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민석 (Minsuk Cho)

개요

<img src="https://d2xsxph8kpxj0f.cloudfront.net/310519663429662740/ffcjRzrXsTCDKgX6s8aDwC/articles/1786081814681-d38a8f521787d0ac.webp" alt="" data-orientation="original" data-original-src="https://d2xsxph8kpxj0f.cloudfront.net/310519663429662740/ffcjRzrXsTCDKgX6s8aDwC/articles/1786081816587-c738ae1a11794784.webp" width="600" />

© Portrait of Minsuk Cho by Mok Jungwook. Image courtesy of the architect.

조민석은 인구와 건물, 다양한 프로그램이 높은 밀도로 충돌하는 한국의 도시 환경 속에서 다층적인 조건이 동시에 작동하는 공간 구조를 설계해 온 건축가다. 연세대학교 건축공학과와 뉴욕 컬럼비아대학교 건축대학원을 졸업하고 OMA를 비롯한 미국과 유럽의 건축사무소에서 실무를 다진 뒤, 2003년 서울에 매스스터디스(Mass Studies)를 설립했다.

그의 작업은 단일한 대형 매스를 구축하기보다 비워진 보이드(Void)와 마당을 매개로 서로 다른 스케일의 공간을 나눈다. 건물 내부에 공간을 파내거나 여러 동으로 분절하여 도시와 자연, 공공과 사적 영역이 만나는 접점을 형성한다. 2024년 런던 서펜타인 파빌리온 '군도의 여백'에서는 중앙의 건물을 비우고 주변에 5개의 구조물을 배치하여, 한국 전통 주택의 마당 개념을 현대 공원 인프라로 재해석했다.

약력·연혁

연세대학교 졸업 후 뉴욕 컬럼비아대학교에서 석사 학위를 받은 조민석은 콜라튼 맥도날드 스튜디오, 폴섹 앤드 파트너스를 거쳐 로테르담 OMA에서 실무를 수행했다. OMA에서의 경험은 건축을 도시와 프로그램의 충돌 구조로 다루는 기틀이 되었으나, 귀국 후에는 한국의 좁은 대지와 규제, 마당과 골목의 상맥에 맞춰 이를 세밀하게 분절하는 방식으로 전환했다. 1998년 제임스 슬레이드와 뉴욕에 '조슬레이드 아키텍처'를 공동 설립해 2000년 뉴욕건축연맹 젊은건축가상을 수상했으며, 2003년 서울로 돌아와 매스스터디스를 개소했다.

매스스터디스 설립 초기에는 픽셀 하우스, 매트릭스 계열 주택, 부티크 모나코 등 소규모 단위를 쌓고 비우는 실험을 전개했고, 이후 상하이 엑스포 한국관, 다음 스페이스닷원, 사우스케이프, 스페이스K 서울 등으로 외연을 확장했다. 2011 광주디자인비엔날레 공동 기획에 이어 2014 베니스비엔날레 국제건축전 한국관 커미셔너 겸 공동 큐레이터로서 최고상인 황금사자상을 받았다. 2023년에는 프랑스 건축사무소 사티(SATHY)와 협업하여 김중업의 원작을 보존·복원함과 동시에 신축 타워를 배치한 주한 프랑스대사관 리노베이션을 완성했다. 2024년에는 한국 건축가 최초로 런던 서펜타인 파빌리온을 설계하며 매스스터디스가 지속해 온 보이드 연구를 수평적 구조로 선보였다.

디자인 철학·시그니처

비워진 중심 공간

건물의 중심에 대형 실내를 두는 대신 비어 있는 마당과 보이드(Void)를 배치한다. 이 비워진 영역은 단순한 여백이 아니라 다채로운 행위와 프로그램이 만나는 가변적 공간이다. 서펜타인 파빌리온에서는 중앙을 비워 햇빛과 공연, 사람이 지나가는 마당으로 조성했고, 스페이스K 서울에서는 공원을 향해 아치를 열어 내부와 외부 보행로를 물리적으로 연결했다.

매스의 분절과 다채로운 동선

대형 프로그램을 단일 매스 안에 가두지 않고 복수의 동과 마당, 수직·수평 동선으로 분절한다. 쪼개진 공간 요소들은 형태와 높이를 달리하지만 지붕, 공용 보행로 등을 통해 다시 유기적으로 연결된다. 고밀도 조건 속에서도 사용자가 선택할 수 있는 이동 경로와 시각적 장면을 늘리는 방식이다.

기존 공간 유형의 재해석

미술관, 사옥, 파빌리온 등 고착화된 건축 유형의 구성을 선제적으로 되묻는다. 다음 스페이스닷원에서는 고층 오피스 빌딩의 수직성을 해체하고 제주 대지에 길게 펼쳐진 수평적 업무 공간을 제시했다. 건축가가 용도를 완결짓기보다 동선과 설비 구조만 제공하여 사용자의 자발적 재구성을 유도한다.

다이어그램과 현장 맥락의 결합

초기 작업이 픽셀, 매트릭스 등 도식적인 조직 원리를 직관적으로 드러냈다면, 후기 작업에서는 이러한 다이어그램적 사고 위에 대지의 지형, 기존 건축물, 옹벽 등 현장의 물리적 조건을 접목한다. 페이스 갤러리 서울처럼 남산 옹벽과 기존 건축의 테두리를 실내 리노베이션 요소로 통합해 내는 식이다.

주요 작업

군도의 여백 (2024)

런던 켄싱턴 가든에 설치된 목조 파빌리온이다. 기존의 단일 건물 방식을 깨고 가운데를 비운 채 5개의 독립된 구조물(강당, 갤러리, 도서관, 놀이탑, 찻집)을 외곽에 배치했다. 한옥의 마당 구조를 현대적인 공원 보행망과 공연 프로그램에 맞춰 재해석한 작업이다.

주한 프랑스대사관 리노베이션 및 신축 (2023)

프랑스 건축사무소 사티(SATHY)와 공동 설계한 프로젝트로, 1962년 김중업이 완성한 대사관저와 행정동의 원형을 복원하고 11층 규모의 새 업무 타워와 연결동을 신축했다. 과거의 유산과 현대적 신축 건축이 한 대지 안에서 명확히 구분되면서도 마당을 통해 조화를 이루도록 구성했다.

스페이스K 서울 (2020)

서울 마곡지구 공원 부지에 세워진 미술관이다. 단일 노출 콘크리트 매스 중앙에 약 27m 길이의 대형 아치를 뚫어 공원과의 물리적 연계를 도모했다. 아치 상부는 옥상으로 이어지는 공공 보행로로 기능하며, 전시를 관람하지 않는 시민들에게도 열린 공간을 제공한다.

사우스케이프 오너스클럽 클럽하우스 (2013)

남해의 입체적인 해안 지형을 따라 클럽하우스와 숙박 시설을 흩어 놓은 리조트 프로젝트다. 바다를 향해 확장되는 곡면 지붕과 처마 구조가 지형의 높낮이를 수용하며, 대형 자연 환경 속에서 건물과 외부 공간을 세밀하게 분절해 냈다.

다음 스페이스닷원 (2011)

제주 첨단과학기술단지에 위치한 IT 기업 사옥이다. 수직적이고 고립된 고층 오피스 전형에서 벗어나 지형을 따라 낮게 펼쳐진 수평적 조직망을 완성했다. 수평으로 연장된 매스 사이에 중정과 테라스를 끼워 넣어 자연스러운 교류와 이동을 유도했다.

영향 관계

조민석은 OMA에서 대형 프로그램과 도시 조건을 다이어그램으로 체계화하는 방법론을 익혔으나, 매스스터디스 설립 이후 이를 한국 도시의 고밀도 대지, 좁은 법규, 마당과 골목이라는 미시적 맥락에 맞춰 정교하게 재조정했다. 승효상, 조성룡 등 앞선 세대가 주도한 '비움'과 '도시 맥락'에 관한 담론을 2000년대 이후의 상업·소비 문화 및 고밀 개발 환경과 결합하여, 보이드(Void)를 활기찬 사건이 교차하는 장소로 확장했다. 아울러 매스스터디스의 성취는 조민석 1인의 결과물이 아닌, 다양한 프로젝트 파트너, 공동 설계사(사티 등), 구조·조경 전문가들과의 유기적인 협업 시스템에 기반한다.

수상·전시 이력

2000년 뉴욕건축연맹 젊은건축가상, 1999년 및 2003년 프로그레시브 아키텍처 어워드 표창을 받았다. 상하이 엑스포 한국관으로 2010년 BIE 파빌리온 디자인 은상을 수상했고, 2014년 베니스비엔날레 한국관 커미셔너 겸 공동 큐레이터로서 최고 영예인 황금사자상을 품에 안았으며 화관문화훈장을 수훈했다. 2014년 플라토 미술관에서 첫 개인전 《매스스터디스 건축하기 전/후》를 개최했으며, 주요 도면과 모형은 뉴욕 현대미술관(MoMA), 독일 건축박물관(DAM), 시카고미술관 등에 소장되어 있다.

반응과 평가

조민석은 2000년대 이후 한국 도시의 밀도와 소비 문화, 그리고 공공 공간의 가치를 전 세계 건축 담론과 유기적으로 연결해 온 대표적인 건축가다. 비워진 보이드와 분절된 매스, 외부 계단과 마당을 통해 단조로운 도심 속에서 다채로운 시각적·물리적 경관을 창출한다는 점에서 높이 평가받는다. 다이어그램과 개념을 명쾌하게 언어화하고 도식화하는 탁월한 설득력을 지녔으나, 때로는 그 명징한 개념이 실제 재료의 디테일이나 일상적 사용성의 복잡함을 앞선다는 시각도 상존한다. 서펜타인 파빌리온의 비워진 보이드처럼 유연한 개방성을 지향하는 구조는 거친 기후나 관람객이 밀집하는 실제 운영 조건에서 일부 한계를 드러내기도 했다. 또한, 집단적 공공성과 도시적 관계를 지속적으로 탐구해 온 그의 철학적 궤적과 달리, 실제 대표작의 상당수가 고급 주상복합, 리조트, 대기업 사옥 등 사적 자본의 프로그램에 집중되어 있다는 점은 구조적인 아이러니다. 아울러 미디어의 조명이 창립자 1인에게 집중되는 경향 속에서, 대형화된 프로젝트를 함께 이끌어가는 매스스터디스 내부의 협업 파트너들과 전문 설계팀의 공로를 정당하게 기려야 한다는 지적도 함께 따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