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렉스 트로슈트 (Alex Trochut)
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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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렉스 트로슈트(Alex Trochut)는 글자를 정보 전달 기호에서 독립시켜 평면 이미지, 입체물, 모션 그래픽으로 확장한 레터링 아티스트 겸 그래픽 디자이너다. 1981년 바르셀로나 출생으로 엘리사바(Elisava) 디자인학교를 졸업했다. 개인 스튜디오 설립 후 뉴욕으로 거점을 옮겨 패션, 음악, 광고 등 다방면에서 독립적인 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그의 작업은 '독해'보다 '시각적 인지'를 선행시킨다. 획의 물성을 액체처럼 유연하게 늘리거나 금속과 유리의 질감을 부여하며, 관측 각도에 따라 의미가 변환되는 3D 앰비그램(Ambigram)을 설계한다. 초기 벡터 기반의 맥시멀리즘 레터링에 머물지 않고 렌티큘러, 감광 인쇄, 3D 모델링, 애니메이션 등으로 기술과 매체를 지속적으로 갱신하고 있다.
약력·연혁
트로슈트는 바르셀로나 엘리사바 디자인학교에서 그래픽디자인을 전공한 뒤 독립 스튜디오를 설립했다. 조립식 모듈형 활자 시스템 '수페르 벨로스(Super Veloz)'를 개발한 타이포그래퍼 조안 트로슈트(Joan Trochut)가 그의 조부다. 이러한 가풍의 영향으로 그는 글자를 기능적 문자인 동시에 조립·변형 가능한 시각 질료로 인식하며 성장했다. 2000년대 미니멀리즘 사조에 반하는 밀도 높은 레터링과 일러스트레이션으로 두각을 나타냈으며, 획을 중첩하고 단일 단어 내에 시각적 정보를 극대화하는 방식을 취했다. 해당 시기의 작업은 단행본 《More Is More》로 집대성되었다.
음악 및 패션 브랜드 협업에서는 아티스트명이나 곡 제목을 사진 위에 얹는 관행을 넘어 글자 자체를 메인 이미지로 조형했다. 롤링 스톤스(The Rolling Stones), 케이티 페리(Katy Perry) 등의 커버를 작업했고, 상업 광고에서도 프로젝트에 맞춰 벡터 그래픽과 3D를 넘나들며 브랜드 메시지에 부합하는 맞춤형 레터링을 선보였다. 또한 단일 지면에 두 가지 이미지를 중첩하는 인쇄 프로젝트 'Binary Prints'를 전개했다. 빛의 유무에 따라 표면의 이미지가 교차로 나타나는 기법으로, 전자 음악가의 주간과 야간 정체성을 한 장에 구현했다. 디지털 모니터가 아닌 실제 인쇄물의 물리적 환경 변화를 이용했다는 점이 특징이다.
2010년대 후반부터는 2D 레터링을 3D 모델링과 애니메이션 영역으로 확장했다. 글자에 실물 수준의 부피감을 부여하고, 카메라 워크에 따라 텍스트가 변환되는 입체 앰비그램을 고도화했다. 예거 르쿨트르(Jaeger-LeCoultre)와의 협업에서는 리베르소 시계와 아르데코 건축 양식을 결합한 전용 서체를 개발해 매장 디스플레이와 조형물로까지 영역을 넓혔다.
디자인 철학·시그니처
트로슈트에게 글자는 단순한 정보의 그릇이 아니다. 스스로를 텍스트에 적절한 외형을 부여하는 재단사에 비유하며, 브랜드의 지향점이나 대상의 성격에 따라 타이포그래피의 태도를 전면 재설정한다. 2000년대의 벡터 그래픽, 인쇄 실험, 3D 조각 등 포트폴리오 전반에 걸쳐 일관된 스타일이 부재하는 것은 프로젝트의 특수성을 최우선으로 두는 작업 기조 때문이다.
작업 전반을 관통하는 공통점은 '가독성의 지연'에 있다. 텍스트를 즉각적으로 읽히게 하기보다 시각적 감상의 대상으로 머물게 한다. 획의 시작과 끝을 흐리거나 문자를 이미지와 융합시키고, 시야각에 따라 형태를 변모시킨다. 이는 정보 전달을 저해하려는 목적이 아니라, 문자를 인지하는 과정 자체를 공감각적 시각 경험으로 연장하려는 의도다.
제작 매체에도 한계를 두지 않는다. 평면 벡터, 디지털 에어브러시, 특수 인쇄, 3D 렌더링을 유연하게 오간다. 최근에는 글자를 평면에서 추출해 실제 공간에서 직접 걸으며 감상하는 물체로 전환하며, 레터링과 조각의 경계를 허물고 있다.
주요 작업
3D 레터링 조각 'VERSUS'
관측자의 위치에 따라 'LOVE' 등의 단어가 다른 단어로 변환되는 3D 레터링 조각 시리즈다. 평면적 독해를 넘어, 입체물 주변을 이동하며 텍스트의 의미가 재조합되는 경험을 제안한다.
예거 르쿨트르 전용 서체 '1931 Alphabet'
예거 르쿨트르의 아이코닉 모델 리베르소를 위해 개발한 알파벳 시스템이다. 1930년대 뉴욕 아르데코 건축 양식과 시계 무브먼트의 부품 구조를 차용해 기계적인 선의 중첩과 입체감을 이식했다.
구찌 100주년 캠페인 'The Next 100 Years of Gucci'
브랜드의 미래를 시각화하는 구찌 100주년 기념 프로젝트 출품작이다. 3D 레터링과 모션 그래픽 기술을 활용해 하우스의 미래 지향점을 입체적인 문자 이미지로 구현했다.
감광 인쇄 프로젝트 'Binary Prints'
단일 종이에 두 개의 초상을 중첩한 실험적 인쇄 작업이다. 명도 환경에 따라 노출되는 이미지가 달라지는 기술을 통해 전자 음악가의 이면적 정체성을 물리적으로 시각화했다.
롤링 스톤스 앨범 커버 'Rolled Gold +'
롤링 스톤스의 컴필레이션 앨범을 위한 커스텀 타이포그래피 작업이다. 프로젝트 전반의 아트 디렉션 내에서 트로슈트 특유의 조형미가 결합된 형태를 확인할 수 있다.
영향 관계
조안 트로슈트의 조립식 활자 시스템 '수페르 벨로스'로부터 가장 직접적인 유산을 물려받았다. 완성된 폰트를 차용하는 대신, 글자를 지속적으로 분해하고 변형 가능한 모듈로 다루는 접근법은 조부의 작업 맥락과 맞닿아 있다.
다만, 금속 활자와 전통적 인쇄 매체에 기반했던 조부의 실험을 최신 디지털 환경으로 치환했다. 벡터와 3D 모델링 툴을 활용해 단일 활자에서 다층적인 이미지와 단어가 파생되도록 시각적 확장을 이루어냈다.
수상·전시 이력
아트 디렉터스 클럽(Art Directors Club), 타입 디렉터스 클럽(Type Directors Club), D&AD, 칸 라이언즈(Cannes Lions) 등 주요 글로벌 광고·그래픽 어워드에서 다수 수상했다. 상업 프로젝트 외 개인 작업물 역시 미주 및 유럽 주요 갤러리와 디자인 행사에서 지속적으로 전시되고 있다.
반응과 평가
트로슈트는 상업 레터링 디자인의 범주를 평면 텍스트에 한정하지 않고 일러스트레이션, 인쇄, 3D 모션 그래픽, 입체 조형물로 확장한 선구적 인물로 평가받는다. 상업 프로젝트와 개인 조형 실험을 병행하며 글자를 물성과 모션의 영역으로 견인하고 있다. 특히 디지털 그래픽 씬이 미니멀리즘으로 수렴하던 2000년대 초반, 화려하고 복잡한 레터링을 밀어붙인 행보가 높은 평가를 받는다. 기능주의에 매몰되지 않은 과감한 시각화가 상업 환경에서 브랜드와 아티스트의 고유성을 극대화했다는 분석이다.
그러나 텍스트를 이미지화하는 과정에서 본연의 기능인 즉각적 가독성이 훼손된다는 지적이 따른다. 앨범 커버나 광고에서는 정보의 지연 인지가 미학적 장점이 되나, 신속한 정보 전달이 요구되는 사인 시스템(Signage)이나 본문 환경에는 부적합하다. 전체 서체 패밀리가 아닌 특정 문구에 맞춰진 일회성 작업이 다수라는 점도 범용적 타이포그래피와 구분되어야 할 지점이다. 아울러 3D 렌더링 기반 작업의 경우 조형적 완성도에도 불구하고 화면상의 기술적 효과가 텍스트의 본질적 의미를 압도할 위험성을 지닌다. 첨단 기술이 글자의 의미 변환과 유기적으로 직조될 때 비로소 작업의 당위성이 확보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