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랜시스 케레 (Diébédo Francis Kéré)
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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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strid Eckert
프랜시스 케레(Diébédo Francis Kéré)는 흙, 목재, 석재 등 현지의 자재를 현대적 공법으로 개량하고, 시공 과정 전체를 지역 주민의 교육과 자립 기반으로 삼는 부르키나파소 출신의 건축가다. 1965년 간도에서 태어나 독일 베를린공과대학교에서 건축을 전공했으며, 현재 베를린에 케레 아키텍처를 세우고 전 세계를 무대로 활동 중이다. 2022년 아프리카 출신 최초로 건축계 최고 영예인 프리츠커상을 수상했다.
그의 건축은 척박한 환경을 결코 낭만화하지 않는다. 흙벽이 비에 속수무책으로 쓸려가고, 양철 지붕이 열기를 복사해 실내를 찜통으로 만드는 열악한 현실을 정확히 진단한 뒤, 시멘트를 배합한 압축 흙블록과 복사열을 배출하는 이중 지붕으로 냉철하게 구조를 해체하고 조립한다. 특히 주민들을 단순한 육체노동자로 소모하지 않고 블록 성형, 조적, 유지 보수 기술을 직접 전수하며 시공의 주체로 끌어들인다. 간도의 작은 초등학교에서 발원한 이 철학은 현재 베냉 국회의사당 등 국가적 기념비로 스케일을 넓히고 있으나, 기후에 순응하는 거대한 그늘과 자연 환기, 지역 공동체의 참여라는 설계의 뼈대는 한결같이 유지되고 있다.
약력·연혁
부르키나파소의 척박한 간도 마을에서 자란 그는 어린 시절 어둡고 푹푹 찌는 교실에서 학업을 견뎌야 했다. 이 신체적 기억은 훗날 첫 번째 프로젝트인 간도 초등학교를 설계할 때 채광과 환기를 최우선 과제로 삼게 한 근원적 배경이다. 1985년 장학생 자격으로 독일에 건너가 목공과 건축을 수학하면서도, 그는 고향 마을에 학교를 세우기 위한 재단 설립과 모금 활동을 치열하게 병행했다.
대학 졸업 전인 2001년 완공한 간도 초등학교는 케레 건축의 강력한 서막이었다. 흙은 비에 녹아내리는 가난의 상징이라며 만류하던 주민들을 설득해, 점토에 소량의 시멘트를 섞고 압축해 내구성을 비약적으로 높인 흙블록을 선보였다. 학교 완공 후 학생들이 몰려들자 그는 떠나지 않고 증축과 도서관, 교사 주택 건립을 이어가며 마을의 교육 인프라를 단계적으로 엮어냈다. 2005년 베를린에 정식으로 사무소를 연 이후 말리, 모잠비크 등으로 아프리카 내 작업 반경을 넓혔고, 베를린의 전문 설계팀과 아프리카의 현장 기술진이 협업하는 독자적인 수평적 생산 구조를 확립했다. 2017년 런던 서펜타인 파빌리온 설계를 기점으로 국제적 스타덤에 올랐으나, 그의 관심사는 일관되게 공동체가 모이는 그늘과 바람이 통하는 구조의 확장에 머물고 있다.
디자인 철학·시그니처
뜨거운 공기를 빼내는 이중 지붕
케레의 건축에서는 거대한 지붕이 가장 먼저 조형적 위용을 드러낸다. 얇은 금속 지붕을 벽체와 분리해 공중으로 띄워 올리고, 그 사이로 열기가 자연스럽게 빠져나가게 설계한다. 처마는 바깥으로 넓게 확장되어 취약한 흙벽과 창문을 우기와 직사광선으로부터 보호한다. 기계적인 에어컨 설비에 의존하지 않고, 바닥의 찬 공기가 유입되어 천장의 구멍을 거쳐 지붕 틈새로 배출되는 원초적이고 기계적인 공조 시스템을 구축한다.
흙의 현대적 개량
현지의 흙을 전통 방식 그대로 맹목적으로 답습하지 않는다. 흙에 시멘트를 배합하고 압축해 물과 충격에 버티는 현대적 내구성을 부여한다. 지역에서 쉽게 구하는 점토 항아리를 천장 채광창으로 전용하거나 얇은 유칼립투스 나무를 수직 차양으로 세우는 등, 토착 재료의 물성을 기능에 맞게 재가공한다. 하중이 집중되는 거대 지붕이나 코어에는 주저 없이 철근 콘크리트와 철골을 병용하며 기술적 타협을 찾는다.
광장이 되는 커다란 그늘
건물 내부의 실내 면적을 무작정 확보하기보다, 지붕 아래와 복도, 처마 밑에 깊고 넓은 그늘을 조성하는 데 집중한다. 건물 여러 동을 원형으로 배치해 중앙에 바람이 모이는 마당을 비워둔다. 수업을 마친 아이들, 회의를 여는 마을 주민들이 땡볕을 피해 자연스럽게 모여드는 이 서늘한 여백이야말로 케레가 의도한 진정한 공공의 광장이다.
건축 기술의 사회적 환원
시공 과정에서 지역 주민을 일용직으로 소비하지 않고, 블록의 배합 비율부터 조적 방식, 지붕의 용접까지 직접 가르친다. 건물이 완공된 후에도 외부 업체의 손을 빌리지 않고 주민 스스로 수리와 보수를 감당할 수 있게 만들기 위함이다. 건축물의 결과적 조형 못지않게, 건설 행위 자체가 지역의 일자리를 창출하고 자생력을 훈련하는 사회적 도구로 작동한다.
주요 작업
베냉 국회의사당 (2019~)
포르토노보에 건립 중인 35,000㎡ 규모의 국가 권력 시설이다. 아프리카 전통 마을에서 원로들이 부족의 대소사를 논의하던 거대한 '팔라버 트리(Palaver Tree)'에서 모티브를 얻었다. 비워둔 중앙 마당은 나무의 거대한 기둥 역할을 하며, 상층부 구조물은 나뭇가지처럼 넓게 뻗어 나가며 회의장과 시민 광장을 동시에 감싼다. 권위적인 서구식 돔이나 장식을 거부하고, 민주주의의 합의 과정을 수평적이고 그늘진 나무 아래 광장으로 재해석했다.
토마 상카라 기념관 (2025)
부르키나파소 와가두구에 조성된 묘역이자 교육 시설이다. 1987년 암살된 아프리카의 혁명가 토마 상카라가 묻힌 장소를 보존하며, 라테라이트 흙블록을 쌓아 올려 타원형의 엄숙한 묘역과 공공 광장을 함께 빚어냈다. 두터운 흙벽과 자연 환기로 냉방 에너지를 통제했으며, 기념비적인 추모에 머물지 않고 일상적인 시민들이 모여 역사를 학습하고 토론하는 열린 장소로 구현했다.
서펜타인 파빌리온 (2017)
런던 켄싱턴 가든에 세워진 임시 목조 파빌리온이다. 고향 간도의 마을 사람들이 거대한 나무 아래 모여들던 기억을 런던의 공원에 이식했다. 넓은 챙을 가진 모자처럼 하늘로 열린 거대한 지붕을 중앙에 얹어, 비가 오면 깔때기처럼 빗물이 모여 폭포수처럼 쏟아지도록 연출했다. 벽체는 파란색 목재 모듈을 성글게 엇갈려 쌓아, 시선과 바람이 구조물을 자연스럽게 관통하게 한 유희적인 설치물이다.
리세 쇼르게 중등학교 (2016)
부르키나파소 쿠두구에 들어선 중등학교다. 9개의 개별 교실 모듈을 부채꼴로 배열해 중앙에 거대한 집회 마당을 비워두었다. 외벽은 붉은 라테라이트 석재를 쌓아 올렸고, 그 바깥으로 유칼립투스 원목을 빼곡히 세워 직사광선을 튕겨내는 차양막이자 학생들의 휴식처를 조성했다. 파도처럼 굽이치는 벽돌 볼트 천장 위로 거대한 양철 지붕을 띄워 극강의 단열과 환기 효율을 뽑아냈다.
간도 초등학교 (2001)
케레의 건축적 여정을 알린 첫 번째 결실이자 기념비적 데뷔작이다. 폭염에 노출된 아프리카 교실의 전형적인 참사를 끊어내고자, 시멘트를 섞어 강도를 높인 압축 흙블록을 쌓고 천장에 공기 배출구를 낸 뒤 거대한 금속 지붕을 우산처럼 덧씌웠다. 주민 전체가 블록을 찍고 지붕을 올리는 전 과정에 결합했으며, 이 작은 학교의 성공적 안착은 이후 부르키나파소 일대에 유사한 교육 시설들이 연쇄적으로 들어서는 기폭제가 되었다.
영향 관계
케레의 뼈대는 부르키나파소의 척박한 기후와 전통적 토착 지혜, 그리고 독일 베를린공과대학교에서 체득한 치밀한 구조 공학과 목공 기술이 결합된 하이브리드다. 그는 흙이라는 원시적 재료의 한계에 낭만적으로 순응하지 않고, 과학적인 배합과 구조 계산을 통해 공공건축이 요구하는 내구성과 스케일로 격상시켰다. 프리츠커상 수상 이후 지역의 자재와 기후 대응, 커뮤니티의 능동적 참여는 현대 건축을 평가하는 가장 강력하고 필수적인 기준으로 격상되었다. 그의 영향력은 단순히 '흙벽돌의 부활'이 아니라, 재료-환기 시스템-주민 교육이라는 3박자를 단일한 건축 공정으로 묶어낸 시스템적 승리에 있다.
수상·전시 이력
간도 초등학교로 2004년 아가 칸 건축상을 거머쥐며 일찍이 아프리카 외부 세계의 주목을 받았다. 2009년 지속가능한 건축 글로벌 어워드, 2012년 글로벌 홀심 어워드 금상 등 환경과 윤리를 앞세운 유수의 어워드를 석권했다. 마침내 2022년 프리츠커 건축상을 수상하며 아프리카 출신 최초의 수상자라는 역사적 타이틀을 안았다. 2023년 다카마쓰노미야 전하기념 세계문화상(건축 부문)을 연이어 수상했으며, 뮌헨 피나코테크 데어 모데르네 등 세계적 미술관에서 대규모 회고전을 가지며 학술적 담론의 중심으로 자리 잡았다.
반응과 평가
사회적 윤리와 압도적인 조형의 완성도를 한 치의 타협 없이 결합한 독보적 인물로 추앙받는다. 적은 예산으로 지어지는 학교와 보건소가 흔히 띠기 쉬운 '구호 시설'의 남루함을 철저히 벗어던졌다. 붉은 흙의 선명한 질감, 유칼립투스의 반복적인 수직 배열, 중력을 거스르는 듯한 거대 지붕 등 치밀한 비례 감각을 통해 지역의 공공건축을 시각적으로도 훌륭한 마스터피스로 끌어올렸다. 이러한 역량을 인정받아 최근에는 베냉 국회의사당을 비롯해 라스베이거스 미술관 등 막대한 자본과 권력이 개입하는 영미권 및 국가 스케일의 프로젝트까지 장악하고 있다.
그러나 짙은 비판의 그림자도 상존한다. 주민 참여를 내세운 건설 방식은 고도의 교육과 막대한 소통의 시간을 요구하며, 궁극적인 자금줄과 핵심 엔지니어링은 여전히 유럽(베를린 사무소)과 국제 기부 재단에 종속되어 있다는 구조적 딜레마를 안고 있다. 아울러 대규모 국가 시설이나 서구권의 상업 프로젝트에서는 간도 초등학교 시절의 '저비용 지역 조달' 원칙을 고수하기 어려워, 값비싼 철골과 수입 자재의 비중이 늘어날 수밖에 없다. '가난한 마을 사람들과 흙돌을 찍어낸 착한 건축가'라는 서구 미디어가 덧씌운 낭만적인 오리엔탈리즘 프레임은, 그가 구축한 날카로운 구조 계산과 정교한 기후 대응 시스템, 치열한 공간의 완성도를 가려버리는 치명적인 부작용을 낳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