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나톨 라핀 (Anatole Lapine)

개요

<img src="https://d2xsxph8kpxj0f.cloudfront.net/310519663429662740/ffcjRzrXsTCDKgX6s8aDwC/articles/1783273738870-9dd0f3438d2caea6.webp" alt="아나톨 라핀" data-orientation="free" data-original-src="https://d2xsxph8kpxj0f.cloudfront.net/310519663429662740/ffcjRzrXsTCDKgX6s8aDwC/articles/1783273740761-1e5a79cd06023e57.webp" data-source-url="https://www.latvia.eu/our-dna/we-are-known-for/75-years-of-porsche/" width="600" />

출처: Latvia

아나톨 라핀(Anatole Lapine, 1930–2012)은 라트비아 리가 출신의 자동차 디자이너다. 라트비아식 이름은 아나톨스 라핀슈(Anatols Lapiņš)이며, 미국과 독일에서는 토니 라핀(Tony Lapine)으로도 불렸다.

라핀은 다임러-벤츠(Daimler-Benz), 제너럴 모터스(General Motors), 오펠(Opel)을 거쳐 1969년 포르쉐에 합류했다. 1969년부터 1988년까지 포르쉐 디자인 조직인 Style Porsche를 이끌었고, 이 시기는 포르쉐가 911 중심의 스포츠카 브랜드에서 전면 엔진 트랜스액슬 스포츠카까지 범위를 넓히던 전환기와 겹친다.

대표 작업은 911 G 시리즈, 924, 944, 928, 959, 964 세대 911이다. 917 LH 히피(Hippie)와 917/20 핑크 피그(Pink Pig)처럼 포르쉐 레이스카 역사에 남은 그래픽 작업도 라핀의 이름과 연결된다.

라핀은 911을 이어받은 디자이너이면서, 911 밖의 포르쉐를 설계한 인물이다. 928은 그 성격을 가장 뚜렷하게 보여주는 모델이다.

약력·연혁

리가와 함부르크

라핀은 1930년 5월 23일 라트비아 리가에서 태어났다. 제2차 세계대전 뒤 독일로 옮겨 갔고, 함부르크의 다임러-벤츠에서 자동차 정비 견습을 거쳤다.

이후 함부르크 자동차 차체 학교(Hamburg Wagenbauschule)에서 차량 차체와 제작 방식을 배웠다. 라핀의 초기 교육은 순수 조형보다 차체 구조, 정비, 제작 공정에 가까웠다. 이 배경은 훗날 그의 디자인이 형태와 기능을 함께 다루는 방향으로 이어졌다.

제너럴 모터스

라핀은 1951년 미국으로 건너갔고, 1952년 제너럴 모터스의 선행 차체 개발 부문에서 일하기 시작했다. 이 시기 GM은 빌 미첼(Bill Mitchell) 체제 아래 스포츠카와 콘셉트카 실험을 활발하게 진행하고 있었다.

라핀은 코르벳(Corvette) 계열 프로젝트를 가까이에서 경험했다. XP-87 스팅레이 레이서(XP-87 Stingray Racer), 코르벳 스팅 레이(Corvette Sting Ray) 계열 작업은 그가 미국식 스포츠카 비례와 선행 디자인 문화를 익히는 계기가 됐다.

GM 시기의 경험은 포르쉐 928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배경이다. 928은 독일식 고성능 그란 투리스모였지만, 전면 엔진 구조와 넓은 차체, 장거리 주행 성격에서는 미국 스포츠카와 그란 투리스모의 감각도 읽힌다.

오펠

1965년 라핀은 독일로 돌아와 오펠 리서치 센터(Opel Research Center)를 맡았다. 오펠은 당시 유럽 안에서 선행 디자인과 연구 조직을 키우고 있었고, 라핀은 양산차 개발과 실험적 프로젝트 사이를 오갔다.

대표 사례는 오펠 레코드 C(Opel Rekord C)를 기반으로 만든 레이스카 블랙 위도(Black Widow)다. 검은 차체와 180마력 안팎의 성능 때문에 붙은 이름이며, 에리히 비터(Erich Bitter)와 젊은 니키 라우다(Niki Lauda)가 운전했다.

블랙 위도는 오펠 내부에서도 공식 경영진 승인 없이 진행된 실험적 프로젝트로 알려져 있다. 라핀은 말년에 오펠 클래식(Opel Classic)이 이 차를 복원할 때도 부족한 자료를 보완하는 데 도움을 줬다.

포르쉐

라핀은 1969년 4월 15일 포르쉐 스타일링 부문 책임자로 합류했다. 그는 페르디난트 알렉산더 포르쉐(Ferdinand Alexander Porsche) 이후 포르쉐 디자인을 이끈 인물이다.

라핀이 포르쉐에 들어간 시기는 회사의 방향이 크게 바뀌던 때였다. 포르쉐와 피에히 가문은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고 있었고, 에른스트 푸르만(Ernst Fuhrmann) 체제는 전면 엔진 스포츠카를 브랜드의 새 축으로 키우려 했다.

라핀은 1988년까지 Style Porsche를 이끌었다. 이후 포르쉐 디자인 책임자 자리는 하름 라가이(Harm Lagaay)에게 이어졌다. 라핀은 2012년 4월 29일 독일 바덴바덴에서 사망했다.

디자인 철학·시그니처

기능에서 출발한 형태

라핀의 디자인은 장식보다 구조와 기능에서 출발했다. 그는 차가 어떤 법규를 통과해야 하는지, 어떤 속도로 달리는지, 어떤 시장에서 받아들여져야 하는지를 형태 안에 반영했다.

911 G 시리즈의 주름형 충격 흡수 범퍼는 이런 태도를 잘 보여준다. 미국 안전 규정에 맞춘 범퍼를 단순한 추가 부품처럼 붙이지 않고, 검은색 고무와 차체색 면을 조합해 911의 인상을 새로 정리했다.

이 변화와 함께 크롬 장식은 줄고, 무광 검은색 창틀과 도어 핸들이 더해졌다. 911은 1960년대 스포츠카의 섬세한 장식에서 1970년대 포르쉐의 기능적이고 단단한 인상으로 넘어갔다.

트랜스액슬 비례

라핀 체제의 또 다른 축은 트랜스액슬(transaxle) 모델이다. 트랜스액슬은 엔진을 앞에 두고 변속기를 뒤쪽 구동축 근처에 배치하는 구조다. 포르쉐는 이 방식을 통해 앞뒤 무게 배분을 맞추고, 911과 다른 스포츠카 비례를 만들었다.

924, 944, 928은 이 흐름 안에서 나왔다. 긴 보닛, 낮은 루프, 뒤로 갈수록 길게 이어지는 유리 해치, 짧은 앞 오버행은 911의 후방 엔진 비례와 다른 포르쉐를 만들었다.

특히 928은 전면 엔진 V8 그란 투리스모라는 성격을 바탕으로 설계됐다. 낮고 넓은 차체, 통합형 범퍼, 차체 위로 드러나는 팝업 헤드램프는 1970년대 후반 포르쉐가 새롭게 제안한 고성능 장거리 스포츠카의 형태였다.

강한 그래픽

라핀의 포르쉐 시기에는 검은색 트림, 고무, 유리, 차체색 면의 대비가 강하게 쓰였다. 911 G 시리즈의 창틀과 도어 핸들, 928의 일체형 범퍼와 팝업 헤드램프, 924의 큰 유리 해치는 차체 표면을 더 그래픽하게 보이게 만들었다.

레이스카 리버리에서도 같은 감각이 드러난다. 917 LH 히피는 초록색과 보라색 물결무늬로 레이스카의 긴 차체를 시각적으로 흔들었고, 917/20 핑크 피그는 분홍색 바탕에 돼지고기 부위명을 표시해 차체 전체를 하나의 이미지로 바꿨다.

라핀의 디자인은 포르쉐가 기술 중심 브랜드라는 인상을 유지하면서도, 차체 표면을 강한 시각 언어로 다룰 수 있음을 보여줬다.

주요 작업

GM 코르벳 계열 프로젝트

라핀의 초기 경력은 GM의 스포츠카 실험과 이어져 있다. XP-87 스팅레이 레이서와 코르벳 스팅 레이 계열 작업은 그가 미국식 스포츠카 비례와 선행 디자인 방식을 익힌 배경이 됐다.

이 시기 경험은 이후 포르쉐에서 전면 엔진 스포츠카를 다룰 때 바탕이 됐다. 라핀은 미국 자동차 산업에서 배운 큰 비례와 포르쉐식 정밀한 패키지를 함께 다룰 수 있는 디자이너였다.

오펠 블랙 위도

오펠 블랙 위도는 레코드 C를 기반으로 한 레이스카다. 검은 차체와 노란 장식, 강한 성능 때문에 블랙 위도라는 이름으로 불렸다.

이 차는 라핀의 디자인이 양산차 표면에 머물지 않았다는 점을 보여준다. 그는 차체 색, 자세, 레이스카 이미지까지 함께 다루며 오펠이 전후 모터스포츠 이미지를 다시 세우는 장면을 만들었다.

917 LH 히피

1970년 르망 24시에 등장한 917 LH 히피는 라핀이 포르쉐에서 남긴 초기 그래픽 작업 가운데 하나다. 긴 차체 위에 초록색과 보라색 물결무늬를 얹어, 레이스카의 속도감을 정적인 표면 위에 먼저 드러냈다.

히피 리버리는 포르쉐가 르망에서 첫 종합 우승을 거두던 해의 분위기와 맞물려 강한 인상을 남겼다. 같은 경기에서 이 차는 종합 2위에 올랐고, 포르쉐 레이스카 리버리 역사에서 반복적으로 소환되는 이미지가 됐다.

917/20 핑크 피그

1971년의 917/20 핑크 피그는 라핀의 유머와 그래픽 감각이 가장 직접적으로 드러난 작업이다. 917/20은 넓고 둥근 차체 때문에 돼지를 연상시키는 별칭을 얻었고, 라핀은 그 인상을 감추지 않고 분홍색 바탕과 정육 부위 표시로 밀어붙였다.

핑크 피그는 경기 성적보다 이미지로 더 오래 남은 사례다. 이 차는 1971년 르망 24시에 출전했지만 완주하지 못했다. 그러나 리버리는 포르쉐 레이스카가 기술적 성과뿐 아니라 시각 문화의 대상으로 기억될 수 있음을 보여줬다.

911 G 시리즈

911 G 시리즈는 라핀이 포르쉐에 온 뒤 처음으로 크게 손본 911이다. 기본 실루엣은 911의 전통을 유지했지만, 세부 표현은 1970년대 안전 규정과 디자인 감각에 맞춰 바뀌었다.

가장 중요한 변화는 주름형 충격 흡수 범퍼다. 미국형 모델을 위해 만든 충격 흡수 구조가 차체 앞뒤에 들어갔고, 검은색 고무와 차체색 면이 함께 쓰였다. 이 변화는 기능 부품을 디자인 언어로 바꾼 사례다.

크롬 장식은 줄고, 창틀과 도어 핸들은 무광 검은색으로 바뀌었다. 검은색 고무로 테두리를 만든 리어 스포일러도 이 시기 911의 인상을 강하게 만들었다. G 시리즈는 911의 원형을 유지하면서도 더 기능적이고 단단한 인상으로 넘어간 세대다.

924

924는 포르쉐가 전면 엔진과 트랜스액슬 구조를 본격적으로 양산차에 적용한 모델이다. 처음에는 폭스바겐 프로젝트로 출발했지만, 이후 포르쉐가 권리를 가져와 1976년 시장에 내놓았다.

라핀은 이 프로젝트를 이끄는 디자인 책임자였고, 실제 외관 비례에는 하름 라가이가 중요한 역할을 했다. 리처드 소더버그(Richard Soderberg)의 큰 유리 해치 아이디어와 한스 브라운(Hans Braun)의 실내 디자인도 함께 더해졌다.

924는 911과 다른 포르쉐였다. 전면 엔진 구조, 길게 뻗은 보닛, 실용적인 해치백 구성은 포르쉐가 더 넓은 고객층을 향해 움직이던 시기를 보여준다.

928

928은 라핀을 설명할 때 가장 자주 언급되는 모델이다. 1977년 제네바 모터쇼에서 공개됐고, 포르쉐 최초의 전면 엔진 V8 그란 투리스모로 자리 잡았다.

차체 디자인은 라핀의 지휘 아래 볼프강 뫼비우스(Wolfgang Möbius), 한스게오르크 카스텐(Hans-Georg Kasten) 등이 함께 다뤘다. 928은 낮고 넓은 차체, 매끈하게 통합된 범퍼, 차체 위에 드러나는 팝업 헤드램프, 넓은 유리 해치로 당시 포르쉐 안에서도 매우 다른 인상을 만들었다.

928은 1978년 유럽 올해의 차(European Car of the Year)에 선정됐다. 스포츠카가 이 상을 받은 드문 사례로, 928이 단순한 스타일 실험을 넘어 기술과 패키지까지 포함한 새 포르쉐였음을 보여준다.

944

944는 924 계열을 바탕으로 더 강한 차체 인상과 성능 이미지를 만든 모델이다. 1981년 프랑크푸르트 국제자동차전시회(IAA)에서 공개됐고, 924보다 넓은 펜더와 힘 있는 자세로 트랜스액슬 포르쉐의 대중적 이미지를 키웠다.

라핀의 역할은 특정 스케치 한 장보다 전체 디자인 조직을 이끄는 데 있었다. 944는 924의 기본 구조를 유지하면서도 더 선명한 스포츠카 인상을 만들었고, 1980년대 포르쉐 판매에서 중요한 비중을 차지했다.

959

959는 1980년대 포르쉐 기술력을 집약한 슈퍼 스포츠카다. 1983년 프랑크푸르트 국제자동차전시회에서 그룹 B 스터디로 방향을 드러냈고, 1985년 양산형 959가 공개됐다.

라핀 체제의 디자인 조직은 959가 기술 시연차에 머물지 않고 포르쉐의 형태를 유지하도록 조율했다. 사륜구동, 터보 엔진, 공력 최적화 차체 같은 기술 요소가 차체 표면에 드러났지만, 기본 비례는 911 계열과 연결됐다.

964 세대 911

964 세대 911은 라핀 체제 말기에 준비된 911이다. 카레라 4는 1988년 등장했고, 964 세대는 1988년부터 1994년까지 생산됐다.

겉으로는 911의 기본 실루엣을 유지했지만, 차체 패널과 기술 구성은 크게 바뀌었다. 통합형 범퍼, 자동으로 올라오는 리어 스포일러, 사륜구동 시스템은 911이 1990년대 스포츠카로 넘어가는 방향을 보여줬다.

964는 라핀 이후 하름 라가이 체제로 이어지는 연결점이기도 하다. 라핀의 시대가 911의 전통과 전면 엔진 포르쉐의 실험을 함께 관리했다면, 라가이의 시대는 여러 포르쉐 모델을 더 뚜렷한 패밀리룩으로 묶는 방향으로 이어졌다.

영향 관계

앞선 계보

라핀은 페르디난트 알렉산더 포르쉐 이후 포르쉐 디자인을 맡았다. 페르디난트 알렉산더 포르쉐가 911의 원형을 세웠다면, 라핀은 그 원형을 1970년대 규정과 시장 변화 안에서 다시 다듬었다.

동시에 라핀은 GM과 오펠에서 쌓은 경험을 포르쉐에 가져왔다. 미국 스포츠카의 큰 비례, 선행 스튜디오 문화, 오펠의 연구 조직 운영 경험은 928과 트랜스액슬 계열을 다루는 데 영향을 줬다.

동시대 팀

라핀의 포르쉐 디자인은 팀 단위로 만들어졌다. 리처드 소더버그, 볼프강 뫼비우스, 한스 브라운, 한스게오르크 카스텐, 하름 라가이 같은 디자이너가 그의 팀 안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다.

924에서는 하름 라가이가 외관 비례에 관여했고, 리처드 소더버그의 유리 해치 아이디어가 더해졌다. 928에서는 볼프강 뫼비우스와 한스게오르크 카스텐이 주요 디자인을 함께 다뤘다. 한스 브라운은 924와 928의 실내 디자인에 관여했다.

라핀의 영향력은 직접 그은 선보다 팀이 어느 방향으로 움직이게 했는지에서 더 크게 드러난다. 그는 911의 보수적인 계보와 전면 엔진 포르쉐의 실험을 동시에 관리했다.

후대

라핀 이후 포르쉐 디자인은 하름 라가이에게 이어졌다. 라가이는 1989년 포르쉐 디자인 책임자로 돌아왔고, 944, 928, 911 사이의 형태적 연결성을 더 강하게 의식했다.

이 흐름은 라핀 시대와 구분된다. 라핀 시대의 포르쉐는 모델마다 더 큰 조형적 자유를 가졌고, 라가이 시대의 포르쉐는 브랜드 전체의 인상을 더 체계적으로 묶기 시작했다. 두 방향은 포르쉐 디자인 역사에서 서로 다른 과제를 맡은 시기로 볼 수 있다.

수상·전시 이력

1978년 포르쉐 928은 유럽 올해의 차에 선정됐다. 이 수상은 라핀 개인상이 아니라, 그가 이끈 포르쉐 디자인 조직과 928 개발팀이 만든 전면 엔진 그란 투리스모가 기술과 디자인 양쪽에서 인정받은 사례다.

2023년 리가 모터 뮤지엄(Riga Motor Museum)은 라핀을 다룬 전시 Driven by Dreams. The Story of Porsche and Anatols Lapiņš: The Latvian Who Made Pigs Fly를 열었다. 이 전시는 라트비아 출신 디자이너 라핀과 포르쉐 917/20 핑크 피그를 함께 조명했다.

이 전시는 라핀의 포르쉐 작업이 독일 자동차 디자인사뿐 아니라 라트비아 디자인 문화 안에서도 다시 읽히고 있음을 보여준다.

반응과 평가

디자인

라핀은 포르쉐가 911의 유산을 유지하면서도 새 구조를 실험하게 만든 인물로 평가된다. 911 G 시리즈에서는 안전 규정으로 생긴 부품을 차체 디자인 안에 흡수했고, 924·944·928 계열에서는 전면 엔진 트랜스액슬 구조를 포르쉐다운 스포츠카 비례로 정리했다.

포르쉐 디자인 책임자 미하엘 마우어(Michael Mauer)는 라핀을 유행을 따르는 디자이너보다 새 흐름을 만든 인물로 평가했다. 이 평가는 라핀의 작업이 포르쉐 디자인사의 중요한 전환점으로 남아 있다는 의미를 갖는다.

품질·안전

라핀 시대의 디자인 평가는 안전 규정과 기술 변화에서 분리하기 어렵다. 911 G 시리즈의 충격 흡수 범퍼는 미국 안전 규정에 대응한 결과였고, 라핀은 이를 911의 새 인상으로 정리했다.

928은 바이스아흐 액슬(Weissach rear axle), 알루미늄 섀시, V8 엔진, 트랜스액슬 구조와 함께 개발됐다. 차체 디자인은 이런 기술 요소를 감추기보다 낮고 넓은 그란 투리스모 비례로 묶었다. 라핀의 포르쉐 디자인은 장식보다 규정, 안정성, 주행 성격을 형태로 정리하는 데 강점이 있었다.

브랜드·인물

라핀은 포르쉐 디자인 계보에서 페르디난트 알렉산더 포르쉐와 하름 라가이 사이에 놓인다. 앞 세대가 911의 원형을 만들었다면, 라핀은 그 원형을 유지하면서 포르쉐의 범위를 넓혔다.

브랜드 관점에서 라핀의 역할은 911 밖의 포르쉐를 설득하는 것이었다. 924, 944, 928은 911과 다른 구조를 가졌지만, 포르쉐가 스포츠카 브랜드로 남기 위해 선택한 확장 경로였다. 라핀은 이 전환기의 디자인을 책임진 인물이다.

디자인 반응

라핀 시대의 전면 엔진 포르쉐는 공개 당시 찬반이 갈렸다. 924와 928은 911에 익숙한 팬에게 낯선 차였고, 일부는 포르쉐 전통에서 멀어진 시도로 받아들였다.

시간이 지나며 반응은 달라졌다. 924, 944, 928은 트랜스액슬 시대를 대표하는 클래식 포르쉐로 다시 주목받고 있다. 특히 928은 1970년대 말의 미래적 그란 투리스모 디자인으로 재평가된다.

비판

라핀 시대 포르쉐 디자인의 가장 큰 비판은 모델 간 인상 차이에 있었다. 911, 924, 944, 928은 각자의 성격이 뚜렷했지만, 하나의 브랜드 안에서 이어지는 공통 조형은 약했다.

하름 라가이가 1989년 포르쉐로 돌아온 뒤 포르쉐 디자인은 모델별 자유보다 브랜드 전체의 연결성을 더 강하게 의식하게 됐다. 이 변화는 라핀 시대의 실험성과 1990년대 포르쉐의 정리된 패밀리룩을 구분하는 기준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