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에로 리소니 (Piero Lissoni)
개요
<img src="https://d2xsxph8kpxj0f.cloudfront.net/310519663429662740/ffcjRzrXsTCDKgX6s8aDwC/articles/1786584267828-f0ee418f1312a83c.webp" alt="" data-orientation="original" data-original-src="https://d2xsxph8kpxj0f.cloudfront.net/310519663429662740/ffcjRzrXsTCDKgX6s8aDwC/articles/1786584270692-5150cd5281458d3a.webp" width="600" />
© veronica gaido피에로 리소니(Piero Lissoni)는 가구, 주방, 건축, 호텔, 요트, 그래픽 등 다방면을 단일 스튜디오 안에서 통제하며 이탈리아 리빙 브랜드의 거시적 이미지를 구축해 온 건축가 겸 디자이너다. 밀라노 폴리테크닉대학교에서 건축을 수학하고 1986년 스튜디오를 설립했으며, 현재 리소니 앤 파트너스(Lissoni & Partners)를 통해 건축, 인테리어, 제품, 그래픽을 통합적으로 전개하고 있다.
그의 제품은 장식적 조형보다 수평선, 낮은 비례, 얇은 구조를 전면에 내세운다. 리빙 디바니(Living Divani)의 '프록(Frog)'은 좌판의 고도를 낮추고 금속 프레임을 가늘게 뺐으며, '엑스트라소프트(Extrasoft)'는 대형 쿠션 모듈을 바닥에 밀착시켜 거대한 섬의 형태를 구현했다. 놀(Knoll)의 '아비오(Avio)'는 얇은 금속 빔에 좌석을 결합하여 소파 전체를 모듈형 시스템으로 정돈했다.
개별 제품의 디자인 이상으로 브랜드 아트디렉션에 무게를 둔다. 리빙 디바니와 포로(Porro)에서는 1980년대 후반부터 디자이너 및 아트디렉터로 활동 중이다. B&B 이탈리아(B&B Italia)의 2021년 아티스틱 디렉터 선임을 비롯해, 알피(Alpi), 보피(Boffi), 레마(Lema), 루알디(Lualdi), 산로렌조(Sanlorenzo) 등 유수 브랜드의 디렉션을 총괄하고 있다. 2026년 밀라노 디자인 위크에서도 다수 브랜드의 신작과 공간을 동시에 선보이며 왕성한 실무를 이어가고 있다.
약력·연혁
리소니는 밀라노 폴리테크닉대학교에서 건축을 전공한 후 가구 디자인 및 아트디렉션 분야로 진입했다. 1986년 독립 스튜디오를 설립해 건축, 가구, 인테리어, 그래픽 실무를 단일 조직 체계 안에서 병행했다. 제품 디자인에 국한된 외부 디자이너의 역할을 넘어 카탈로그, 쇼룸, 전시, 그래픽까지 포괄하는 브랜드 통제 방식을 초기부터 확립했다. 1987년 포로의 아트디렉터로 부임했고, 이듬해 리빙 디바니와 장기 협업을 시작했다. 포로에서는 수납과 벽면 시스템을 건축적 논리로 해석했으며, 특히 1987년 론칭한 모듈 시스템 '시스템(System)'은 2024년까지 수직재 비례와 구조를 갱신하며 명맥을 잇고 있다. 리빙 디바니에서는 바닥과 밀착된 낮고 넓은 업홀스터리 가구를 브랜드의 중추로 삼았다. 1995년 출시된 라운지체어 '프록'은 넓고 느슨한 시트와 가느다란 프레임의 결합으로 기존 좌석의 비례를 전복하며 브랜드의 아이콘으로 안착했다.
그의 아트디렉션은 제품 단위에 머물지 않는다. 리빙 디바니와 포로를 비롯해 보피, 알피, 루알디, 산로렌조 등에서 쇼룸, 광고, 외부 디자이너 큐레이션 등 브랜드의 외부 노출 체계 전반을 지휘하며, 그의 스튜디오를 다수 제조사의 외부 디자인 컨트롤 타워로 성장시켰다. 이러한 시스템 구축 역량은 2000년대 이후 다국적 브랜드와의 협업으로 확장됐다. 2004년 미국 놀의 '디비나 라운지(Divina Lounge)' 컬렉션에 이어, 2016년 '아비오' 소파 시스템을 통해 구조 빔 기반의 확장형 체계를 선보였다. 2021년에는 B&B 이탈리아의 아티스틱 디렉터로 선임되어 기존 시그니처와 신제품의 조율, 전시 및 캠페인 구성을 총괄하고 있다. 2026년 현재에도 리빙 디바니를 통해 모듈 소파 '디 엣지(The Edge)', 테이블 '폰테(Ponte)' 등의 신작을 발표하는 동시에, 다수 리빙 브랜드의 아트디렉터와 산업 디자이너로서의 역할을 굳건히 양립하고 있다.
디자인 철학·시그니처
리소니의 디자인은 장식적 조형을 배제하고 수평선, 낮은 비례, 얇은 구조를 전면에 내세운다. 리빙 디바니의 '프록', '엑스트라소프트', '월' 등 대표 소파 라인업은 좌석의 고도를 낮추고 수평으로 길게 확장되는 비례를 취한다. 이는 가구가 공간 안에서 시야를 가로막는 수직적 장벽이 되지 않도록 유도하며, 시각적 개방감을 확보한 상태에서 다양한 모듈의 결합을 가능케 한다. 또한 놀의 '아비오' 하부 금속 빔이나 '프록'의 세장한 프레임처럼 쿠션과 바닥 사이의 구조재를 최대한 가늘게 설계한다. 지지 구조를 은폐하지 않으면서도 물질적 부피를 최소화하여 가구와 공간 사이에 시각적인 여백을 창출한다.
건축가 출신으로서의 조형적 훈련은 가구의 스케일과 비례 설계에 깊이 묻어난다. 포로의 '시스템' 모듈이나 2026년 신작 테이블 '폰테'에서 보듯, 수납장을 벽면을 구성하는 건축적 모듈로 취급하거나 테이블 상판과 지지대의 결합을 작은 건축 구조물처럼 해석한다. 미니멀한 형태를 추구하되 마감재를 무채색이나 단일 소재로 건조하게 통일하지는 않는다. 목재, 대리석, 금속, 패브릭 등 각 재료의 표면적 질감 차이를 극대화하며, 포로의 '마테릭' 테이블처럼 극도로 절제된 조형 위에 대리석과 목재의 강렬한 대비를 부여하는 방식이 대표적이다.
무엇보다 그는 개별 제품의 형태보다 전체 브랜드가 발신하는 공간의 분위기 유지에 주력한다. 여러 디자이너의 협업품이 혼재하는 상황에서도 전시, 쇼룸, 스타일링을 일관된 톤으로 조율한다. 개별 오브제의 조형적 완성도에 매몰되기보다 제품 간의 간격, 소재의 텍스처, 조도의 배분 등 공간적 관계성을 우선시하며 브랜드 경험을 유기적으로 통합해 낸다.
주요 작업
모듈 소파 '디 엣지(The Edge)'
2026년 리빙 디바니를 위해 디자인한 모듈형 소파다. 낮게 정돈된 좌석들이 선형으로 이어지며 공간의 경계를 긋고, 모듈의 배열에 따라 대화와 휴식의 영역을 유연하게 분할한다. 리소니와 리빙 디바니의 장기 파트너십이 도달한 최신의 조형적 성취를 보여준다.
소파 시스템 '아비오(Avio)'
2016년 놀(Knoll)에서 출시한 모듈 소파 시스템이다. 얇은 금속 구조 빔을 축으로 좌석, 등받이, 사이드 테이블을 엮어 긴 선형의 구조를 완성한다. 쿠션이 뼈대를 완전히 덮지 않아 제품의 조립 구조와 논리가 외부로 선명하게 노출된다.
모듈 소파 '엑스트라소프트(Extrasoft)'
2008년 발표된 리빙 디바니의 장기 베스트셀러다. 낮고 넓은 정사각형 폼 쿠션 모듈을 밀착 배열하여 바닥 위에 거대한 휴식의 섬을 조성한다. 구조 프레임을 내부로 은폐하고 거대한 수평적 볼륨 자체를 공간의 핵심 요소로 치환했다.
모듈 소파 '월(Wall)'
2000년 리빙 디바니를 통해 선보인 시스템 소파다. 좌석, 등받이, 팔걸이를 정육면체 블록처럼 각지게 모듈화하여 자유로운 배치를 유도한다. 안락함이 요구되는 업홀스터리 가구를 건축적이고 단호한 블록으로 재해석한 대표작이다.
라운지체어 '프록(Frog)'
1995년 출시되어 리빙 디바니의 브랜드 아이덴티티를 확립한 아이코닉 라운지체어다. 얇은 금속 프레임에 너른 시트를 느슨하게 걸쳐 사용자의 무게중심을 지면 가깝게 끌어내렸다. 론칭 초기 기존 가구 시장의 비례를 이탈했다는 의구심을 깨고 브랜드의 시그니처로 자리 잡았다.
수납 시스템 '시스템(System)'
포로의 아트디렉터로 취임한 1987년부터 구축해 온 장기 책장 및 벽면 수납 모듈이다. 고정된 형태의 완제품이 아닌, 공간의 스케일에 맞춰 무한정 확장 가능한 건축적 구조물이다. 2024년 수직재 비례를 갱신하는 등 현재까지도 진화를 거듭하고 있다.
영향 관계
리소니의 실무 근간에는 건축과 산업 디자인이 유기적으로 직조된 이탈리아 특유의 디자인 인프라가 자리한다. 밀라노 폴리테크닉대학교 출신인 그는 가구, 공간, 그래픽을 별개의 전문 영역으로 파편화하지 않고, 단일 스튜디오 안에서 융합하는 르네상스적 업무 구조를 유지해 왔다. 특히 리빙 디바니(1988~), 포로(1987~)와의 관계는 단순한 클라이언트와 외부 디자이너의 용역 계약을 넘어, 수십 년간 브랜드의 체질을 빚어낸 운명 공동체에 가깝다. 그는 개별 제품 디자이너가 특정 기업에 전속되지 않고도 복수의 제조사를 총괄하는 '외부 아트디렉터' 모델을 성공적으로 안착시켰다. 오늘날 그의 스튜디오는 단품의 디자인을 넘어 브랜드와 공간 생태계 전체를 설계하는 거대 디렉션 조직으로 기능하고 있다.
수상·전시 이력
2021년 독일 《A&W》 올해의 디자이너(Designer of the Year)로 선정되었으며, 2026년 권위 있는 'AD100' 리스트에 이름을 올렸다. 그가 이끄는 스튜디오 리소니 앤 파트너스 역시 2026년 레드닷 디자인 어워드(Red Dot Design Award)를 비롯한 유수의 건축·인테리어 관련 시상식에서 지속적으로 성과를 내고 있다. 실무 제품들은 놀, 리빙 디바니, B&B 이탈리아 등 최정상급 국제 리빙 제조사의 현행 카탈로그 핵심 라인업으로 생산되고 있다.
반응과 평가
피에로 리소니는 특정 시그니처 의자를 도출한 스타 디자이너라기보다, 다수의 이탈리아 하이엔드 리빙 브랜드의 거시적 정체성을 장기간 조율해 온 마스터 아트디렉터로 평가받는다. 2026년 현재에도 알피, B&B 이탈리아, 보피, 리빙 디바니, 포로, 산로렌조 등 각기 다른 포지셔닝의 제조사들과 동시에 연대하며 산업 내 압도적인 장악력을 과시한다. 제품, 건축, 그래픽, 요트 설계에 이르는 방대한 영역을 단일 스튜디오의 통제 아래 두는 행보 역시 동시대 산업계에서 매우 희귀한 사례다.
그의 디자인은 디자이너 개인의 강한 작가적 에고(Ego)를 강요하지 않아 다양한 건축 환경과 시대적 배경에 매끄럽게 스며든다는 점에서 실무자들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는다. 낮은 수평적 비례, 얇은 구조, 절제된 물성 조합은 주거 시설은 물론 고급 상업 공간과 오피스 환경 어디에서나 범용적인 조화로움을 담보한다. 반면, 이러한 극도의 절제와 정돈된 미감이 다수 브랜드에 반복 적용됨에 따라, 경쟁 관계에 있는 리빙 하우스들의 결과물이 모두 '리소니가 연출한 비슷한 고급 인테리어'로 평준화될 위험이 상존한다는 지적도 따른다. 장기간 디렉션을 맡아온 여러 제조사 간의 고유성과 스튜디오의 일관된 취향을 어떻게 변별할 것인가가 지속적인 과제로 남는다.
또한 수많은 클라이언트의 아트디렉터를 동시에 겸임하는 구조는 산업 전반에 미치는 긍정적 파급력 이면에서 이해 상충의 여지를 남긴다. 동일한 크리에이티브 방향성을 공유하는 다수의 럭셔리 브랜드들이 각자의 독창적인 목소리를 잃고 동질화될 수 있다는 우려다. 아울러 '리소니 앤 파트너스'라는 거대 조직이 산출하는 방대한 결과물을 리소니 1인의 천재적 묘수로 치환하는 것은 경계해야 한다. 이는 건축, 인테리어, 3D 렌더링, 그래픽 부서의 전문 인력들과 클라이언트 내부 R&D 팀의 치밀한 조직적 협업의 산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리소니의 커리어는 이탈리아 디자인 산업에서 '아트디렉터'라는 직무의 본질과 무게감을 가장 선명하게 증명한다. 그는 뛰어난 가구 단품을 스케치하는 것에 머물지 않고, 해당 기업이 어떠한 조형 언어와 공간, 시각 문화를 세상에 내놓아야 하는지를 수십 년의 호흡으로 통제해 낸 독보적 전략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