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메 아사오카 (Hajime Asaoka)

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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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FRATELLO

하지메 아사오카(Hajime Asaoka)는 산업디자인을 전공한 뒤 독학으로 시계 제작을 연마해 일본 최초의 자체 투르비용 손목시계를 완성한 독립 시계 제작자다. 1965년 가나가와현 출생으로, 도쿄예술대학 미술학부 디자인과를 졸업하고 1992년 자신의 디자인 사무소를 설립했다. 2005년부터는 외형 디자인을 넘어 무브먼트 설계와 가공까지 직접 통제하는 워치메이커로 전향했다.

그의 시계는 아르데코 양식의 인덱스, 층이 나뉜 다이얼, 콤팩트한 케이스와 대형 밸런스 휠로 요약된다. '쓰나미', '프로젝트 T' 등 공방 라인업에서는 부품 가공과 조립을 직접 수행하며 무브먼트의 구조미를 과시하는 반면, 2019년 론칭한 브랜드 '쿠로노 도쿄(Kurono Tokyo)'에서는 범용 무브먼트를 활용해 자신의 디자인을 보다 넓은 대중에게 제안한다. 이는 한 명의 제작자가 오뜨 오를로제리와 대중적 접근성을 띤 컬렉션을 이원화된 생산 방식으로 영리하게 통제하는 보기 드문 사례다.

약력·연혁

도쿄예술대학에서 산업디자인을 전공한 아사오카는 졸업 후 3D 렌더링과 컴퓨터 그래픽을 실무에 선제적으로 도입한 제품 디자이너로 활동했다. 1990년대 시계 디자인 의뢰를 수행하며 외형 설계만으로는 기계적 구조를 통제할 수 없다는 한계를 절감했고, 조지 대니얼스의 저서와 기계 공학 자료를 바탕으로 시계 제작을 독학하기 시작했다. 선반과 밀링 머신을 직접 다루며 2005년 첫 프로토타입을 완성한 그는, 정통 시계학교나 스위스 매뉴팩처 수련 과정을 거치지 않고도 2009년 일본 독립 제작자 최초로 자체 설계한 '투르비용 #1'을 발표하며 파란을 일으켰다. 이후 '쓰나미', '프로젝트 T' 등을 연이어 선보이며 2015년 독립 시계 제작자 아카데미(AHCI) 정회원으로 입성, 일본 내 독립 워치메이킹의 존재감을 국제 무대에 각인시켰다. 2016년에는 시계 제작 기반을 연결하는 '프리시전 워치 도쿄'를 설립했으며, 2019년에는 자신의 미학을 대중적인 가격대로 확장한 브랜드 '쿠로노 도쿄(Kurono Tokyo)'를 론칭해 아오야마와 상하이에 살롱을 여는 등 독자적인 브랜드 비즈니스로 영역을 성공적으로 확장했다.

디자인 철학·시그니처

무브먼트와 외형의 통합 설계

산업 디자이너 출신답게 케이스를 먼저 디자인하고 기존 무브먼트를 끼워 맞추는 관행을 거부한다. 다이얼 위에서 밸런스 휠이 어떻게 노출될지, 브리지와 기어트레인이 어느 방향으로 배치될지를 초기 단계부터 통합적으로 구상한다. CAD와 3D 모델링으로 치밀하게 계산된 도면은 선반과 밀링 머신을 통한 수작업 가공을 거치며 완성된다. 특히 작은 부품을 쪼개어 복잡성을 과시하기보다, 넓은 풀 플레이트 구조와 대형 밸런스 휠을 채택해 굵직한 부품이 역동적으로 구동하는 직관적인 기계미를 강조한다.

아르데코 다이얼과 입체적 비례

1920~30년대 아르데코 양식에서 차용한 계단형 인덱스, 선버스트, 동심원 패턴은 아사오카 디자인의 핵심 언어다. 34mm에서 38mm 사이의 콤팩트한 케이스를 고수하되, 박스형 사파이어 크리스털과 볼록한 다이얼, 짧게 휘어진 러그를 활용해 좁은 공간 안에 깊이감 있는 단층을 형성한다. 다이얼을 중앙과 외곽으로 분할하고 굵기가 다른 숫자를 배치해, 작은 지름 안에서도 측면으로 퍼지지 않는 밀도 높은 입체감을 완성한다.

이원화된 제작 체계

하지메 아사오카 공방의 시계가 무브먼트 가공부터 조립까지 전 공정을 홀로 통제하는 극소량의 하이엔드 피스라면, 쿠로노 도쿄는 일본산 범용 무브먼트와 외부 생산망을 활용해 접근성을 높인 대중적 브랜드다. 아사오카는 이 두 체계의 차이를 숨기지 않고 명확히 분리한다. 전자가 무브먼트의 설계와 수공 마감에 집중한다면, 후자는 다이얼의 색채, 숫자 폰트, 케이스 비례 등 순수한 시각적 조형에 집중한다.

주요 작업

투르비용 #1 (2009)

아사오카가 부품 설계부터 가공까지 자체적으로 완성한 첫 투르비용 손목시계이자, 일본 독립 시계 역사에 이정표를 세운 기념비적 모델이다. 다이얼 6시 방향에 대형 투르비용을 배치하고 상단에 시간 표시 창을 밀집시킨 레이아웃을 취했다. 산업 디자이너가 스케치를 넘어 기계식 무브먼트를 직접 깎고 조립해 냈다는 사실 자체만으로 일본 워치메이킹 씬에 거대한 충격을 안겼다.

프로젝트 T (2014)

전통적인 루비 주얼 대신 회전축과 무브먼트 주요 부위에 초소형 볼 베어링을 적용해 피벗의 두께와 충격 내구성을 극대화한 혁신적 투르비용이다. 스위스 정통 시계학의 뼈대를 일본 특유의 정밀 가공 산업 환경에 맞춰 재해석했다. 기본 동력부와 투르비용 모듈을 물리적으로 분리할 수 있는 구조를 채택해, 1인 공방 체제에서도 원활한 제작과 유지보수가 가능하도록 영리하게 설계했다.

쿠로노 크로노그래프 1 (2020)

쿠로노 도쿄 라인업으로 선보인 첫 크로노그래프 모델이다. 38mm 케이스 안에 세이코 계열의 범용 자동 무브먼트(NE86)를 탑재하고, 3시와 9시 방향에 서브 다이얼을 정갈하게 배치했다. 흑백과 청동색의 대비, 동심원을 활용한 시각적 정보의 정돈 등 아사오카 특유의 미학이 돋보이며, 범용 무브먼트를 탑재하고도 2020년 제네바 시계 그랑프리(GPHG) 크로노그래프 부문 본선에 오르는 쾌거를 거뒀다.

영향 관계

아사오카의 시계 제작 세계를 연 실질적 멘토는 영국 독립 시계의 대부 조지 대니얼스다. 그의 저서를 통해 공구 사용법과 무브먼트 설계의 기초를 다졌으며, 제작자 한 사람이 시계의 시작과 끝을 통제하는 방식 역시 대니얼스의 철학에 맞닿아 있다. 도쿄예술대학에서의 산업디자인 교육은 스위스 전통 워치메이커들과 달리 케이스, 그래픽, 매장 공간의 인테리어까지 아우르는 총체적 디렉팅 역량의 토대가 되었다. 2015년 AHCI 가입은 그를 글로벌 무대로 이끌었으며, 쿠로노 도쿄의 안착은 독립 제작자가 품질을 관리하되 생산을 외주화하는 새로운 방식의 비즈니스 모델을 시계 산업에 성공적으로 이식했다.

수상·전시 이력

2015년 AHCI 정회원에 공식 등록되었으며, 일본 자국 내에서는 탁월한 숙련공에게 수여되는 ‘현대의 명공’으로 선정되며 그 역량을 공인받았다. 국제 무대에서의 활약도 두드러져, 2020년 '쿠로노 크로노그래프 1', 2021년 '그랜드 아카네', 2022년 '캘린드리에 타입 1'이 연이어 GPHG 본선 및 경쟁작에 이름을 올렸다. 1인 공방의 하이엔드 피스와 서브 브랜드의 양산형 모델이 모두 최고 권위의 시계상에서 평가받는 이례적인 성취를 거두었으며, 2024년 필립스 경매에서는 그의 첫 '투르비용 #1'이 추정가를 크게 상회하는 가격에 낙찰되며 일본 독립 시계 시장의 프리미엄을 입증했다.

반응과 평가

아사오카는 극소량의 하이엔드 공방 시계와 쿠로노 도쿄를 동시에 이끌며 일본 독립 시계 씬을 세계로 확장한 선구자로 평가받는다. 쓰나미나 프로젝트 T와 같은 공방 라인은 대형 밸런스 휠과 풀 플레이트 구조로 기계적 본질을 명확히 드러내며 스위스 오뜨 오를로제리와는 궤를 달리하는 독창성을 인정받는다. 반면, 쿠로노 도쿄는 빈티지한 비례와 아르데코풍 다이얼로 열광적인 팬덤을 형성했음에도, 범용 무브먼트와 외주 생산에 기반한다는 점에서 본가 공방 시계와 동일한 수준의 수공예적 가치를 기대하는 일부 대중에게는 오해를 사기도 한다. 특히 한정판 발매 초기, 수요 폭발로 인해 실착용자보다 재판매를 노린 투기성 주문이 몰리면서 추첨제와 판매 방식을 거듭 변경해야 했던 점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1인 수작업 체제에 기댄 공방 시계 역시 필연적으로 긴 대기 시간과 계승의 불확실성을 안고 있지만, 확고한 디자인 철학과 치밀한 비례 감각으로 럭셔리 워치 시장에 성공적인 이원화 비즈니스 모델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현대 시계 산업 내 그의 위상은 굳건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