거부감을 자아냈던 형태는 시간이 흐르며 하이엔드의 새로운 표준으로 수용되고, 타 브랜드들이 이를 상업적으로 정제하여 대중화하는 과정이 반복된다.
회사도 하나의 디자인으로 보기
의상 디자인에 국한하지 않고, 레이블 네이밍, 매장 인테리어, 광고 비주얼, 향수 패키징, 기업의 구조 설계까지 동일한 철학으로 접근한다.
준야 와타나베와 케이 니노미야의 독립 레이블 육성, 도버 스트리트 마켓의 하이로우(High-Low) 믹스 역시 이러한 거시적 디자인의 일부다.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기 위해서는 단일 취향보다 이질적인 요소들이 충돌하고 융합할 공간이 필요하다고 판단한다.
주요 작업
꼼데가르송 옴므 플러스 2027 S/S ‘전쟁이 끝난다면’
2027 S/S 옴므 플러스 컬렉션은 "전쟁이 끝난다면"이라는 명제에서 출발했다. 근래 꼼데가르송의 무거운 분위기와 대조적으로, 핑크, 그린, 블루 등 밝은 셔팅 스트라이프가 런웨이를 열었다.
가벼운 텍스처의 코트, 맥시 셔츠, 넓은 쇼츠와 스커트는 공기 순환을 허용할 만큼 넉넉한 핏으로 재단되었다. 뒤이어 파스텔 톤의 카무플라주 패턴과 타탄 패치워크가 교차했다. 군복의 위장 패턴을 차분한 컬러웨이로 치환하며 전쟁 이후의 평화를 상상한 시즌이다.
꼼데가르송 2026 F/W RTW
초기 시그니처인 '검정'으로 회귀한 2026 F/W 레디 투 웨어 컬렉션. 오프닝을 장식한 16개의 룩은 올 블랙으로 통일되었고, 런웨이에서 모델 간 동선이 겹칠 만큼 거대한 실루엣이 연출되었다.
셔링, 러칭(Ruching), 겹겹이 쌓인 패브릭 패널, 얇은 자수가 블랙의 표면을 입체적으로 분할했다. 런웨이 중반에는 동일한 형태를 캔디 핑크 컬러로 변주한 6개의 룩이 등장해 시각적 대비를 이루었으며, 이후 다시 블랙의 행렬로 마무리되었다. 검정을 주된 창조의 색으로 삼으면서도 이를 핑크로 교란하는 위트를 섞었다.
꼼데가르송 옴므 플러스 2026 F/W ‘블랙홀’
2026 F/W 옴므 플러스 컬렉션 ‘블랙홀(Black Hole)’은 남성 정장을 변형하고 해체한 작업이다. 테일코트와 재킷의 칼라는 구덩이처럼 파였고, 뒤판 원단은 뫼비우스의 띠처럼 내부로 말려 들어갔다.
하키 마스크와 공중에 뜬 형태의 가발이 모델의 이목구비를 가렸으며, 재킷의 이너 포켓과 심지가 등판으로 뒤집혀 노출되었다. 피날레에는 블랙의 흐름을 끊고 화이트 수트 룩이 등장했다. 블랙홀의 어둠이 또 다른 빛을 낳을 수 있음을 테일러링의 변주를 통해 은유했다.
꼼데가르송 2026 S/S RTW
“완벽한 것을 손상시킬 때 태어나는 긍정과 가치”를 주제로 삼은 2026 S/S 컬렉션. 브로케이드, 레이스, 자카드 직물이 거친 캔버스와 황마(Jute) 소재와 결합하여 해체되고 재구성되었다.
씨앗 껍질, 누에고치, 혹은 구겨진 베개 더미를 형상화한 거대한 구조물이 인체를 감쌌다. 원단을 단순히 변형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상충하는 물성의 소재들을 압축해 새로운 형태의 조각으로 만들었다. 가와쿠보가 구축해 온 과거의 조형적 유산마저 다시 훼손하고 재조립한 컬렉션이다.
꼼데가르송 2014 S/S ‘옷을 만들지 않기’
2014 S/S 컬렉션 ‘옷을 만들지 않기(Not Making Clothing)’는 재킷, 드레스, 팬츠라는 전통적인 의복의 카테고리를 거의 배제한 시즌이다. 인체 전면을 가로막는 검은 구조체, 원기둥 형태의 피스, 얽힌 스트링과 팽창한 원단 덩어리가 등장했다.
가와쿠보는 이 시즌을 기점으로 의상을 ‘몸을 위한 오브제’ 영역으로 진화시켰다. 실질적인 커머셜 제품은 쇼룸에서 별도 오더로 진행하고, 런웨이에서는 패션이 의복의 형태를 벗어나 어디까지 확장될 수 있는지 실험했다.
꼼데가르송 2012 F/W ‘2차원’
2012 F/W 컬렉션 ‘2차원(2 Dimensions)’은 의복을 2D 평면으로 납작하게 압축한 듯한 형태를 선보였다. 재킷과 드레스는 인체의 측면 굴곡을 무시한 채, 앞뒤로 평평한 패널을 세워놓은 구조를 띠었다.
원색 팔레트, 플로럴 패턴, 펠트처럼 빳빳한 텍스처가 평면성을 극대화했다. 3D 인체를 배제하고 그림 속의 의상을 그대로 오려낸 듯한 시각적 효과를 주었으며, 모델이 걸음을 옮길 때 발생하는 평면과 입체의 충돌을 주요 요소로 삼았다.
꼼데가르송 1997 S/S ‘몸과 드레스’
1997 S/S 컬렉션 ‘몸과 드레스(Body Meets Dress, Dress Meets Body)’는 복부, 등, 골반, 어깨 등 비정상적인 위치에 패드를 삽입해 인체의 실루엣을 기형적으로 변형했다. 핑크와 블루 깅엄 체크 패턴, 얇은 스트레치 나일론 소재가 그 볼륨을 감쌌다.
출시 당시 ‘혹 룩(Lumps and Bumps)’이라는 별칭을 얻기도 했으며, 의복은 인체의 굴곡에 순응해야 한다는 패션계의 대전제에 직접적인 의문을 제기한 사례로 평가받는다. 미국의 현대무용가 머스 커닝엄(Merce Cunningham)은 이 의상을 입고 무용 작품 《시나리오(Scenario)》를 안무했으며, 무용수들의 동작 또한 변형된 신체의 무게 중심에 맞춰 새롭게 교정되었다.
꼼데가르송 1982 F/W ‘레이스’
가와쿠보의 파리 초창기 행보를 대변하는 1982 F/W 컬렉션. 플로럴 레이스가 아니라 굵게 짜인 니트 조직 사이의 구멍을 '레이스'라 명명했다.
올이 풀린 원사, 비대칭 헴라인, 체형을 은폐하는 어두운 실루엣은 당시 화려한 의복이 주류였던 서구 미디어에 큰 반향을 일으켰다. 불량품의 상징이던 '구멍'이 새로운 디자인 요소로 인식되었고, 블랙이 지성적이고 반항적인 디자이너들의 주요 컬러로 자리 잡는 계기가 되었다.
꼼데가르송 파리 데뷔
1981년, 일본 로컬 씬에서 자생한 꼼데가르송이 유럽 하이 패션계에 처음 진출한 파리 데뷔 무대. 검정과 그레이, 해체주의적 비대칭은 여성의 신체 곡선을 강조하던 당대의 서구 럭셔리 문법과 대조를 이루었다.
초기 서구 평단은 가와쿠보와 요지 야마모토의 컬렉션을 '일본적'이라는 프레임으로 해석하기도 했으나, 이들이 남긴 영향력은 글로벌 패션계가 통용하던 아름다움과 완성도의 패러다임에 근본적인 질문을 던졌다는 데 있다.
영향 관계
요지 야마모토와 이세이 미야케
가와쿠보와 요지 야마모토는 1980년대 초반 파리 런웨이에 블랙 팔레트와 해체주의 실루엣을 선보이며 종종 동일한 사조로 묶였다. 그러나 두 디자이너의 접근법은 확연히 달랐다. 야마모토가 인체와 패브릭 사이의 공간감과 원단의 움직임에 집중했다면, 가와쿠보는 인체 자체를 해체하고 의복의 구조를 변형하는 노선을 택했다.
이에 앞서 파리 무대를 개척한 이세이 미야케(Issey Miyake)는 주름 가공과 소재 공학을 탐구했다. 텍스타일 기술을 정립한 미야케, 테일러링을 다룬 야마모토, 그리고 형태의 경계를 해체한 가와쿠보 세 사람은 각기 다른 방식으로 서구 패션에 영향을 미쳤다.
준야 와타나베와 케이 니노미야
준야 와타나베는 꼼데가르송의 패턴사로 시작해 1992년 자신의 이름을 딴 독자 라인을 맡게 되었다. 데님, 테크니컬 아웃도어, 산업용 신소재를 결합하며 꼼데가르송 내에서 독립적인 철학을 구축했다.
케이 니노미야는 봉제선을 극단적으로 배제하고 금속 리벳, 가죽, 리본을 조립하는 '느와르 케이 니노미야(Noir Kei Ninomiya)'를 전개한다. 가와쿠보는 소속 디자이너들에게 자신의 시그니처를 답습하도록 강요하지 않고, 회사의 생산망 인프라를 활용해 각자의 디자인 언어를 개척하도록 지원했다.
에이드리언 조프와 도버 스트리트 마켓
에이드리언 조프는 가와쿠보의 배우자이자 꼼데가르송 인터내셔널을 총괄하는 경영 파트너다. 가와쿠보가 추상적이고 직관적인 콘셉트를 기획하면, 조프는 이를 마케팅, 글로벌 리테일 전략, 매장 기획으로 연결하여 브랜드를 확장시켰다.
두 사람이 설립한 도버 스트리트 마켓은 신진 브랜드와 거대 하우스, 스니커즈와 오트 쿠튀르 피스를 층별 위계 없이 혼합했다. 이는 현재 하이엔드 편집숍들이 취하고 있는 설치 미술 결합형 리테일의 초기 형태를 보여준다.
머스 커닝엄
미국의 전위 무용가 머스 커닝엄은 1997년 ‘몸과 드레스’ 런웨이를 관람한 후 가와쿠보에게 협업을 제안했다. 비정상적인 볼륨으로 왜곡된 의상은 무용수들의 무게 중심과 가동 범위를 물리적으로 제한했고, 그 텐션에 맞춰 안무가 재설계되었다.
의상이 무대의 장식으로 쓰인 것을 넘어, 무용수 신체의 역학에 영향을 미친 주요한 협업 사례다. 가와쿠보의 의복이 패션, 조각, 무용 예술의 경계를 넘나들며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보여주었다.
수상·전시 이력
2012년 미국패션디자이너협회(CFDA) 인터내셔널 어워드를 수상했다. 디자이너 본인은 시상식에 불참했으며, 영화감독 존 워터스(John Waters)가 대리 수상했다.
2017년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Met) 의상연구소에서 《레이 가와쿠보/꼼데가르송: 사이의 예술(Rei Kawakubo/Comme des Garçons: Art of the In-Between)》 특별전이 개최되었다. 1980년대 초기 아카이브부터 최신작까지 140여 점의 의복을 전시했다. 이는 1983년 이브 생 로랑(Yves Saint Laurent) 전시 이후 생존 디자이너 개인의 회고전을 단독 개최한 이례적인 사례였다.
2019년 뉴욕 이사무 노구치 재단이 수여하는 이사무 노구치상(Isamu Noguchi Award)을 받았다. 패션, 제품 디자인, 리테일 공간의 경계를 넘나든 가와쿠보의 행보가 장르를 초월했던 노구치의 태도와 맞닿아 있다는 평가를 받았다.
2025년부터 2026년에 걸쳐 호주 빅토리아 국립미술관(NGV)에서 비비안 웨스트우드(Vivienne Westwood)와 레이 가와쿠보를 조망하는 듀오 전시가 열렸다. 패션의 규범과 젠더 담론을 각기 다른 방식으로 다뤘던 두 여성 디자이너의 유산을 조명했다.
반응과 평가
현재의 위상
2026년 현재, 가와쿠보는 꼼데가르송 여성복 레디 투 웨어와 옴므 플러스의 아티스틱 디렉터직을 유지하고 있다. 1969년 레이블 론칭 이래 반세기가 넘는 기간 동안 창립자가 전 라인을 통제하며 매 시즌 파리 패션위크에서 컬렉션을 발표하고 있다.
꼼데가르송은 다수의 사내 디자이너 라인과 향수, 가죽 잡화 부문을 비롯해 상업적 접근성이 높은 '플레이(PLAY)', '셔츠(SHIRT)' 라인 등 하위 브랜드를 거느리고 있다. 도버 스트리트 마켓 또한 런던, 도쿄, 뉴욕, 싱가포르, 베이징, 로스앤젤레스, 파리 등 글로벌 주요 거점으로 지점을 확장했다.
디자인 반응
우호적인 평단은 가와쿠보가 패션의 정의를 확장한 디자이너라고 평가한다. 인체의 굴곡에 순응하는 의복만이 패션이라는 인식을 깨고, 구멍, 비정상적인 형태, 불균형을 하이 패션의 범주로 끌어들였다.
그녀의 런웨이는 트렌드를 제안하는 프레젠테이션이라기보다, 형태에 대한 질문을 던지는 과정에 가깝다. 당해 시즌에 해석이 분분한 형태라도 시간이 지나 타 브랜드나 패션 마켓에서 더 접근하기 쉬운 형태로 정제되어 소비되는 현상이 발생하기도 한다.
반면, 비판적 시각에서는 컬렉션이 지나치게 난해하고 관객과의 소통을 차단한다고 지적한다. 컬렉션 노트는 짧은 단어나 문장에 불과하며 런웨이 이후의 부연 설명은 거의 제공되지 않는다. 대중과의 의도적 단절이 모호함을 낳고, 이를 통해 디자이너의 권위를 과장한다는 비판도 존재한다.
비판
꼼데가르송은 주류 패션 시스템에 반기를 드는 아방가르드 브랜드인 동시에, 세계적인 규모의 럭셔리 기업이다. 실험적인 런웨이 쇼피스와 별개로 하트 로고가 새겨진 플레이 라인, 스니커즈 협업, 시그니처 향수 등을 통해 높은 수익을 창출하고 있다. 실험성과 상업성을 분리해 성공적인 비즈니스 모델을 구축했으나, 브랜드의 '반항적 철학'이 고가 상품의 마케팅 도구로 활용된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1980년대 파리 데뷔 당시 서구 미디어의 인종차별적이고 오리엔탈리즘적인 편견과 마주했으나, 꼼데가르송 역시 일본 특유의 폐쇄적인 이미지를 브랜드의 마케팅 자산으로 활용해 왔다는 지적도 있다. 창립자 개인의 침묵 전략은 오해를 방치하기보다 오히려 신비주의를 강화하는 결과를 낳았다.
기업 내부에 탁월한 차세대 디자이너들을 육성했음에도, 패션 하우스의 최종 결정권은 여전히 80대의 가와쿠보와 조프에게 집중되어 있다. 장기간 가와쿠보 체제로 구축된 이 생태계와 꼼데가르송의 유산이 향후 어떤 방식으로 승계될 것인지는 패션 산업계의 주요한 관심사로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