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티유 블라지 (Matthieu Blazy)

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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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he New York Times마티유 블라지(Matthieu Blazy)는 마르지엘라, 셀린, 캘빈 클라인을 거쳐 보테가 베네타의 폭발적인 부흥을 이끌었으며, 2025년부터 샤넬(Chanel)의 전 패션 부문을 통솔하고 있는 디자이너다. 과시적인 로고나 요란한 1차원적 장식을 철저히 배제하고, 소재를 깎고 엮고 재단하는 극한의 공예적 과정 자체로 하이엔드의 지위를 증명한다.

블라지의 진가는 거리를 걷는 평범한 일상복처럼 보이나 근거리에서 관찰할 때 비로소 드러나는 경이로운 가죽 세공술(트롱프뢰유)과, 인체의 역동적 움직임에 치밀하게 호응하는 유연한 테일러링에 있다. 전임 지휘지였던 보테가 베네타에서 가죽의 물성적 한계를 한 차원 끌어올렸다면, 현재 샤넬에서는 트위드 수트, 저지, 리틀 블랙 드레스 등 하우스의 박제된 아카이브 코드를 여성이 실제 일상에서 입고 움직일 수 있는 현실적인 룩으로 해체 및 재조율하고 있다.

약력·연혁

1984년 파리에서 태어난 블라지는 벨기에 브뤼셀 라 캉브르(La Cambre)를 졸업한 직후, 라프 시몬스에게 발탁되며 남성복 팀에서 커리어를 시작했다. 이후 메종 마르탱 마르지엘라의 아티저널 라인을 맡아 빈티지 의류를 해체해 소재의 용도를 전복하는 법을 익혔고, 2014년 피비 파일로 체제의 셀린 프리컬렉션에 합류해 런웨이의 전위적인 실험을 일상적이고 상업적인 옷장으로 다듬는 훈련을 거쳤다. 2016년부터는 다시 라프 시몬스와 조우해 캘빈 클라인의 디자인 총괄 부사장으로 활약하며 방대한 실무 내공을 쌓았다.

2020년 보테가 베네타의 디자인 디렉터로 합류한 그는 2021년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전격 승격했다. 2022년 2월 데뷔 쇼에서 평범한 청바지와 플란넬 셔츠로 완벽하게 위장한 고도의 가죽 피스를 선보이며 럭셔리 씬에 거대한 충격을 안겼다. '안디아모' 등 막강한 상업적 히트작을 배출하며 2024년 말까지 보테가 베네타의 전성기를 견인했다.

2024년 12월, 버지니 비아르의 후임으로 샤넬의 패션 부문 아티스틱 디렉터로 선임되었다. 2025년 10월 파리 그랑 팔레에서 열린 2026 S/S 레디 투 웨어 데뷔를 시작으로 뉴욕의 메티에 다르, 파리 오트 쿠튀르, 비아리츠 크루즈 컬렉션을 연이어 장악하며 샤넬의 거대한 세계관을 자신만의 유연하고 해체적인 문법으로 빠르게 갱신하고 있다.

디자인 철학·언어

트롱프뢰유와 물성의 한계 확장

블라지의 가장 강력한 시그니처는 '트롱프뢰유(Trompe-l'œil, 착시)' 기법이다. 질긴 가죽 표면에 데님 워싱이나 플란넬 체크 패턴을 여러 번 프린트하고, 가장자리를 종이처럼 얇게 깎아 면직물처럼 유연하게 흐르도록 가공한다. 단순한 시각적 유희가 아니라, 하우스가 축적해 온 극한의 가죽 세공 및 염색 기술을 일상복이라는 캔버스 위에 쏟아부어 소재의 한계를 돌파하는 과정이다.

멈춘 조형이 아닌 움직이는 궤적

마네킹에 박제된 고정적 조형미보다 걷고 앉을 때 신체를 따라 흐르는 동적인 실루엣을 최우선으로 삼는다. 재킷의 암홀을 낮춰 어깨를 부드럽게 감싸고, 팬츠는 골반 주위에 여유 공간을 둔다. 샤넬에서도 이 기조를 이어받아, 특유의 경직된 트위드 수트를 해체하고 실제 생활 반경에서 편안하게 움직일 수 있는 릴렉스한 피스로 유연화하는 데 집중하고 있다.

에이징을 수용하는 불완전한 표면

그의 피스는 새것처럼 흠집 없이 매끈하지 않다. 주름진 가죽, 마찰로 닳은 듯한 표면, 비틀린 니트 조직, 손으로 꾹 눌러 형태를 무너뜨린 가방이 빈번히 런웨이에 오른다. 럭셔리를 쇼케이스에 모셔두는 1차원적 대상이 아니라, 착용자의 일상적 궤적에 따라 자연스럽게 마모되고 길들여지는 '도구'로 취급한다.

스포트라이트를 양보하는 익명성

스타 디렉터로서 본인의 이름을 전면에 내세우기보다, 공방 장인들과 팀의 기술력을 컬렉션의 주연으로 격상시킨다. 샤넬 메티에 다르 컬렉션에서도 르사주의 자수나 르마리에의 깃털 등 각기 다른 공방의 기교를 한 룩에 과감히 중첩시키되, 장식을 과시하기보다 옷의 실용적 구조를 돕는 은밀한 요소로 영리하게 활용한다.

주요 디자인

샤넬 2026 S/S RTW

그랑 팔레에 거대한 행성을 띄워 가브리엘 샤넬의 우주적 세계관을 은유한 데뷔 런웨이다. 트위드 수트, 저지, 남성 셔츠, 로우 웨이스트 스커트를 거침없이 혼합해 하우스의 엄격한 코드를 단숨에 해방시켰다. 크롭트 재킷의 헴라인이나 셔츠의 체인 디테일 등, 낡은 아카이브를 직설적으로 복제하지 않고 블라지 본인의 사적인 착장 방식과 결합하여 동시대적으로 재조립했다.

샤넬 2026 S/S 오트 쿠튀르

숲과 새를 테마로 블랙 테일러드 수트의 암홀을 낮춰 카디건처럼 편안하게 만들고, 리틀 블랙 드레스의 불필요한 장식을 덜어내 정교한 재단과 착용감 자체를 돋보이게 했다. 블라지의 첫 쿠튀르 무대이자, 쿠튀르를 과시용 레드카펫 드레스가 아닌 여성의 뼈대와 생활에 완벽히 밀착된 하이엔드 피스로 제안한 전환점이다.

보테가 베네타 2023 F/W

정교한 테일러링과 니트, 파자마 셔츠 등 이탈리아의 다채로운 군상을 런웨이에 올렸다. 핀스트라이프 셔츠, 트렌치코트, 심지어 니트 양말과 슬리퍼까지 모두 가죽으로 직조해 냈다. 가죽을 극한으로 얇게 깎고 엮어 실크 패브릭처럼 너울거리게 만들며, 보테가 베네타의 레더 크래프트맨십을 완벽한 전신 룩으로 확장한 상징적인 시즌이다.

보테가 베네타 안디아모

안디아모(Andiamo, 2023)는 하우스의 시그니처인 부드러운 인트레치아토 위빙 바디에 황동 매듭(Knot) 장식을 더한 숄더 토트백이다. 큼직한 로고 없이 오직 가죽의 짜임과 조형적인 금속 매듭만으로 브랜드를 즉각적으로 식별하게 만든, 블라지 체제의 압도적 마스터피스다.

보테가 베네타 2022 F/W

블라지의 보테가 베네타 데뷔 쇼. 평범한 흰색 탱크톱과 청바지로 런웨이 포문을 열었으나, 실상 이는 질긴 누벅 가죽을 정교하게 가공하고 프린팅한 극강의 하이엔드 피스였다. 평범한 데일리 웨어 속에 하우스의 비범한 기술력을 은폐시키는 파격적인 방식으로 전임자의 짙은 그림자를 단숨에 걷어냈다.

샤넬 2026 메티에 다르

뉴욕의 폐쇄된 지하철역을 무대로 대도시의 다채로운 군상이 스쳐 지나가는 듯한 씬(Scene)을 연출했다. 전통 깊은 공방의 깃털과 자수 기교를 궁정풍 이브닝드레스에 가두지 않고, 데님, 니트, 넉넉한 코트 등 투박한 일상복에 과감하게 믹스 매치하며 럭셔리와 서브컬처의 경계를 허물었다.

디자이너·디자인 조직

라프 시몬스와 마르지엘라의 교차

초창기 라프 시몬스 체제에서 남성복 테일러링과 유스 컬처를 융합하는 감각을 체득했고, 이어 마르지엘라의 아티저널 라인에서 기성복을 해체하고 조립하는 실험적 기법과 '개인을 지우고 팀을 내세우는' 익명성의 철학을 흡수했다. 이 두 양극단의 훈련은 훗날 강렬한 아이디어를 최고급 품질의 상업적 제품으로 세공해 내는 강력한 근간이 되었다.

피비 파일로와 현실적인 옷장

피비 파일로 치하의 셀린 프리컬렉션 합류는 런웨이의 전위적인 피스를 여성이 실제 출근길에 착용할 수 있는 현실적인 옷장으로 다듬어내는 결정적인 수련기였다. 겉보기엔 실험적일지라도 주머니의 위치, 동선, 계절감 등 완벽한 실용주의가 밑바탕에 깔려 있는 그의 기조는 이 시기에 확립되었다.

가에타노 페셰와 공간의 동기화

산업 디자이너 가에타노 페셰와의 협업은 컬렉션을 단순한 의상 쇼를 넘어 다원적인 예술 프로젝트로 확장시켰다. 400개의 각기 다른 레진 의자를 무대에 배치하는 등 규격화되지 않은 비정형의 공간감을 런웨이에 끌어들여, 컬렉션의 내러티브가 건축적 공간과 완벽하게 동기화되도록 연출한다.

수상·전시 이력

오랜 기간 백스테이지의 핵심 조력자로 실무를 다져온 탓에 개인 명의의 글로벌 어워드 수상력은 비교적 최근에 집중되어 있다. 2022년 브리티시 패션 카운슬(BFC) 주관 패션 어워드 '올해의 디자이너' 후보에 오르며 보테가 베네타 부활의 공로를 국제적으로 인정받았다.

2022년 마이애미 디자인 위크에서는 가에타노 페셰와 협업한 런웨이 설치물 《코메 스타이?(Come Stai?)》를 단독 전시로 파생시키며 예술과 패션의 경계를 넓혔다. 또한 2023년 베네치아 비엔날레 무용 부문에서 안무가 셰신의 작품 의상을 전담하며, 무용수의 격렬한 움직임에 따라 유기적으로 수축 팽창하는 본인만의 재단 철학을 런웨이 밖 무대 예술로 확장하기도 했다.

반응과 평가

마티유 블라지는 마르지엘라, 셀린, 캘빈 클라인의 핵심 실무를 거쳐 보테가 베네타의 부흥을 완수하고, 2026년 현재 샤넬 전 부문을 통솔하고 있는 동시대 가장 안정적이고 파괴적인 크리에이터다. 멀리서는 평범한 일상복처럼 보이나 다가갈수록 경이로운 제작 기술이 드러나는 그의 '트롱프뢰유' 가죽 공법은 하우스의 공예적 가치를 최상위로 각인시켰다. 로고의 과시 없이도 실루엣과 물성만으로 브랜드를 증명하는 능력, 전위적인 런웨이 룩을 '안디아모' 등 압도적인 커머셜 아이템으로 매끄럽게 환산해 내는 기획력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샤넬 데뷔 역시 특유의 무겁고 경직된 헤리티지를 현대적이고 웨어러블하게 찢어냈다는 열광적인 호평을 이끌어냈다.

그러나 고도의 기술적 정교함과는 별개로, 수천만 원을 호가하는 초고급 가죽을 굳이 흔해 빠진 플란넬 셔츠나 낡은 데님처럼 보이게 가공하는 행위 자체가 럭셔리의 '역설적인 엘리트주의'라는 매서운 비판도 공존한다. 샤넬 초반부 컬렉션에 등장한 구겨진 플랩 백이나 느슨한 허리선이 하우스 고유의 정제된 우아함을 의도적으로 훼손시켰다며 불호를 표하는 전통 고객들의 반발도 분명히 존재한다.

무엇보다 '익명성과 장인 정신'을 표방했음에도 대중과 미디어의 스포트라이트가 결국 스타 디렉터 블라지 개인에게 쏠리는 구조적 모순, 그리고 샤넬이라는 거대한 아카이브의 짓눌리는 무게감이 그가 풀어야 할 당면 과제다. 극단적인 소재 실험만으로 메가 하우스의 장기적인 비전을 끌고 가기엔 한계가 명확하다. 모든 클래식을 한 번에 해체하려다 자칫 디테일의 과잉으로 흐르거나, 화려한 그랑 팔레 세트의 웅장한 스펙터클에 옷 자체가 묻혀버릴 수 있는 잠재적 위험성을 그가 어떻게 영리하게 통제할 것인지가 샤넬 안착의 최종 관건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