켈리 웨어스틀러 (Kelly Wearstler)
개요
<img src="https://d2xsxph8kpxj0f.cloudfront.net/310519663429662740/ffcjRzrXsTCDKgX6s8aDwC/articles/1786585153971-666a2306e467be20.webp" alt="" data-orientation="original" data-original-src="https://d2xsxph8kpxj0f.cloudfront.net/310519663429662740/ffcjRzrXsTCDKgX6s8aDwC/articles/1786585155418-29cd5619ac187efe.webp" width="600" />
© Harry Crowder켈리 웨어스틀러(Kelly Wearstler)는 로스앤젤레스를 거점으로 호텔, 주거, 레스토랑부터 가구, 조명, 오브제에 이르기까지 폭넓은 실무를 전개하며 미국 서부 럭셔리 인테리어의 새로운 지형을 구축한 디자이너다. 1995년 스튜디오를 설립한 이래 건축가, 인테리어 및 가구 디자이너가 결합한 다학제 조직을 이끌고 있으며, 산타모니카·오스틴·샌프란시스코의 프로퍼 호텔(Proper Hotel), 포시즌스 앵귈라(Four Seasons Anguilla), 버그도프 굿맨(Bergdorf Goodman)의 BG 레스토랑 등이 대표작이다.
웨어스틀러의 디자인은 흔히 'LA 맥시멀리즘'으로 수식되나, 단순히 색채와 장식을 과잉 나열하는 데 머물지 않는다. 빈티지와 현대 가구, 거친 석재와 연마된 금속, 기하학 패턴과 유기적 조형 등 상충하는 물성과 양식을 단일 공간 안에서 팽팽하게 충돌시킨다. 또한, 건축물이 자리한 장소의 역사와 지역적 서사를 존중하며, 그 위에 자신만의 큐레이션을 덧입히는 방식을 취한다.
2020년대에 들어서는 공간 디자이너를 넘어 큐레이터이자 라이프스타일 브랜드 운영자로 도약했다. 2025년 컬렉터블 디자인과 순수 미술을 교차시키는 플랫폼 '사이드 허슬(Side Hustle)'을 론칭했고, 2026년 밀라노 디자인 위크에서는 에이치앤엠 홈(H&M HOME)과의 첫 가구 협업을 공개하며 대중 리테일 시장으로의 확장을 예고했다.
약력·연혁
인테리어, 건축, 그래픽 디자인을 수학한 웨어스틀러는 1995년 자신의 이름을 건 스튜디오를 출범시켰다. 초기 주거 공간과 부티크 호텔 위주로 경력을 쌓던 중, 2000년대 초 '비세로이(Viceroy)' 호텔 프로젝트를 기점으로 디자이너 호텔 씬의 핵심 인물로 부상했다. 비세로이 팜스프링스에서 할리우드 리젠시(Hollywood Regency) 양식의 대칭적 비례와 고채도 대비를 사막 리조트에 이식했으며, 이를 기점으로 20세기 미국 장식 미술과 지역적 서사를 혼합하는 특유의 방법론을 확립했다.
호텔 프로젝트 수행에 있어 규격화된 체인 호텔의 관습적 문법을 탈피했다. 시대가 상이한 가구, 미술품, 조명, 카펫을 선별하고 커스텀 오브제와 빈티지를 조합해 공용부와 개별 객실마다 상이한 시퀀스를 연출했다. 이러한 기조는 이후 프로퍼 호텔 프로젝트에서 절정에 달했다. 2018년 산타모니카 프로퍼에서는 캘리포니아 해변의 모래, 조개껍데기, 비치 파라솔의 은유를 소재와 패턴으로 환원했고, 2019년 오스틴 프로퍼에서는 지역의 아트 앤 크래프트(Arts and Crafts) 양식을 텍스타일과 조형으로 풀어냈다. 2021년 다운타운 LA 프로퍼에서는 건물의 뼈대를 보존한 채 멕시코 모더니즘과 스페인·포르투갈계 건축 자재를 결합하고, 지역 유리 공방인 저드슨 스튜디오(Judson Studios)의 스테인드글라스를 설치했다. 이는 장소마다 차별화된 공예 자원과 건축사를 발굴해 단일한 컬렉션으로 직조해 내는 그의 성숙한 공간 기획론을 대변한다.
공간 설계와 더불어 커스텀 가구 및 조명 기획을 기반으로 한 제품 비즈니스도 활성화했다. 자체 브랜드를 통한 제품 유통 외에도, 타일 브랜드 앤 색스(Ann Sacks), 텍스타일 브랜드 더 러그 컴퍼니(The Rug Company) 등과 장기 파트너십을 맺었다. 2025년 앤 색스 협업에서는 세라믹과 석재에 양각 패턴을 입혀 질감의 깊이를 극대화했다. 한편, 2025년 론칭한 사이드 허슬은 신진 작가들의 컬렉터블 피스와 빈티지를 병치하는 플랫폼으로, 웨어스틀러가 전방위적 창작자에서 '크리에이티브 큐레이터'로 역할의 무게중심을 이동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2026년 밀라노 디자인 위크에서 선공개된 H&M HOME과의 협업 역시 하이엔드 수주 중심이던 그녀의 문법을 글로벌 대규모 유통 인프라 위에 시험하는 전략적 확장의 일환이다.
디자인 철학·시그니처
웨어스틀러의 공간은 특정 시대의 완벽한 복원을 지양한다. 1930년대 아르데코 가구와 현대 조각, 1970년대 빈티지 조명과 동시대의 커스텀 테이블을 한 프레임 안에 배치한다. 이질적인 기호들을 과잉 나열하는 데 그치지 않고, 구세대와 신세대, 거친 물성과 가공된 표면, 직선과 곡선 간의 시각적 긴장감을 유발하여 공간의 층위를 두껍게 쌓아 올린다.
재료의 물성을 극대화하여 공간의 전면에 노출하는 것도 특징적이다. 대리석, 원목, 황동, 플라스터(Plaster)의 질감을 매끈하게 연마하기보다, 과장된 결, 깊은 양각, 육중한 모서리를 시각적으로 과시한다. 타일 디자인에 있어서도 평면적 인쇄를 넘어 입체적 텍스처를 구현해, 빛의 산란에 따른 음영의 변화를 공간의 주된 시각 장치로 활용한다.
그녀의 공간 연출은 일시적인 쇼룸 세팅보다 끈질긴 '수집'의 과정에 맞닿아 있다. 자택인 힐크레스트 레지던스(Hillcrest Residence)를 신규 빈티지와 아트 피스의 실험 무대로 활용하며, 고정된 인테리어의 완결성보다 기물들이 유입되고 배출되는 유동적인 큐레이션 상태를 즐긴다. 또한, 산타모니카, 오스틴, LA 등 호텔이 입지한 장소의 역사적 맥락과 지역 공예를 적극적으로 수용하여, 작가 개인의 강력한 시그니처가 장소 고유의 맥락을 훼손하지 않도록 정교하게 조율한다.
주요 작업
에이치앤엠 홈(H&M HOME) 협업 컬렉션
2026년 가을 론칭 예정인 대규모 글로벌 가구 및 오브제 컬렉션이다. 목재, 금속, 세라믹, 대리석 등 이질적 물성이 교차하는 모듈 가구와 소품으로 구성되며, 럭셔리 커스텀 메이드에서 구사하던 재료 배합의 노하우를 대량 생산 리테일 마켓으로 이식한 프로젝트다.
프로퍼 호텔 오스틴 '카포 카포(Kappo Kappo)'
2026년 오스틴 프로퍼 내에 조성한 25석 규모의 프라이빗 다이닝 공간이다. 일본 갓포 요리의 본질인 물리적 근접성과 의식적 행위에 착안해, 쇼우스기반(Shou Sugi Ban, 탄화목) 처리된 사이프러스 목재와 수제 타일을 통해 장식적 묘사보다 촉각적 밀도를 앞세웠다.
컬렉터블 플랫폼 '사이드 허슬(Side Hustle)'
2025년 출범한 디자인·미술 큐레이션 플랫폼이다. 가구, 조각, 텍스타일 등 다양한 매체의 신진 작가 작품과 그녀가 소장한 빈티지를 교차 전시하여, 디자이너 본연의 작가적 산출을 넘어 씬의 안목 있는 큐레이터로서 포지셔닝을 전환한 지점이다.
다운타운 LA 프로퍼(Downtown L.A. Proper)
2021년 론칭한 호텔로, 유서 깊은 건물의 뼈대를 수용하면서 멕시코 모더니즘과 남유럽의 재료적 감수성을 직조했다. 저드슨 스튜디오의 거대한 스테인드글라스와 고밀도 패턴, 빈티지 가구가 서로 다른 시대적 서사를 건축적 공간 안에서 봉합한다.
오스틴 프로퍼(Austin Proper)
2019년 오픈한 호텔로, 텍사스 오스틴 지역의 아트 앤 크래프트 전통과 공예, 텍스타일 유산을 공간에 투영했다. 빈티지 러그를 패치워크해 계단실을 덮고 현지 장인들의 소재를 전면에 내세워 지역주의와 하이엔드 인테리어를 융합했다.
산타모니카 프로퍼(Santa Monica Proper)
2018년 개장한 호텔로, 캘리포니아 해안 도시의 클리셰적인 해변 장식을 배제하고 이를 질감과 패턴으로 추상화했다. 조개껍데기의 유기적 선을 조각한 리셉션 데스크, 모래가 혼합된 제소(Gesso) 텍스처, 비치 파라솔의 기하학을 차용한 바닥 패턴이 특징적이다.
영향 관계
웨어스틀러의 조형적 근간은 도로시 드레이퍼(Dorothy Draper) 류의 미국 장식주의, 할리우드 리젠시, 이탈리아 포스트모더니즘, 20세기 미드센추리 빈티지가 혼재된 지점이다. 그러나 특정 시대를 관습적으로 모사하지 않고, 동시대 크리에이터들의 작업을 병치하며 미국식 맥시멀리즘 컬렉팅 인테리어로 치환해 낸다. 스튜디오 운영에 있어서도 역사와 현대성, 건축적 구조와 유기적 폼의 충돌을 방법론적 핵심으로 삼는다. 반대로 최근에는 사이드 허슬 플랫폼을 통해 신진 작가들을 인큐베이팅하고 새로운 미학적 활로를 뚫어주는 후원자 겸 디렉터로서 역방향의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수상·전시 이력
건축 전문지 《아키텍처럴 다이제스트(Architectural Digest)》의 'AD100'과 《엘르 데코(ELLE Decor)》의 'A-List'에 단골로 이름을 올리며, 《타임(Time)》의 '디자인 100(Design 100)' 및 《월페이퍼(Wallpaper*)》 주요 디자이너 랭킹에 등재되었다. 인테리어 디자이너 최초로 마스터클래스(MasterClass) 연사로 나섰으며, 공공 예술 비엔날레 '데저트 엑스(Desert X)' 이사회 위원으로 활동하며 산업과 예술 씬을 아우르는 영향력을 과시한다.
반응과 평가
켈리 웨어스틀러는 디자이너 개인의 서명(Signature) 자체가 거대한 자본의 호텔 비즈니스와 라이프스타일 산업을 견인하는 미국 럭셔리 인테리어의 아이콘이다. 주거와 상업 공간, 하이엔드 커스텀 프로덕트를 넘어 2025년 이후 컬렉터블 전시 큐레이션과 H&M HOME을 통한 대중 유통 마켓까지 장악하며 전방위적 라이프스타일 제국을 축조했다.
그의 작업은 상충할 법한 물성과 시대 양식을 과감하게 교배하면서도 최종적으로는 세련된 단일 씬(Scene)으로 압축해 내는 탁월한 공간 통제력으로 찬사를 받는다. 특히 규격화된 체인 호텔의 균질성을 혐오하고 객실마다 상이한 미학적 변주를 가함으로써 공간 경험의 밀도를 극한으로 끌어올린다.
반면, 시대 미상(未詳)의 가구, 예술품, 강렬한 패턴이 고밀도로 압축된 탓에 협소한 공간에서는 시각적 피로와 억압을 유발할 수 있다는 지적도 수반된다. 덜어내고 정제하는 방식보다는, 다종다양한 기물들을 쏟아붓고 그들 간의 텐션을 아슬아슬하게 조율하는 방식이기에 필연적으로 수반되는 리스크다. 이러한 극단적 컬렉팅 인테리어는 방대한 예산이 수반되는 럭셔리 상업 시설이나 대저택에서만 온전히 구동되며, 일반적인 예산 규모의 주거 환경으로 이식하기에는 물리적·재무적 진입 장벽이 현격히 높다.
아울러 거대해진 스튜디오의 모든 아웃풋을 웨어스틀러 1인의 천재적 묘수로 환원하는 것 역시 조심해야 할 대목이다. 현재 그녀의 스튜디오는 건축 설계, FF&E(가구·집기·비품), 제품 디자인 전문가들이 조직적으로 연대하는 거대 기업이며, 실제 공간의 실현은 지역 공방, 아티스트, 부동산 개발사와의 복잡다단한 협력망 위에서 이루어진다. 그럼에도 웨어스틀러의 진정한 묘미는 무분별한 과잉(맥시멀리즘) 그 자체에 있지 않다. 통제 불가능할 것 같은 방대한 오브제와 시각적 자극들을 한 공간에 기꺼이 충돌시키되, 무엇을 노출하고 무엇을 소거할 것인지 막판까지 끈질기게 조율하는 그 '큐레이팅'의 악력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