뎀나 즈바살리아 (Demna Gvasalia)
개요
<img src="https://d2xsxph8kpxj0f.cloudfront.net/310519663429662740/ffcjRzrXsTCDKgX6s8aDwC/articles/1783309414202-ce82ad8fe43bc727.webp" alt="뎀나 즈바살리아" data-orientation="landscape_16_10" data-original-src="https://d2xsxph8kpxj0f.cloudfront.net/310519663429662740/ffcjRzrXsTCDKgX6s8aDwC/articles/1783294773763-afbf233727d5112e.webp" data-source-url="https://www.gq.com/story/demna-gvasalia-leaves-vetements" width="600" />
출처: GQ
뎀나(Demna)는 스트리트웨어, 로고, 과장된 비례, 일상복의 낯선 조합을 럭셔리 패션의 중심 문법으로 끌어올린 조지아 출신 패션 디자이너다. 본명은 뎀나 그바살리아(Demna Gvasalia)이며, 2010년대 중반 이후에는 성을 떼고 뎀나라는 이름을 중심으로 활동하고 있다.
그는 베트멍(Vetements)을 통해 후디, 티셔츠, 데님, 유니폼 같은 평범한 옷을 하이패션의 언어로 다시 제시했다. 발렌시아가(Balenciaga)에서는 크리스토발 발렌시아가(Cristóbal Balenciaga)의 구조적 실루엣을 동시대 스트리트웨어, 디지털 문화, 유명인 이미지와 결합했다. 2025년에는 구찌(Gucci)의 아티스틱 디렉터로 선임되며, 케어링(Kering) 그룹 안에서 발렌시아가 다음 단계의 역할을 맡게 됐다.
뎀나의 디자인은 단순히 옷의 형태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그는 컬렉션, 쇼 연출, 캠페인, 로고, 가격, 유행어, 온라인 반응까지 패션의 일부로 다룬다. 이 때문에 그의 작업은 옷을 만드는 행위와 패션 시스템을 드러내는 행위 사이에 놓인다.
약력·연혁
초기 경력
뎀나는 1981년 조지아 수후미(Sukhumi)에서 태어났다. 조지아 내전 이후 가족과 함께 고향을 떠났고, 이후 독일과 벨기에를 거치며 패션 교육을 받았다. 그는 앤트워프 왕립예술학교(Royal Academy of Fine Arts Antwerp)에서 패션 디자인을 공부했다.
2009년에는 메종 마르탱 마르지엘라(Maison Martin Margiela)에 합류했다. 이 시기 그는 옷의 구조를 해체하고 다시 조립하는 방식, 기존 의복의 익숙한 형태를 비틀어 새 의미를 만드는 방식을 익혔다. 이후 루이 비통(Louis Vuitton)에서 여성복 레디투웨어 선임 디자이너로 일하며 대형 럭셔리 하우스의 제작 방식과 상품 구조를 경험했다.
베트멍
뎀나는 2014년 베트멍(Vetements)을 공동 창립했다. 베트멍은 프랑스어로 ‘옷’을 뜻하는 단어를 브랜드명으로 사용했다. 이름처럼 브랜드는 특별한 장식보다 이미 존재하는 옷의 형태를 다시 바라보는 데 집중했다.
베트멍의 초창기 작업은 과장된 후디, 비정상적으로 긴 소매, 재구성한 데님, 택배 회사 디에이치엘(DHL) 로고 티셔츠처럼 일상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이미지를 하이패션 문맥으로 옮겼다. 이 방식은 패션이 새로움을 만드는 방식 자체를 비틀었다. 옷은 새롭게 발명된 형태가 아니라, 이미 알고 있는 사물을 다른 가격, 다른 무대, 다른 시선으로 다시 보게 만드는 도구가 됐다.
베트멍은 런웨이 장소도 전통적인 패션쇼장에 한정하지 않았다. 식당, 클럽, 백화점, 지하 공간 같은 장소를 사용하며 패션쇼를 컬렉션 발표 이상의 문화적 사건으로 만들었다. 이 시기 뎀나는 스트리트웨어와 럭셔리 패션 사이의 경계를 흐리는 인물로 주목받았다.
발렌시아가
뎀나는 2015년 발렌시아가의 아티스틱 디렉터로 선임됐다. 당시 발렌시아가는 크리스토발 발렌시아가의 쿠튀르 유산을 가진 브랜드였지만, 동시대 대중문화 안에서 강한 존재감을 다시 만들 필요가 있었다.
뎀나의 첫 발렌시아가 컬렉션은 2016년 가을·겨울 시즌에 공개됐다. 그는 창립자의 구조적 실루엣을 그대로 복원하기보다, 어깨가 크게 떨어지는 재킷, 허리와 엉덩이 비례를 강조한 수트, 패딩과 데님 같은 일상복을 통해 발렌시아가의 형태 감각을 현재의 옷으로 옮겼다.
발렌시아가에서 그는 스니커즈, 오버사이즈 아우터, 로고 제품, 왜곡된 가방 형태, 디지털 쇼 연출을 통해 브랜드 이미지를 크게 바꿨다. 트리플 S(Triple S), 스피드 트레이너(Speed Trainer), 아워글래스(Hourglass) 백은 이 시기 발렌시아가를 대중적으로 각인시킨 제품군으로 꼽힌다.
2021년에는 발렌시아가가 1968년 이후 중단했던 오트 쿠튀르(Haute Couture)를 다시 시작했다. 이 복귀는 뎀나가 스트리트웨어만 다루는 디자이너가 아니라, 발렌시아가의 역사적 제작 기술과 동시대 이미지를 함께 다룰 수 있음을 보여준 전환점이었다.
구찌
뎀나는 2025년 구찌의 아티스틱 디렉터로 선임됐다. 구찌는 알레산드로 미켈레(Alessandro Michele) 이후 사바토 데 사르노(Sabato De Sarno)를 거쳤고, 뎀나의 합류는 브랜드가 다시 강한 이미지 전환을 시도한다는 신호로 받아들여졌다.
그의 구찌 첫 행보는 라 파밀리아(La Famiglia) 컬렉션으로 드러났다. 이 컬렉션은 구찌를 하나의 가족처럼 상상하고, 여러 인물 유형을 통해 브랜드의 과거와 현재를 보여주는 방식으로 구성됐다. 이후 구찌 프리마베라(Gucci Primavera) 쇼에서는 몸에 가까운 실루엣, 장식적 소재, 구찌 아카이브를 다시 해석한 의상으로 새로운 방향을 제시했다.
구찌에서의 뎀나는 발렌시아가 시절과 다른 과제를 맡는다. 발렌시아가에서는 브랜드를 도발적이고 날카로운 이미지로 다시 부각했다면, 구찌에서는 이탈리아 럭셔리 하우스의 역사, 관능성, 장식성, 상업성을 함께 정리해야 한다.
디자인 철학·시그니처
일상복의 재해석
뎀나의 디자인은 특별한 옷보다 익숙한 옷에서 출발한다. 후디, 티셔츠, 청바지, 트렌치코트, 정장, 스니커즈처럼 누구나 알고 있는 옷을 크게 만들거나, 길게 늘리거나, 비례를 어긋나게 조정한다.
이 방식은 옷을 낯설게 만든다. 사용자는 평범한 옷을 보고 있지만, 실제 비례와 가격, 착용 맥락은 일상복과 다르다. 뎀나의 디자인에서 익숙함은 편안함보다 불편한 인식의 출발점이 된다.
과장된 비례
뎀나의 대표적인 시각 언어는 과장된 비례다. 어깨는 넓어지고, 소매는 길어지며, 신발은 커지고, 가방은 단단한 조형물처럼 보인다. 몸에 맞는 옷보다 몸을 새롭게 보이게 하는 옷에 가깝다.
발렌시아가에서는 이 비례가 브랜드의 역사와 연결됐다. 크리스토발 발렌시아가가 몸과 옷 사이에 공간을 만들었다면, 뎀나는 그 공간을 스트리트웨어와 현대적 볼륨으로 바꿨다. 이 때문에 그의 발렌시아가는 쿠튀르의 구조와 거리의 옷차림이 동시에 보이는 형태를 갖게 됐다.
로고와 브랜드 이미지
뎀나는 로고를 장식이 아니라 패션이 작동하는 방식을 보여주는 표식으로 사용했다. 베트멍의 디에이치엘 티셔츠, 발렌시아가의 대형 로고 제품, 구찌에서의 브랜드 아카이브 재해석은 모두 로고가 옷의 일부를 넘어 사회적 기호가 되는 방식을 드러낸다.
그의 작업에서 로고는 멋을 보증하는 장식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소비자가 무엇을 입고 있다고 말하게 만드는 장치다. 뎀나는 이 지점을 숨기지 않고 전면에 드러낸다.
쇼와 이미지 연출
뎀나는 런웨이를 옷을 보여주는 장소로만 쓰지 않는다. 쇼 장소, 좌석 구성, 조명, 음악, 초대장, 영상, 유명인 등장 방식까지 브랜드 이미지를 만드는 요소로 다룬다.
발렌시아가의 일부 쇼는 눈보라, 진흙, 레드카펫, 가상 세계처럼 강한 장면으로 구성됐다. 이러한 연출은 컬렉션의 인상을 빠르게 확산시키는 힘을 가졌지만, 동시에 패션쇼가 옷보다 이미지와 논란에 기대는 것 아니냐는 비판도 함께 만들었다.
주요 작업
베트멍
베트멍은 뎀나의 디자인 언어가 처음으로 뚜렷하게 드러난 브랜드다. 일상복을 과장하고, 기존 브랜드 로고와 유니폼 이미지를 가져오며, 전통적인 럭셔리의 우아함과 거리를 뒀다.
베트멍의 후디와 재구성 데님은 2010년대 패션에서 스트리트웨어가 럭셔리의 중심으로 이동하는 흐름과 맞물렸다. 뎀나는 이 흐름을 단순히 따라간 것이 아니라, 하이패션이 왜 평범한 옷을 비싼 가격에 제시하는지 자체를 작품의 일부로 만들었다.
발렌시아가 2016 가을·겨울 컬렉션
발렌시아가 2016 가을·겨울 컬렉션은 뎀나가 하우스의 역사와 자신의 언어를 처음으로 결합한 작업이다. 그는 창립자의 조형적 실루엣을 직접 복제하지 않고, 어깨와 허리, 엉덩이의 비례를 새롭게 조정해 현대적인 수트와 아우터로 바꿨다.
이 컬렉션은 발렌시아가가 단정한 유산 브랜드가 아니라, 동시대 패션을 흔들 수 있는 브랜드로 다시 보이게 만든 출발점이었다. 이후 발렌시아가는 과장된 비례, 스트리트웨어, 로고 제품을 통해 강한 시각 정체성을 얻었다.
트리플 S
트리플 S(Triple S)는 뎀나 시대 발렌시아가를 상징하는 스니커즈다. 러닝화, 농구화, 트랙화의 밑창을 겹친 듯한 두꺼운 구조와 무거운 비례가 특징이다.
이 신발은 얇고 날렵한 스니커즈가 지배하던 시기와 다른 방향을 제시했다. 신발은 발을 가볍게 보이게 하는 물건이 아니라, 전체 착장의 무게 중심을 아래로 끌어내리는 조형물이 됐다. 트리플 S 이후 두꺼운 밑창과 과장된 스니커즈는 여러 브랜드에서 반복되는 흐름으로 확산됐다.
아워글래스 백
아워글래스(Hourglass) 백은 발렌시아가의 구조적 실루엣을 가방으로 옮긴 사례다. 아래쪽으로 휘어진 바닥선과 단단한 형태는 일반적인 사각 백과 다른 인상을 만든다.
이 가방은 뎀나의 발렌시아가가 의류에만 머물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그는 브랜드의 조형 언어를 신발, 가방, 액세서리까지 확장하며 발렌시아가를 하나의 시각 체계로 만들었다.
발렌시아가 오트 쿠튀르 복귀
2021년 발렌시아가 오트 쿠튀르 복귀는 뎀나 경력에서 중요한 전환점이다. 그는 스트리트웨어와 로고 중심의 이미지로 알려졌지만, 쿠튀르 복귀를 통해 패턴, 재단, 소재, 피팅을 다루는 능력을 다시 강조했다.
이 작업은 발렌시아가의 역사와 뎀나의 현재성을 연결했다. 실루엣은 절제됐고, 제작 방식은 정교했으며, 일부 룩에서는 창립자의 구조적 감각을 현대적인 옷으로 다시 정리했다.
구찌 라 파밀리아
라 파밀리아(La Famiglia)는 뎀나가 구찌에서 처음 제시한 방향이다. 컬렉션은 구찌를 하나의 가족처럼 구성하고, 다양한 인물 유형을 통해 브랜드의 장식성, 관능성, 유머, 과거의 이미지를 한꺼번에 보여줬다.
이 작업은 발렌시아가식 냉소와 과장만으로 구찌를 재편하지 않겠다는 신호로 볼 수 있다. 뎀나는 구찌의 역사적 코드와 이탈리아적 캐릭터를 가져오되, 그것을 인물 중심의 이미지로 다시 배열했다.
영향 관계
이전 세대와 사조
뎀나의 작업은 메종 마르탱 마르지엘라의 해체적 태도와 연결된다. 기존 의복을 해체하고, 익숙한 형태를 다시 조립하며, 패션의 제작 과정과 소비 구조를 드러내는 방식이 영향을 줬다.
앤트워프 패션의 실험적 분위기도 그의 경력과 연결된다. 앤트워프 출신 디자이너들은 몸과 옷의 관계를 비틀고, 전통적인 아름다움보다 개념과 구조를 앞세운 경우가 많았다. 뎀나는 이 흐름을 스트리트웨어와 인터넷 시대의 이미지 문화로 옮겼다.
동시대 관계
뎀나는 알레산드로 미켈레, 버질 아블로(Virgil Abloh), 조나단 앤더슨(Jonathan Anderson) 등과 함께 2010년대 럭셔리 패션의 문법을 바꾼 인물로 언급된다. 이들은 모두 전통적인 럭셔리의 권위를 새롭게 해석했지만, 방식은 달랐다.
알레산드로 미켈레가 구찌에서 낭만적 과잉과 젠더 유동성을 전면에 내세웠다면, 뎀나는 발렌시아가에서 차갑고 거대한 실루엣, 로고, 디지털 이미지, 냉소적 유머를 사용했다. 버질 아블로가 스트리트웨어를 열린 문화 플랫폼으로 확장했다면, 뎀나는 스트리트웨어가 럭셔리 안에서 어떻게 소비되고 과장되는지를 더 날카롭게 드러냈다.
후대 영향
뎀나 이후 럭셔리 패션에서는 후디, 스니커즈, 로고 티셔츠, 과장된 아우터가 중심 상품으로 더 쉽게 받아들여졌다. 하이패션과 스트리트웨어의 경계는 이전에도 흔들리고 있었지만, 뎀나는 그 경계를 럭셔리 하우스의 핵심 이미지로 끌어올렸다.
그의 영향은 제품 형태뿐 아니라 패션쇼와 캠페인의 방식에도 남았다. 쇼는 옷을 차례로 보여주는 무대가 아니라, 온라인에서 즉시 공유되는 장면이 됐다. 뎀나의 작업은 패션이 제품, 이미지, 논란, 밈을 동시에 관리해야 하는 시대를 상징한다.
수상·전시 이력
뎀나는 2016년 더 패션 어워즈(The Fashion Awards)에서 발렌시아가 작업으로 인터내셔널 레디투웨어 디자이너(International Ready-to-Wear Designer) 부문을 수상했다. 같은 해 베트멍은 인터내셔널 어반 럭셔리 브랜드(International Urban Luxury Brand)로 선정됐다.
2017년에는 미국패션디자이너협회(CFDA) 패션 어워즈에서 베트멍과 발렌시아가 작업으로 인터내셔널 어워드(International Award)를 받았다. 이 수상은 뎀나가 짧은 기간 안에 독립 브랜드와 대형 럭셔리 하우스 양쪽에서 영향력을 인정받았다는 의미를 가진다.
2025년에는 파리 케어링 본사에서 발렌시아가 바이 뎀나(Balenciaga by Demna) 전시가 열렸다. 이 전시는 발렌시아가에서의 약 10년을 30개 컬렉션 흐름으로 정리한 자리였다. 뎀나의 발렌시아가가 단일 유행이 아니라 하나의 시대적 장면으로 기록되기 시작했음을 보여준다.
반응과 평가
디자인
뎀나는 2010년대 이후 럭셔리 패션에서 가장 강한 시각 언어를 만든 디자이너 중 한 명으로 평가된다. 그의 디자인은 예쁜 옷을 만드는 것보다, 사람들이 이미 알고 있는 옷을 전혀 다른 가격과 맥락에서 다시 보게 만드는 데 강점이 있다.
발렌시아가에서 그는 창립자의 구조적 실루엣을 현대적인 비례로 바꿨다. 어깨, 소매, 밑창, 가방의 선을 과장해 착장 전체가 하나의 조형처럼 보이게 만들었다. 이 방식은 발렌시아가를 다시 강한 이미지의 브랜드로 만들었다.
품질·안전
뎀나의 작업은 레디투웨어와 쿠튀르 사이의 폭이 크다. 베트멍과 발렌시아가의 스트리트 기반 제품은 의도적으로 투박하고 과장된 형태를 사용했다. 반면 발렌시아가 오트 쿠튀르 복귀에서는 재단, 피팅, 소재 처리 같은 전통적 제작 능력을 전면에 드러냈다.
품질에 대한 평가는 제품군에 따라 갈린다. 한쪽에서는 과장된 실루엣과 무거운 스니커즈, 고가의 일상복이 실용성보다 이미지에 기대고 있다고 봤다. 다른 쪽에서는 바로 그 비실용성이 뎀나 디자인의 의도이며, 패션이 욕망과 상징을 거래하는 구조를 드러낸다고 평가했다.
2022년 발렌시아가 광고 캠페인 논란은 제품 품질보다 이미지 연출과 브랜드 검수의 문제로 확산됐다. 뎀나는 이후 공개적으로 사과했고, 이 사건은 그의 도발적 이미지 전략이 어디까지 허용될 수 있는지 묻는 계기가 됐다.
브랜드·인물
뎀나는 발렌시아가의 이미지를 가장 급격하게 바꾼 디자이너 중 한 명이다. 그는 발렌시아가를 조용한 쿠튀르 유산의 브랜드에서, 온라인 문화와 유명인 이미지, 스트리트웨어, 쇼 연출이 결합된 브랜드로 이동시켰다.
구찌 선임은 그의 영향력이 한 브랜드 안에 머물지 않는다는 점을 보여준다. 케어링은 뎀나를 발렌시아가 이후 구찌의 새 방향을 설계할 인물로 선택했다. 이는 그가 단순한 의상 디자이너가 아니라, 브랜드 이미지를 재편하는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평가된다는 의미다.
디자인 반응
뎀나의 디자인은 찬반이 강하게 갈린다. 한쪽은 그의 작업이 패션의 위선을 드러내고, 평범한 옷을 새롭게 보게 만들며, 럭셔리의 의미를 현재의 문화와 연결했다고 본다.
다른 쪽은 지나치게 냉소적이고 계산적이라고 본다. 후디, 로고, 과장된 스니커즈, 비싼 일상복이 반복되면서 패션이 자극과 가격, 온라인 반응에 기대는 방향으로 흐른다는 비판도 받았다.
그럼에도 뎀나의 디자인은 무시하기 어려운 힘을 가진다. 좋아하지 않는 사람도 그의 옷을 알아볼 수 있고, 동의하지 않는 사람도 그가 만든 이미지의 파급력을 인정하게 된다.
비판
뎀나에 대한 비판은 주로 도발과 반복에 집중된다. 베트멍 시기에는 평범한 로고 티셔츠와 후디를 고가로 제시하는 방식이 패션 시스템을 비판하는 것인지, 오히려 그 시스템을 더 노골적으로 이용하는 것인지 논쟁이 있었다.
발렌시아가 시기에는 과장된 비례와 로고, 일부러 투박하게 만든 제품이 반복되며 하나의 공식처럼 보인다는 지적이 나왔다. 특히 트리플 S 이후의 거대한 스니커즈 흐름은 강한 유행을 만들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피로감도 함께 만들었다.
2022년 광고 캠페인 논란 이후에는 뎀나의 이미지 전략 전반에 대한 의심이 커졌다. 이전까지는 불편함과 도발이 브랜드를 새롭게 보이게 하는 방식으로 받아들여졌지만, 해당 사건 이후에는 충격을 만드는 연출이 사회적 감수성과 충돌할 수 있다는 점이 더 크게 부각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