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현준 (Hyunjoon Yoo)

개요

<img src="https://d2xsxph8kpxj0f.cloudfront.net/310519663429662740/ffcjRzrXsTCDKgX6s8aDwC/articles/1786082166541-f057c7c3407380cc.webp" alt="" data-orientation="portrait" data-original-src="https://d2xsxph8kpxj0f.cloudfront.net/310519663429662740/ffcjRzrXsTCDKgX6s8aDwC/articles/1786082173055-d47c6fe19f2e3792.webp" width="600" />

© SCG

유현준은 건축을 사람과 사람, 사람과 자연 사이의 시각적·물리적 관계를 직조하는 인터페이스로 다루는 한국의 건축가이자 교육자다. 연세대학교에서 건축공학을 전공한 뒤 매사추세츠공과대학교(MIT)와 하버드대학교에서 건축 석사를 마쳤다. 현재 홍익대학교 건축도시대학 교수로 재직 중이며, 유현준건축사사무소와 스페이스컨설팅그룹을 이끌고 있다.

그의 설계는 단절된 벽과 방의 구획을 넘어, 사용자들이 서로 시선을 교환하고 다양한 경로로 이동할 수 있는 관계성에 집중한다. 막다른 길 대신 순환하는 복도, 방과 방 사이를 관통하는 내부 창, 시야를 열어주는 테라스와 중정을 통해 인간의 행위가 교차하는 접점을 늘린다.

실무를 이끄는 설계자임과 동시에, 방송과 저술을 통해 난해한 건축 담론을 일상적인 학교, 골목, 공원의 언어로 번역해 낸 대중적인 지식인이기도 하다. 이러한 전방위적 활동은 한국 사회에서 건축에 대한 대중의 심리적 문턱을 크게 낮추었으나, 때로는 실제 완공된 건축물 자체보다 방송에서 파생된 담론이 앞서 소비되는 현상을 낳기도 한다.

약력·연혁

연세대학교 졸업 후 미국으로 건너간 그는 MIT와 하버드대학교 디자인대학원이라는 학술적 엘리트 코스를 밟았다. 이후 리처드 마이어 앤드 파트너스에서의 실무 경험은 백색의 기하학적 볼륨과 치밀한 동선 체계를 체득하는 토대가 되었다. 그러나 귀국 후 자신의 사무소를 설립하면서부터는 서구의 추상적인 백색 상자를 답습하기보다, 마당과 골목, 순환 동선 등 한국 특유의 좁은 도시 지형에 밀착된 해법을 적극적으로 모색하기 시작했다.

2009년 '플로팅 하우스'로 대한민국 젊은건축가상을 수상하며 설계 역량을 공인받은 그는 '머그 학동', '더 보이드' 등 소규모 주택과 공공 프로젝트를 거치며 시각적 관계를 통제하는 설계 문법을 단단하게 다졌다. 학계와 실무를 병행하는 한편 《도시는 무엇으로 사는가》 등 다수의 베스트셀러와 유튜브를 통해 건축을 인문학적 교양 콘텐츠로 격상시켰다. 2020년대에 들어서는 '아페르 한강'과 같은 고급 공동주택, 업무시설, 그리고 스마트시티 제안에 이르기까지 프로젝트의 외연을 대폭 확장하고 있다.

디자인 철학·시그니처

관계 중심의 공간 조율

공간을 단순한 물리적 볼륨이 아니라, 보이드(Void)와 인간의 행위가 맞물려 시각적, 심리적 관계를 파생시키는 장치로 해석한다. 이 추상적인 원칙은 창과 문, 복도의 위치로 구체화된다. 벽 너머의 공간을 시각적으로 인지하게 하거나 엇갈리는 동선을 의도적으로 중첩시킴으로써, 제한된 면적 안에서도 거주자 간의 관계 맺기를 증폭시킨다.

순환하는 동선의 직조

단절된 끝을 맺는 막다른 복도 대신, 방과 방 사이를 여러 갈래로 우회하고 연결하는 순환 동선을 선호한다. '플로팅 하우스'처럼 중앙에 서비스 코어를 밀집시키고 그 둘레를 복도와 테라스가 감싸안게 하여, 거주자가 이동할 때마다 각기 다른 시퀀스와 풍경을 마주하게 한다. 다만 이는 면적의 손실을 유발해 수납공간과 벽면 프라이버시가 희생될 수 있다는 실용적 한계를 띠기도 한다.

마당의 입체적 이식

전통 한옥의 마당을 표면적으로 모방하지 않고, 시선이 교차하는 거리감과 여백의 기능으로 환원하여 수직적인 공동주택 안으로 이식한다. '아페르 한강'의 전 세대에 걸쳐 흙을 담을 수 있는 깊은 테라스를 조성하거나 실내 방 사이를 잇는 내부 창을 둔 것은, 수평적인 마당의 관계성을 수직적인 단면 안에 구겨 넣으려는 시도다.

불리한 대지 조건의 역이용

소음, 일조사선제한, 급경사 등 대지의 부정적 제약을 장애물로 회피하지 않고 조형과 동선을 결정짓는 촉매로 전환한다. 상층부로 갈수록 건물이 깎여야 하는 일조사선제한 규제를 '아페르 한강'의 폭넓은 테라스로 역이용하고, '그리드스케이프'에서는 외부 채광 면적을 극대화하기 위해 평면 자체를 요철 형태로 굴절시켰다.

주요 작업

아페르 한강 (2024)

서울 용산구 서빙고동에 완공된 28세대 규모의 하이엔드 공동주택이다. 일조사선제한을 기회로 삼아 모든 세대에 폭 2m 이상의 깊이감 있는 테라스를 마련하고 흙을 채워 수직 숲을 조성했다. 기둥식 구조를 활용해 평면의 가변성을 높이고 방 사이에 시선이 통하는 내부 창을 신설했다. 한옥의 마당과 단독주택의 개방감을 아파트에 성공적으로 구현했으나, 초고가 분양가와 적은 세대수라는 폐쇄적 조건에 기댄 하이엔드 주거 실험이라는 태생적 한계가 있다.

그리드스케이프 (2024)

서울 서초동 이면도로에 위치한 변호사 사무실 용도의 업무시설이다. 변호사 각자에게 독립된 공간이 필수적인 운영 특성을 반영해, 평면을 톱니바퀴 같은 요철 형태로 설계하여 자연광과 외기 접촉 면적을 극대화했다. 굴곡진 외벽을 따라 작은 발코니를 덧붙여 개별 프라이버시와 개방감을 동시에 충족시켰다. 단, 요철이 심한 평면과 입면은 일반적인 오피스에 비해 공사비, 임대 효율, 방수 등 유지관리 측면에서 불리한 조건을 수반한다.

더 보이드 (2016)

전남 신안 압해읍의 종합복지관 내부에 들어선 대중목욕탕이다. 기능적으로 탕을 나열하는 관행을 깨고, 공간의 중심을 물과 비워진 보이드(Void)로 설정했다. 수면을 둘러싸고 이동하고 머무르도록 동선을 짜, 시골의 평범한 공공 시설에 건축적 긴장감과 관조의 장면을 이식했다. 2016년 대한민국 공공건축상 대상을 받으며 공공 프로젝트의 수작으로 꼽힌다.

플로팅 하우스 (2008)

경기도 양평 강변에 안착한 단독주택으로, 유현준건축사사무소의 기틀을 다진 초기 대표작이다. 주방과 욕실 등 서비스 공간을 코어로 묶고 그 외곽을 복도와 테라스가 순환하도록 설계해, 거주자가 집 안을 배회하며 시시각각 변하는 강변의 풍광을 입체적으로 조망하도록 했다. 이 유연한 순환 동선 실험으로 2009년 대한민국 젊은건축가상을 수상했다.

영향 관계

학창 시절 리처드 마이어 사무소에서 경험한 기하학적 볼륨과 치밀한 동선 통제는 그의 건축 뼈대를 이룬다. 귀국 후 그는 서구의 닫힌 상자형 폼팩터를 한국의 골목길, 한옥의 마당과 같은 지역적 컨텍스트와 교배시켰다. 하버드와 MIT에서 익힌 도시 분석적 사고는 훗날 대중교양서와 방송 콘텐츠로 뻗어나가는 인문학적 확장의 밑거름이 되었다. 특정한 조형적 어휘보다, 난해한 건축을 일반인의 눈높이에 맞춘 '언어적 번역'이야말로 한국 건축계에 미친 유현준의 가장 강력한 영향력이다.

수상·전시 이력

2009년 대한민국 젊은건축가상을 필두로, 머그 학동으로 한국건축가협회 올해의 건축 베스트 7(2013), 더 보이드로 대한민국 공공건축상 대상(2016) 및 독일 디자인 어워드(2018)를 수상했다. 이후 다수의 주택과 공공시설로 시카고 아테나이움 국제건축상과 아키텍처 마스터프라이즈 등 국내외 어워드에 지속적으로 이름을 올리고 있다. 2025년 OAR 미술관으로 세계건축축제 파이널리스트에 오르는 등, 방송 외적인 실무 비중과 건축적 성취를 꾸준히 축적 중이다.

반응과 평가

유현준은 현대 한국 사회에서 가장 막강한 대중적 스피커를 쥔 건축가다. 닫혀 있던 건축 담론을 일상의 골목과 아파트로 끌어내려, 공간이 어떻게 인간의 태도와 관계에 개입하는지를 날카롭게 해부했다. 최근 '아페르 한강', '그리드스케이프' 등 규모 있는 프로젝트가 완공되며, 이론가이자 인플루언서라는 꼬리표를 넘어 실무 건축가로서의 증명을 단단히 해내고 있다. 단점마저 조형의 기회로 뒤집는 설계와, 이를 직관적인 스토리텔링으로 포장하는 설득력은 그의 독보적 장점이다.

그러나 대중 매체를 통해 사회 현상을 공간 구조의 문제로 단순화하는 화법은, 복잡한 사회·경제적 모순마저 건축적 형태로 해결할 수 있다는 환상을 심어줄 수 있어 비평계의 우려를 사기도 한다. 또한, 관계성 회복을 주창하는 그의 건축적 장치들(넓은 테라스, 순환 복도 등)이 최근 초고가 공동주택이나 고급 사옥에서 주로 실현되고 있다는 점은 뼈아픈 역설이다. 자본의 여유가 뒷받침될 때만 작동 가능한 관계의 미학이, 정작 보편적 주거의 대안이 될 수 있느냐는 회의론이 따른다. 아울러 미디어의 스포트라이트가 '건축가 유현준' 개인에게 집중되며, 하나의 프로젝트를 완성하기 위해 분투하는 사무소 내 설계팀과 수많은 협업 파트너들의 존재가 지워지는 현상 역시 경계해야 할 부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