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저민 휴버트 (Benjamin Hubert)
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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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NA DOMINGUEZ
벤저민 휴버트(Benjamin Hubert)는 가구와 조명에서 출발해 소비자 가전, 인공지능(AI) 기기, 모빌리티, 의료 및 보조기기까지 작업 스펙트럼을 폭넓게 확장한 영국의 산업 디자이너다. 러프버러대학교에서 산업디자인을 전공한 뒤 2007년 자신의 스튜디오를 설립했으며, 2015년 이를 '레이어(LAYER)'로 재편했다. 현재 30여 명 규모의 디자인 및 엔지니어링 융합 조직을 이끄는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활동 중이다.
초기에는 재료의 물리적 속성과 제조 공법에서 형태를 도출해 내는 가구 디자이너로 주목받았으나, 레이어 설립 이후 사용자 조사, UI·UX, 기계 설계, 브랜딩을 통합적으로 다루는 방향으로 선회했다. 뱅앤올룹슨의 스피커를 따뜻한 가구처럼 다듬고, 3D 프린팅 맞춤형 휠체어를 설계하며, 만프로토의 전체 브랜드 디자인 체계를 구축하는 등 현재 그의 조직은 전통적인 산업 디자인 스튜디오와 엔지니어링·브랜드 컨설팅 기업의 경계를 자유롭게 넘나들고 있다.
약력·연혁
러프버러대학교 졸업 직후인 2007년 런던에 독립 스튜디오를 설립한 휴버트는 코르크, 콘크리트, 3D 니트 등 소재의 물성을 끈질기게 파고드는 실험으로 2010년 EDIDA '올해의 영 디자이너'로 선정되며 일찍이 주목받았다. 특히 오스트리아 직물업체와 협업한 라운지 체어 '크래들(Cradle)'은 두꺼운 폼 쿠션을 배제하고 3D 스트레치 니트의 장력을 활용해 직물 자체가 하중을 버티게 한 그의 초기 철학이 담긴 결과물이다.
2015년은 그의 작업 궤적을 바꾼 거대한 전환점이었다. 그는 개인의 이름을 전면에서 지우고 스튜디오를 '레이어(LAYER)'로 대대적으로 개편했다. 산업 디자인을 넘어 CMF, UI·UX, 엔지니어링, 전략 기획까지 아우르는 융합 조직으로 탈바꿈한 뒤, 뱅앤올룹슨, 나이키, 도이치텔레콤 등 굴지의 기술 기업들과 협력하며 작업의 규모를 키웠다. 3D 프린팅을 적용한 맞춤형 '고(GO) 휠체어' 프로젝트는 그의 관심사가 단편적인 소재 실험에서 사용자 행동 연구와 생활 밀착형 모빌리티로 이동했음을 상징한다. 2020년대에 들어 첨단 IT 기기를 일상 공간에 부드럽게 스며들게 하는 디자인을 연이어 선보이는 동시에, 기계 설계부터 패키지, 브랜드 그래픽까지 제품 개발의 전 주기를 철저히 통제하며 창립 10주년을 맞은 2025년 현재 글로벌 디자인 엔지니어링 컨설팅 기업으로 확고히 자리매김했다.
디자인 철학·시그니처
소재와 공정이 빚어내는 형태
휴버트의 초기 작업은 재료가 어떻게 만들어지고 결합되는지를 관찰하는 데서 출발한다. 3D 니트의 팽팽한 신축성을 의자의 좌판 구조로 치환하거나, 생산 에너지를 크게 줄인 재활용 알루미늄 다이캐스팅을 의자의 가장 단단한 Y자 뼈대로 삼는 식이다. 표면을 매끄럽게 치장하기보다 제조 공정 자체를 제품의 겉모습으로 끌어올리며, 최근에는 접착제를 없애고 모듈을 조립해 부분 수리가 가능한 침대를 선보이는 등 재료 철학을 장기적인 수명 연장으로 넓혀가고 있다.
사용자 행동에서 출발하는 구조
사용자의 체형과 생활 습관을 정밀하게 분석해 설계의 밑그림으로 삼는다. 휠체어를 밀 때 손목과 팔에 가해지는 부담을 덜기 위해 장갑과 푸시림을 맞물리게 다시 설계하거나, 전용 앱으로 소비자가 휠체어 부품을 직접 조립하게 만든다. 사용자가 불편한 기계에 몸을 맞추도록 방치하지 않고, 관찰된 행동 패턴을 바탕으로 제품과 주변 환경 전체의 구조를 뜯어고친다.
가구처럼 스며드는 기기와 시스템
2020년대 이후 선보이는 전자제품 설계는 기계 특유의 차가운 인상을 지우는 데 집중한다. 검은 플라스틱이나 차가운 금속 방열구를 패브릭과 따뜻한 목재로 부드럽게 감싸, 고성능 기술 기기가 집 안의 오브제나 조명처럼 자연스럽게 섞이도록 외형의 온도를 조절한다. 나아가 단일 제품의 미학에 머물지 않고, 다양한 라인업에 통일된 실루엣과 인터페이스 규칙을 부여해 브랜드 전체의 시스템을 구축하는 방식을 중시한다.
주요 작업
만프로토 ONE (2026)
사진과 영상 촬영 기어를 하나로 융합한 전문가용 삼각대 라인업이다. 촬영자가 장비를 번갈아 사용해야 하는 현장의 고질적인 불편을 해소하기 위해 기계 체결 구조를 전면 재설계했다. 레이어가 제품의 외형을 넘어 기계 공학적 설계, 명칭, 패키지, 그래픽까지 브랜드 전반을 총괄했으며 2026년 iF 및 레드닷 디자인 어워드를 석권했다.
베오사운드 밸런스 (2020년대)
뱅앤올룹슨과 공동 개발한 하이엔드 홈 스피커다. 원통형 나무 받침대 위에 패브릭으로 감싼 스피커 몸체를 안착시키고 상단에 금속 조작판을 더해, 전자 기기가 아닌 거실의 고급 조명과 같은 우아한 비례를 획득했다. 내부 음향팀과의 수차례 프로토타입 검증을 거쳐, 섬세한 음향 구조와 공간에 스며드는 외형의 완벽한 조화를 달성했다.
고 휠체어 (2016)
맞춤형 3D 프린팅 기술을 도입해 휠체어의 개념을 재정의한 모빌리티 프로젝트다. 수십 명의 사용자와 의료 전문가를 조사해 장애 특성과 체형에 딱 맞는 좌석과 발판을 성형했고, 앱을 통해 부품을 능동적으로 고를 수 있게 했다. 휠체어를 병원에서 지급받는 획일적 의료 장비에서, 개인의 생활 방식에 맞춘 커스텀 모빌리티로 끌어올린 상징적 작업이다.
액실 컬렉션 (2010년대)
가구 브랜드 알러무어(Allermuir)를 위해 디자인한 다이캐스트 알루미늄 가구 시리즈다. 새 알루미늄 생산 대비 에너지를 95% 이상 절감하는 재활용 알루미늄을 주재료로 택했다. 친환경 소재를 내장재로 숨기지 않고 구조적으로 가장 견고한 Y자 프레임 형태로 대담하게 노출해 컬렉션 전체를 아우르는 시각적 징표로 완성했다.
크래들 라운지 체어 (2010년대)
모로소(Moroso)와 함께 개발한 의자로, 편안한 해먹과 일반적인 쿠션 소파 사이의 구조적 접점을 탐구했다. 두껍고 답답한 폼을 채워 넣는 관행을 깨고, 오스트리아 직물업체와 특수 개발한 3D 스트레치 니트의 팽팽한 장력만으로 하중을 버티게 설계했다. 재료의 가공 방식에서 형태적 해답을 찾아내는 휴버트의 초기 디자인 방법론을 가장 잘 보여준다.
영향 관계
영국과 유럽의 전통적인 소재 중심 가구 디자인에서 출발했으나, 2015년 레이어(LAYER) 체제로 개편한 이후에는 IDEO나 퓨즈프로젝트(fuseproject)처럼 제품, 브랜딩, 디지털 경험을 통합적으로 엮어내는 전문 컨설팅 조직으로 진화했다. 과거에는 물성에 집중하는 1인 작가의 성향이 강했다면, 현재는 30여 명의 기계 설계자, UI·UX 디자이너, 그래픽 전문가들과 긴밀히 얽혀 움직인다. 따라서 최근의 결과물들을 휴버트 단독의 스케치로 귀속시키기보다는, 그가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서 기획의 방향타를 쥐고 전문 팀과 제조사의 개발 조직이 함께 직조해 내는 거대한 융합 체계의 산물로 이해해야 한다.
수상·전시 이력
2010년 EDIDA '올해의 영 디자이너'와 영국 디자인 어워드 '올해의 디자이너'로 선정되며 초기부터 남다른 조형 감각을 공인받았다. 레이어 설립 이후 그 수상 범위는 대폭 넓어져, '액실' 컬렉션으로 단기간에 10개의 국제 디자인상을 휩쓸었고, '아우라 2' 프로젝터(2025)와 '만프로토 ONE' 삼각대(2026)로 iF 및 레드닷 디자인 어워드를 연이어 석권했다. 창립 10주년을 맞은 2025년 밀라노에서 열린 전시 《101010》에서는 매끈하게 포장된 완제품을 넘어, 개발 과정의 프로토타입과 소재 샘플, 생산 설계 과정을 전면에 내세우며 디자인 공정 자체의 가치를 깊이 있게 조명했다.
반응과 평가
벤저민 휴버트는 더 이상 단일 의자나 조명을 디자인하는 1인 작가에 머물지 않는다. 거실 가전, 의료 기기, 모빌리티를 종횡무진하며 엔지니어링과 브랜드 시스템 자체를 구축하는 거대 컨설턴트로 체급을 키웠다. 차갑고 딱딱한 고성능 기술 기기를 따뜻한 직물과 나무로 감싸 일상 공간에 부드럽게 스며들게 하는 그의 디자인 번역 능력은 대중과 시장의 확고한 지지를 이끌어내고 있다.
그러나 스튜디오의 규모가 팽창하고 취급하는 산업군이 걷잡을 수 없이 넓어지면서, 초기 '크래들'이나 '액실' 등에서 보여주었던 소재에 대한 집요한 집착과 특유의 선명한 조형 언어가 다소 희석되고, 거대 클라이언트의 브랜드 논리에 압도된다는 지적도 뒤따른다. 아울러 사용자 중심주의와 지속가능성을 화려하게 표방하는 렌더링이나 미래형 프로토타입들이 모두 실제 양산으로 이어지거나 장기적인 수리 가능성을 온전히 입증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도 냉정하게 분별할 필요가 있다. 스튜디오가 30명 이상의 다양한 전문가 집단으로 팽창한 현재, 혁신적인 기계 설계와 UI 도출의 공로를 휴버트라는 단일한 스타 디자이너의 이름표 뒤로 숨기기보다는 '레이어'라는 집단 지성의 성과로 투명하고 정확하게 평가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점차 힘을 얻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