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렌 마틴스 (Glenn Martens)
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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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heimpression글렌 마틴스(Glenn Martens)는 Y/Project를 통해 해체주의를 동시대적 밈(Meme)으로 격상시키고, 침체되었던 디젤(Diesel)의 메가톤급 부활을 이끈 벨기에 출신의 디자이너다. 2025년 1월부터는 존 갈리아노의 후임으로 메종 마르지엘라(Maison Margiela)의 수장직까지 거머쥐며 OTB 그룹의 쌍두마차인 디젤과 마르지엘라를 동시에 지휘하고 있다.
그의 무기는 익숙한 옷의 앞뒤와 안팎을 비틀고 와이어를 심어 착용자가 능동적으로 실루엣을 변형하도록 만드는 '가변적 구조'에 있다. 데님, 트렌치코트, 후디 등 가장 대중적인 일상복을 해체해 역사 복식의 과장된 주름이나 클럽 문화의 하위 코드를 뒤섞어 낸다. 디젤에서 이 극단적 실험을 글로벌 상업 자본과 결합시켜 대중화했다면, 메종 마르지엘라에서는 창립기의 뼈대인 익명성, 아티저널(Artisanal), 트롱프뢰유 기법을 자신만의 압도적인 시각 언어로 맹렬하게 갱신 중이다.
역사·연혁
1983년 벨기에 브뤼헤에서 태어난 마틴스는 실내건축을 전공하다 패션으로 전향, 2008년 앤트워프 왕립예술학교를 수석 졸업했다. 건축학적 훈련은 그가 옷을 평면이 아닌 '인체 주위의 공간을 통제하는 구조물'로 다루는 결정적 뼈대가 되었다. 졸업 직후 장 폴 고티에의 주니어 디자이너로 합류해 역사 복식과 대중문화, 남녀 코드를 유쾌하게 섞어내는 하우스 특유의 문법을 체득했다.
2013년 창립자 요한 세르파티의 타계 후 Y/Project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전격 합류하며 본격적인 궤도에 올랐다. 소규모 남성복 브랜드였던 Y/Project를 뒤틀린 데님, 와이어 드레스, 어그(UGG) 등과의 기형적 협업을 앞세워 파리 패션계의 가장 힙한 브랜드로 폭발시켰다. (그는 2024년 9월 하우스를 떠났고, 브랜드는 2025년 1월 운영을 종료했다.)
2020년 10월, OTB 그룹의 부름을 받아 디젤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취임했다. 레이저 프린트, 코팅, 파괴적 워싱 등 극한의 데님 가공을 주도하며 타원형 'D 로고'를 글로벌 트렌드의 중심으로 쏘아 올렸다. 2021년 장 폴 고티에의 게스트 쿠튀리에로 초청받아 2022 S/S 오트 쿠튀르를 성공적으로 치르며 아틀리에의 극강의 수공예 기술까지 마스터했다.
이러한 전방위적 성과를 바탕으로 2025년 1월 메종 마르지엘라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임명되었다. 디젤의 대중성을 유지하면서도, 같은 해 7월 마르지엘라 2025 아티저널 컬렉션과 10월 2026 S/S 레디 투 웨어를 연달아 공개하며 하우스의 해체주의적 유산을 동시대의 가장 도발적이고 극적인 런웨이로 쇄신하고 있다.
디자인 철학·언어
엇나간 패턴과 와이어의 가변성
셔츠의 단추선, 재킷의 라펠, 데님의 옆선을 본래 위치에서 의도적으로 어긋나게 밀어낸다. 나아가 칼라와 드레스 내부에 얇은 와이어를 삽입해 옷이 신체를 따라 순종적으로 흐르지 않고 공중에서 꺾이거나 부풀어 오르도록 통제한다. 착용자가 단추 위치나 와이어의 각도를 직접 조작해 매번 새로운 실루엣을 빚어낼 수 있는 미완의 구조를 제공한다.
극한의 데님 가공과 트롱프뢰유
데님을 흔한 하의 원단으로 취급하지 않고 염색, 레이저 프린트, 스모킹, 코팅을 쏟아붓는 거대한 실험 캔버스로 사용한다. 옷의 주름이나 찢어진 흔적을 입체적으로 만드는 대신 평면 위에 레이저로 인쇄해 시각적 착시(트롱프뢰유)를 유도하거나, 얇은 데님을 종이접기하듯 조형물처럼 몸에 두른다. 디젤에서는 이 파괴적 실험을 글로벌 판매망에 맞게 상업화시키는 기염을 토했다.
역사 복식과 밈(Meme)의 융합
중세와 르네상스의 코르셋, 거대한 트레인 등 고전 복식의 과장된 윤곽을 1990년대 클럽웨어와 후디, 낡은 데님에 거침없이 융합한다. 과거의 의복을 학구적으로 고증하는 것이 아니라 윤곽선만 영리하게 추출하여 인터넷 시대의 관객들이 즉각적으로 반응하고 밈으로 소비할 수 있는 강렬하고 기형적인 이미지로 치환한다.
마르지엘라 익명성의 재해석
마르지엘라 부임 직후 창립기의 핵심인 '익명성'을 복원하기 위해 모델의 얼굴을 다시 가렸다. 그러나 과거의 얌전한 흰 천을 반복하지 않고, 버려진 포장재, 테이프, 금속 조각, 발견된 사물(Found object)을 거칠게 엮어 기괴하고도 매혹적인 마스크를 완성했다. 익명성이라는 전통적 명분을 유지하면서도, 현재의 런웨이에 걸맞은 폭발적이고 공격적인 시각 장치로 업그레이드한 셈이다.
주요 디자인
메종 마르지엘라 2026 F/W 상하이 쇼
상하이의 거친 컨테이너 야드를 무대로 레디 투 웨어와 아티저널을 한 무대에 올렸다. 낡은 태피스트리, 도자 조각, 발견된 사물들이 아티저널의 전위적 피스로 해체된 후, 어떻게 동시대적 기성복(RTW)의 문법으로 번역되는지를 명확한 계보로 증명해 냈다. 하우스 역사상 처음으로 파리 밖에서 주요 컬렉션을 공개한 기념비적 쇼다.
메종 마르지엘라 2025 아티저널
마틴스의 마르지엘라 데뷔를 알린 쿠튀르 컬렉션. 테이프와 금속 조각으로 얼굴을 기괴하게 덮은 모델들이 접히고 비틀려 불규칙한 볼륨을 형성한 트렌치코트와 수트를 입고 등장했다. 하우스 특유의 재활용과 미완성 룩을 단순 모사하지 않고, 마틴스만의 파괴적인 볼륨과 과장된 실루엣으로 하우스의 부활을 웅장하게 선언했다.
장 폴 고티에 2022 S/S 오트 쿠튀르
게스트 쿠튀리에로 금의환향하여 지휘한 컬렉션. 고티에의 코르셋, 마린 스트라이프, 문신 프린트를 Y/Project 특유의 비대칭 와이어 구조로 완벽히 흡수했다. 몸에 매끈하게 밀착되어야 할 줄무늬 니트가 비틀리며 길게 늘어지고, 데님이 쿠튀르 재단을 거쳐 조각적 드레스로 변모하며 스승의 유산과 본인의 정체성을 완벽하게 타협시켰다.
디젤 2022 S/S
침체되었던 디젤을 젊은 세대의 최전선으로 멱살 쥐고 끌어올린 데뷔 런웨이다. 레이저로 다른 옷의 주름을 데님 표면에 인쇄하고, 로고가 잘린 톱과 극단적인 로우라이즈 팬츠를 전면에 내세웠다. 2000년대 Y2K 무드를 촌스럽게 복각하지 않고 압도적인 소재 가공과 과장된 비례로 완전히 새롭게 재건했다.
디젤 1DR 백
디젤 1DR 백(Diesel 1DR Bag, 2022)은 반달형 셰이프에 큼직한 타원형 D 금속 로고를 얹은 숄더백이다. 전위적인 의류 라인 대비 누구나 쉽게 소화할 수 있는 직관적이고 경쾌한 디자인 덕에 론칭 직후 메가 히트를 기록했다. 런웨이의 전위적인 화제성을 폭발적인 현금 창출력으로 연결한 마틴스 체제 디젤의 가장 완벽한 캐시카우다.
Y/Project × 어그 2018 F/W
어그(UGG) 부츠의 양가죽 몸통을 허벅지와 골반까지 기형적으로 길게 늘어뜨려버린 파격적 협업 피스다. 방한화의 익숙한 비례를 완전히 파괴하며 인터넷상에서 조롱과 찬사를 동시에 이끌어냈다. 마틴스가 평범한 제품 하나를 거대한 밈(Meme)이자 폭발적인 런웨이 화제작으로 치환해 버리는 동물적 감각을 입증한 사례다.
디자이너·디자인 조직
앤트워프 해체주의의 밈(Meme)화
앤트워프 왕립예술학교 특유의 해체주의적이고 음울한 패턴 교육을 이수했으나, 이를 학구적인 예술성에 가두지 않았다. 1990년대 클럽웨어, 기괴하게 늘어난 어그 부츠 등 대중이 직관적으로 반응하고 퍼나를 수 있는 '밈'과 하위문화 코드를 영리하게 이식하여, 벨기에 패션의 난해한 실험성을 인터넷 시대의 가장 도발적인 오락거리로 치환했다.
요한 세르파티의 유산과 Y/Project 팀
Y/Project 창립자 세르파티의 어둡고 고딕적인 기반을 이어받되, 이를 남성복의 한계에서 끌어내 여성복, 데님, 기형적인 글로벌 협업으로 폭발시켰다. 초기 소규모 팀의 제한된 자원 속에서 '한 벌을 와이어와 단추로 여러 방향으로 입게 만드는' 가변적 아이디어를 발전시켰고, 이 고도의 효율적 파괴술은 훗날 디젤과 마르지엘라의 중추적 뼈대가 되었다.
렌초 로소와 OTB 그룹의 쌍두마차
OTB 수장 렌초 로소의 전폭적 신임 아래, 마틴스는 거대 그룹 산하에서 가장 대중적인 데님 제국(디젤)과 가장 전위적인 아티저널 하우스(마르지엘라)를 동시에 지휘하는 막강한 권력을 쥐었다. 이 극단적으로 상반된 가격대와 제작 공정을 오가며 글로벌 공급망에 자신의 실험을 이식하는, 동시대 럭셔리 마켓의 전례 없는 지배 모델을 구축하고 있다.
수상·전시 이력
2017년 Y/Project를 통해 ANDAM 패션 어워드 그랑프리를 수상하며 글로벌 유통망 확장의 자금줄을 확보했다. 2018년과 2022년 벨기에 패션 어워드 '올해의 디자이너'로 연이어 선정되며 자국의 긍지로 자리 잡았고, 2019년에는 남성복 최고의 무대인 피티 우오모 게스트 디자이너로 초청받았다.
2022년에는 고향과도 같은 장 폴 고티에의 게스트 쿠튀리에로 런웨이를 장식했으며, 2025년에는 H&M과의 협업을 통해 Y/Project와 디젤에서 연마한 트롱프뢰유 가죽과 비틀린 데님 기법을 글로벌 SPA 마켓의 대중적 가격대로 완벽하게 번역해 내며 전방위적 커리어를 과시했다.
반응과 평가
글렌 마틴스는 정체되었던 디젤을 Z세대의 열광적인 아이콘으로 소생시키고, 존 갈리아노의 바통을 이어받아 메종 마르지엘라의 새로운 해체주의 시대를 선언한 2026년 현재 가장 막강하고 전위적인 지배자다. 복잡한 패턴과 철학적 해체를 한눈에 뇌리에 박히는 강렬한 밈(Meme) 이미지로 둔갑시키는 능력이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Y/Project의 와이어 데님과 기형적인 어그 부츠, 디젤의 1DR 백 등 사진 한 장만으로 대중의 욕망을 조종하며 전위적인 런웨이를 매장의 폭발적 매출로 직결시키는 상업적 연금술사로 추앙받는다.
그러나 시각적 충격에 함몰되어 의복 본연의 착용성을 훼손한다는 비판도 거세다. 와이어로 형태를 비틀고 단추선을 엇갈리게 여미는 방식이 런웨이에서는 혁신적으로 보일지언정, 실제 일상에서는 스타일링이 턱없이 복잡하고 신체의 움직임을 과도하게 제약한다는 혹평이 따른다. 디젤이 내세우는 지속가능성 메시지 역시, 결국 낡고 찢어진 표면을 구현하기 위해 거대한 에너지를 낭비하며 대량 생산하는 글로벌 SPA식 구조의 모순을 감추지 못한다는 지적을 받는다.
무엇보다 그가 Y/Project를 떠난 직후 브랜드가 곧바로 운영을 종료한 사태는, 디자이너 1인의 기형적 아이디어에만 맹목적으로 의존한 하우스의 자생력 부재를 뼈아프게 드러냈다. 현재 디젤과 마르지엘라를 동시에 지휘하는 구조 역시 위험한 양날의 검이다. 비틀린 데님, 트롱프뢰유, 낡은 오버사이즈 실루엣 등 마틴스의 강렬한 시그니처가 두 브랜드에서 지속적으로 겹치게 될 경우, 완벽히 다른 혈통을 지닌 두 하우스가 자칫 '글렌 마틴스'라는 한 사람의 거대한 동어반복으로 전락할 수 있다는 우려를 불식시켜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