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럴드 젠타 (Gérald Charles Genta)
개요
<img src="https://d2xsxph8kpxj0f.cloudfront.net/310519663429662740/ffcjRzrXsTCDKgX6s8aDwC/articles/1783347004925-2b21d7cce5933b74.webp" alt="제럴드 젠타" data-orientation="landscape_16_10" data-original-src="https://d2xsxph8kpxj0f.cloudfront.net/310519663429662740/ffcjRzrXsTCDKgX6s8aDwC/articles/1783271608353-9553989ab146e2af.webp" data-source-url="https://www.geraldgenta-heritage.com/gerald-genta" width="600" />
출처: Gerald Genta Heritage
제럴드 젠타는 20세기 시계 디자인의 흐름을 바꾼 스위스 시계 디자이너다. 오데마 피게 로열 오크, 파텍 필립 노틸러스, IWC 인제니어 SL, 유니버설 제네브 폴라우터, 오메가 컨스텔레이션 C 케이스, 불가리 불가리 같은 유명한 모델 뒤엔 항상 그의 이름이 따라 붙는다.
1931년 5월 1일 제네바에서 태어났고, 보석 세공과 금세공 교육을 받은 뒤 시계 업계에 들어왔다. 젠타는 처음부터 브랜드 내부 디자이너로 한 회사에 묶인 인물이 아니었다. 여러 시계 브랜드의 의뢰를 받아 케이스, 베젤, 브레이슬릿, 다이얼을 설계했고, 1969년에는 자기 이름을 단 브랜드도 세웠다. 2011년 세상을 떠날 때까지 손을 놓지 않았고, 제럴드 젠타 헤리티지 협회는 그가 평생 남긴 도안을 10만 점 규모로 추산한다.
가장 큰 전환점은 1970년대의 럭셔리 스틸 스포츠 워치다. 금속의 값이 아니라 설계와 마감, 형태의 밀도로 고급스러움을 만들 수 있다는 쪽으로 고급 시계의 기준을 옮겼고, 로열 오크와 노틸러스가 그 기준의 실물이 됐다.
국내에서는 '제럴드 젠타'와 '제랄드 젠타' 표기가 함께 쓰인다. 시계 커뮤니티와 리테일 콘텐츠에서는 '제랄드 젠타'도 자주 보이지만, MODY 항목명은 검색 접근성을 고려해 '제럴드 젠타'를 우선 표기로 둔다.
약력·연혁
세공 교육과 유니버설 제네브
젠타는 스위스인 어머니와 이탈리아 피에몬테 출신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났다. 젊은 시절에는 보석 세공과 금세공을 배웠고, 1951년 스위스 연방 자격을 얻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교육은 훗날 그의 시계 디자인에서 케이스 선, 베젤 단차, 브레이슬릿 마감이 유난히 강하게 보이는 배경이 됐다.
그는 유니버설 제네브에 합류하며 시계 디자인 경력을 시작했다. 당시 유니버설 제네브는 크로노그래프와 정밀 시계로 알려진 브랜드였다. 젠타는 1954년, 23세의 나이에 스칸디나비아 항공의 북극 항로 취항을 기념하는 시계를 맡았다. 처음 폴라라우터(Polarouter)라는 이름으로 나온 이 시계는 이듬해 폴라우터(Polerouter)로 이름을 바꿨고, 젠타의 이름을 업계에 알린 첫 작업이 됐다.
오메가와 프리랜서 시기
유니버설 제네브 이후 젠타는 여러 스위스 브랜드의 의뢰를 받는 독립 디자이너로 움직였다. 오메가는 1964년 대표 컬렉션 컨스텔레이션의 3세대 케이스를 젠타에게 맡겼고, 여기서 C 케이스 계열이 나왔다. 파이팬 다이얼 시대를 끝내고 1978년까지 이어진 이 케이스는, 시계가 얇은 원형 드레스 워치에서 더 넓고 구조적인 손목 오브제로 넘어가는 중간 단계였다.
이 시기 젠타는 '시계 디자이너'라는 직업의 존재감을 키운 인물로도 중요하다. 스위스 시계 업계는 보통 브랜드, 무브먼트, 장인, 매뉴팩처를 앞세웠고 개별 디자이너 이름은 잘 드러나지 않았다. 젠타는 브랜드 밖에서 의뢰를 받고, 자기 드로잉과 케이스 설계로 여러 회사를 움직인 드문 인물이었다. 1969년에는 자기 이름을 단 브랜드도 세웠다.
로열 오크와 럭셔리 스틸 스포츠 워치
1970년 무렵 오데마 피게의 해외 유통사들은 스포티하면서도 고급스러운 스틸 시계를 요구했고, 당시 경영자 조르주 골레가 이 과제를 젠타에게 넘겼다. 젠타 본인의 회고와 오데마 피게 아카이브에 따르면, 골레는 바젤 페어 전날 저녁 전화로 "지금까지 없던 스틸 스포츠 워치"의 스케치를 다음 날 아침까지 요구했고, 젠타는 하룻밤 만에 첫 도안을 그렸다.
결과물이 1972년 4월 15일 바젤 페어에서 공개된 로열 오크 5402ST다. 이름은 영국 해군이 로열 오크라는 이름을 붙여온 여덟 척의 함선에서 왔고, 여덟이라는 숫자는 팔각 베젤과 겹쳤다. 출시가는 자료에 따라 3,300~3,650 스위스 프랑으로 전해지는데, 어느 쪽이든 같은 카탈로그의 금 시계보다 비쌌고 당시 롤렉스 서브마리너의 여러 배였다. 업계와 일부 고객은 회의적이었지만 첫해에 490개가 팔렸고, 이는 당시 오데마 피게 기준으로는 기록적인 수치였다.
로열 오크는 젠타의 커리어를 결정적인 방향으로 밀었다. 시계 케이스를 둥근 껍데기가 아니라 손목 위에 얹는 작은 구조물처럼 다루는 방식이 이 모델에서 처음으로 시장의 언어가 됐다.
노틸러스와 인제니어 SL
로열 오크가 자리를 잡아가자 파텍 필립도 스틸 스포츠 워치 시장을 외면하기 어려워졌다. 전통적인 귀금속 드레스 워치 브랜드가 이미지 훼손 없이 스틸로 넘어가는 과제였고, 파텍 필립은 다시 젠타를 불렀다. 젠타 본인의 회고에 따르면 그는 바젤 페어 기간 레스토랑에서 파텍 필립 경영진을 건너다보며 냅킨 위에 노틸러스의 첫 스케치를 몇 분 만에 그렸다고 한다. 결과물은 1976년 노틸러스 3700으로 나왔다.
같은 해 IWC 인제니어 SL도 젠타의 손을 거쳤다. 인제니어는 원래 과학자와 엔지니어를 위해 만든 항자성 툴워치 계열이었고, 젠타는 이 라인을 일체형 브레이슬릿 스포츠 워치로 다시 설계했다. 다만 당시 목표 고객이던 실무 엔지니어들에게 이 시계는 너무 과감했고, 판매는 부진했다.
독립 브랜드와 하이 컴플리케이션
1969년 세운 젠타 자신의 브랜드는 외부 브랜드를 위한 작업과 다른 방향으로 갔다. 점핑 아워, 레트로그레이드 표시, 퍼페추얼 캘린더, 미닛 리피터, 투르비용 같은 복잡 기능을 과감한 케이스와 결합하는 실험장이었다.
1980년대에는 디즈니 캐릭터를 다이얼에 올린 판타지 컬렉션을 시작했고, 1994년에는 그랑드 소네리를 내놓으며 브랜드의 기술적 정점을 찍었다. 젠타 브랜드는 1996년 싱가포르의 시계 리테일러 더 아워 글라스에 매각됐지만, 젠타는 이후로도 디자인 작업을 이어갔다.
불가리 인수와 제럴드 찰스
2000년 불가리는 제럴드 젠타 브랜드를 다니엘 로스와 함께 인수했다. 두 브랜드의 하이 컴플리케이션 제작 역량과 제조 시설은 이후 불가리 시계 부문의 기반이 됐고, 젠타라는 이름은 한동안 불가리 안에서 관리됐다.
브랜드를 완전히 떠나보낸 젠타는 같은 2000년, 자신의 두 이름을 딴 새 브랜드 제럴드 찰스(Gérald Charles)를 세웠다. 은퇴하려 했지만 새 디자인이 계속 떠올라 견딜 수 없었다는 것이 본인의 설명이다. 2003년 오랜 지인이던 지비아니 가문에 경영을 넘긴 뒤에도 젠타는 2011년까지 수석 디자이너로 남았고, 2005년에는 브랜드의 대표 케이스인 마에스트로를 그렸다.
젠타는 2011년 8월 17일 80세로 세상을 떠났다. 사후에는 부인 에블린 젠타가 그의 아카이브와 유산을 정리하는 데 중심 역할을 맡았다.
사후
2023년에는 루이비통의 고급 시계 제작 조직인 라 파브리크 뒤 탕 루이비통이 제럴드 젠타 브랜드 부활을 맡았다. 이 프로젝트는 에블린 젠타의 협조와 아카이브 접근을 바탕으로 진행됐다. 방향은 대량 생산형 컬렉션보다 소량 하이 컴플리케이션에 가깝다.
이 부활은 단순한 레트로 복각이 아니다. 젠타라는 이름이 로열 오크와 노틸러스의 디자이너를 넘어, 독립 하이 컴플리케이션 브랜드로 다시 쓰일 수 있는지를 시험하는 작업이다. 젠타가 남긴 드로잉과 미완성 아이디어는 이후 브랜드가 활용할 수 있는 시각적 자산으로 남아 있다.
디자인 철학·시그니처
케이스와 브레이슬릿의 일체화
젠타의 시계는 케이스와 브레이슬릿이 따로 노는 경우가 적다. 로열 오크, 노틸러스, 인제니어 SL은 모두 케이스에서 브레이슬릿이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러그가 스트랩을 잡는 연결 부품으로만 보이지 않고, 케이스 구조의 일부처럼 작동한다.
이 방식은 시계를 손목 위의 작은 물체에서 손목을 감싸는 금속 구조로 바꿨다. 브레이슬릿 마디는 단순한 줄이 아니라 케이스의 형태를 계속 이어가는 면이다. 그래서 젠타의 대표작은 정면 사진보다 손목에 감겼을 때 더 강하게 보인다.
베젤의 전면화
젠타는 베젤을 단순히 유리를 고정하는 테두리로 두지 않았다. 로열 오크의 팔각형 베젤, 노틸러스의 둥근 팔각형 케이스, 인제니어 SL의 홈이 파인 베젤, 불가리 불가리의 로고 베젤은 모두 시계의 첫인상을 만든다.
이전의 많은 고급 시계는 다이얼과 브랜드 로고가 중심이었다. 젠타는 케이스 바깥쪽의 금속 테두리를 브랜드 표식으로 끌어올렸다. 손목 위에서 멀리 보이는 것은 작은 로고보다 케이스 윤곽과 베젤의 형태였기 때문이다.
스테인리스 스틸의 고급화
젠타가 바꾼 가장 큰 기준은 스테인리스 스틸에 대한 인식이다. 로열 오크와 노틸러스 이전에도 스틸 시계는 많았지만, 스틸은 주로 실용 소재로 받아들여졌다. 젠타는 스틸을 값싼 대체재가 아니라, 정밀한 마감과 구조를 보여주는 소재로 다뤘다.
브러싱과 폴리싱이 교차하는 표면, 날카로운 모서리, 베젤과 케이스의 단차, 촘촘하게 이어지는 브레이슬릿은 스틸의 차갑고 단단한 성질을 그대로 드러낸다. 스틸은 금보다 부드럽지 않아서 오히려 가공이 까다롭고, 젠타의 스틸 스포츠 워치는 이 어려움 자체를 고급스러움의 근거로 삼았다.
원형에서 벗어난 기하학
젠타의 시계는 원형 드레스 워치의 관습에서 자주 벗어난다. 팔각형, 둥근 사각형, 배럴형, C 케이스, 계단식 케이스처럼 손목 위에 또렷한 윤곽을 만든다. 이 형태들은 단순히 튀기 위한 장식이 아니라, 베젤과 브레이슬릿을 한 구조로 묶기 위한 선택이었다.
로열 오크의 팔각형은 나사와 베젤을 함께 보여주고, 노틸러스의 양옆 돌출부는 현창의 힌지를 떠올리게 한다. 오메가 컨스텔레이션 C 케이스는 러그를 케이스 안으로 끌어들여 더 매끈한 측면을 만들었다. 젠타에게 기하학은 장식보다 구조를 정리하는 방식이었다.
장난기와 복잡 기능
젠타는 하이 컴플리케이션을 무겁고 엄숙한 방식으로만 다루지 않았다. 그는 복잡한 시계가 반드시 조용하고 보수적이어야 한다는 전제를 따르지 않았고, 정교한 기계식 무브먼트와 유머가 같은 다이얼 안에 있을 수 있다고 봤다.
디즈니 판타지 컬렉션은 이 태도가 가장 직접적으로 드러난 사례다. 고급 시계의 권위를 일부러 흔드는 이 장난기는 말년의 제럴드 찰스 마에스트로까지 이어진다. 스스로를 시계 디자이너 이전에 화가로 여겼던 젠타에게, 시계는 정색하고 만드는 정밀 기계이기 전에 그리는 대상이었다.
주요 작업
유니버설 제네브 폴라우터
폴라우터는 젠타가 23세에 디자인한 초기 대표작이다. 스칸디나비아 항공의 북극 항로 취항 기념 모델로 출발했고, 이후 유니버설 제네브를 대표하는 수집 대상이 됐다. 1955년부터는 유니버설 제네브의 마이크로로터 무브먼트(칼리버 215 계열)를 품으면서, 디자인만이 아니라 무브먼트로도 수집가들이 찾는 시계가 됐다.
디자인은 로열 오크 이후의 젠타와 다르다. 케이스는 비교적 얌전하고, 다이얼은 드레스 워치에 가깝다. 그러나 뒤틀린 듯 보이는 리라 러그, 다이얼 중심부와 외곽 링을 나누는 방식, 얇은 베젤의 비례에는 이미 젠타의 균형감이 보인다. 손목 위에서 작고 단정하지만, 케이스 윤곽과 다이얼 구조가 분명하다.
오메가 컨스텔레이션 C 케이스
컨스텔레이션 C 케이스는 젠타가 1964년 오메가의 대표 컬렉션을 현대적으로 다듬은 작업이다. 지름 35mm의 케이스는 양옆이 알파벳 C 두 개를 마주 세운 듯한 곡선으로 이어지고, 러그는 케이스 안으로 흡수된 듯 처리됐다. 컨스텔레이션의 세 번째 세대라서 세 번째 알파벳인 C를 골랐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이 디자인은 전통적인 드레스 워치와 1970년대 일체형 스포츠 워치 사이에 놓인다. 아직 노출 나사와 강한 베젤을 쓰지는 않았지만, 다이얼과 무브먼트가 아니라 케이스 자체가 시계의 인상을 만드는 쪽으로 이미 이동하고 있다. 지름 대비 커 보이는 착용감도 통합된 러그에서 나온다.
오데마 피게 로열 오크
로열 오크는 젠타의 이름을 세계적으로 굳힌 모델이다. 첫 레퍼런스 5402ST는 39mm 스테인리스 스틸 케이스에 팔각형 베젤, 여덟 개의 노출 나사, 일체형 브레이슬릿, 프티 타피스리 패턴의 블루 다이얼을 결합했다. 두께는 7mm 남짓으로, 예거 르쿨트르 칼리버 920을 베이스로 한 초박형 자동 무브먼트 칼리버 2121이 이를 가능하게 했다.
팔각형 베젤은 잠수부의 헬멧에서 영감을 받은 것으로, 젠타 본인이 확인한 유래다. 나사를 숨기지 않고 베젤 위에 드러낸 점도 당시 고급 시계 기준에서는 낯선 선택이었다. 이 시계는 기계적인 구조를 숨기지 않고, 오히려 고급스러움의 근거로 삼았다. 일체형 브레이슬릿은 제작이 워낙 까다로워, 초기 프로토타입은 스틸 가공 비용 문제로 화이트 골드로 먼저 만들어졌다는 이야기가 전해질 정도다.
로열 오크는 이후 오데마 피게를 대표하는 컬렉션이 됐고, 럭셔리 스틸 스포츠 워치라는 장르의 기준점으로 남았다.
파텍 필립 노틸러스
노틸러스는 1976년 등장한 파텍 필립의 스포츠 워치다. 첫 레퍼런스 3700, 이른바 '점보'는 42mm 케이스로 당시 기준 상당히 컸다. 선박의 현창에서 착안한 둥근 팔각형 케이스, 힌지를 연상시키는 양옆 돌출부, 가로 엠보싱 다이얼, 일체형 브레이슬릿이 특징이고, 무브먼트는 로열 오크의 2121과 같은 예거 르쿨트르 920을 베이스로 한 칼리버 28-255였다. 두 라이벌이 같은 뿌리의 무브먼트를 품었다는 점은 이 시기 스위스 하이엔드 업계의 사정을 보여주는 대목이기도 하다.
로열 오크와 노틸러스는 같은 젠타의 손에서 나왔지만 성격이 다르다. 로열 오크가 더 날카롭고 산업적인 구조를 앞세웠다면, 노틸러스는 더 부드럽고 납작한 금속 덩어리에 가깝다. 파텍 필립도 이 시계의 위치를 정확히 알았다. 세계에서 가장 비싼 시계 가운데 하나가 스틸로 만들어졌다는 취지의 당시 광고는, 스틸 럭셔리라는 역설을 정면으로 내세운 문장이었다.
IWC 인제니어 SL
인제니어 SL 레퍼런스 1832는 1976년에 나온 젠타의 또 다른 일체형 스포츠 워치다. 항자성 툴워치라는 기능적 배경에 맞춰 40mm의 단단한 케이스, 다섯 개의 홈이 있는 원형 베젤, 일체형 브레이슬릿을 적용했고, 무브먼트는 IWC의 펠라톤 와인딩을 쓰는 칼리버 8541 계열이었다. 연철 이너 케이스까지 더해져 무게가 상당했고, 손목 위 존재감은 로열 오크보다도 묵직했다.
첫 세대의 생산 수량은 1천 개 안팎에 그친 것으로 전해진다. 이 희소성과 뚜렷한 디자인이 훗날 수집가 시장에서 이 시계의 위치를 바꿔 놓았고, 현행 인제니어 라인이 이 디자인으로 돌아온 배경이 됐다.
불가리 불가리
불가리 불가리는 로고를 베젤에 새긴 방식으로 유명한 시계다. 1975년 불가리가 주요 고객에게 선물한 디지털 시계 불가리 로마에서 출발해, 1977년 정규 컬렉션으로 자리를 잡았다. 고대 로마 주화의 둘레 글자에서 착안한 구조를 시계 베젤로 옮겼고, 브랜드 이름 자체가 장식이 됐다.
이 디자인은 젠타가 베젤을 얼마나 적극적으로 다뤘는지 보여준다. 로열 오크가 나사와 팔각형으로 베젤을 전면화했다면, 불가리 불가리는 로고를 베젤 위에 반복해 주얼리 브랜드의 정체성을 시계 케이스에 새겼다. 브랜드명이 다이얼 안쪽 작은 로고가 아니라 손목 위 금속 테두리 전체로 확장됐다.
까르띠에 파샤
파샤는 까르띠에의 오래된 주문 제작 서사와 1980년대 재해석이 함께 얽힌 모델이다. 젠타 헤리티지 자료는 젠타가 1985년 파샤를 스포티한 남성용 시계로 다시 설계했다고 설명한다.
둥근 케이스, 체인으로 연결된 보호 캡이 달린 크라운, 까르띠에다운 우아한 비례는 로열 오크나 노틸러스와 다른 방식으로 스포츠성과 럭셔리를 섞었다. 젠타가 각진 스틸 스포츠 워치만 만든 디자이너가 아니었다는 점을 보여주는 작업이다.
디즈니 컬렉션
젠타의 디즈니 판타지 컬렉션은 1980년대 그의 독립 브랜드에서 나온 가장 의외의 작업이다. 미키 마우스, 도널드 덕, 미니 마우스 같은 캐릭터가 금 케이스와 정교한 기계식 무브먼트 위에 올라갔다.
단순 캐릭터 상품이 아니었다. 미키의 팔이 분을 가리키는 동안 점핑 아워가 창 안에서 숫자를 바꾸고, 레트로그레이드 바늘이 부채꼴 눈금 끝에서 제자리로 튕겨 돌아온다. 장난감처럼 보이는 다이얼 아래에 당시 기준으로 드물던 표시 방식의 기계 구조가 깔려 있었다.
옥토고널과 그랑드 소네리
젠타 브랜드의 옥토고널 계열은 팔각형 케이스와 복잡 기능을 결합한 작업이다. 스켈레톤 다이얼, 문페이즈, 날짜, 요일, 월 표시, 미닛 리피터 같은 요소가 작은 케이스 안에 들어갔다. 로열 오크의 팔각형이 외부 브랜드의 자산이 된 뒤에도, 젠타가 이 형태를 자기 브랜드 안에서 계속 밀고 나갔다는 점이 흥미로운 지점이다.
그랑드 소네리는 젠타 브랜드의 기술적 야심을 보여준다. 1994년 나온 이 시계는 정해진 시간마다 스스로 종을 치는 그랑드 소네리 기능에 웨스트민스터 4해머 차임, 퍼페추얼 캘린더 계열 기능을 겹쳤고, 부품 수가 1천 개를 넘는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가장 복잡한 손목시계 가운데 하나로 꼽혔으며, 젠타는 여기서 디자인만이 아니라 복잡한 기계 장치를 어떤 케이스와 다이얼 안에 담을지까지 밀어붙였다.
제럴드 찰스 마에스트로
마에스트로는 젠타가 말년에 세운 브랜드 제럴드 찰스의 대표 케이스로, 2005년 젠타가 직접 그린 도안이다. 사각형과 팔각형의 기하가 섞인 비대칭 케이스에, 6시 방향이 살짝 아래로 웃듯 휘어지는 이른바 '스마일' 커브가 시그니처다. 이 곡선은 17세기 로마 바로크 건축가 보로미니의 오목한 형태에서 착안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마에스트로는 로열 오크나 노틸러스보다 더 장식적이고 유연하다. 고급 스포츠 워치의 규칙을 만든 디자이너가 말년에는 그 규칙 바깥에서 더 개인적인 형태 실험을 계속했다는 점을 보여주고, 현행 제럴드 찰스 컬렉션은 지금도 이 케이스를 중심으로 움직인다.
영향 관계
럭셔리 스포츠 워치의 장르화
젠타의 가장 큰 영향은 럭셔리 스포츠 워치라는 장르를 구체적인 형태로 만든 데 있다. 스테인리스 스틸, 일체형 브레이슬릿, 강한 베젤, 고급 마감, 스포츠성과 드레스 워치의 혼합은 로열 오크와 노틸러스 이후 하나의 시장 언어가 됐다.
이 장르는 이후 여러 브랜드로 퍼졌다. 다만 모든 1970년대 일체형 스포츠 워치를 젠타가 디자인한 것은 아니다. 바쉐론 콘스탄틴 222는 자주 젠타 계열로 묶이지만, 공식적으로는 외르크 하이섹의 작업으로 구분된다. 젠타의 영향이 컸다는 말과 직접 디자인했다는 말은 나눠야 한다.
브랜드보다 앞에 나온 디자이너 이름
스위스 시계 산업은 오랫동안 브랜드와 매뉴팩처를 중심으로 이야기됐다. 젠타는 그 구조 안에서 디자이너 이름을 전면에 올린 드문 인물이다. 로열 오크와 노틸러스는 각각 오데마 피게와 파텍 필립의 대표작이지만, 동시에 젠타의 대표작으로도 불린다.
이 점은 자동차나 가구 디자인과도 닮았다. 사용자는 제품을 브랜드로 기억하지만, 고관여자는 그 뒤의 디자이너 이름을 함께 찾는다. 젠타는 시계 분야에서 이 구조를 만든 거의 첫 세대의 스타 디자이너였고, 이후 세이코 크레도르나 오메가 시마스터 폴라리스처럼 스위스 바깥과 주변부까지 의뢰가 이어진 것도 이 이름값의 결과였다.
불가리와 LVMH 안의 젠타
불가리는 2000년 젠타 브랜드를 다니엘 로스와 함께 인수하며 하이 컴플리케이션과 강한 케이스 디자인 자산을 확보했다. 젠타 브랜드가 쌓아온 소네리와 리피터 계열의 기술은 이후 불가리가 옥토 라인으로 하이엔드 시계 시장에 자리 잡는 밑거름이 됐다.
불가리가 LVMH에 편입된 뒤, 젠타라는 이름은 그룹 차원의 자산이 됐다. 2023년 라 파브리크 뒤 탕 루이 비통이 브랜드 부활을 맡은 것도 이 연장선에 있다. 젠타의 이름이 과거 디자이너의 표기가 아니라, 오늘날 하이엔드 시계 시장에서 다시 굴릴 수 있는 브랜드 자산으로 취급된다는 뜻이다.
에블린 젠타와 아카이브
젠타의 사후 유산 정리에서 에블린 젠타의 역할은 중요하다. 젠타가 남긴 방대한 드로잉과 미완성 아이디어, 개인 작업은 단순한 기록이 아니라 시계 디자인 아카이브로 다뤄졌고, 헤리티지 협회 설립과 브랜드 부활 모두 이 아카이브 위에서 이뤄졌다.
특히 시계 실물이 아니라 손으로 그린 원본 도안이 독립적인 수집 대상이 됐다는 점이 의미가 크다. 시계 디자인이 완성품의 부속 정보가 아니라, 그 자체로 감상하고 소장하는 대상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젠타의 아카이브가 보여줬다.
수상·전시 이력
제럴드 젠타는 생전의 공식 수상 이력보다 사후의 아카이브화와 경매, 전시로 더 강하게 평가받는 인물이다. 그의 이름은 특정 상 하나보다 여러 브랜드의 대표 컬렉션에 남아 있다.
2019년에는 에블린 젠타의 주도로 제럴드 젠타 헤리티지 협회가 설립됐다. 이 협회는 젠타의 작업을 보존하고 젊은 시계 디자이너를 지원하기 위해 만들어졌으며, 매년 시계 디자인 공모를 운영한다. 젠타의 유산이 단순 회고가 아니라 다음 세대 시계 디자인 교육과 연결됐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2022년 소더비는 'Gérald Genta: Icon of Time' 경매 시리즈를 열었다. 제네바, 홍콩, 뉴욕에서 진행된 이 경매는 젠타의 원본 수채화 도안 100점과 미공개 커미션 작업을 다뤘다. 로열 오크 50주년과 젠타 사후 10년이 맞물린 시점에 열린 행사로, 시계 디자이너의 도안이 단독 경매 시리즈의 주인공이 된 드문 사례였다.
반응과 평가
디자인
젠타는 시계 디자인에서 케이스의 역할을 바꾼 인물로 평가받는다. 전통적인 고급 시계가 다이얼, 무브먼트, 귀금속 케이스로 설득했다면, 젠타는 케이스 윤곽과 브레이슬릿 구조 자체를 제품의 중심으로 끌어올렸다.
로열 오크와 노틸러스는 이 변화를 가장 강하게 보여준다. 두 모델은 모두 스틸을 썼지만, 값싼 실용 시계처럼 보이지 않았다. 베젤의 형태, 케이스의 단차, 브레이슬릿의 연결, 표면 마감이 고급스러움의 근거가 됐다.
이후 많은 시계 브랜드가 일체형 브레이슬릿 스포츠 워치를 만들었다. 젠타의 이름이 직접 들어가지 않은 모델에서도 팔각형, 배럴형 케이스, 강한 베젤, 브러시드 스틸 마감, 통합 브레이슬릿의 영향이 반복된다.
브랜드·인물
젠타는 한 브랜드의 내부 디자이너로만 설명하기 어렵다. 유니버설 제네브, 오메가, 오데마 피게, 파텍 필립, IWC, 불가리, 까르띠에를 오가며 서로 다른 브랜드의 대표 시계를 설계하거나 재해석했다.
이 경력은 젠타를 시계 업계의 예외적인 인물로 만들었다. 일반적으로 고급 시계 브랜드는 디자이너 개인보다 브랜드 역사와 장인을 앞세운다. 젠타는 그 구조 안에서 개인 이름이 브랜드보다 먼저 떠오르는 몇 안 되는 디자이너가 됐다.
그의 독립 브랜드 활동도 중요하다. 로열 오크와 노틸러스가 다른 브랜드의 대표작이라면, 판타지 컬렉션과 그랑드 소네리, 그리고 말년의 제럴드 찰스는 젠타 개인의 취향과 과잉, 장난기, 복잡 기능에 대한 집착이 더 직접적으로 드러난다.
디자인 반응
젠타 디자인은 늘 처음부터 안전하게 받아들여진 쪽이 아니었다. 로열 오크는 스테인리스 스틸인데도 금 시계보다 비쌌고, 노출 나사와 팔각형 베젤은 전통적인 고급 시계와 거리가 멀었다. 당시 오데마 피게 내부 기록에도 시장의 회의적인 반응이 남아 있다. 인제니어 SL도 목표 고객에게는 너무 과감한 시계였고, 판매량은 제한적이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며 이 낯섦이 장점으로 바뀌었다. 로열 오크와 노틸러스는 브랜드의 대표 컬렉션이 됐고, 인제니어 SL은 적은 생산량과 강한 디자인 때문에 '가장 뛰어난 실패작'에 가까운 모델로 재평가되며 수집가들이 찾는 시계가 됐다.
디즈니 컬렉션도 반응이 갈리는 작업이다. 한쪽에서는 고급 시계에 캐릭터를 넣은 장난스러운 작업으로 보고, 다른 쪽에서는 복잡한 기계식 시계와 대중문화 이미지를 섞은 젠타다운 실험으로 본다. 젠타의 디자인은 고급 시계가 어디까지 장난칠 수 있는지를 계속 시험했다.
비판
젠타에 대한 비판은 주로 과잉 귀속에서 나온다. 로열 오크와 노틸러스의 성공이 워낙 커서, 1970~80년대 일체형 스포츠 워치 상당수가 젠타의 작업처럼 묶이는 경우가 있다. 바쉐론 콘스탄틴 222가 외르크 하이섹의 작업인 것처럼, 1982년의 오메가 컨스텔레이션 맨해튼도 캐롤 디디스하임의 디자인인데 C 케이스의 후광 때문에 젠타 작업으로 자주 오해된다. 헤리티지 협회가 추산하는 10만 점이라는 도안 규모도, 역설적으로 어디까지가 젠타의 손인지 가르기 어렵게 만드는 요인이다.
또 다른 비판은 젠타의 독립 브랜드 작업이 때로 지나치게 장식적이고 과하다는 점이다. 그랑드 소네리, 옥토고널, 디즈니 캐릭터 시계는 젠타의 자유로운 상상력을 보여주지만, 로열 오크나 노틸러스처럼 절제된 구조미를 기대하는 사람에게는 부담스럽게 보일 수 있다.
최근에는 젠타의 이름이 럭셔리 스포츠 워치 시장의 과열과 함께 소비되는 점도 논점이 된다. 로열 오크와 노틸러스는 디자인사적으로 중요한 모델이지만, 중고가와 대기 수요, 유명인 착용, 한정판 문화가 겹치면서 디자인보다 희소성과 투자성이 더 크게 말해지는 경우도 많다. 젠타의 성취를 제대로 보려면 가격표보다 케이스, 베젤, 브레이슬릿이 어떻게 하나의 구조로 묶였는지를 먼저 봐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