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너선 아이브 (Jonathan Ive)

개요

<img src="https://d2xsxph8kpxj0f.cloudfront.net/310519663429662740/ffcjRzrXsTCDKgX6s8aDwC/articles/1783309453343-67fd463216e9576b.webp" alt="조나단 아이브" data-orientation="landscape_16_10" data-original-src="https://d2xsxph8kpxj0f.cloudfront.net/310519663429662740/ffcjRzrXsTCDKgX6s8aDwC/articles/1783294880801-d83528c1f6dd781d.webp" data-source-url="https://appleinsider.com/articles/22/05/09/jony-ive-reveals-his-12-favorite-design-tools" width="600" />

출처: Apple Insider조나단 아이브(Jonathan Ive, 1967년~)는 영국 출신 산업디자이너다. 국내에서는 조니 아이브라는 이름으로도 널리 알려졌다. 1992년 애플에 합류해 아이맥과 아이팟, 아이폰, 아이패드, 맥북, 애플 워치를 만든 산업디자인팀을 이끌었고, 이후 인터페이스와 패키지, 애플스토어, 애플 파크까지 담당 범위를 넓혔다.

아이브는 제품의 외형만 다듬지 않았다. 소재와 제조 공정, 물리 조작부와 화면, 패키지와 매장이 같은 기준으로 움직이도록 만들었다. 복잡한 기술을 사용자가 쉽게 다룰 수 있는 형태로 정리하고, 여러 부품을 하나의 물건처럼 보이게 만드는 방식이 애플의 디자인 체계로 자리 잡았다.

그의 작업은 미니멀리즘으로 자주 묶이지만, 장식을 없애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 제품이 어떻게 작동하고 손에 어떻게 닿는지 검토한 뒤, 사용자가 의식하지 않아도 되는 요소를 줄이는 접근에 가깝다. 단순한 결과 뒤에는 반복되는 모형 제작과 소재 실험, 정밀한 제조 공정이 있었다.

애플 제품은 아이브 한 사람이 단독으로 만든 결과가 아니다. 그는 산업디자인팀과 인터페이스 디자이너, 엔지니어, 소재 전문가, 제조 협력사가 같은 방향으로 움직이도록 이끈 디자인 리더였다.

2019년 애플을 떠난 뒤에는 마크 뉴슨과 LoveFrom을 설립했다. 그래픽과 공간, 자동차, 환경 프로젝트, 인공지능 제품으로 활동 범위를 넓히며 애플에서 만든 통합 설계 방식을 다른 산업으로 옮기고 있다.

약력·연혁

제작을 가르친 아버지와 뉴캐슬의 교육

아이브는 1967년 런던에서 태어났다. 아버지 마이클 아이브는 은세공과 디자인 교육에 몸담았으며, 아이브가 어린 시절부터 물건을 분해하고 직접 만들도록 이끌었다. 완성된 형태보다 재료와 공구, 조립 과정을 먼저 살피는 습관도 이 시기에 자리 잡았다.

1985년 뉴캐슬 폴리테크닉에 들어가 제품디자인을 공부했다. 현재의 노섬브리아대학교다. 학교에서는 형태와 컬러, 재료와 제조 공정이 제품의 성격을 어떻게 바꾸는지 배웠다.

졸업 무렵 매킨토시를 접한 뒤에는 기계를 잘 다루지 못하는 사람도 사용할 수 있도록 설계한 제품과 인터페이스에 관심을 갖게 됐다.

탠저린과 애플 합류

졸업 뒤에는 런던 디자인 컨설팅 회사 탠저린(Tangerine)에 합류해 파트너로 일했다. 세면대와 도자기, 전동공구, 텔레비전처럼 서로 다른 제품을 맡으며 외부 디자이너와 제조사가 협업하는 과정을 익혔다.

컨설팅 업무에서는 제품의 구조와 일정, 비용이 이미 정해진 뒤 외관을 다듬는 경우가 많았다. 아이브는 이러한 방식으로는 제품 전체를 바꾸기 어렵다고 느꼈다.

탠저린은 애플의 디자인 프로젝트에도 참여했다. 아이브는 이 작업을 계기로 애플의 제안을 받아들여 1992년 캘리포니아로 이주했다.

잡스의 복귀와 아이맥

아이브가 합류한 1990년대 초 애플은 제품 종류가 지나치게 많았고, 디자인팀의 영향력도 제한적이었다. 제품마다 방향이 달랐고 회사가 무엇을 만들고 왜 만드는지 분명하지 않았다.

1997년 스티브 잡스가 경영에 복귀하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잡스는 제품군을 줄이고 산업디자인팀을 제품 개발의 중심으로 올렸다.

1998년 아이브는 산업디자인 부사장에 올랐고, 같은 해 아이맥 G3가 출시됐다. 이 제품은 애플의 새 방향을 처음 보여주며 디자인팀이 경영 회복의 핵심 조직으로 자리 잡는 계기가 됐다.

음악과 모바일 기기로의 확장

아이맥 이후 애플은 컴퓨터와 주변기기를 하나의 제품군으로 정리했다. 2001년에는 아이팟을 출시하며 디지털 음악기기로 영역을 넓혔고,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패키지를 함께 설계하는 방식이 본격화됐다.

2007년 아이폰은 애플의 중심을 개인용 컴퓨터에서 모바일 기기로 옮겼다. 2010년 아이패드는 같은 조작 체계를 더 큰 화면으로 넓혔다.

이 시기 아이브의 디자인팀은 하드웨어를 맡았고, 인터페이스팀과 엔지니어링 조직은 화면과 조작, 내부 구조를 함께 개발했다. 제품과 운영체제, 서비스가 같은 방향으로 움직이는 애플의 개발 방식도 이 과정에서 굳어졌다.

제조 공정을 디자인으로 끌어들이다

아이브는 새로운 형태를 그린 뒤 생산 방법을 찾기보다, 새로운 가공 기술이 어떤 제품을 가능하게 하는지부터 살폈다.

플라스틱과 금속을 함께 성형하고, 레이저로 용접하며, 알루미늄 블록을 정밀하게 절삭하는 공정이 제품의 형태와 구조를 직접 바꿨다.

2008년 유니바디 맥북을 기점으로 절삭 알루미늄과 유리, 정밀한 접합부가 애플 제품 전반에 널리 적용됐다. 애플은 생산 설비와 소재 기술에 먼저 투자하고 이를 여러 제품군으로 확대했다.

인터페이스와 공간으로 넓어진 역할

2012년 아이브는 산업디자인과 함께 애플의 휴먼 인터페이스 디자인도 지휘하게 됐다.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의 외관을 한 조직 안에서 더 긴밀하게 맞추기 시작한 것이다.

2013년 공개된 iOS 7은 이러한 조직 변화가 처음 드러난 결과였다. 이후 아이브의 담당 범위는 패키지와 애플스토어, 애플 파크 같은 건축 프로젝트까지 넓어졌다.

2015년에는 최고디자인책임자인 CDO에 올랐다. 제품 한 개의 외형보다 애플이라는 기업이 만들고 보여주는 모든 접점을 관리하는 역할에 가까웠다.

LoveFrom의 설립

아이브는 2019년 애플을 떠나 마크 뉴슨과 LoveFrom을 설립했다. LoveFrom은 산업디자이너와 그래픽·인터랙션 디자이너, 건축가, 엔지니어, 작가가 프로젝트에 따라 함께 일하는 크리에이티브 컬렉티브다.

출범 초기에는 애플과도 협업했고, 이후 에어비앤비와 영국 왕실, 환경 프로젝트, 럭셔리와 모빌리티 분야로 작업을 넓혔다.

LoveFrom은 작업 과정과 조직 구성을 자세히 공개하지 않는다. 결과물이 발표된 뒤에야 참여 범위가 알려지는 경우가 많다.

인공지능과 자동차

아이브와 LoveFrom은 2020년대 중반부터 인공지능 제품과 사용 방식을 연구하기 시작했다. 애플 출신 디자이너와 엔지니어가 참여한 별도 팀도 구성됐으며, 이후 OpenAI와의 협업으로 이어졌다.

LoveFrom은 독립 조직으로 남아 제품과 인터페이스, 크리에이티브 전반에 참여하고 있다. 기존 스마트폰과 컴퓨터 화면을 그대로 답습하지 않는 인공지능 사용 방식을 찾는 것이 핵심 과제로 알려졌다.

페라리와도 장기 협업을 진행했다. 이 작업은 아이브가 애플 이후 자동차의 외관과 실내, 인터페이스를 함께 다룬 프로젝트로 이어졌다.

디자인 철학·시그니처

복잡함을 줄이는 과정

아이브가 말하는 단순함은 기능과 버튼을 무조건 없애는 일이 아니다. 사용자가 제품을 이해하는 데 방해가 되는 선택지와 구조를 줄이고, 남은 요소가 자연스럽게 이어지도록 만드는 과정이다.

단순해 보이는 제품일수록 내부에서는 더 많은 부품과 공정이 맞물릴 수 있다. 아이브는 사용자가 기술의 복잡함을 직접 떠안지 않게 만드는 것을 디자인팀의 역할로 봤다.

무엇을 더할지보다 어떤 과정을 줄이고 어떤 조작을 하나로 합칠지를 먼저 검토했다. 형태의 간결함은 이러한 판단을 거친 결과였다.

한 덩어리로 보이는 제품

아이브가 이끈 애플 제품은 여러 부품을 조립했더라도 하나의 덩어리처럼 보이는 경우가 많다. 나사와 경첩, 배터리 덮개, 통풍구, 연결부를 시야에서 줄이고 외곽선과 표면이 끊기지 않게 정리했다.

둥근 모서리와 연속된 표면도 반복해서 사용했다. 날카로운 직육면체를 그대로 두기보다 손에 닿는 가장자리를 완만하게 다듬고, 화면과 본체 사이의 경계를 줄였다.

이러한 구성은 제품을 단단하고 정밀하게 보이게 했다. 작은 틈과 모서리까지 하나의 질서로 맞추는 작업이 애플 제품의 인상을 결정했다.

소재와 제조 공정

아이브의 팀은 소재를 제품 위에 덧붙이는 장식으로 보지 않았다. 플라스틱의 투명도와 탄성, 알루미늄의 절삭성과 열전도, 유리의 반사와 촉감이 형태와 구조를 함께 결정하도록 설계했다.

새로운 소재를 사용하려면 금형과 절삭 장비, 접착과 용접, 표면처리도 함께 바뀌어야 했다. 따라서 소재 선택은 컬러와 촉감뿐 아니라 생산 설비와 원가, 내구성까지 바꾸는 결정이었다.

아이브의 역할은 좋은 소재를 고르는 데서 끝나지 않았다. 같은 결과를 수백만 대의 양산품에서 반복할 수 있도록 제조 체계를 만드는 과정에도 깊게 관여했다.

손으로 만드는 프로토타입

아이브는 화면 속 렌더링보다 실제 크기의 모형과 시제품을 중요하게 여겼다. 손에 잡히는 제품은 두께와 무게, 모서리, 버튼의 위치를 몸으로 확인해야 하기 때문이다.

애플 디자인 스튜디오에서는 크기와 곡률, 무게가 조금씩 다른 모형을 반복해서 만들었다. 겉으로 거의 같아 보여도 손에 쥐었을 때 무게중심과 압력은 다를 수 있었다.

이러한 과정은 많은 아이디어를 빠르게 내놓는 방식보다 하나의 형태를 오래 다듬는 작업에 가까웠다. 작은 차이를 계속 수정해 다른 대안이 떠오르지 않을 만큼 자연스러운 상태를 찾는 것이 목표였다.

하드웨어와 인터페이스의 연결

아이브는 물리적인 제품과 화면을 별개의 분야로 나누지 않았다. 사용자는 기기를 잡고 버튼을 누르며 화면을 보기 때문에 외형과 인터페이스가 같은 조작 흐름을 만들어야 한다고 봤다.

물리 조작부를 돌리거나 누르는 동작이 화면의 움직임과 자연스럽게 이어지도록 만들고, 하드웨어의 얇은 층과 반투명 소재를 화면의 레이어와 전환 효과로 확장했다.

제품과 운영체제를 따로 꾸미지 않고, 손의 움직임과 화면 반응까지 하나의 경험으로 묶는 것이 핵심이었다.

제품에서 패키지와 공간까지

아이브가 이끈 애플 디자인은 제품 한 개에서 끝나지 않았다. 제품에서 정한 재료와 비례, 접합 기준을 패키지와 매장, 건축까지 넓혔다.

상자를 열 때 부품이 나타나는 순서와 종이의 두께, 케이블을 감는 방식도 제품 사용의 시작으로 다뤘다. 매장과 사무공간에서는 유리와 석재, 목재, 금속을 제품과 비슷한 방식으로 정리했다.

이 접근은 서로 다른 접점에서도 애플이라는 브랜드를 한눈에 알아볼 수 있게 만들었다.

팀이 만드는 디자인

아이브는 개인 디자이너의 서명보다 팀이 함께 작업할 수 있는 환경을 중요하게 여겼다. 애플의 산업디자인팀은 큰 스튜디오에서 모형과 아이디어를 공유하며 한 제품을 함께 다듬었다.

산업디자이너와 인터페이스 디자이너, 기계·전기 엔지니어, 소재 연구자, 제조 전문가가 같은 제품에 참여했다. 아이브는 이들의 판단이 한 방향으로 모이도록 우선순위와 기준을 정했다.

그의 리더십은 모든 형태를 직접 그리는 데 있지 않았다. 여러 전문 분야가 제품 하나 안에서 충돌하지 않도록 묶는 데 있었다.

주요 작업

아이맥 G3

아이맥 G3(iMac G3, 1998)는 스티브 잡스가 애플에 복귀한 뒤 처음 내놓은 주요 소비자용 컴퓨터다. 아이브가 이끈 디자인팀은 모니터와 본체를 하나로 합치고 반투명한 본다이 블루 플라스틱을 적용했다.

손잡이는 컴퓨터를 옮기는 기능을 넘어 기계를 만지고 들어도 되는 친근한 물건으로 보이게 했다. 내부 부품이 흐릿하게 드러나는 외장은 복잡한 구조를 완전히 감추지 않으면서도 하나의 부드러운 덩어리로 묶었다.

아이맥은 베이지와 회색이 많았던 컴퓨터 시장에 컬러와 투명 소재를 퍼뜨렸다. 이후 여러 컬러가 추가되면서 컴퓨터도 가구와 패션처럼 취향에 따라 고르는 제품으로 받아들여졌다.

아이팟

아이팟(iPod, 2001)은 디지털 음악 파일을 저장하고 휴대하는 과정을 흰색 직사각형과 원형 조작부로 정리한 제품이다.

클릭 휠은 긴 곡 목록을 손가락의 회전으로 빠르게 훑게 했다. 보이지 않는 디지털 파일을 간단한 물리 동작으로 다루게 만든 것이다.

흰색 본체와 이어폰은 당시 검정과 회색이 많았던 휴대용 전자제품 사이에서 강하게 구분됐다. 아이팟의 디자인은 기기뿐 아니라 아이튠즈와 충전 케이블, 패키지, 광고 이미지까지 하나의 체계로 이어졌다.

아이폰과 아이패드

아이폰(iPhone, 2007)은 전면의 대부분을 멀티터치 화면으로 채우고 물리 키패드와 스타일러스를 없앴다. 상황에 따라 버튼과 키보드가 달라지는 화면을 사용하면서 휴대전화의 형태도 하나의 유리판에 가까워졌다.

화면이 꺼졌을 때는 전면 전체가 하나의 어두운 면으로 보이도록 버튼과 센서의 존재를 줄였다. 이후 세대는 유리와 금속의 결합, 둥근 모서리, 얇은 경계를 반복해서 다듬었다.

아이패드(iPad, 2010)는 같은 멀티터치 구조를 더 큰 화면으로 확장했다. 키보드와 경첩을 없애고 콘텐츠를 손으로 직접 다루는 얇은 판을 새로운 개인용 컴퓨터로 제시했다.

맥북 유니바디

유니바디 맥북(Unibody MacBook, 2008)은 여러 금속 부품을 조립하던 노트북 본체를 하나의 알루미늄 블록에서 깎아 만든 제품이다.

부품 수를 줄이면서 본체의 강성과 정밀도를 높였고, 나사와 이음새가 많았던 기존 노트북보다 단단한 한 덩어리처럼 보이게 했다.

넓은 유리 트랙패드는 표면 전체를 버튼으로 사용해 물리 부품을 더 줄였다. 유니바디는 애플 제품의 외형뿐 아니라 대규모 CNC 절삭 설비를 중심으로 한 제조 전략도 바꿨다.

iOS 7

iOS 7(iOS 7, 2013)은 아이브가 애플의 휴먼 인터페이스 디자인까지 맡은 뒤 발표한 첫 대규모 운영체제 개편이다.

가죽과 종이, 금속을 흉내 낸 그래픽을 줄이고 얇은 글자와 단순한 아이콘, 밝은 컬러, 반투명한 레이어를 사용했다. 화면의 깊이는 입체적인 장식보다 애니메이션과 겹쳐진 층으로 표현했다.

하드웨어와 화면이 더 잘 어울린다는 반응을 얻었지만, 글자가 가늘고 버튼의 경계가 약해 정보를 구분하기 어렵다는 비판도 받았다. 이후 버전은 기본 방향을 유지하면서 대비와 조작 단서를 보완했다.

애플 워치

애플 워치(Apple Watch, 2014)는 컴퓨터를 손목에 착용하는 물건으로 바꾼 프로젝트다. 하나의 형태만 제시하지 않고 크기와 소재, 밴드, 워치 페이스를 조합할 수 있는 제품군으로 설계했다.

디지털 크라운은 손가락으로 작은 화면을 계속 가리지 않고 목록을 이동하고 확대할 수 있도록 만든 조작부다. 전통적인 시계의 용두를 디지털 인터페이스에 맞게 다시 사용했다.

알루미늄과 스테인리스, 금을 사용한 컬렉션은 같은 전자제품을 스포츠 기기와 일상용 시계, 고가 장신구로 나눴다. 고가의 골드 에디션은 기술제품의 짧은 교체 주기와 럭셔리 시계의 장기 가치가 충돌한다는 논쟁도 남겼다.

애플 파크와 애플스토어

애플 파크(Apple Park, 2017)는 스티브 잡스가 구상하고 아이브와 Foster + Partners가 함께 설계한 애플 본사다.

거대한 원형 건물을 곡면 유리로 둘러싸고, 내부와 외부의 경계를 줄여 직원이 공원과 사무실을 오갈 수 있게 했다. 유리와 알루미늄, 석재, 목재는 애플 제품과 비슷한 수준으로 정밀하게 맞췄다.

애플스토어는 얇은 지붕과 넓은 유리 외벽, 단순한 목재 테이블을 사용하고 제품 판매와 교육, 행사를 하나의 공간에 담았다.

제품에서 사용한 재료와 디테일을 건축과 매장으로 넓히며 애플의 브랜드를 도시 공간까지 확장한 작업이다.

찰스 3세 대관식 엠블럼

찰스 3세 대관식 엠블럼(Coronation Emblem, 2023)은 조나단 아이브와 LoveFrom이 영국 왕실을 위해 만든 공식 그래픽이다.

잉글랜드의 장미와 스코틀랜드의 엉겅퀴, 웨일스의 수선화, 북아일랜드의 토끼풀을 모아 성 에드워드 왕관의 형태를 만들었다.

왕실의 전통적인 상징을 자연의 형태와 밝은 컬러로 다시 정리했으며, 예식과 공연, 거리 행사, 디지털 화면, 기념품에 폭넓게 사용됐다.

페라리 루체와 OpenAI

페라리 루체(Ferrari Luce, 2026)는 LoveFrom의 조나단 아이브와 마크 뉴슨이 페라리 디자인팀과 함께 만든 전기차 프로젝트다.

외관과 실내, 인터페이스를 따로 나누지 않고 같은 기준으로 개발했으며, 운전자가 직접 만지는 조작부와 소재, 화면의 관계를 함께 다뤘다.

OpenAI와의 협업은 아직 구체적인 제품이 모두 공개되지 않았다. 아이브와 LoveFrom은 기존 스마트폰과 컴퓨터 화면을 그대로 답습하지 않는 인공지능 제품과 사용 방식을 연구하고 있다.

영향 관계

마이클 아이브와 제작 교육

아이브의 아버지 마이클 아이브는 은세공과 디자인 교육을 통해 아들이 물건을 직접 만들고 분해하도록 이끌었다.

완성된 외형보다 재료와 공구, 제작 순서를 먼저 살피는 태도는 아이브의 작업 전반에 남았다. 입체 제품을 설계하려면 손으로 모형을 만들며 무게와 재료, 구조를 확인해야 한다는 입장도 이 제작 중심 교육과 맞닿아 있다.

디터 람스와 브라운

아이브의 작업은 디터 람스가 브라운에서 만든 제품과 자주 비교된다. 장식을 줄인 형태와 명확한 조작부, 제품군 전체를 묶는 규칙에서 닮은 점이 많다.

아이브는 람스의 영향을 공개적으로 인정했다. 람스가 전자제품의 형태와 조작 질서를 만들었다면, 아이브는 이를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패키지, 매장까지 넓혔다.

두 사람의 관계는 단순한 외형 모방보다 제품군 전체를 하나의 원칙으로 관리하는 방식에서 더 분명하게 나타난다.

스티브 잡스

스티브 잡스는 아이브가 애플에서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게 만든 가장 중요한 협업자다. 잡스는 디자인팀을 경영진 가까이에 두고 제품 종류와 조직의 목표를 줄여 한 문제에 집중하게 했다.

두 사람은 완성된 외형을 검토하는 관계보다 제품의 출발점부터 질문을 함께 만드는 관계에 가까웠다. 무엇을 추가할지보다 왜 이 제품이 필요한지, 사용자가 어떤 과정을 겪어야 하는지를 먼저 논의했다.

잡스가 사업과 제품 방향을 정하고 조직의 결정을 밀어붙였다면, 아이브는 그 방향을 형태와 소재, 조작 방식, 제조 공정으로 구체화했다.

마크 뉴슨과 LoveFrom

아이브와 마크 뉴슨은 애플 재직 시절부터 자선 경매 프로젝트와 애플 워치 개발을 통해 협업했다. 두 사람은 자동차와 가구, 시계, 정밀 제조에 대한 관심을 공유했다.

LoveFrom에서는 뉴슨이 아이브의 전자제품 중심 경력을 자동차와 주얼리, 가구로 넓혔다. 아이브는 디지털 제품과 통합 설계 경험을 더했다.

LoveFrom은 특정 분야의 디자인 사무소보다 여러 전문 인력이 프로젝트에 따라 모이는 조직을 택했다. 애플의 긴밀한 디자인팀을 독립 스튜디오 형태로 다시 만든 구조에 가깝다.

애플 디자인팀과 후대 산업디자인

아이브는 애플에서 에번스 행키와 리처드 하워스, 탕 탄을 비롯한 산업디자이너와 오랫동안 일했다. 앨런 다이가 이끄는 휴먼 인터페이스팀과 수많은 엔지니어, 제조 전문가도 함께 참여했다.

이 팀이 만든 알루미늄 본체와 유리 화면, 둥근 모서리, 적은 수의 버튼은 전자제품 업계의 기본 형태가 됐다. 컴퓨터와 스마트폰뿐 아니라 가전과 자동차 실내에서도 비슷한 소재와 인터페이스 구성을 쉽게 찾을 수 있다.

영향이 널리 퍼질수록 내부 구조와 사용 과정은 충분히 정리하지 않은 채 버튼을 없애고 표면만 매끈하게 만드는 제품도 늘었다. 아이브의 작업은 산업디자인의 기준이 됐지만, 피상적인 모방도 함께 퍼뜨렸다.

수상·전시 이력

디자이너 오브 더 이어

런던 디자인 뮤지엄은 2003년 처음 제정한 디자이너 오브 더 이어의 수상자로 조나단 아이브를 선정했다.

아이맥과 아이팟을 통해 컴퓨터와 디지털 음악기기의 형태와 사용 방식을 바꾼 점을 높이 평가했다.

디자인 뮤지엄은 아이브의 주요 제품을 소장하고 있으며, 제품의 외형뿐 아니라 재료와 제조 공정, 디자인팀의 작업 방식도 함께 다뤄왔다.

왕실과 디자인계의 서훈

아이브는 2003년 영국 왕립예술협회가 수여하는 로열 디자이너 포 인더스트리에 임명됐다. 2004년에는 벤저민 프랭클린 메달을 받았다.

영국 정부는 2006년 아이브에게 CBE를 수여했고, 2012년에는 디자인과 기업에 기여한 공로로 기사작위를 수여했다.

옥스퍼드대학교와 케임브리지대학교, 로드아일랜드 디자인스쿨, 왕립예술학교 등에서도 명예 학위를 받았다.

왕립예술학교 총장

아이브는 2017년 영국 왕립예술학교의 총장으로 임명됐다. 학교를 대외적으로 대표하고 교육 방향을 지원하는 역할이다.

왕립예술학교에서는 학생의 환경 문제 해결을 지원하는 테라 카르타 디자인 랩을 찰스 3세와 함께 추진했다.

아이브와 LoveFrom은 선정된 팀에 자문을 제공하며 제품디자인을 환경과 사회 문제로 넓히는 활동을 이어왔다.

반응과 평가

위상과 영향

조나단 아이브는 산업디자인을 기술기업의 의사결정 중심으로 끌어올린 인물로 평가받는다. 제품의 외형을 다듬는 디자이너가 최고경영자와 함께 제품군과 기술, 생산 설비, 브랜드 공간을 결정하는 위치에 올랐다.

아이맥은 컴퓨터에 컬러와 투명성을 넣었고, 아이팟은 디지털 음악을 다루는 물리적인 조작 방식을 만들었다. 아이폰과 아이패드는 멀티터치 기기의 기본 형태를 정착시켰고, 맥북 유니바디는 정밀 절삭 알루미늄을 소비자 전자제품의 대표적인 제조 방식으로 퍼뜨렸다.

애플의 디자인은 제품과 인터페이스, 패키지, 매장이 서로 다른 인상을 주지 않도록 묶었다. 오늘날 기술기업이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서비스, 공간을 함께 관리하는 방식에는 아이브가 이끈 애플의 영향이 크게 남아 있다.

디자인 반응

아이브의 디자인을 지지하는 쪽은 복잡한 기술을 사용자가 쉽게 다룰 수 있는 형태로 정리했다고 평가한다. 불필요한 부품과 조작을 줄이고, 제품을 처음 접한 사람도 무엇을 잡고 어디를 눌러야 하는지 알아차리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제품을 한 덩어리처럼 보이게 만드는 형태와 정교한 접합부, 실제 소재의 촉감을 살린 표면도 높은 평가를 받았다. 애플 제품은 멀리서 형태를 알아볼 수 있으면서 가까이에서는 작은 틈과 모서리까지 세밀하게 맞췄다는 인상을 줬다.

반대쪽에서는 형태가 지나치게 매끈하고 무표정하다고 본다. 사용자가 물건을 직접 바꾸고 흔적을 남길 여지가 적고, 완성된 제품의 규칙에 사람이 맞춰야 한다는 반응도 있다.

비판

아이브 시대의 애플은 얇고 이음새가 적은 제품을 만들면서 배터리와 저장장치, 주요 부품을 사용자가 교체하기 어려운 방향으로 움직였다. 접착제와 특수 나사, 통합된 본체는 제품을 단단하게 만들었지만 수리와 업그레이드를 어렵게 했다.

얇음을 앞세운 설계가 항상 사용성을 높인 것도 아니었다. 적은 수의 포트와 작은 배터리, 발열 문제처럼 외형과 휴대성을 위해 기능과 내구성이 손해를 봤다는 지적도 나왔다.

아이브의 디자인이 성공하면서 버튼과 설명을 줄이는 일이 곧 좋은 디자인처럼 받아들여졌다. 자동차와 가전에서도 물리 조작부를 화면 안에 넣는 방식이 늘었지만, 운전하거나 장갑을 낀 상태에서는 오히려 사용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았다.

iOS 7도 비슷한 논쟁을 만들었다. 화면을 가볍게 정리했지만 버튼과 일반 텍스트의 경계가 흐려지고 정보의 중요도를 구분하기 어려워졌다는 비판을 받았다.

아이폰은 세계의 소통과 정보 접근 방식을 바꿨지만, 화면 의존과 짧은 교체 주기, 전자폐기물도 늘렸다. 이를 아이브 개인의 책임으로만 돌릴 수는 없지만, 매일 오랜 시간 사용하는 기기를 만든 디자이너와 기업의 책임은 계속 논의되고 있다.

‘천재 디자이너 조나단 아이브’라는 서사도 실제 개발 과정을 단순하게 만든다. 아이브는 강한 방향을 제시하고 조직을 묶은 리더였지만, 애플 제품은 산업디자이너와 인터페이스 디자이너, 엔지니어, 소재 업체, 제조 현장이 함께 만든 결과다.

LoveFrom 이후에는 프로젝트의 범위와 아이브가 실제로 맡은 역할이 자세히 공개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높은 명성과 폐쇄적인 운영 방식이 결합하면서 결과물보다 아이브의 이름이 먼저 소비된다는 지적도 있다.

그럼에도 아이브가 남긴 가장 큰 변화는 둥근 모서리나 알루미늄 마감 하나가 아니다. 기업이 제품과 인터페이스, 제조, 패키지, 공간을 따로 결정하지 않고 하나의 체계로 묶도록 만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