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첼로 간디니 (Marcello Gandini)
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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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Museo Auto
마르첼로 간디니(Marcello Gandini, 1938년생, 2024년 사망)는 이탈리아의 자동차 디자이너다. 1965년부터 1979년까지 카로체리아 베르토네의 수석 디자이너로 일하며 람보르기니 미우라, 쿤타치, 에스파다, 우라코, 란치아 스트라토스, 알파 로메오 카라보, 마세라티 캄신, 페라리 디노 308 GT4 등을 디자인했다. 베르토네를 떠난 뒤에는 독립 디자이너로 시트로엥 BX, 르노 5 2세대, 마세라티 샤말, 콰트로포르테 IV 등을 작업했다.
간디니는 슈퍼카 디자인의 비례를 바꾼 인물로 꼽힌다. 미우라는 V12 엔진을 좌석 뒤에 가로로 배치한 낮은 차체로 양산 스포츠카의 기준을 흔들었다. 카라보와 쿤타치는 보닛 끝에서 뒤쪽까지 낮게 뻗는 쐐기형 실루엣과 위로 열리는 시저 도어를 슈퍼카의 상징으로 만들었다.
그의 작업은 슈퍼카에만 머물지 않았다. 아우디 50과 폭스바겐 폴로 1세대, 이노첸티 미니, 시트로엥 BX, 르노 5 2세대처럼 대량생산차도 여럿 작업했다. 그래서 간디니는 포스터 속 슈퍼카를 만든 디자이너이면서, 일상에서 팔리는 소형차와 해치백의 비례도 다룬 디자이너로 평가된다.
약력·연혁
간디니는 1938년 8월 26일 토리노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오케스트라 지휘자이자 작곡가였고, 간디니가 음악가가 되기를 바랐다. 그는 어린 시절 피아노를 배웠지만 자동차와 기계에 더 끌렸다. 라틴어 교재를 살 돈으로 단테 자코사의 내연기관 교본을 샀다는 일화도 전해진다.
정식 자동차 디자인 교육을 받은 인물은 아니었다. 열여덟 살에 학교를 그만둔 뒤 실내 디자인, 가구, 나이트클럽 인테리어 같은 일을 하며 경력을 시작했다. 이후 친구의 경주차 차체를 새로 그려 주면서 자동차 디자인에 발을 들였다.
1963년 무렵 간디니는 누치오 베르토네(Nuccio Bertone)를 찾아갔다. 당시 베르토네의 수석 디자이너였던 조르제토 주지아로가 그의 채용을 반대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1965년 주지아로가 베르토네를 떠나자, 스물일곱의 간디니가 그 자리를 이어받았다. 그는 베르토네에서 스타일 디렉터로 일하며 콘셉트카와 양산차, 여러 제조사의 프로토타입을 함께 관리했다.
1979년 간디니는 베르토네를 떠나 자신의 회사 클라마(Clama)를 세웠다. 클라마라는 이름은 아내 클라우디아(Claudia)와 마르첼로(Marcello)의 앞글자를 합친 것이다. 독립 뒤에는 르노와 장기적으로 일하며 르노 5 2세대와 르노 매그넘 트럭 개발에 관여했고, 이후 마세라티, 닛산, 도요타, 스바루, 타타와도 협업했다.
말년에는 자동차 제조 방식과 차체 구조 연구에 더 많은 관심을 뒀다. 2024년 1월 12일 토리노 공과대학은 그에게 기계공학 명예 박사 학위를 수여했다. 행사장에는 알파 로메오 몬트리올, 페라리 디노 GT4, 피아트 X1/9, 람보르기니 미우라, 쿤타치, 디아블로, 마세라티 캄신, 샤말 등 간디니가 디자인한 차 15대가 함께 전시됐다. 간디니는 2024년 3월 13일 85세로 세상을 떠났다.
디자인 철학·시그니처
간디니는 자동차를 겉모습보다 구조의 문제로 봤다. 그는 자신이 가장 흥미를 느낀 대상이 스타일 자체보다 자동차의 구조, 제작, 조립, 메커니즘이라고 여러 차례 말했다. 그래서 그의 차는 장식으로 인상을 만드는 대신, 엔진 위치와 승객석, 휠베이스, 오버행, 냉각구, 도어 방식이 외관을 밀어 올리는 경우가 많다.
같은 디자인을 반복하지 않는 태도도 그의 특징이었다. 그는 과거 모델을 그대로 되살리는 복고식 접근을 좋아하지 않았다. 새 차는 이전 차와 닮지 않아야 하고, 디자이너는 이미 남이 한 일뿐 아니라 자신이 한 일도 되풀이하지 않아야 한다고 봤다.
간디니를 대표하는 조형은 쐐기형 실루엣이다. 앞쪽을 낮게 눌러 세우고 뒤쪽을 높게 받치면서 차체가 앞으로 파고드는 듯한 비례를 만든다. 1968년 알파 로메오 카라보와 1970년 란치아 스트라토스 제로는 이 형태를 가장 극단적으로 보여준 콘셉트카다. 쿤타치는 그 쐐기형을 양산 슈퍼카의 이미지로 굳힌 모델이다.
시저 도어도 그의 이름과 강하게 묶인다. 카라보에서 처음 등장한 위로 열리는 도어는 쿤타치에서 양산차에 적용됐고, 이후 디아블로, 무르시엘라고, 아벤타도르로 이어지며 람보르기니 V12 플래그십의 상징이 됐다.
간디니의 차에는 사다리꼴, 육각형, 직선으로 잘라낸 휠 아치가 자주 나온다. 도어와 옆유리 라인, 엔진 커버, 테일램프를 같은 각진 도형으로 맞춰 차체를 하나의 입체물처럼 보이게 했다. 팝업식 헤드램프, 차체 안으로 숨긴 램프, 가늘게 뚫은 흡기구, 짧은 오버행도 그의 스포츠카에서 반복된다.
주요 작업
람보르기니 미우라
람보르기니 미우라(Lamborghini Miura, 1966)는 베르토네에서 마르첼로 간디니의 이름을 처음 크게 알린 작업이다. 잔 파올로 달라라, 파올로 스탄차니, 밥 월리스가 V12 엔진을 가로로 얹은 미드십 섀시를 만들었고, 베르토네가 차체 디자인을 맡았다.
간디니는 낮고 넓은 차체, 둥글게 부푼 펜더, 팝업 헤드램프, 뒷유리 위 가로 루버를 통해 양산 스포츠카가 이전보다 훨씬 낮고 넓게 보일 수 있다는 점을 보여줬다.
람보르기니 마르살
람보르기니 마르살(Lamborghini Marzal, 1967)은 미우라의 기계 부품을 바탕으로 만든 4인승 콘셉트카다.
큰 유리 도어와 육각형 디테일을 적용했고, 이후 양산 4인승 GT인 에스파다로 이어졌다.
알파 로메오 카라보
알파 로메오 카라보(Alfa Romeo Carabo, 1968)는 알파 로메오 33 스트라달레 섀시를 바탕으로 한 콘셉트카다. 낮은 쐐기형 차체와 위로 열리는 시저 도어를 처음 결합했다.
녹색과 검정 배색, 잘게 가린 후면부, 차체 안으로 숨긴 램프는 당시 이탈리아 스포츠카의 우아한 관습과 거리를 뒀다.
람보르기니 에스파다
람보르기니 에스파다(Lamborghini Espada, 1968)는 V12 엔진을 얹은 4인승 GT다. 마르살과 재규어 피라나 콘셉트에서 다듬은 비례를 양산차로 옮겼다.
긴 차체와 큰 유리 면적, 낮은 루프라인으로 실내 공간과 낮은 GT 비례를 함께 잡았다.
알파 로메오 몬트리올
알파 로메오 몬트리올(Alfa Romeo Montreal, 1970)은 1967년 콘셉트에서 출발해 양산된 V8 쿠페다. 헤드램프를 반쯤 가린 덮개와 C필러의 가로 슬릿이 특징이다.
몬트리올에는 간디니가 곡선과 기하학적 디테일을 함께 쓰던 시기가 남아 있다.
란치아 스트라토스 제로·스트라토스 HF
란치아 스트라토스 제로(Lancia Stratos Zero, 1970)는 약 84cm 높이의 극단적으로 낮은 콘셉트카다. 앞유리를 들어 올려 타고 내리는 구조와 거의 삼각형에 가까운 측면 실루엣을 가졌다.
란치아 스트라토스 HF(Lancia Stratos HF, 1973)는 페라리 V6 엔진을 얹은 짧고 넓은 랠리카다. 헬멧처럼 이어지는 앞유리와 옆유리가 특징이며, 1974년부터 1976년까지 세계 랠리 선수권 제조사 부문에서 3년 연속 우승했다.
BMW 가르미슈와 5시리즈 1세대 계열
BMW 가르미슈(BMW Garmisch, 1970)는 간디니가 베르토네에서 디자인한 콘셉트카다. 이 차의 직선적인 세단 비례와 키드니 그릴 해석은 이후 1세대 5시리즈가 나오던 시기와 맞물린다.
양산형 5시리즈는 BMW 내부와 폴 브라크(Paul Bracq)의 손을 거치며 정리됐다.
람보르기니 쿤타치
람보르기니 쿤타치(Lamborghini Countach)는 1971년 제네바 모터쇼에서 LP500 콘셉트로 공개됐고, 1974년 LP400으로 양산을 시작했다. 보닛 끝에서 루프라인을 지나 뒤쪽까지 낮게 뻗는 측면, 극도로 낮고 넓은 차체, 사다리꼴 도형이 반복되는 면 처리가 핵심이다.
뒤쪽 시야 문제 때문에 지붕에 잠망경식 홈을 냈고, 양산차로는 처음 시저 도어를 적용했다. 뒤에 붙은 대형 리어 윙과 펜더 확장은 간디니가 처음 그린 원형에는 없었다.
피아트 X1/9·람보르기니 우라코
피아트 X1/9(Fiat X1/9, 1972)는 비교적 값이 낮은 미드십 타르가 모델로, 쐐기형 비례를 소형 스포츠카에 옮겼다.
람보르기니 우라코(Lamborghini Urraco, 1972)는 V8 엔진을 얹은 2+2 스포츠카다. 쿤타치보다 작은 차체 안에 간결한 쐐기형 측면을 넣었다.
페라리 디노 308 GT4·페라리 레인보우
페라리 디노 308 GT4(Ferrari Dino 308 GT4, 1973)는 베르토네가 페라리와 작업한 드문 양산차다. 피닌파리나 계열 페라리와 달리 각진 2+2 비례를 썼다.
페라리 레인보우(Ferrari Rainbow, 1976)는 베르토네가 만든 마지막 페라리 콘셉트카다. 90도로 젖혀 넣는 타르가 지붕과 가로로 이어진 테일램프를 적용했다.
이노첸티 미니
이노첸티 미니(Innocenti Mini, 1974)는 영국 미니를 각진 해치백 형태로 다시 그린 소형차다.
기존 미니의 작은 차체와 앞바퀴굴림 구조를 유지하면서, 1970년대식 직선 면과 해치백 실루엣을 더했다.
마세라티 캄신
마세라티 캄신(Maserati Khamsin, 1974)은 앞에 엔진을 얹은 GT다. 뒤쪽을 유리 패널로 처리하고, 테일램프를 그 위에 띄운 후면부가 특징이다.
긴 보닛과 낮은 루프라인을 유지하면서도 후면부를 투명하게 처리해 다른 마세라티 GT와 구분됐다.
아우디 50·폭스바겐 폴로 1세대
아우디 50(Audi 50, 1974)은 베르토네에서 간디니가 작업한 소형 해치백이다. 이후 폭스바겐 폴로 1세대가 같은 기본 구조를 바탕으로 나왔다.
슈퍼카의 과격한 쐐기형과 달리, 이 차들은 직선적인 소형차 비례와 실용적인 해치백 구조를 갖췄다.
시트로엥 BX
시트로엥 BX(Citroën BX, 1982)는 간디니가 독립한 이후 작업한 대표적인 대량생산차다. 릴라이언트 FW11과 볼보 툰드라 콘셉트에서 다듬은 직선형 해치백 비례가 바탕이 됐다.
BX는 200만 대 넘게 팔리며, 간디니가 슈퍼카뿐 아니라 대중차에서도 설득력 있는 형태를 만들 수 있음을 보여줬다.
르노 5 2세대
르노 5 2세대, 또는 쉬페르생크(Renault 5 Supercinq, 1984)는 1세대 르노 5의 친숙한 비례를 유지하면서 차체 면과 램프를 1980년대식으로 정리한 소형차다.
간디니의 과격한 콘셉트카와 달리, 기존 인기 모델의 이미지를 크게 흔들지 않으면서 새 차로 보이게 만든 작업이다.
치제타-모로더 V16T와 람보르기니 디아블로 원안
치제타-모로더 V16T(Cizeta-Moroder V16T)와 람보르기니 디아블로 원안은 간디니가 1980년대 중반 쿤타치 후속 프로젝트로 다룬 작업과 연결된다.
1987년 람보르기니를 인수한 크라이슬러는 그의 원안이 너무 과격하다고 보고, 톰 게일(Tom Gale) 팀을 통해 모서리를 부드럽게 다듬었다. 그 결과물이 1990년 양산형 디아블로다. 간디니의 원안은 치제타-모로더 V16T에 더 강하게 남았다.
마세라티 샤말·기블리 II·콰트로포르테 IV
마세라티 샤말(Maserati Shamal), 기블리 II(Ghibli II), 콰트로포르테 IV(Quattroporte IV)는 간디니가 독립한 이후 마세라티와 이어 간 1990년대 작업이다.
샤말은 짧은 차체, 잘라낸 휠 아치, 두꺼운 C필러로 강한 인상을 만들었다. 기블리 II와 콰트로포르테 IV에도 각진 차체 면과 간결한 램프 구성이 이어졌다.
영향 관계
간디니의 작업은 누치오 베르토네가 만든 환경 안에서 나왔다. 누치오는 젊은 디자이너에게 큰 프로젝트를 맡기는 데 주저하지 않았고, 프랑코 스칼리오네와 조르제토 주지아로에 이어 간디니를 베르토네의 중심에 세웠다. 전 폭스바겐 그룹 디자인 총괄 발터 데 실바는 두 사람의 관계를 두고 간디니가 솔로 바이올린이라면 누치오는 지휘자였다고 표현했다.
간디니와 주지아로는 같은 1938년생이자 토리노 기반 자동차 디자인의 양대 인물이었다. 둘은 같은 베르토네 계보에 놓이지만, 실제로 한 회사에서 함께 일한 시기는 없었다. 주지아로가 떠난 뒤 간디니가 수석 디자이너 자리를 이어받았고, 이후 두 사람은 이탈리아 자동차 디자인의 서로 다른 방향을 대표하게 됐다. 주지아로가 정제된 산업 제품의 균형을 다뤘다면, 간디니는 구조가 밀어낸 과감한 형태 실험으로 평가된다.
후대에 가장 크게 남은 것은 쐐기형 슈퍼카와 시저 도어다. 카라보와 스트라토스 제로가 연 형태 실험은 로터스 에스프리, 애스턴 마틴 라곤다, 여러 콘셉트카에 영향을 줬다. 쿤타치 이후 시저 도어는 람보르기니 V12 플래그십을 구분하는 장치가 됐고, 슈퍼카를 상상할 때 떠오르는 대표적인 문법이 됐다.
수상·전시 이력
카 디자인 뉴스(Car Design News)는 2012년 평생 공로상을 만들면서 첫 수상자로 간디니를 선정했다. 이 상은 그의 특정 모델 하나가 아니라, 미우라부터 쿤타치, 스트라토스, BX까지 이어지는 넓은 작업 범위를 인정한 성격이 강하다.
2019년 토리노 자동차 박물관(MAUTO)은 그의 작업을 모은 전시 〈마르첼로 간디니: 숨은 천재〉를 열었다. 전시에는 미우라, 마르살, 스트라토스 제로 같은 콘셉트카와 양산차, 스케치, 헬리콥터 작업이 함께 소개됐다. 전시 제목의 숨은 천재라는 표현은 간디니가 대중 앞에 나서는 것을 즐기지 않았던 태도와도 맞물렸다.
2024년 1월 12일 토리노 공과대학은 간디니에게 기계공학 명예 박사 학위를 수여했다. 대학은 그가 기계, 기술, 스타일을 결합한 혁신적 해법을 자동차와 다른 이동 수단에 남겼다고 평가했다. 같은 자리에는 간디니가 베르토네 시절 디자인한 역사적 차량 15대가 전시됐다.
반응과 평가
위상과 영향
간디니는 현대 슈퍼카 디자인을 말할 때 가장 자주 언급되는 인물이다. 미우라는 미드십 양산 슈퍼카의 기준을 세운 모델로 평가되고, 쿤타치는 낮고 넓은 쐐기형 차체와 시저 도어로 슈퍼카의 시각적 상징을 바꿨다. 카 디자인 뉴스는 그의 작업 범위와 영향력을 매우 높게 평가했고, 페라리 디자인 총괄 플라비오 만초니도 간디니를 자동차 디자인 역사에서 핵심 인물 가운데 하나로 평가했다.
높은 위상에 비해 간디니는 오래도록 무대 앞에 자주 서지 않았다. 그는 자신이 그린 차를 수집하거나 유명세를 즐기는 타입과 거리가 있었다. 이런 태도 때문에 간디니는 생전에도 숨은 천재라는 표현과 함께 소개되는 일이 많았다.
디자인 반응
간디니의 쐐기형 디자인은 처음부터 의견을 갈랐다. 카라보와 스트라토스 제로는 미래적이고 과감한 형태로 받아들여졌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차갑고 기계적인 형태라는 반응도 나왔다. 간디니가 의도한 것은 우아한 차체보다 구조가 밀어낸 강한 형태에 가까웠다.
쿤타치도 평가가 갈린다. 초기 LP400의 낮고 깨끗한 원형을 높게 보는 쪽은 뒤에 붙은 대형 리어 윙과 넓어진 펜더가 원래의 비례를 흐렸다고 본다. 반대로 후기형의 과장된 펜더와 윙을 쿤타치의 가장 강한 이미지로 보는 시각도 있다. 오늘날 대중이 떠올리는 쿤타치의 모습은 간디니가 처음 그린 LP400보다 후기형에 더 가까운 경우가 많다.
디아블로는 간디니의 원안과 크라이슬러가 다듬은 양산형을 두고 논쟁이 이어진다. 원안을 지지하는 쪽은 치제타-모로더 V16T에 남은 날카로운 차체가 간디니답다고 본다. 양산형 디아블로를 지지하는 쪽은 더 부드럽게 다듬은 비례가 1990년대 슈퍼카 시장에 맞았다고 본다.
비판
미우라는 오랫동안 디자인 주체 논쟁이 따라붙었다. 주지아로가 베르토네를 떠나기 전 일부 아이디어를 시작했다는 견해와, 간디니가 막바지에 형태를 완성했다는 견해가 함께 전해진다. 누치오 베르토네가 마지막 단계에서 손을 댔다는 증언도 있어, 어느 부분을 누구의 작업으로 볼지는 지금도 단순하게 정리하기 어렵다.
간디니 자신도 미우라를 완벽한 작업으로만 보지는 않았다. 그는 신인 디자이너였기 때문에 기술적 제약과 회사 판단을 더 강하게 밀어붙이지 못했다고 회고했다. 이 점은 미우라가 현대 슈퍼카의 출발점으로 평가되면서도, 개발 당시에는 여러 타협 속에서 나온 차였다는 사실을 말해 준다.
1970년대 중반 이후 베르토네의 쐐기형 콘셉트카에는 반복 논점도 붙었다. 브라보, 레인보우, 나바호 같은 차들이 서로 비슷한 각진 어휘를 공유하면서, 한때 가장 앞서 보였던 쐐기형이 공식처럼 굳었다는 지적을 받았다. 간디니가 반복을 경계했던 디자이너였다는 점에서, 이 비판은 그의 전성기 말 베르토네가 처한 한계와도 맞물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