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시밀리안 뷔세 (Maximilian Büsser)
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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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B&F - MB&F SA
막시밀리안 뷔세(Maximilian Büsser)는 MB&F를 설립한 스위스의 시계 기획자이자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다. 그는 무브먼트를 직접 깎고 다듬는 전통적인 워치메이커나 제품의 외형을 단독으로 완성하는 산업 디자이너가 아니다. 시계의 출발점이 되는 서사를 구상하고, 디자이너와 무브먼트 개발자, 케이스 제작사 등 각 분야의 전문가에게 역할을 분배해 하나의 완성된 결과물로 엮어내는 지휘자에 가깝다. 2005년에 세운 MB&F의 이름은 ‘막시밀리안 뷔세와 친구들(Maximilian Büsser & Friends)’을 뜻한다. 협업자를 브랜드 뒤에 숨기지 않고 프로젝트에 참여한 모든 장인을 전면에 공개하는 그의 철학이 명칭에 담겨 있다. MB&F는 우주선, 전투기, 자동차 등 손목시계 밖의 형태를 과감히 차용하며, 시계가 원형 케이스 안에 머물러야 한다는 고정관념을 버리고 기계식 시계를 입체적인 예술 조각으로 재정의했다.
약력·연혁
로잔에서 마이크로공학 석사 학위를 받은 뷔세는 예거 르쿨트르에 입사해 7년간 경영진과 호흡을 맞추며 기계식 시계의 부흥기를 경험했다. 이때 무브먼트 설계 기술보다는 제품 개발과 사업 운영을 조율하는 기획자로서의 역량을 다졌다. 이후 1998년, 31세의 나이로 해리 윈스턴 시계 부문 대표로 발탁된 그는 주얼리 브랜드의 부속 사업에 머물던 시계 파트를 하이엔드 수준으로 끌어올렸다. 특히 당대 외부에서 활동하던 프랑수아-폴 주른, 비아니 할터 등 독립 제작자들과 매년 협업해 파격적인 시계를 선보인 '오퍼스(Opus)' 시리즈는 그의 경력에 결정적 전환점이 되었다. 이를 통해 브랜드 내부 조직을 비대하게 키우지 않고도 프로젝트 단위로 최적의 전문가 집단을 꾸릴 수 있다는 가능성을 확인했다. 2005년 해리 윈스턴을 떠난 그는 이 유연한 연대 방식을 기반으로 MB&F를 설립했다. 2007년 미래지향적 형태의 첫 오롤로지컬 머신(HM1)을 공개하며 파장을 일으켰고, 2011년에는 고전 시계의 낭만을 현대적으로 비튼 레거시 머신(LM)을 선보이며 세계관을 확장했다. 이후 탁상시계, 뮤직박스 등으로 영역을 넓히며 창립 20주년을 맞은 현재, 60여 명 규모의 확고한 하이엔드 독립 하우스로 자리매김했다.
디자인 철학·시그니처
이야기 중심의 입체 설계
뷔세의 프로젝트는 단순한 기능의 나열이 아닌 구체적인 장면 설정에서 출발한다. 전투기의 엔진이나 우주정거장 같은 특정 대상을 먼저 고른 뒤, 그 외형을 구현하기 위해 시간 표시창과 밸런스 휠, 기어 등의 배치를 역으로 결정한다. 다이얼 아래나 케이스백에 숨겨지던 핵심 부품들을 케이스 윗면이나 측면으로 과감히 끌어올려, 움직이는 기계 자체가 디자인의 중심이 되도록 구조를 짠다.
두 가지 방향의 컬렉션
MB&F의 시계는 비례와 형태 면에서 상반된 두 갈래로 나뉜다. '오롤로지컬 머신(HM)'이 비대칭 케이스와 다축 구조를 통해 손목시계의 익숙한 틀을 부수는 미래적 실험이라면, '레거시 머신(LM)'은 원형 케이스와 래커 다이얼 같은 고전적 요소를 뼈대로 삼는다. 다만 레거시 머신 역시 밸런스 휠을 다이얼 공중으로 띄워 올리는 등 전통을 있는 그대로 복원하지 않고 입체적으로 재해석한다.
제작자 실명 공개 구조
협업자의 투명한 공개는 브랜드를 관통하는 주요한 철학이다. 시계에 단일 브랜드 로고만 새기는 관행을 벗어나, 스케치를 3차원으로 다듬은 디자이너, 복잡한 기계를 구현한 엔지니어, 마감을 담당한 워치메이커의 이름을 모두 밝힌다. 이는 각 장인의 전문성을 존중하는 동시에, 특정 기능이나 형태에 얽매이지 않고 프로젝트마다 유연하게 팀을 재조합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된다.
주요 작업
오롤로지컬 머신 1 (HM1)
2007년에 공개된 MB&F의 첫 번째 결과물이다. 숫자 8을 연상시키는 비대칭 케이스 양쪽에 두 개의 원형 표시창을 좌우로 배치하고, 그 중앙에 투르비용을 놓았다. 뷔세가 뼈대를 구상하고 에릭 지루가 3차원 외형으로 다듬었으며, 로랑 베스와 피터 스피크마린이 구동을 위한 기계적 구조를 완성했다. 창작자, 디자이너, 워치메이커가 나란히 이름을 올리며 MB&F 특유의 연대 방식을 세상에 처음 증명한 기점이다.
오롤로지컬 머신 4 선더볼트 (HM4)
2010년 발표되어 그해 제네바 시계 그랑프리(GPHG)에서 디자인·콘셉트 부문을 수상한 모델이다. 쌍발 전투기의 형태를 극단적으로 차용해 두 개의 원통형 몸체를 나란히 배치했으며, 한쪽은 시간을, 다른 한쪽은 파워리저브를 표시한다. 시계를 손목 위 정면이 아닌 착용자의 시선이 향하는 측면에서 읽어내도록 뷰포인트를 비틀어, 시간 표시 구조의 관념을 완전히 뒤바꿨다.
레거시 머신 1 (LM1)
2011년 공개된 레거시 머신 1은 MB&F가 전위적인 머신 형태에서 벗어나 전통적인 원형 케이스로 시선을 돌린 첫 번째 전환점이다. 고전적인 래커 다이얼 위에 두 개의 독립된 시간 창을 두고, 거대한 밸런스 휠을 다이얼 중앙 공중에 띄워 올린 파격적인 3차원 구조를 취했다. 19세기 정밀 시계의 감성을 현대 기술로 재조립한다는 콘셉트로 대중과 평단의 지지를 이끌어내며 2012년 GPHG 남성 시계상과 대중상을 동시에 석권했다.
영향 관계
뷔세는 예거 르쿨트르에서 경영진과 호흡하며 무브먼트 기술과 기획, 브랜드 운영이 유기적으로 맞물려야 함을 배웠다. 이후 해리 윈스턴에서 오퍼스 시리즈를 이끌며 프랑수아-폴 주른, 비아니 할터 같은 외부 독립 제작자들이 브랜드의 중심에 설 때 발생하는 파급력을 경험했다. MB&F 설립 이후에는 디자이너 에릭 지루, 무브먼트 설계자 스티븐 맥도넬, 마감 장인 카리 부틸라이넨 등 각 분야 최고들과 협력하며 독자적인 네트워크를 구축했다. 이러한 그의 방식은 워치메이커 한 사람이 톱니바퀴부터 케이스까지 전부 만들어야 한다는 독립 시계 씬의 강박적 통념을 깨고, 창작 방향을 공유한 전문가들이 뭉치는 스튜디오 형태의 하이엔드 제작 모델을 성공적으로 안착시켰다.
수상·전시 이력
MB&F는 혁신적인 구조를 바탕으로 제네바 시계 그랑프리(GPHG)에서 굵직한 족적을 남겼다. 2010년 HM4의 디자인·콘셉트 시계상 수상을 시작으로, 2012년 레거시 머신 1이 2관왕을 차지했고, 2016년과 2019년에는 캘린더와 여성 컴플리케이션 부문을 차례로 석권했다. 2022년에는 레거시 머신 시퀀셜 EVO로 대상 격인 에귀유 도르(Aiguille d’Or)를 거머쥐며 기술적 완성도까지 입증했다. 시계 제조에 머물지 않고 M.A.D.갤러리를 통해 키네틱 아트와 기계식 오브제를 큐레이팅하며, 기계 예술의 저변을 넓히는 플랫폼 역할도 겸하고 있다.
반응과 평가
창립 20주년을 맞은 MB&F는 초기 소수 마니아를 위한 실험적 시도를 넘어, 오롤로지컬 머신과 레거시 머신을 번갈아 선보이는 탄탄한 하이엔드 브랜드로 안착했다. 둥근 케이스와 평면적인 바늘이라는 시계의 묵은 문법을 파괴하고, 우주선이나 동물 같은 비정형적 서사에 맞춰 기계 구조 자체를 재설계한 점은 뷔세만의 독보적인 성과다. 하지만 철저히 형태를 우선시하는 파격은 실착용 시의 편의성이나 직관적인 가독성을 떨어뜨려, 시계라기보다 전시 목적의 키네틱 조각에 머문다는 비판을 받기도 한다. 신제품이 나올 때마다 전작보다 더 기묘한 구조를 선보여야 한다는 기댓값이 쌓이면서, 새로움 자체가 족쇄가 될 수 있다는 우려도 따른다. 협업자를 투명하게 조명하는 시스템 역시 최종 제품의 부가가치와 대중의 스포트라이트가 결국 뷔세라는 스타 기획자 개인에게 수렴된다는 구조적 모순을 내포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계식 시계의 존재 이유를 시간 측정 도구가 아닌 서사를 품은 입체 예술로 격상시킨 그의 접근법은 현대 시계 산업에서 결코 대체할 수 없는 위상을 점유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