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느 강 (Jeanne Gang)
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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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John David Pittman
잔느 강(Jeanne Gang)은 건물의 외피와 구조를 거주자 간의 시선, 일조, 조망, 바람, 그리고 생태적 조건에 따라 세밀하게 깎고 조율하는 미국의 건축가다. 1964년 미국 일리노이주 출생으로 하버드대학교 디자인대학원(GSD)에서 수학했으며, 로테르담 OMA를 거쳐 1997년 시카고에 자신의 이름을 내건 '스튜디오 강(Studio Gang)'을 설립했다. 현재 시카고를 거점으로 뉴욕, 샌프란시스코, 파리 등지에서 대규모 도시 프로젝트를 전개하고 있다.
그의 건축은 특정한 조형미를 설정해 두고 그 안에 프로그램을 욱여넣는 방식을 배격한다. '아쿠아 타워'의 물결치는 발코니나 '세인트 레지스 시카고'의 기하학적 덩어리들은 조각적인 웅장함을 뽐내지만, 그 형태의 근원은 철저히 각 세대의 조망권, 테라스의 일조량, 도시의 보행 동선 등을 연산한 물리적 결과물이다.
초고층 건축으로 가장 먼저 대중에게 각인되었으나, 박물관, 대학, 보트하우스, 생태 공원 등 공공 인프라 설계에도 주력한다. 뉴욕 자연사박물관의 '길더 센터'에서는 협곡을 닮은 숏크리트 아트리움을 통해 단절된 기존 열 개 동의 동선을 유기적으로 재조직했다. 건축물의 고립된 조형보다 인간과 자연, 인간과 인간이 교차하는 사회적·생태적 관계망을 직조하는 것이 스튜디오 강을 관통하는 굳건한 축이다.
약력·연혁
일리노이대학교와 하버드대학교에서 건축을 배운 후 렘 콜하스의 OMA에 합류한 그는 대규모 도시 담론과 복잡한 프로그램 조직법을 흡수했다. 1997년 독립 후 시카고에 사무소를 차리고 초기에는 극장과 주택 등 비교적 작은 프로젝트에 집중하며 재료 실험과 실물 크기의 목업(Mock-up) 연구에 몰두했다.
그를 단숨에 글로벌 스타덤에 올린 결정적 전환점은 2010년 완공된 '아쿠아 타워'다. 콘크리트 슬래브를 층마다 다른 길이와 각도로 튀어나오게 해 건물의 외피가 지형처럼 굽이치는 이 82층 복합타워는, 획일적인 유리 커튼월 일색이던 시카고 초고층 마천루 씬에 충격적인 생태적, 사회적 해법을 제시했다.
이후 세인트 레지스 시카고를 통해 마천루의 지상을 보행로로 비워내는 등 도시적 차원의 공공성 실험을 이어나갔다. 2010년대에 접어들며 박물관, 생태 공원, 대학 시설 등 커뮤니티 거점 시설로 포트폴리오를 확장했다. 특히 2023년 뉴욕 미국자연사박물관 증축관인 '길더 센터'를 성공적으로 개관하며 문화시설 분야에서도 독보적 역량을 입증했다. 하버드대학교 GSD 교수로도 재직 중이며, 기존 낡은 건축물에 새로운 구조와 쓸모를 접붙이는 방식을 탐구한 저서 《건축적 접붙이기의 기술》(2024)을 출간하며 이론적 성취도 쌓고 있다.
디자인 철학·시그니처
조건을 연산한 유기적 외형
잔느 강의 건축 형태는 작가적 에고(Ego)에서 뿜어져 나오는 자의적 곡선이 아니다. 아쿠아 타워의 굽이치는 실루엣은 오로지 일조량, 조망, 이웃과의 거리를 층마다 수치화해 바닥판의 돌출 길이를 변환한 데이터의 궤적이다. 세인트 레지스 시카고 역시 절두추체(잘린 피라미드) 형태의 단위 모듈을 상하로 교차 반복시킨 구조적 필연의 결과다. 다만 이 연산의 결과물이 시각적으로 너무도 강렬하고 압도적이어서, 치밀한 구조와 데이터 연산이라는 본질이 화려한 실루엣에 가려지기도 한다.
커뮤니티와 시선을 조직하는 공간
발코니와 복도를 사적이고 기능적인 면적 이상으로 다룬다. 아쿠아 타워의 불규칙한 발코니는 초고층 아파트임에도 위아래 이웃이 비스듬히 시선을 교환하고 대화할 수 있는 수직적 골목길을 창출했다. 교육 시설과 문화 공간에서도 로비와 계단 참을 넓혀, 목적이 명확하지 않은 사람들도 우연히 마주치고 연대할 수 있는 동선의 교차점을 의도적으로 파놓는다.
생태적 요건의 입면화
스튜디오 강은 조류 충돌을 방지하는 유리 패턴, 태양광 효율을 극대화하는 파사드 깎아내기(Solar Carving), 하천 생태 복원 등을 설계의 1차 조건으로 삼는다. 이는 단순히 녹색 장식을 붙이는 표면적 친환경이 아니라, 창의 굴절, 모서리 각도, 보행로의 경사를 통제해 인간과 조류, 식생의 이동 경로를 구조적으로 조율하는 근원적 방식이다.
1:1 목업과 재료의 물성 탐구
디지털 렌더링에만 의존하지 않고 종이, 콘크리트, 벽돌을 실물 크기(Mock-up)로 시험하며 표면과 구조를 동시에 검증한다. 길더 센터에서는 철근망에 콘크리트를 쏘아붙이는 숏크리트(Shotcrete) 공법을 채택해 거푸집 없이 원시적인 협곡의 질감을 매끄럽게 완성했고, 아커스 센터에서는 장작을 모르타르로 쌓아 올리는 전통 코드우드(Cordwood) 조적 방식을 현대화해 단열 성능과 질감을 동시에 확보했다.
주요 작업
리처드 길더 과학·교육·혁신센터 (2023)
뉴욕 미국자연사박물관에 덧붙여진 약 23만 제곱피트 규모의 초대형 증축 프로젝트다. 물과 바람에 깎인 웅장한 협곡을 빼닮은 5층 높이의 콘크리트 아트리움이 건물의 심장부를 관통한다. 숏크리트 공법으로 빚어낸 거대한 동굴 형태의 공간은, 수십 년간 파편화되어 막다른 길이 속출하던 기존 10개의 박물관 동을 30여 개의 통로로 뚫어내며 관람 동선의 숨통을 틔웠다.
세인트 레지스 시카고 (2021)
시카고 스카이라인을 재편한 101층(약 363m) 규모의 초고층 주거·호텔 타워다. 높이가 각기 다른 3개의 덩어리가 유기적으로 맞물려 지탱한다. 잘린 피라미드 모듈의 반복을 통해 평면이 위아래로 넓어지고 좁아짐을 반복하며 여덟 개의 모서리를 파생시켜 채광과 파노라마 조망을 극대화했다. 중앙 타워 하부를 비워 들어 올려 시카고강 리버워크와 공공 공원을 잇는 필로티 보행로를 구축하며 마천루의 거대한 장벽감을 허물어냈다.
아커스 사회정의 리더십센터 (2014)
칼라마주대학교에 위치한 시민 단체 및 리더십 교육 시설이다. 중심 공용 공간에서 세 갈래의 날개처럼 뻗어나간 평면 배치를 띠고 있다. 외벽에는 나무 단면을 쌓아 올리는 코드우드 조적을 활용해 거친 나이테의 물성과 공예적 질감을 드러냈다. 권위적인 정문 대신 세 방향 모두에서 사람들이 동등하게 진입하고 마주치게 하여, 사회정의를 탐구하는 기관의 존재 이유를 동선과 평면으로 번역해 냈다.
아쿠아 타워 (2010)
호텔, 주거, 상업 시설이 혼합된 82층 타워로, 잔느 강이라는 이름을 전 세계 건축계에 각인시킨 마스터피스다. 유리 커튼월의 정형성을 깨고, 일조, 조망, 이웃 간섭을 연산해 각 층 콘크리트 슬래브의 돌출 정도를 파도처럼 무작위로 변주했다. 이 기하학적 파동은 햇빛의 일사를 조절하는 차양인 동시에 훌륭한 전망대 역할을 하며, 초고층 주상복합이 고립된 상자가 아니라 상호 교감하는 수직 지형이 될 수 있음을 증명했다.
네이처 보드워크 앳 링컨파크 동물원 (2010)
시카고 링컨파크 동물원의 기존 인공 연못을 자연 습지 생태계와 공공 산책로로 복원한 프로젝트다. 식생과 경사를 정교하게 다듬어 동물원의 가장자리를 개방형 생태공원으로 전환했다. 구불구불한 목재 산책로와 비정형의 둥근 교육 파빌리온을 배치해 물과 생태계를 입체적으로 조망하도록 이끈다. 거대 건축물보다 물의 흐름과 사람의 발걸음을 먼저 통제하는 조경가적 면모가 돋보인다.
영향 관계
잔느 강은 OMA에서 렘 콜하스의 영향을 받아 거대한 스케일의 프로그램을 조직하는 감각을 체득했으나, 자극적이고 과장된 조형 대신 생태적 논리와 인간의 동선을 형태의 동력으로 삼는 자신만의 노선을 구축했다. 특히 강철 프레임과 사각형 유리 박스로 대변되는 시카고 초고층 건축(시카고파)의 차가운 계보 위에, 물결치는 발코니와 생태적 관점을 접목하며 시카고 마천루의 새로운 진화형을 제시했다. 아쿠아 타워 이후 전 세계 마천루에서 환경 데이터에 기반한 비정형 발코니 파사드가 유행처럼 번진 것은 그의 압도적 영향력을 반증한다.
수상·전시 이력
2011년 문화, 예술, 과학 등 각 분야의 창조적 인재에게 수여되는 미국 내 최고 권위의 맥아더 펠로(MacArthur Fellow, 일명 천재상)로 선정되며 천재성을 공인받았다. 2013년 쿠퍼 휴잇 스미스소니언 디자인 뮤지엄의 내셔널 디자인 어워드 건축 부문을 수상했고, 아쿠아 타워와 세인트 레지스 등 주요 프로젝트는 미국건축가협회(AIA)와 세계초고층도시건축학회(CTBUH) 등에서 연이어 최고상을 휩쓸었다. 현재 하버드대학교 디자인대학원 교수로 재직하며, 친환경적 재료 연구와 건축의 지속가능성에 관한 학술적 헌신을 이어가고 있다.
반응과 평가
잔느 강은 남성 중심의 보수적인 거대 설계 자본 시장에서, 수백 미터에 달하는 초고층 타워 라인업을 주도하는 가장 독보적인 현역 건축가다. 다만 그를 '최고의 여성 건축가'라는 타이틀에만 가둔다면, 그가 집요하게 매달려 온 조류 안전, 생태 복원, 재료의 물성 탐구라는 본질적 성취가 가려질 우려가 있다. 데이터를 형태의 뼈대로 삼는 명확한 논리 구조, 그리고 자연의 거대한 굴곡을 모사한 외관은 일반 대중조차 즉각적으로 경외감을 느끼게 할 만큼 시각적 스펙터클과 공공적 메시지를 동시에 획득했다.
그러나 비판적 시선 또한 공존한다. 아무리 입체적인 발코니가 이웃과의 교류와 생태적 가치를 표방한다 해도, 세인트 레지스 시카고와 아쿠아 타워는 본질적으로 천문학적인 자본이 투입된 최고가 민간 부동산이다. 공공성의 혜택보다 압도적인 조망권이라는 특권이 초고도 자산가들에게 전유된다는 구조적 모순은 극복하기 어렵다. 또한 물결치는 발코니나 거친 협곡 형태 등 기하학적인 조형이 여러 프로젝트에서 관성적으로 반복되면서, 촘촘한 생태적 설계라는 수사가 결국 화려하고 장식적인 브랜드 시그니처를 포장하기 위한 변명에 불과한 것 아니냐는 냉정한 지적도 뒤따른다. 아울러 불규칙한 콘크리트 슬래브와 열교 방지, 방수 등 복잡한 비정형 외벽이 장기적인 유지 보수와 탄소 저감이라는 궁극적인 친환경 목표에 어느 정도 기여하는지는 여전히 검증의 영역으로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