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시가미 준야 (Junya Ishigami)

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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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ichel Nagl ©2024 Austrian Frederick and Lillian Kiesler Foundation

이시가미 준야(Junya Ishigami)는 건축의 물리적 한계를 지우고, 자연과 인공물의 경계를 기민하게 무너뜨리는 일본의 건축가다. 1974년 가나가와현에서 태어나 도쿄예술대학교 건축과 대학원을 졸업했으며, 세지마 가즈요 사무소를 거쳐 2004년 독립했다.

그의 건축은 특정한 물리적 뼈대에 갇히지 않는다. 305개의 가는 기둥을 무질서한 숲처럼 흩뿌린 'KAIT 공방', 기둥 하나 없이 거대한 철판 지붕을 지면 가까이 띄운 'KAIT 광장', 그리고 대지를 직접 파내어 거푸집으로 삼은 '하우스 앤드 레스토랑'까지, 공법과 스케일은 매번 달라지지만 마치 건물이 원래 그 자리에 존재했던 풍경의 일부처럼 스며들게 한다. 그는 기둥과 지붕 같은 고전적 건축 요소를 구름, 숲, 동굴과 같은 기상 및 자연 현상으로 치환하며, 인간이 건축을 통제하기보다 자연과 조응하며 머물도록 유도한다.

약력·연혁

도쿄예술대학교를 졸업하고 2000년 세지마 가즈요 사무소에 합류한 이시가미는, 얇은 구조와 투명성이라는 SANAA의 유산을 묵묵히 흡수했다. 2004년 자신의 이름을 건 사무소를 설립한 이후, 그는 선배 세대의 가벼움을 더욱 극단으로 밀어붙였다. 초기에는 하중을 견디지 못할 만큼 얇은 금속 테이블이나 공간을 유영하는 거대한 헬륨 풍선 등을 통해 중력을 거스르는 구조적 실험에 몰두했다.

이러한 설치 미술적 실험은 2008년 'KAIT 공방'을 통해 실제 거대한 건축물로 증명되었고, 이 작업으로 이듬해 일본건축학회상을 거머쥐며 혜성처럼 등장했다. 2010년 베니스 건축비엔날레에서 '공기 같은 건축'으로 최고상인 황금사자상을 수상하며 구조와 비물질화에 대한 그의 극단적 탐구를 국제적으로 인정받았다. 2010년대 이후에는 네덜란드의 '파크 흐로트 페이베르스뷔르흐 방문자센터', 일본 나스의 '워터 가든' 등 건물을 짓는 행위와 조경, 풍경을 조성하는 행위를 완벽하게 일체화하는 궤적으로 나아가고 있다.

디자인 철학·시그니처

풍경과 건축의 등가 교환

이시가미에게 건축은 대지 위에 얹히는 이질적인 오브제가 아니다. 숲의 나무와 건물의 기둥, 구름과 지붕은 완벽하게 동등한 풍경의 요소로 다뤄진다. 'KAIT 공방'에서 유리 외벽 너머의 숲과 내부의 기둥 배열이 시각적으로 중첩되는 것처럼, 자연을 감상하는 배경으로 타자화하지 않고 건축 공간을 구성하는 뼈대 그 자체로 치환한다.

극단화된 스케일과 물성의 역전

얇고 가벼운 것과 무겁고 원초적인 것을 능수능란하게 오간다. 'KAIT 공방'과 'KAIT 광장'에서는 기둥과 지붕의 두께를 소거해 공간의 질량을 증발시켰다면, 반대로 '서펜타인 파빌리온'과 '하우스 앤드 레스토랑'에서는 무거운 돌과 흙, 육중한 콘크리트의 물성을 강렬하게 드러냈다. 이러한 물성의 전환을 통해 건축은 벽과 지붕이 있는 고정된 쉘터라는 관성적 정의에서 해방된다.

땅을 깎아내는 거푸집 공법

건축을 땅 위로 쌓아 올린다는 상식을 뒤집어, 대지 자체를 거푸집으로 삼는다. 흙을 파낸 웅덩이에 콘크리트를 붓고 굳힌 뒤 흙을 다시 걷어내는 원초적 공법은 인간의 정밀한 통제와 흙의 우연한 붕괴가 결합된 결과물이다. 흙 자국이 적나라하게 남은 표면과 불규칙한 곡면은, 건축가의 완벽한 제어 대신 자연의 우연성을 구조에 각인시키는 이시가미식 화법의 정점이다.

주요 작업

하우스 앤드 레스토랑 (2022)

야마구치현 우베에 위치한 레스토랑 겸 주거 공간으로, 9년이라는 긴 시간에 걸쳐 완성된 지하 동굴 형태의 프로젝트다. 땅을 파낸 구덩이에 철근을 엮고 콘크리트를 타설한 뒤 주변의 흙을 파내어 건물의 뼈대를 완성했다. 매끈하게 정돈된 실내 대신 흙이 묻어나는 거친 표면과 빛이 새어 들어오는 좁은 틈이 결합하여, 인공 건축물이라기보다 원시적인 자연 동굴로 회귀한 듯한 감각을 제공한다.

KAIT 광장 (2020)

가나가와공과대학교 내에 자리한 약 4,110㎡ 규모의 거대한 덮개 공간이다. 실내 기둥을 완벽하게 소거하고 오직 가장자리의 지지대만으로 거대한 얇은 철판 지붕을 지면 가까이 띄워 올렸다. 지붕에는 59개의 틈을 내어 비와 빛을 들이고, 바닥에는 완만한 경사를 부여했다. 지붕이 하중으로 인해 자연스럽게 처지는 곡선은 하늘의 수평선을 건축적으로 재현한 것이며, 실내외의 경계가 완벽히 소거된 초현실적 장소를 구현했다.

워터 가든 (2018)

도치기현 나스의 옛 논밭을 재구성한 장소로, 건물이 전무함에도 건축적 사고의 정수를 보여준다. 인근 개발로 베어질 위기에 처했던 수백 그루의 나무를 촘촘하게 이식하고, 그사이 공간에 크고 작은 인공 연못을 불규칙하게 배열했다. 자연이 스스로 조성한 원시림처럼 보이지만, 치밀한 시각적 계산과 측량을 통해 조성된 고도로 인공적인 정원이자 풍경 건축이다. 2019년 오벨 어워드를 수상하며 조경과 건축의 경계를 허문 걸작으로 평가받는다.

KAIT 공방 (2008)

이시가미의 이름을 세상에 알린 가나가와공과대학교의 학생 작업장이다. 벽이 전혀 없는 2,000㎡의 단일 공간 안에 각기 다른 굵기와 각도를 가진 305개의 흰색 철골 기둥을 무작위로 흩뿌렸다. 구조 계산과 공간의 쓰임새를 병렬로 연산한 이 기둥들은 특정 공간을 구획하는 벽의 역할을 대신하며, 사용자들로 하여금 울창한 자작나무 숲을 거닐며 빈자리를 찾아 작업하는 듯한 공감각을 유도한다.

서펜타인 파빌리온 (2019)

런던 켄싱턴 가든에 매년 세워지는 임시 건축물로, 육중한 검은색 슬레이트 조각들을 무수히 겹쳐 바위 언덕 같은 지붕을 형성했다. 이 거대한 돌 지붕을 가녀린 철제 기둥들로 떠받쳐, 공중에 거대한 지층이 부유하는 듯한 강렬한 대비를 만들어냈다. 대지에서 융기한 자연적 지형처럼 보이나, 낮게 짓눌린 지붕 끝자락으로 인해 동선과 시야가 통제되는 공간의 모순을 보여주기도 한다.

영향 관계

이시가미는 이토 도요에서 세지마 가즈요(SANAA)로 이어지는 현대 일본 건축의 '경량화와 투명성' 계보를 가장 급진적으로 계승하고 비틀어낸 인물이다. SANAA가 유리와 얇은 프레임을 통해 실내외를 흐리게 연결했다면, 이시가미는 구조 자체를 흩어버리거나 대자연의 현상으로 환원하며 그 경계를 완전히 지워버린다.

이러한 극단적인 구조적 실험의 이면에는 사토 준과 같은 천재적인 구조 엔지니어의 협력이 절대적으로 작용했다. 기둥의 두께가 모두 다른 KAIT 공방, 무주(無柱) 공간을 덮은 KAIT 광장의 얇은 철판, 하우스 앤드 레스토랑의 비정형 콘크리트 등은 형태적 상상력과 극한의 구조 계산이 한 몸처럼 얽혀 들어간 결과물이다.

수상·전시 이력

2009년 'KAIT 공방'으로 일본건축학회상을, 2010년 베니스 건축비엔날레에서 황금사자상을 거머쥐며 30대의 나이에 거장의 반열에 올랐다. 2018년 파리 카르티에 현대미술재단에서 열린 단독 회고전 《자유로운 건축》은 정교한 대형 모형을 통해 그의 작품 세계를 하나의 독립된 예술 영역으로 웅변했다. 2019년 런던 서펜타인 파빌리온 건축가 선정 및 오벨 어워드 수상에 이어, 2024년 프레데릭 키슬러 건축·예술상을 거머쥐며 건축과 예술의 경계를 지워내는 파괴적 혁신을 꾸준히 인정받고 있다.

반응과 평가

이시가미 준야는 가벼운 투명성에서 원초적인 질량감까지 물성의 스펙트럼을 자유자재로 넘나들며 건축의 영역을 '조경과 자연 현상'으로 팽창시킨 혁명적인 건축가다. 자연스럽게 흩뿌려진 기둥과 땅을 파낸 동굴 구조는, 건축이 자연을 모방하는 것을 넘어 숲이나 구름처럼 인류가 원초적으로 머물 수 있는 지형이 될 수 있음을 시각적으로 증명한다.

그러나 이토록 자연스럽고 우연해 보이는 결과물을 도출하기 위해서는 기하급수적인 비용, 긴 설계 기간, 그리고 극한의 하이테크 엔지니어링이 수반된다는 점에서 깊은 아이러니를 품고 있다. '워터 가든'의 야생적인 풍경 역시 수백 그루의 나무를 억지로 이식한 고도의 인공적 통제의 결과물이며, '하우스 앤드 레스토랑'의 흙 거푸집 공법은 보편적인 주거나 상업 시설에 결코 반복 적용될 수 없는 막대한 자본과 시간의 사치다. 나아가, 불규칙한 바닥의 경사도나 낮게 눌린 지붕처럼 형태적 자유를 우선시한 공간은 노약자나 장애인 등 이동 약자의 피난과 접근성이라는 사회적 책무와 정면으로 충돌한다. 건축을 시각적 예술이나 설치 미술의 차원으로 격상시킨 점은 위대하지만, 낭만적인 이미지 이면에 숨겨진 기능적, 경제적 폭력성을 어떻게 상쇄할 것인지는 이시가미 건축이 감당해야 할 숙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