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토니 바카렐로 (Anthony Vaccarello)

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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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nez and Vinoodh

안토니 바카렐로(Anthony Vaccarello)는 깊은 슬릿, 비대칭 드레스, 강조된 어깨선으로 아이덴티티를 확립하고 현재 생로랑(Saint Laurent)을 총괄하는 벨기에 출신 패션 디자이너다. 펜디 퍼 디자인 스튜디오, 본인의 독자 레이블, 베르수스 베르사체(Versus Versace) 디렉터를 거쳐 2016년 생로랑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발탁되었다.

취임 초기에는 전임자 에디 슬리먼(Hedi Slimane)이 구축한 록 시크와 블랙 미니드레스의 영향 아래 있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그러나 10년에 걸쳐 생로랑의 르 스모킹, 사파리 재킷, 레더 블루종, 1980년대 파워 숄더를 자신만의 비례로 재해석했다. 여성복은 어깨를 강조하고 다리 라인을 노출하는 방식을 취했으며, 남성복은 기존의 테일러링을 유연하게 풀어 신체에 밀착시켰다.

바카렐로의 생로랑은 주로 밤의 이미지를 차용한다. 에펠탑을 배경으로 한 야외 런웨이, 모로코의 사막, 파리의 원형 미술관 등 공간적 요소와 핀 조명을 활용해 의복의 질감을 강조한다. 2023년에는 패션계 최초로 영화 제작사 '생로랑 프로덕션'을 설립해 런웨이와 캠페인, 영화를 아우르는 브랜드 프로젝트를 전개하고 있다.

약력·연혁

브뤼셀과 라 캉브르

1982년 벨기에 브뤼셀에서 이탈리아계 부모 아래에서 태어났다. 대학에서 법학을 전공했으나 브뤼셀의 예술학교 라 캉브르(La Cambre)로 편입해 패션 디자인을 수학했다.

학생 시절 아제딘 알라이아(Azzedine Alaïa)와 레이 가와쿠보(Rei Kawakubo)의 작업에 영향을 받았다. 알라이아의 입체적인 테일러링과 가와쿠보의 관습을 깨는 접근법을 습득했다. 2006년 졸업 컬렉션으로 이에르 국제패션사진페스티벌(Hyères Festival) 패션 부문 그랑프리를 수상하며 이름을 알렸다.

펜디의 퍼 디자인팀

졸업 직후 카를 라거펠트(Karl Lagerfeld)의 제안으로 펜디에 입사해 약 2년간 퍼(Fur) 디자인을 담당했다. 부피가 큰 모피를 얇게 가공하고 패치워크하여 인체의 굴곡에 맞추는 공정을 익혔다.

이후 생로랑 컬렉션에서 자주 등장하는 크롭 퍼 재킷, 어깨를 강조한 레더 코트 등은 이 시기의 실무 경험과 맞닿아 있다. 퍼와 가죽을 장식이 아닌 구조적 실루엣을 만드는 주재료로 다루는 시각을 확립했다.

자신의 이름을 내건 브랜드

2009년 파리의 부티크 마리아 루이사(Maria Luisa) 쇼윈도에 5벌의 룩을 전시하며 자신의 브랜드를 론칭했다. 블랙 앤 화이트 팔레트, 메탈 하드웨어, 인체를 사선으로 가르는 비대칭 컷아웃과 짧은 기장이 초기부터 브랜드의 특징으로 자리 잡았다.

2011년 프랑스 ANDAM 어워드 그랑프리를 수상하며 사업을 확장했다. 특히 2012년 멧 갈라(Met Gala)에서 모델 안야 루빅(Anja Rubik)이 착용한 화이트 슬릿 드레스가 대중적으로 화제가 되며 바카렐로 특유의 컷아웃 디자인이 세계적으로 알려지는 계기가 되었다.

베르수스 베르사체

도나텔라 베르사체(Donatella Versace)의 제안으로 2013년 캡슐 컬렉션을 맡았다. 바카렐로는 안전핀, 골드 메두사 장식, 블랙 레더, 미니드레스를 통해 1990년대 베르사체의 아카이브를 현대적으로 풀어냈다.

2015년 베르수스 베르사체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발탁되었다. 본인 레이블을 넘어 글로벌 유통망과 상업적 액세서리 라인을 기획하며 대규모 브랜드를 운영하는 산업적 생리를 학습했다.

생로랑

2016년 4월, 에디 슬리먼의 후임으로 생로랑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에 임명되었다. 전임자가 브랜드명 변경과 리테일 인테리어 개편 등 대대적인 개편을 단행한 직후였기에 많은 주목을 받았다. 그는 즉각 자신의 레이블 운영을 중단하고 생로랑에 전념했다.

데뷔 무대에서는 블랙 레더 드레스, 컷아웃 데님, 카산드르(Cassandre) 로고를 굽으로 활용한 '오피움(Opyum)' 슈즈를 선보였다. 이후 시즌을 거듭하며 르 스모킹, 사파리 재킷, 1980년대 아카이브를 본인만의 비례감으로 조율하며 독자적인 체제를 구축했다.

리브 드루아트와 영화 제작

2019년 파리와 로스앤젤레스에 문화 편집 공간 '생로랑 리브 드루아트(Saint Laurent Rive Droite)'를 오픈했다. 의류와 백에 국한하지 않고 한정판 사진집, 바이닐, 빈티지 가구 등을 큐레이팅했다. 이는 1960년대 이브 생로랑이 창립했던 기성복 부티크 '리브 고슈(Rive Gauche)'의 개념을 현대의 복합 문화 플랫폼으로 재해석한 프로젝트다.

2023년에는 패션 하우스 최초로 영화 제작사인 '생로랑 프로덕션(Saint Laurent Productions)'을 설립했다. 마케팅용 단편 필름을 넘어 칸 영화제 등에 출품하는 장편 영화 제작에 직접 참여하며, 페드로 알모도바르, 데이비드 크로넨버그, 자크 오디아르 등의 작품에 투자하고 바카렐로가 직접 영화 의상을 디렉팅하고 있다.

디자인 철학·시그니처

어깨와 다리로 만드는 긴장

바카렐로 실루엣의 특징은 대비되는 상하체의 비례감에 있다. 어깨는 각지고 넓게 형태를 잡는 반면, 하의는 짧게 커팅하여 다리 라인을 강조한다. 상의의 견고한 형태와 하의의 노출이 대비를 이룬다.

개인 브랜드 시절에는 컷아웃과 노출 자체가 중심이었다면, 생로랑에서는 스모킹 수트와 코트의 테일러링으로 뼈대를 세우고 슬릿이나 이너 생략을 통해 그 형태를 변주하는 방식으로 진화했다.

검은 가죽을 표면으로 활용하는 방식

그에게 블랙 레더는 런웨이의 빛을 통제하는 도구로 쓰인다. 빛을 반사하지 않는 매트 레더, 에나멜, 나파 가죽을 다층적으로 배열한다.

동일한 블랙이라도 광원의 각도와 모델의 움직임에 따라 다른 입체감을 낸다. 이 때문에 바카렐로의 런웨이는 정지된 사진보다 조명이 스치는 영상에서 의복의 질감이 더 선명하게 드러난다.

르 스모킹의 젠더리스적 활용

1966년 이브 생로랑이 창조한 '르 스모킹(Le Smoking)' 아카이브를 지속적으로 재해석한다. 여성 런웨이에서는 파워 숄더와 허리선을 강조하고, 셔츠 대신 맨살이나 레이스 보디수트를 이너로 매치한다. 반면 남성 컬렉션에서는 재킷의 내부 심지를 제거하고 하이웨이스트 팬츠나 시어(Sheer)한 이너를 입혀 테일러링을 유연하게 풀어낸다.

품위와 관능의 교차

바카렐로의 생로랑은 전통적인 격식과 페티시즘적 요소를 결합한다. 블랙 수트 안에 이너를 배제하거나, 고전적인 레이스 드레스를 실리콘 코팅으로 굳히고, 클래식 레이스업 슈즈를 투명한 PVC 소재로 제작하는 식이다.

그는 이를 '품위와 야함 사이의 경계'라 칭한다. 정장 수트를 입었다고 금욕적으로 보이지 않으며, 상충하는 두 에너지가 한 착장 안에서 대립할 때 브랜드 특유의 분위기가 형성된다.

단일 캐릭터 중심의 런웨이

다양한 라이프스타일을 제안하기보다, 매 시즌 특정 페르소나에 집중한다. 1980년대 귀족 여성, 파리의 퀴어, 록 스타 등 한 가지 뚜렷한 캐릭터를 설정해 쇼 전체를 전개한다.

헤어, 선글라스, 워킹 애티튜드, 숄더 라인이 반복되며, 모델 개개인의 개성보다 바카렐로가 기획한 집단의 이미지가 무대를 채우는 영화적인 연출을 선호한다.

영화로 확장되는 의상의 맥락

패션 하우스의 시즌 캠페인을 넘어 영화제 경쟁 부문에 출품하는 장편 영화 제작으로 영역을 넓혔다. 작가주의 감독과 배우를 섭외하고 생로랑의 의상을 극 중 인물의 서사에 맞춰 디자인한다.

이는 런웨이 쇼의 단기성을 극복하고 의복이 시네마틱 서사 속에서 어떻게 기능하는지 보여주는 작업이다. 동시에 영화가 브랜드의 간접광고(PPL)로 한정되지 않도록 감독의 예술적 독립성을 존중하는 균형을 중요시한다.

주요 작업

생로랑 2027 S/S 남성복

안도 다다오가 설계한 부르스 드 코메르스(Bourse de Commerce) 원형 전시장을 안개 아티스트 후지코 나카야(Fujiko Nakaya)의 연무로 채운 시즌. 이전 시즌들보다 한층 느슨하고 여유로운 핏을 선보였다.

부자재를 덜어낸 재킷, 속살이 비치는 니트, 하이웨이스트 라인의 와이드 벨티드 팬츠와 파라슈트 아우터가 주를 이뤘다. 투명 플라스틱으로 제작된 레이스업 슈즈를 남성 수트 룩에 매치해 발을 노출시켰으며, 피날레에는 강렬한 골드 자카드 룩을 연달아 등장시켰다.

생로랑 2026 프리폴

2026 F/W 여성복 컬렉션에서 보여준 란제리와 레더 무드를 상업적인 데이 앤 나이트 룩으로 정제했다.

실리콘 보디수트 대신 메탈릭 레이스 슬릿 스커트, 크롭트 시어링 아우터, 가죽 재킷과 니하이 부츠 등 세일즈를 견인할 핵심 아이템들로 라인업을 재정비했다. 런웨이의 전위적인 디자인이 실제 매장용 컬렉션으로 어떻게 환산되는지 보여준 시즌이다.

생로랑 2026 F/W 여성복

르 스모킹 탄생 60주년을 기념하여 매니시한 수트와 페티시즘적 요소를 결합했다. 전반부 런웨이는 파워 숄더 스모킹 재킷, 루즈핏 슬랙스, 화이트 셔츠와 타이로 구성되었다.

쇼의 중반부부터는 라텍스와 실리콘으로 코팅된 스킨 타이트 레이스 보디수트가 등장했고, 트렌치코트가 그 사이를 채웠다. 정장의 무거움과 신체를 온전히 드러내는 보디라인을 교차시키며 스모킹 이면에 감춰진 관능미를 강조했다.

생로랑 2026 F/W 남성복

제임스 볼드윈(James Baldwin)의 소설 《조반니의 방(Giovanni's Room)》을 시각화하여 1950년대 파리의 분위기를 동시대의 테일러링으로 풀어냈다.

플란넬과 울 크레이프 수트, 광택 나는 가죽 트렌치코트가 주를 이뤘다. 드레스 셔츠를 과감히 생략한 이너 리스(Inner-less) 재킷 연출로 스킨을 드러냈고, 상하의 톤이 미묘하게 어긋나는 수트 셋업을 선보였다. 이 컬렉션은 볼드윈의 소설 판권을 직접 매입해 기획 중인 영화 제작 프로젝트의 프리퀄 성격을 띤다.

생로랑 2026 S/S 여성복

에펠탑을 등진 광장에 화이트 수국으로 대형 카산드르 로고를 장식했다. 바이커 레더 재킷, 타이트한 펜슬 스커트, 푸시보(Pussy-bow) 블라우스의 매치로 오프닝을 열었다.

이 시즌의 페르소나는 '타락한 귀족'이었다. 스틸레토 슬링백, 파워 숄더, 스킨 노출을 결합해 1980년대 상류층 부르주아 여성의 옷장을 비틀어 표현했다. 후반부로 갈수록 원색의 맥시 스커트, 오리엔탈풍의 대형 주얼리가 등장했다.

생로랑 2025 S/S 여성복

창립자 이브 생로랑 본인의 상징적인 룩들을 여성 모델의 신체에 투영했다. 뿔테안경, 오버사이즈 테일러드 수트, 셔츠와 타이, 레더 블루종 등 이브 생로랑이 즐겨 입던 아웃핏이 런웨이를 채웠다.

피날레에 다가설수록 에스닉한 보헤미안 드레스, 맥시 스커트, 골드 하드웨어 장식이 교차하며 중성적인 무드와 화려한 여성복의 요소를 하나의 컬렉션 안에서 조화시켰다.

생로랑 2023 S/S 여성복

실루엣 전체를 아우르는 길고 묵직한 카푸친(Capuchin) 후드 드레스와 파워 숄더 레더 코트가 돋보인 시즌이다. 바닥에 끌리는 저지 드레스가 모델의 실루엣을 감싸고, 그 위로 오버사이즈 아우터를 걸쳤다.

후드 룩은 1980년대 이브 생로랑의 피스, 마사 그레이엄(Martha Graham)의 무용 의상, 사막 지대의 복식을 동시에 오마주했다. 과도한 스킨 노출 없이 원단의 텐션과 비례감만으로 브랜드 특유의 분위기를 표현했다.

생로랑 2020 F/W 여성복

부르주아 특유의 고전적인 실루엣에 라텍스 소재를 대거 도입했다. 레드, 일렉트릭 핑크, 라벤더 컬러의 밀착 라텍스 레깅스와 스커트가 단정한 트위드 재킷, 실크 블라우스, 더블 코트 아래에 매치되었다.

1970년대 이브 생로랑의 점잖은 테일러링과 페티시웨어를 상하의로 충돌시켰다. 전임자들의 유산을 관리하는 단계에서 벗어나 바카렐로만의 생로랑 정체성을 뚜렷하게 확립한 시즌으로 평가받는다.

생로랑 2017 S/S 여성복

바카렐로의 생로랑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데뷔전. 리노베이션을 앞둔 옛 국방성 건물에서 대형 YSL 카산드르 로고를 공중에 띄운 채 쇼를 시작했다.

블랙 레더 원숄더 미니드레스, 데님 팬츠, 비대칭 컷아웃 드레스가 런웨이를 채웠다. 특히 카산드르 로고를 통째로 조각해 굽으로 만든 '오피움(Opyum)' 펌프스는 첫 시즌부터 큰 상업적 성공을 거두었다. 브랜드 로고와 직관적인 노출을 전면에 세우며 자신의 방향성을 명확히 보여주었다.

안야 루빅 멧 갈라 드레스

2012년 멧 갈라(Met Gala)에서 모델 안야 루빅을 위해 디자인한 순백의 실크 이브닝드레스. 한쪽 어깨, 허리, 골반, 그리고 다리 전체를 비대칭으로 과감하게 절개했다.

이 드레스를 통해 바카렐로 특유의 컷아웃 디자인이 글로벌 패션계에 각인되었다. 불필요한 장식과 원단을 덜어내고 계산된 사선 슬릿으로 룩을 완성하는 그의 디자인 방식을 상징하는 대표작이다.

영향 관계

아제딘 알라이아

학생 시절 알라이아의 입체적인 보디콘(Body-conscious) 실루엣에 많은 영향을 받았다. 원단의 텐션을 활용해 신체를 압박하고, 지퍼와 금속 파츠를 배치해 복식의 뼈대를 노출하는 방식에서 공통점을 지닌다.

다만 알라이아가 니트와 레더로 인체 전체를 감싸는 방식에 집중했다면, 바카렐로는 원단의 여백을 과감하게 절개하여 다리, 허리, 가슴을 직접적으로 노출시키는 컷아웃(Cut-out)을 선호한다.

카를 라거펠트와 펜디

디자이너로서 경력을 시작할 무렵 카를 라거펠트의 발탁으로 펜디 스튜디오에 입성했다. 자신의 독립 브랜드를 구축하기 전, 이탈리아 최고급 피혁 하우스의 아틀리에 시스템을 경험한 시기다.

펜디 퍼 스튜디오에서 익힌 모피 경량화 기술과 인체 곡선에 맞춘 퍼 테일러링은 이후 생로랑 런웨이에 등장하는 짧은 기장의 퍼 재킷과 오버사이즈 코트의 기반이 되었다.

도나텔라 베르사체

도나텔라 베르사체는 베르수스 라인의 분위기를 쇄신하기 위해 바카렐로를 영입했다. 캡슐 컬렉션의 성공을 토대로 정식 디렉터로 임명하며 그의 상업적, 디자인적 규모를 확장시켰다.

이 시기 메탈 하드웨어 핸들링, 브랜드 로고의 상업화, 글로벌 프레스 및 셀러브리티 네트워크 활용법을 경험했다. 이는 생로랑 합류 후 카산드르 로고를 내세운 액세서리 세일즈 전략과 할리우드 캠페인을 전개하는 밑거름이 되었다.

이브 생로랑

창립자의 아카이브를 단순히 복각하는 데 그치지 않고, 1960년대 대중에게 제시했던 도발적인 요소를 21세기의 맥락으로 재현하려 시도한다. 사파리 재킷, 러시아 컬렉션, 파워 숄더 룩을 동시대의 페티시 소재와 짧은 하의 룩으로 변형한다.

과거 이브 생로랑이 남성 턱시도를 여성에게 입혀 성별의 경계를 허물었다면, 바카렐로는 여성복 특유의 시어한 소재와 노출을 남성복 런웨이에 적용해 젠더 플루이드(Gender Fluid)의 개념을 양방향으로 확장한다.

영화감독과 사진가

페드로 알모도바르, 데이비드 크로넨버그, 자크 오디아르 등 영화감독들과 생로랑 프로덕션을 매개로 협업한다. 위르겐 텔러(Juergen Teller), 데이비드 심스(David Sims) 등 사진가들 역시 캠페인과 공간 아트 프로젝트에 반복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바카렐로는 생로랑의 룩을 이들에게 일방적으로 강요하지 않고, 각 필름메이커와 사진가 특유의 미학을 하우스 내부로 수용한다. 이를 통해 생로랑의 브랜드 이미지는 단순한 제품 화보를 넘어 시네마틱 서사와 사진집의 영역으로 확장되었다.

수상·전시 이력

2006년 라 캉브르 졸업 컬렉션이 프랑스 이에르 국제패션사진페스티벌 패션 부문 그랑프리에 선정되며 주목받았다. 이 수상을 계기로 카를 라거펠트에게 발탁되어 펜디 스튜디오에 입사했다.

2011년 본인 명의의 레이블로 프랑스의 ANDAM 프라이즈 그랑프리를 수상했다. 후원금과 멘토링을 바탕으로 파리에 아틀리에를 거점으로 글로벌 유통망을 확충했다.

생로랑 디렉터 부임 이후로는 개인 어워드 수상보다 하우스 단위의 문화 프로젝트 기획에 집중하고 있다. 2023년 '생로랑 프로덕션'을 공식 출범시켰고, 2024년 칸 국제영화제 경쟁 부문에 제작 영화 세 편(《에밀리아 페레스》, 《더 슈라우즈》, 《파르테노페》)을 진출시켰다.

2025년 자크 오디아르 감독의 《에밀리아 페레스(Emilia Pérez)》가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 등 유수의 영화상 후보에 오르고 트로피를 수상하며 프로덕션의 인지도를 영화계 밖으로 알렸다. 패션 하우스가 단순 의상 협찬사를 넘어 투자, 제작, 의상 감독까지 수행하는 새로운 모델을 제시했다.

반응과 평가

현재의 위상

2026년 기준 생로랑의 남·여성복 런웨이, 커머셜 액세서리 기획, 리브 드루아트 에디팅, 생로랑 프로덕션 등 하우스 전 부문을 총괄하고 있다. 2016년 합류 이래 10여 년간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직을 유지하며 럭셔리 마켓에서 장기 재임 중인 디자이너 중 한 명으로 꼽힌다.

YSL 카산드르 로고를 활용한 이카르(Icare) 토트백, 르 5 아 7(Le 5 à 7) 호보 백 등은 케어링(Kering) 그룹의 주요 수익원으로 자리 잡았으며, 유명 앰버서더를 기용한 캠페인은 글로벌 마케팅에서 큰 파급력을 지닌다.

디자인 반응

바카렐로는 확고한 단일 취향으로 생로랑의 미학적 정체성을 확립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각진 파워 숄더 스모킹 재킷, 롱앤린(Long & Lean) 실루엣, 에펠탑 조명 아래의 야외 런웨이는 바카렐로 체제의 생로랑을 상징하는 시각적 코드가 되었다.

초기 노출 위주의 디자인에 치중했다는 우려를 불식시키며, 코트 핏, 재킷 테일러링, 남성복의 유연한 실루엣을 통해 디자인 스펙트럼을 넓혔다. 2026년과 2027년 연이어 선보인 남성복 컬렉션은 자극적인 컷아웃 없이 비례와 원단만으로 관능미를 표현했다는 호평을 받았다.

반면, 장기간 흑백 톤과 매우 마른 몸, 비정상적인 파워 숄더가 반복되며 다양성이 부족하다는 지적도 꾸준히 제기된다. 런웨이의 화려한 연출에 비해 실제 매장에서 판매되는 기성복 라인은 스타일의 범위가 좁다는 평가도 있다.

비판

여성복 라인업이 극히 마르고 긴 신체를 가진 소수 체형(Size 0)을 기준으로 설계된다는 점이 주요 비판 대상이다. 깊은 슬릿, 타이트한 라텍스 보디수트, 초미니 기장 등은 체형의 포용성(Diversity)이 부족한 형태다. 쇼 노트를 통해 여성의 당당한 권력을 논하지만, 런웨이 캐스팅은 비현실적으로 마른 체형을 고집한다는 점에서 모순이 지적된다.

또한, 노출과 페티시즘을 주요 디자인 요소로 사용하는 방식이 남성적 시각에서 소비되는 관능의 한계를 벗어났는가에 대한 논의도 존재한다. 주체적인 섹슈얼리티 표현과 상업적인 노출 마케팅 사이의 경계가 모호하다는 비판이 따른다.

생로랑 프로덕션 출범 역시 패션 자본의 영화 산업 지원이라는 긍정적 측면 이면에, 유명 영화감독들의 작품을 럭셔리 하우스의 브랜딩 목적으로 상업화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를 동반한다.

무엇보다 하우스 전체가 바카렐로 개인의 다크하고 섹슈얼한 미학에 강하게 결속되어 있다는 점이 한계로 지적된다. 이 확고한 단일 서사가 현재의 생로랑을 견인하고 있으나, 특정 이미지와 실루엣을 넘어 향후 브랜드를 어떻게 확장해 나갈 것인지는 바카렐로 체제가 풀어야 할 과제로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