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나 고트메 (Lina Ghotmeh)

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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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Gilbert Hage

리나 고트메(Lina Ghotmeh)는 대상지가 품은 역사와 재료, 전통 제작 기술을 면밀히 조사해 이를 새로운 건축 구조로 치환하는 레바논 출신의 프랑스 건축가다. 베이루트 아메리칸대학교에서 건축을 전공하고 파리 에콜 스페시알 다르시텍튀르에서 수학 및 강단에 섰다. 2005년 에스토니아 국립박물관 국제공모에 당선되며 'DGT 아키텍츠'를 공동 설립했고, 이후 파리를 거점으로 '리나 고트메 아키텍처'를 이끌고 있다.

그의 핵심 설계 방법론은 ‘미래의 고고학(Archaeology of the Future)’으로 요약된다. 과거의 형태를 평면적으로 복원하는 대신, 대지의 물리적 흔적과 지역의 공예, 기후 조건을 발굴해 다음 시대를 지탱할 구조적 재료를 찾는 작업이다. 대중에게는 2023년 서펜타인 파빌리온을 통해 이름을 널리 알렸으나, 그는 이미 에스토니아 국립박물관, 베이루트 스톤 가든, 에르메스 공방 등을 통해 대규모 문화시설과 산업 건축 전반에서 탄탄한 실무적 완결성을 증명해 온 건축가다.

약력·연혁

베이루트에서 성장하며 고고학자를 꿈꾸던 고트메는 레바논과 프랑스를 오가며 유적의 흔적과 지형을 건축에 결합하는 방식을 연구했다. 2005년, 에스토니아 국립박물관 국제공모에 당선되며 단 도렐, 다네 쓰요시와 함께 DGT 아키텍츠를 공동 설립했다. 구소련 군용비행장의 활주로를 활용해 지면이 서서히 들려 올라가는 파격적인 개념을 제시한 이 프로젝트는 약 10년에 걸친 작업 끝에 2016년 개관하며, 그의 철학인 ‘미래의 고고학’을 대규모로 실현한 첫 이정표가 되었다. 이후 독립 스튜디오를 세운 그는 지역 장인이 콘크리트를 긁어 상흔을 형상화한 베이루트 '스톤 가든'과 수십만 장의 지역 벽돌로 공간의 리듬을 구축한 노르망디 '에르메스 공방'을 연이어 완성하며 재료 기반의 독보적인 행보를 굳혔다. 2023년 런던 서펜타인 파빌리온 설계를 기점으로 국제적 인지도가 급상승했으며, 2025년 오사카 엑스포 바레인관 완공을 비롯해 대영박물관 서관 리노베이션, 카타르 영구 국가관 등 굵직한 공공 프로젝트를 잇달아 맡으며 국제 건축계의 최전선에서 활약하고 있다.

디자인 철학·시그니처

이전 환경을 뼈대로 삼는 구조

건물이 들어설 장소의 산업적, 정치적 역사와 기후, 지역 공예를 객관적으로 조사해 이를 형태와 구조로 치환하는 ‘미래의 고고학’을 추구한다. 과거의 표면적 복제를 지양하고 군사시설의 활주로(에스토니아 국립박물관)나 선박의 뼈대(바레인관)처럼 장소에 남겨진 물리적 흔적을 건축의 뼈대에 직접 반영한다. 아울러 기념비적인 거대 공간을 강요하기보다, 낮게 내려온 지붕과 서로 마주 보는 좌석(서펜타인 파빌리온)을 통해 빛과 바람을 들이며 실용적이고 개방적인 공용 공간을 지향한다.

재료의 일체화와 장인의 손길

재료를 표면을 덮는 장식재로 소모하지 않고 뼈대와 마감의 역할을 동시에 수행하도록 설계한다. 생산지와 가공 방식까지 계획의 일부로 삼아, 50만 장의 지역 벽돌로 구조와 채광을 한 번에 해결한 에르메스 공방이나 장인이 직접 표면을 긁어 질감을 낸 스톤 가든이 대표적이다. 기계적 생산과 수공예를 분리하지 않고, 건축이라는 거대한 규모 안에 장인의 반복적인 노동 흔적을 구조적으로 직조해 낸다.

주요 작업

오사카 엑스포 바레인관 (2025)

바레인의 전통 범선인 다우선의 골조와 일본의 목조 건축 기술을 융합한 임시 파빌리온이다. 3,000여 개의 비공학 목재 부재를 조립해 선박의 뼈대를 촘촘하게 뒤집어 놓은 듯한 내부를 연출했다. 철근콘크리트 기초를 최소화하고 전시 이후 해체와 재사용이 가능하도록 결합부를 설계했으며, 외벽을 닫지 않아 자연스러운 바닷바람이 통과하게 한 친환경 구조체다.

서펜타인 파빌리온: 아 타블 (2023)

런던 켄싱턴 가든에 세워진 목조 파빌리온으로, 얇은 집성목 기둥이 잎사귀처럼 주름진 얕은 지붕을 떠받친다. 구조물 둘레를 따라 긴 테이블을 두어 관람객들이 한곳을 바라보는 대신 서로 마주 보며 식사하고 대화하는 수평적인 장소를 구현했다. 얕은 기초 설계로 공원에 남는 물리적 흔적을 덜어내고, 독립된 조형물보다는 사람과 행위가 중심이 되는 공간을 구축했다.

에르메스 루비에 공방 (2023)

프랑스 노르망디에 지어진 약 6,200㎡ 규모의 가죽 공방이자 프랑스 최초의 패시브·저탄소 산업 건축물이다. 현지 흙으로 구운 50만 장 이상의 벽돌을 사용해 반복적인 아치 구조를 엮어내어 공간의 리듬과 뼈대를 만들었다. 가죽 장인들이 자연광 아래서 정확히 색상을 식별할 수 있도록 북향 천창을 내고, 거대한 단일 공장 대신 작은 건물 동이 모인 듯한 외관으로 지역 풍경에 부드럽게 녹아들게 했다.

스톤 가든 (2020)

베이루트 항구 인근에 위치한 주거 및 문화 복합시설로, 두터운 외벽을 깎아낸 듯한 불규칙한 발코니 창에 식물이 자라나도록 설계했다. 미완성 콘크리트 구조물이 혼재된 도시의 표면을 건축적으로 치환하기 위해, 공장제 패널 대신 장인이 현장에서 직접 콘크리트 외벽을 긁어내며 건축물에 입체적인 질감을 부여했다.

에스토니아 국립박물관 (2016)

타르투 지역의 옛 소련군 비행장 끝자락에 세워진 대규모 문화시설이다. 대지에 남은 흔적을 지워버리는 대신, 기존 활주로의 선형을 그대로 연장해 지면에서 서서히 위로 솟아오르는 34,000㎡ 규모의 거대한 쐐기 형태를 제안했다. 군사 시설로 쓰이던 공간의 물리적 맥락을 비틀어, 문화와 예술을 수용하는 열린 장소로 완벽히 전환한 역작이다.

영향 관계

고트메의 건축은 베이루트가 품은 복잡한 도시 맥락과 프랑스의 건축 실무가 교차하는 지점에서 태동했다. 레바논의 전통적 형태를 표면적으로 복제하거나 유럽 모더니즘의 건조한 상자 형태에 갇히지 않고 두 세계를 유연하게 엮어낸다. 초기 DGT 시절 단 도렐, 다네 쓰요시와의 공동 작업은 대규모 국가 프로젝트를 성공적으로 이끄는 실무적 기반이 되었다. 그의 작업은 기후 대응과 지속가능성을 피상적인 구호로 남기지 않고, 재료의 지역적 생산과 조립 방식을 통해 구조적으로 증명한다. 서펜타인 파빌리온 이후 이러한 태도는 글로벌 럭셔리 브랜드의 생산 기지부터 국제 엑스포 국가관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하게 채택되며 그 영향력을 넓히고 있다.

수상·전시 이력

2008년 프랑스 문화부 젊은 건축가상을 시작으로, 2016년 프랑스 건축아카데미 프리 드장, 2020년 셸링 건축상을 차례로 거머쥐었다. 공동 설계한 에스토니아 국립박물관은 2016년 AFEX 그랑프리를, 스톤 가든은 2021년 디진 어워드 올해의 프로젝트를 차지했다. 2025년에는 아이코닉 어워드 올해의 건축가로 선정됨과 동시에 오사카 엑스포 바레인관으로 엑스포 건축·조경 부문 금상을 목에 걸었으며, 2026년 미국건축가협회 명예회원 위촉 및 프랑스 문예공로훈장 슈발리에를 수훈하는 등 화려한 이력을 갱신 중이다.

반응과 평가

서펜타인 파빌리온을 기점으로 대중적 명성을 획득했으나, 리나 고트메는 이미 에스토니아 국립박물관의 장기 프로젝트와 치열한 재료 연구를 통해 견고한 내공을 축적해 온 건축가다. 현재 대영박물관 서관, 카타르 영구 국가관 등 역사적 중량감이 큰 문화시설을 연이어 전담하며 국제적 위상을 굳히고 있다. 특정 조형 스타일을 맹목적으로 반복하는 대신, 스톤 가든의 거친 콘크리트나 에르메스 공방의 벽돌처럼 프로젝트마다 장소의 흔적과 결합된 최적의 물성을 발굴해 낸다는 점이 평단의 두터운 지지를 이끌어낸다.

반면, 이전 환경과 공예를 결합하는 서사가 지나치게 돋보일 경우, 자칫 도시가 안고 있는 복잡한 정치적·사회적 맥락을 단선적인 스토리텔링으로 단순화하거나 감각적인 표면으로만 소비하게 만든다는 비판적 시각도 존재한다. 아울러 에르메스 공방이나 바레인관이 보여준 고도의 수공예적 저탄소 해법은 맞춤형 럭셔리 시설이나 임시 파빌리온에는 적합하지만, 막대한 비용과 공기 탓에 보편적인 산업 건축으로 이식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상징적인 미학의 성취를 넘어, 실제 광범위한 건설 시장의 시스템을 재편하기 위해서는 재료 조달과 반복 생산의 경제성이 추가로 입증되어야 한다는 과제가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