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더 아커만 (Haider Ackermann)

개요

<img src="https://d2xsxph8kpxj0f.cloudfront.net/310519663429662740/ffcjRzrXsTCDKgX6s8aDwC/articles/1783310097498-e4eb6bcabff13fa2.webp" alt="하이더 아커만" data-orientation="landscape_16_10" data-original-src="https://d2xsxph8kpxj0f.cloudfront.net/310519663429662740/ffcjRzrXsTCDKgX6s8aDwC/articles/1783297117618-f8ab661690512483.webp" data-source-url="https://www.voguearabia.com/article/haider-ackermann-at-tom-ford" width="600" />

출처: Vogue Arabia

하이더 아커만(Haider Ackermann, 1971년 출생)은 천을 몸에 둘러 흘려 내리는 드레이핑과 색의 운용으로 옷을 짓는 콜롬비아 태생의 프랑스 디자이너다. 재단의 정확함과 드레이프의 유연함을 한 벌 안에서 맞붙이는 손이 그의 서명이다. 한쪽 어깨를 비운 비대칭, 액체처럼 떨어지는 가죽, 검정 위에 한 줄로 그어 넣은 형광색이 컬렉션마다 반복된다.

성별 경계를 흐리는 실루엣을 일찍부터 밀고 나갔고, 자신의 옷을 섹시함이 아니라 관능으로 규정한다. 직접적인 노출보다 천의 무게와 움직임으로 끌어당기는 방식이다.

업계가 그를 주목한 결정적 계기는 2010년이다. 카를 라거펠트(Karl Lagerfeld)가 자신의 뒤를 이어 샤넬을 맡길 사람으로 아커만을 지목했다. 비평가 수지 멘케스(Suzy Menkes)는 그를 미래에 대한 드문 희망이라 불렀고, 일각에서는 새로운 이브 생 로랑으로 부르기도 했다.

화려한 헌사와 달리 그의 사업은 평탄하지 않았다. 자기 이름을 건 레이블은 사업 파트너와의 분쟁으로 무너졌고, 그는 자신의 이름을 법적으로 되찾아야 했다. 2020년 가을 컬렉션을 끝으로 런웨이에서 사라졌다가, 2023년 장 폴 고티에 쿠튀르 객원 디자이너로 복귀했다. 2024년에는 캐나다구스(Canada Goose)와 톰 포드(Tom Ford)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를 동시에 맡으며 두 번째 전성기를 열었다.

약력·연혁

유년과 성장

아커만은 1971년 3월 29일 콜롬비아 보고타에서 태어났다. 생후 9개월에 프랑스 알자스 출신 가정에 입양됐다. 양아버지는 지도 제작자였다. 직업 특성상 가족은 임지를 따라 자주 이동했고, 아커만은 에티오피아, 차드, 알제리 등 아프리카와 중동을 거쳐 열두 살에 네덜란드에 정착했다. 입양 가정에는 베트남 출신 누이와 한국 출신 형제가 있었다. 이 환경에서 그는 프랑스어, 네덜란드어, 영어, 독일어를 익혔다.

유년의 풍경은 그의 옷에 직접 남았다. 에티오피아 여성들이 몸에 두른 천, 알제리에서 천으로 몸을 가린 사람들의 모습이 훗날 그의 드레이핑으로 번역됐다.

앤트워프와 도제 시절

이브 생 로랑(Yves Saint Laurent)의 작업에 이끌려 1994년 벨기에로 건너가 앤트워프 왕립예술학교(Royal Academy of Fine Arts, Antwerp) 패션과에 들어갔다. 이 학교는 앤트워프 식스(Antwerp Six)를 배출한 곳으로, 그가 입학했을 무렵에도 마르탱 마르지엘라, 드리스 반 노튼, 앤 드뮐미스터로 이어지는 계보의 그늘이 짙었다.

아커만은 1997년 학교를 떠났다. 과제를 제때 제출하지 않아 제적됐다는 기록이 일반적이며, 완벽주의 탓에 배정된 컬렉션에 끝내 만족하지 못해 끝맺지 못했다는 설명이 따라붙는다.

학교를 나온 뒤 파리에서 존 갈리아노 밑에서 다섯 달간 인턴으로 일했다. 이어 앤트워프 시절 스승이던 벨기에 디자이너 빔 닐스(Wim Neels)의 어시스턴트로 돌아왔다. 이후 베른하르트 빌헬름, 파트릭 반 오메슬라게 등 여러 브랜드를 거쳤고, 마이얼린(Mayerline)에서 디자이너로 일했다.

자기 레이블과 루포 리서치

2001년 자기 이름을 건 레이블을 세웠다. 첫 여성복 컬렉션은 2002년부터 2003년까지의 가을·겨울 시즌 파리에서 발표했고, 초기 자금은 본인이 직접 댔다. 능숙한 드레이핑과 가죽 운용이 곧바로 눈에 띄었다.

프리미엄 가죽 전문 하우스 루포(Ruffo)가 이 컬렉션에 주목해 그를 영입했다. 아커만은 루포 리서치(Ruffo Research)에서 2003년 봄·여름과 2003년부터 2004년까지의 가을·겨울 컬렉션을 디자인하면서 자기 레이블을 병행했다. 가죽을 조형적으로 다루는 그의 손은 이 시기에 단련됐다.

2004년 11월 스위스 텍스타일 어워드(Swiss Textiles Award)를 받았다. 신진 디자이너에게 상금과 무대를 함께 주는 유럽의 주요 등용문으로, 라프 시몬스, 브루노 피터스, 마리오스 슈바프 등이 같은 상의 수상자다. 2005년 파리로 거처를 옮겼고, 벨기에 투자그룹 BVBA 32의 후원을 받아 아틀리에를 차렸다.

남성복과 라거펠트의 지목

2010년 6월 피렌체 피티 워모(Pitti Uomo) 무대에서 단발성 남성복을 선보이며 남성복에 처음 손을 댔다. 정식 남성복 라인은 2013년에 출범했다.

2010년 11월, 카를 라거펠트가 잡지 『뉘메로(Numéro)』에서 자기 후임으로 아커만을 거론했다. 아커만은 그에게서 나온 말이라 더없이 영광이고 깊이 감동했다면서도, 그건 칭찬일 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며 라거펠트는 은퇴하지 않는다고 차분히 받아넘겼다. 샤넬은 훗날 라거펠트 사후 버지니 비아르가 이어받았다.

2012년 10월 패션 그룹 인터내셔널(Fashion Group International)의 나이트 오브 스타스에서 패션 부문 상을 받았다. 이 상은 라거펠트가 직접 전달했다. 2013년에는 고국 콜롬비아가 그를 문화 대사로 초청했다.

레이블 독립과 베를루티

2013년 6월, 앤 샤펠의 32 BVBA가 운영하던 앤 드뮐미스터와 하이더 아커만 두 레이블을 독립 회사로 분리한다고 발표했다. 같은 해 아커만은 첫 정규 남성복 라인을 내놓았다. 2014년에는 틸다 스윈튼과 함께 메르세데스 벤츠 캠페인을 작업했다.

2016년 9월 베를루티(Berluti)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부임했다. 알레산드로 사르토리의 후임이었고, 첫 컬렉션은 2017년 1월에 올렸다. 1895년부터 수제화를 만들어 온 이 가죽 하우스에서 그는 더 나른하고 여성적인 결을 남성복에 들여왔으며, 컬렉션을 남성과 여성 모델에 함께 입혔다. 제품 디자인뿐 아니라 광고, 이미지, 매장까지 손댔고, 자기 레이블도 함께 운영했다. 베를루티에서는 세 시즌을 보낸 뒤 물러났다.

2018년 5월에는 2019년 봄·여름 시즌부터 남녀 합동 쇼로 전환한다고 알렸다. 같은 해 LVMH 프라이즈 심사위원과 이에르 국제 패션·사진 페스티벌(Hyères) 심사위원장을 맡았다. 이에르에서는 틸다 스윈튼, 제퍼슨 핵, 루 두아용, 벤 고햄을 심사위원으로 직접 꾸렸다.

공백기와 이름 되찾기

2019년부터 그의 경력은 어두운 구간으로 들어섰다. 사업 파트너 앤 샤펠과 갈라섰고, 회사가 큰 손실을 낸 뒤 그는 회사를 떠났다. 이 과정에서 자신의 이름에 대한 권리를 두고 변호인단과 함께 싸워야 했다. 디자이너가 자기 이름을 잃는 일은 핼스턴 등 앞선 사례가 있었다. 자기 레이블의 마지막 쇼는 2020년 가을 컬렉션이었다.

런웨이에서 사라진 동안 그의 이름을 살려 둔 것은 레드카펫이었다. 틸다 스윈튼과 티모시 샬라메가 국제 영화제마다 그의 옷을 입고 나섰고, 두 사람은 그가 보이지 않는 시기에도 그를 호명했다.

복귀: 고티에 쿠튀르, 캐나다구스, 톰 포드

2022년 11월 스포츠 브랜드 필라(Fila)와의 협업 컬렉션을 맨체스터에서 선보였다. 2023년 1월 25일에는 장 폴 고티에(Jean Paul Gaultier)의 2023년 봄·여름 오트 쿠튀르를 객원 디자이너로 맡았다. 사카이, 글렌 마틴스, 올리비에 루스테잉으로 이어진 객원 시리즈의 한 자리였다. 그는 고티에의 기행과 과장 대신 재단의 정밀함과 색 감각을 끌어내 절제된 쿠튀르를 완성했고, 평단의 호평을 받았다. 같은 해 라틴 아메리카 패션 어워드 국제 심사위원장도 맡았다.

2024년 5월, 캐나다구스 사상 첫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임명됐다. 그는 1990년대에 쓰이던 헤리티지 라벨 스노 구스(Snow Goose)를 되살려 연 2회 캡슐 컬렉션을 전개한다. 첫 컬렉션은 2024년 가을·겨울이었다.

2024년 9월 4일, 톰 포드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발표됐다. 톰 포드 본인이 2023년 브랜드를 떠나고 에스티 로더가 인수한 뒤, 1년이 채 안 돼 물러난 피터 호킹스의 자리였다. 톰 포드 본인이 아커만을 직접 낙점했고, 패션 부문은 에르메네질도 제냐 그룹이, 아이웨어는 마르콜린이 라이선스로 운영한다. 첫 컬렉션은 2025년 3월 파리에서 공개됐다.

디자인 철학·시그니처

드레이핑

아커만의 핵심은 천을 재단으로 고정하기보다 몸을 따라 흐르게 두는 드레이핑이다. 한쪽 어깨나 등을 비우고, 허리를 가는 끈 하나로만 잡아 천이 골반에 겨우 걸리게 하는 식의 비대칭이 반복된다.

유년기에 본 에티오피아와 알제리의 둘러 입는 옷이 출발점이며, 실크와 새틴처럼 가벼운 소재로 몸을 스치듯 지나가는 실루엣을 만든다. 모델을 느리게 걷게 하는 연출도 천의 움직임을 보여주기 위한 장치다.

그는 색의 장인으로 불린다. 검정과 흰색을 바탕에 두고, 흙빛 파스텔과 보석빛 색을 예상 밖으로 충돌시킨다. 코발트가 은색 아래에서 비치고, 형광 초록이 분홍을 깨우고, 보라가 초콜릿빛으로 녹아드는 식의 배합이 자주 등장한다.

때로는 온통 검은 옷에 한 줄기 색만 그어 넣어 강조한다. 오렌지, 터쿼이즈, 옅은 장미빛을 한 화면에 섞는 솜씨는 그의 서명으로 통한다.

가죽과 재단

루포 리서치에서 단련한 가죽 운용은 그의 또 다른 축이다. 가죽을 조형적이고 추상적으로 다뤄, 만지고 싶어지는 액체 같은 질감으로 떨어뜨린다.

재단에서는 어깨를 좁게 꼬집어 잡은 라인과 정확한 바지 패턴으로 평가받는다. 바지의 마법사라는 표현이 그를 따라다닌다.

관능과 성별

아커만은 자신의 옷을 섹슈얼리티가 아니라 센슈얼리티의 언어로 설명한다. 2000년대 후반 그는 패션에 필요한 것은 노골적인 성적 표현이 아니라 아름다움과 관능이라고 말했다.

남성복과 여성복의 실루엣을 공유하고 경계를 흐리는 작업도 일찍부터 이어 왔다. 그는 뮤즈라는 단어를 거부한다. 뮤즈는 침묵하는 사람이며, 자신이 끌리는 여성은 말이 많고 자기 의견이 분명한 사람이라는 이유에서다.

주요 작업

하이더 아커만

하이더 아커만(Haider Ackermann)은 2001년 세운 자기 이름의 레이블이다. 2002년부터 2020년까지 컬렉션을 전개하며 유연한 드레이프와 정밀한 재단을 맞붙인 무드로 평단의 지지를 받았다.

2010년 피티에서 선보인 첫 남성복은 여성복 사이에 남성 룩을 섞고, 모델 제이미 보체트가 무대에서 피아노를 직접 친 연출로 기억된다. 2013년 정식 출범한 남성복은 랭보와 와일드로 이어지는 댄디의 계보를 끌어와, 실크와 이리데센트 자카드 같은 호화로운 소재로 짠 탐미적인 무대였다. 이 시기 레드카펫에서 그의 이름을 알린 것은 틸다 스윈튼이다.

베를루티

베를루티(Berluti)는 아커만이 2016년부터 2018년까지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를 맡은 프랑스 가죽 하우스다.

그는 베를루티에 남성복의 색과 나른함을 들여왔다. 2017년 가을·겨울 데뷔 컬렉션에서는 선명한 안감을 댄 항공 점퍼, 로열블루 벨벳 턱시도, 나일론·캐시미어·가죽을 섞은 보머 등으로 하우스의 파티나 공예를 관능적이고 컬러풀한 아우터로 다시 썼다. 캐러멜빛 램스킨 트렌치와 금빛 실크 블레이저처럼 값에 걸맞은 데카당스가 특징이었다.

장 폴 고티에 오트 쿠튀르

장 폴 고티에 오트 쿠튀르(Jean Paul Gaultier Haute Couture, 2023년 봄·여름)는 아커만이 3년의 공백을 깨고 복귀한 작업이자 첫 오트 쿠튀르 컬렉션이다.

그는 고티에의 장기인 과장과 캠프를 의도적으로 비우고, 두 디자이너가 공유하는 재단의 정밀함, 라인의 장악력, 색 감각만 끌어올렸다. 완벽하게 재단한 검은 재킷에서 전기빛 파랑 깃털이 솟고, 검정에 한 조각 색을 들이는 식의 절제된 충돌이 무대를 채웠다. 보그 런웨이의 세라 모어는 이 쇼를 두고 창작의 탁월함이 여전히 중요하다는 감각을 되살려 준 무대였다고 적었다.

캐나다구스 스노 구스

캐나다구스 스노 구스(Canada Goose Snow Goose)는 아커만이 2024년부터 맡은 캐나다구스 크리에이티브 디렉션의 핵심 라인이다.

그는 브랜드의 70년 가까운 아카이브를 되짚어 헤리티지 라벨 스노 구스를 부활시켰다. 1990년대 중반형 라이더 파카, 반사 테이프를 단 셀레스티아 재킷, 2000년대 초 클라시크 햇을 발전시킨 아발론 햇 등 상징적 실루엣을 다시 꺼냈다. 첫 캠페인은 빌리 반더페르가 찍고 배우 에단 호크가 모델로 섰다. 자연과의 연결을 주제로 삼았으며, 북극곰 보호단체(PBI)와의 협업처럼 환경 메시지를 캡슐에 엮었다.

톰 포드

톰 포드(Tom Ford)는 아커만이 2024년부터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를 맡은 미국 럭셔리 패션 브랜드다. 데뷔 컬렉션은 2025년 가을·겨울로, 2025년 3월 파리 방돔 광장의 친밀한 공간에서 열렸다.

김 서린 샤워부스 유리를 본뜬 세트 위에서, 액체처럼 부드러운 가죽 트렌치와 모터사이클 재킷, 좁게 꼬집은 어깨의 테일러드 수트, 옆선을 길게 가른 이브닝 가운이 느린 걸음으로 지나갔다. 그는 밤이고, 나는 그다음 날 아침이라는 문장으로 쇼를 열어, 톰 포드의 노골적 섹슈얼리티 위에 자신의 관능을 포갰다. 톰 포드 본인이 객석에서 지켜본 뒤 일어나 박수를 보냈다.

두 번째 시즌인 2026년 봄·여름에서는 톰 포드의 색을 본격적으로 끌어안았다. 산성 초록, 클랭 블루, 사탕빛 분홍을 광택 나는 런웨이에 풀고, 비닐 수트와 비치는 천을 섞었다. 끈 팬티와 조크스트랩을 투명한 천 위로 드러낸 룩이 가장 큰 화제였다.

2026년 가을·겨울은 『아메리칸 사이코』와 1980년대 뉴웨이브를 참조해, 흑백의 날 선 테일러링과 투명 플라스틱 레인코트, 핀스트라이프와 렙 타이로 차가운 관능을 그렸다. 아커만은 이 컬렉션을 이 세상에서 벌어지는 모든 것을 마주하며 똑바로 서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영향 관계

받은 영향

이브 생 로랑이 출발점이다. 그를 패션으로 이끈 동력이자, 평단이 아커만에게 새로운 생 로랑이라는 비교를 붙이는 근거다. 형식 교육은 앤트워프 왕립예술학교에서 받았다. 마르탱 마르지엘라, 드리스 반 노튼, 앤 드뮐미스터를 배출한 학교의 계보 안에서, 그는 라프 시몬스와 베른하르트 빌헬름에 가까운 세대에 속한다.

실무는 존 갈리아노의 아틀리에에서 시작했고, 스승 빔 닐스의 어시스턴트로 기본기를 다졌다. 가죽을 다루는 손은 루포 리서치에서 굳어졌다.

데뷔 초 평단은 가죽을 추상적으로 다루고 아방가르드한 드레이핑을 구사한다는 점에서 그를 젊은 릭 오웬스에 빗대기도 했다.

끼친 영향

라거펠트가 샤넬의 후임 후보로 그를 호명한 사건은 그의 위상을 단번에 끌어올렸고, 한동안 디올과 마르지엘라 같은 자리의 후보로도 이름이 오르내렸다.

레드카펫에서는 틸다 스윈튼과 티모시 샬라메와의 협업을 통해 성별을 흐리는 정장, 노출 대신 천의 무게로 끌어당기는 이브닝의 문법을 2010년대와 2020년대 셀러브리티 드레싱에 새겼다.

틸다 스윈튼

틸다 스윈튼과의 관계는 그의 경력에서 가장 오래된 협업이다. 두 사람은 처음 만난 시점을 서로 기억하지 못하면서도 만남이 필연이었다고 말한다.

공개적 첫 순간은 2004년 칸 영화제 개막이었다. 인도 조드푸르에 있던 아커만에게 스윈튼이 당신 드레스를 입었다는 팩스가 도착했다. 갓 경력을 시작한 그에게는 비현실적인 사건이었다.

이후 두 사람은 칸과 베네치아의 수많은 시사회를 함께 했고, 영화의 서사에 맞춰 옷의 이야기를 짜는 방식으로 작업했다. 아커만은 스윈튼을 뮤즈가 아니라 놀이 동무로 부른다.

티모시 샬라메

티모시 샬라메와의 인연은 2017년 파리에서 시작됐다. 베를루티에 있던 아커만에게 샬라메의 에이전트 브라이언 스워드스트롬이 만남을 제안했고, 아커만은 베를린 영화제 『콜 미 바이 유어 네임』 첫 레드카펫을 스타일링했다.

2021년에는 아프가니스탄 여성 인권 단체를 위한 후디를 함께 만들어 수익 전액을 기부했다. 샬라메는 아커만을 가장 가까운 친구 중 하나라 부른다. 2025년 1월 제82회 골든글로브에서 샬라메가 입은 시퀸 블랙 수트는 아커만이 톰 포드에서 처음 내놓은 룩이었다.

수상·전시 이력

아커만은 2004년 11월 스위스 텍스타일 어워드를 받았다. 이 상은 유럽 신진 디자이너의 주요 등용문으로 기능했다.

2012년에는 패션 그룹 인터내셔널(FGI)의 나이트 오브 스타스에서 패션 부문 상을 받았고, 이 상은 카를 라거펠트가 직접 전달했다. 2013년에는 콜롬비아 문화 대사로 위촉됐다.

2018년에는 이에르 국제 패션·사진 페스티벌 심사위원장을 맡았고, 같은 해 LVMH 프라이즈 심사위원으로도 활동했다. 2023년에는 라틴 아메리카 패션 어워드 국제 심사위원장을 맡았다. 2025년에는 톰 포드에서의 작업을 인정받아 GQ 글로벌 올해의 디자이너(GQ Global Designer of the Year)에 올랐다.

데뷔 초 그의 컬렉션은 빌라 노아유에서 열리는 이에르 패션 페스티벌에서 전시되기도 했다. 정량적 디자인상인 레드닷이나 iF 같은 산업 디자인상은 패션 디자이너에게 적용되는 범주가 아니며, 패션계 내부 시상과 심사위원 위촉이 동료 인정 지표로 기능한다.

반응과 평가

디자인

평단의 평가는 일관되게 높다. 수지 멘케스는 그를 미래에 대한 드문 희망이라 표현했고, 스위스 텍스타일 어워드와 FGI 상이 신진·중견 시기의 객관적 인정으로 남아 있다. 2025년에는 톰 포드에서의 작업으로 GQ 글로벌 올해의 디자이너에 올랐다.

이에르, LVMH 프라이즈, 라틴 아메리카 패션 어워드의 심사위원과 심사위원장으로 거듭 위촉된 사실은 동료 디자이너들 사이의 위상을 보여준다.

장인성·완성도

그의 옷은 만듦새로 평가받는다. 재단에서는 좁게 꼬집은 어깨와 정확한 바지 패턴이, 가죽에서는 루포 리서치에서 단련한 조형적 운용이 거론된다.

톰 포드 데뷔작에서 비평가들은 만지고 싶어지는 가죽의 질감과 느린 런웨이가 만든 천의 정밀함을 짚었다. 고티에 쿠튀르에서는 재단의 정밀함과 라인의 장악력이 절제된 형태로 드러났다는 평가가 따랐다.

브랜드·인물

라거펠트의 후임 지목과 비즈니스 오브 패션 500 선정은 그의 업계 내 비중을 보여준다. 다만 위상과 사업 규모는 별개였다. 자기 레이블은 평단의 지지에 비해 사업적으로 크게 자라지 못한 채 팬데믹기에 휴면에 들어갔다.

2024년 톰 포드와 캐나다구스를 동시에 맡으면서, 그는 처음으로 에스티 로더와 제냐가 확장을 노리는 대형 브랜드의 핵심에 섰다. 톰 포드는 브랜드 단위로 에스티 로더가 소유하고, 패션 부문은 제냐 그룹이 라이선스로 운영한다. 두 축의 운영 주체가 다르다는 점이 그의 역할을 규정한다.

디자인 반응

톰 포드에서의 작업은 찬반이 갈린다. 한쪽은 아커만의 절제된 관능과 톰 포드의 노골적 섹슈얼리티가 한 벌 안에서 녹아드는 지점을 높이 산다. 2026년 봄·여름의 비치는 천과 끈 속옷을 두고, 일부 매체는 두 디자이너의 결합이 만든 영리한 도발로 봤다.

반면 다른 쪽은 같은 룩을 두고 런웨이에서도 과한 노출이라며 굳이 그 장치가 필요했느냐고 물었다. 컬렉션을 닫은 반짝이 수트 역시 받아들이기 어려웠다는 반응과, 그 캠피한 과장이 오히려 톰 포드답다는 반응으로 나뉘었다.

비판

초기부터 따라온 지적은 사업적 번역의 어려움이다. 평단의 찬사와 별개로, 그의 복잡한 드레이프와 탐미적 무대가 매장에서 팔리는 옷으로 옮겨지기 어렵다는 평가가 이어졌다. 같은 앤트워프 계보의 라프 시몬스와 드리스 반 노튼이 외부 자본과 구조를 갖추며 규모를 키운 것과 달리, 아커만의 레이블은 그만한 사업 구조를 확보하지 못했다.

중간 시기에는 자기 하우스 밖에서의 검증 문제가 제기됐다. 베를루티에서 세 시즌 만에 물러난 일을 두고, 그가 자기 이름의 레이블 바깥에서는 아직 충분히 증명하지 못했다는 평가가 따랐다. 톰 포드 부임 당시에도 같은 의문이 다시 제기됐다.

최근의 비판은 노출의 수위에 모인다. 절제된 관능을 자기 언어로 삼아 온 디자이너가 톰 포드의 직접적 섹슈얼리티로 기울면서, 일부에서는 그 전환이 그의 강점인 절제와 어긋난다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