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돌프 로스 (Adolf Loos)
개요
<img src="https://d2xsxph8kpxj0f.cloudfront.net/310519663429662740/ffcjRzrXsTCDKgX6s8aDwC/articles/1783085282590-ce3321450f04ce8f.webp" alt="아돌프 로스" data-orientation="portrait" data-original-src="https://d2xsxph8kpxj0f.cloudfront.net/310519663429662740/ffcjRzrXsTCDKgX6s8aDwC/articles/1782834052827-c5e9c3b80cffebfd.webp" width="600" />
출처: 오스트리아 국립도서관 이미지 아카이브아돌프 로스(Adolf Loos, 1870~1933)는 오스트리아 건축가이자 비평가다.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모라비아의 브륀, 현재 체코 브르노에서 태어났고 빈을 중심으로 활동했다.
로스는 20세기 초 유럽 건축에서 장식과 재료, 생활 공간의 관계를 강하게 흔든 인물이다. 빈 분리파와 아르누보, 빈 공방이 장식과 공예를 통해 새로운 생활양식을 만들려 할 때, 로스는 건축가의 장식적 자기표현이 사물과 생활을 지배하는 상황을 비판했다.
그의 이름은 장식과 범죄와 라움플란으로 널리 알려졌다. 장식과 범죄는 현대의 유용한 사물에 새 장식을 덧붙이는 관행이 노동과 재료를 낭비하고 사물을 빠르게 낡아 보이게 만든다고 주장한 글이다.
라움플란은 방마다 필요한 높이와 크기, 위치를 다르게 잡고 짧은 계단과 단차로 연결하는 입체적인 공간 구성 방식을 가리킨다. 다만 라움플란은 로스가 직접 사용한 용어가 아니다. 그의 협업자 하인리히 쿨카가 1931년 로스의 건축을 설명하며 붙인 이름이다.
로스의 건축은 밖에서 보면 흰 벽과 단순한 창, 절제된 비례가 먼저 보인다. 안으로 들어가면 대리석과 목재, 거울, 가죽, 직물과 서로 다른 높이의 방이 강하게 드러난다.
따라서 로스를 장식을 없앤 건축가로만 설명하면 부족하다. 그는 불필요하다고 판단한 표면 장식을 덜어낸 뒤, 재료의 결이나 방의 높이, 시선과 생활 동선으로 공간의 밀도를 만든 건축가다.
약력·연혁
브르노와 재료 감각
아돌프 로스는 1870년 12월 10일 브르노의 석공 집안에서 태어났다. 아버지 아돌프 로스 시니어는 석공과 조각 작업장을 운영했으며, 로스가 아홉 살 때 세상을 떠났다.
석공 집안에서 자란 배경은 로스의 글과 실내에서 반복되는 재료에 대한 관심을 설명하는 한 요소다. 그는 값싼 재료를 비싼 소재처럼 보이게 칠하거나, 재료의 구조와 관계없는 무늬를 덧붙이는 방식을 비판했다.
반대로 대리석의 무늬와 목재의 결, 금속의 광택처럼 재료가 원래 가진 표면은 적극적으로 사용했다. 로스에게 문제는 풍부한 재료가 아니라, 재료와 쓰임에서 나오지 않은 새 장식을 얹는 일이었다.
그는 라이헨베르크 국립공예학교와 브르노의 기술학교, 드레스덴 왕립공과학교를 거쳤다. 한 학교에서 정규 건축 교육을 끝낸 인물이라기보다 여러 교육기관과 도시, 직업을 오가며 건축과 생활 문화를 배웠다.
미국 체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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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미국 의회도서관1893년 로스는 미국으로 건너가 약 3년 동안 머물렀다. 시카고 만국박람회를 방문했고 뉴욕과 필라델피아, 시카고 등에서 생활했다.
미국 체류 기간의 행적은 일부만 분명하게 확인된다. 그는 생계를 위해 여러 일을 했으며, 유럽에서 알려진 유명 건축가로 미국의 건축 현장을 조사한 것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로스는 귀국 이후 미국의 상업 문화와 남성복, 일상용품, 실용적인 생활 방식을 유럽의 장식적 취향과 대비해 반복해서 언급했다. 미국은 실제 경험과 로스가 만들어 낸 이상화된 이미지가 겹친 기준점이었다.
로스가 주목한 것은 장식이 전혀 없는 사회가 아니었다. 의복과 가구, 상업 공간이 사용자의 습관과 사회적 관습에 맞춰져 있고, 예술가가 모든 표면에 새 장식을 만들어 넣지 않아도 된다는 태도였다.
이 경험은 빈 공방이 생활 전체를 하나의 예술적 스타일로 통일하려 했던 방식과 거리를 두는 데 영향을 줬다.
빈 활동과 장식 비판
<img src="https://d2xsxph8kpxj0f.cloudfront.net/310519663429662740/ffcjRzrXsTCDKgX6s8aDwC/articles/1782834945538-3735dc5ef81443a0.webp" alt="빈 분리파 주요 활동 건물" width="600" />
출처: 빈 분리파 공식 홈페이지로스는 1896년 빈으로 돌아와 건축가 카를 마이레더의 사무실에서 일했다. 1898년부터는 독립 건축가이자 신문과 잡지에 글을 쓰는 비평가로 활동했다.
당시 빈에서는 빈 분리파와 응용미술 운동이 새로운 장식과 공예를 통해 근대적인 생활양식을 만들고 있었다. 요제프 호프만과 콜로만 모저, 빈 공방은 건축과 가구, 식기, 그래픽, 의복을 하나의 미적 질서로 묶으려 했다.
로스는 역사주의 장식을 비판한다는 점에서는 이들과 출발점을 공유했지만, 새로운 시대를 위한 장식을 다시 만들어야 한다는 주장에는 반대했다. 그는 예술가가 모든 생활용품과 실내를 자신의 스타일로 통일하는 상황을 사용자의 자유를 제한하는 일로 봤다.
1899년에는 빈의 카페 무제움 실내를 설계했다. 당시 빈 카페의 장식적인 분위기와 달리 흰 벽과 단순한 가구, 절제된 조명을 사용했다. 지나치게 비어 있다는 반응 때문에 카페 니힐리즘이라는 별칭이 따라붙었다.
1908년에는 빈 중심부의 아메리칸 바를 완성했다. 공간은 약 27㎡로 작지만 거울과 대리석, 오닉스, 목재와 황동을 겹쳐 실제 크기보다 깊고 밀도 있게 보이도록 만들었다.
카페 무제움과 아메리칸 바는 로스의 작업이 단순한 무장식으로 향하지 않았다는 점을 함께 보여준다. 하나는 표면과 가구를 절제했고, 다른 하나는 강한 재료와 반사를 작은 공간에 압축했다.
장식과 범죄
로스는 1910년 빈에서 장식과 범죄로 알려진 강연을 발표했다. 오랫동안 1908년의 글로 소개됐지만, 현재 연구에서는 1909년 말부터 1910년 무렵 논지가 형성됐고 1910년 강연으로 공개된 것으로 본다.
원고는 1913년 프랑스어로 먼저 출판됐다. 독일어 원문이 신문에 출판된 것은 1929년이며, 1931년 로스의 글을 묶은 책에 실리면서 1908년이라는 연도가 붙어 널리 퍼졌다.
글의 핵심은 모든 장식을 금지해야 한다는 단순한 선언이 아니다. 로스는 이미 오랜 전통 속에서 굳어진 장식과 재료의 무늬, 사용자가 개인적으로 선택한 장식까지 모두 없애자고 주장하지 않았다.
그가 집중적으로 비판한 대상은 현대의 유용한 사물에 디자이너가 새 장식을 만들어 붙이는 일이었다. 장식에 투입된 노동과 제작 시간이 가격을 높이고, 유행이 바뀌면 멀쩡한 사물을 빠르게 낡은 것으로 만든다고 봤다.
장식은 로스에게 취향뿐 아니라 생산과 노동, 소비의 속도를 둘러싼 경제 문제였다. 다만 글의 논리는 문화적 진보를 장식의 감소와 연결하고, 비서구 문화와 문신을 범죄성과 퇴행에 빗댄다.
현재 장식과 범죄는 근대 디자인의 생산과 장식 문제를 강하게 제기한 텍스트인 동시에, 유럽 중심주의와 인종주의적 진화론을 드러낸 글로 비판적으로 다뤄야 한다.
로스하우스와 도시 논쟁
<img src="https://d2xsxph8kpxj0f.cloudfront.net/310519663429662740/ffcjRzrXsTCDKgX6s8aDwC/articles/1782835152613-1692551ef92f632e.webp" alt="로스하우스" width="600" />
출처: 빈 박물관로스하우스(Looshaus, 1909~1911)는 빈 미하엘러 광장에 세워진 상업·주거 복합 건물이다. 정식 명칭은 골드만 & 잘라치 건물(Goldman & Salatsch Building)이다.
아래쪽 상업 공간에는 짙은 녹색 대리석과 고전적인 기둥을 사용했고, 위쪽 주거층은 흰 회벽과 일정하게 반복되는 창으로 정리했다. 저층부와 상층부는 같은 장식 체계를 반복하지 않고 기능과 도시에서의 위치에 따라 전혀 다른 표면을 가진다.
이 건물은 황궁인 호프부르크와 마주한 미하엘러 광장에 세워졌다. 역사적 건물과 장식적인 입면이 둘러싼 장소에서 상층부 창 주변의 장식을 걷어낸 선택은 강한 논쟁을 불렀다.
창 위에 장식이 없다는 이유로 눈썹 없는 집이라는 표현이 따라붙었다. 다만 로스하우스를 아무 장식도 없는 건물로 설명하면 저층부의 대리석과 기둥, 정교한 상점 실내를 놓치게 된다.
로스는 모든 건물에서 고전적 요소와 장식을 배제하지 않았다. 상업 공간의 도시적 무게는 대리석과 기둥으로 만들고, 반복되는 주거층에는 새 장식을 붙이지 않는 방식으로 기능과 재료의 위계를 나눴다.
주거 실험과 라움플란
로스는 단독주택과 아파트 실내에서 자신의 공간 구성 방식을 발전시켰다. 슈타이너 하우스와 슈오이 하우스, 루퍼 하우스, 몰러 하우스는 절제된 외관과 재료감이 강한 내부, 단차를 활용한 방의 연결로 이어진다.
1920년대 초에는 빈 시의 주거 정책과 저층 주택 계획에도 참여했다. 그는 넓은 정원과 자급에 필요한 외부 공간을 갖춘 경제적인 주택 모델을 제안했지만, 행정 조직과의 갈등 속에서 오랫동안 자리를 유지하지는 못했다.
그의 주거 작업에서는 방을 같은 층고의 평면 위에 나란히 놓지 않았다. 응접실과 식당, 서재, 침실, 서비스 공간은 각각 필요한 높이와 넓이, 사생활의 정도에 맞춰 다른 위치에 배치됐다.
이 공간은 긴 계단으로 층을 분리하기보다 몇 개의 계단과 단차, 열린 시선으로 연결됐다. 집 안을 이동하면 방의 높이와 재료, 전망이 짧은 간격으로 달라진다.
이 방식은 후대에 라움플란이라는 이름으로 정리됐다. 용어를 만든 사람은 로스가 아니라 그의 협업자 하인리히 쿨카였지만, 로스의 주택에서 발전한 입체적인 공간 구성을 설명하는 대표 개념으로 자리 잡았다.
파리와 후기 작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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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g src="https://d2xsxph8kpxj0f.cloudfront.net/310519663429662740/ffcjRzrXsTCDKgX6s8aDwC/articles/1782835548978-ed904129b646477a.webp" alt="뮐러 빌라" width="600" />
출처: 프라하 공식 관광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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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프라하 시 공식 관광 홈페이지
[[/carousel]]1920년대 로스는 파리에서도 활동했다. 다다이스트 시인 트리스탕 차라를 위한 메종 차라를 설계했고, 무용가이자 가수인 조세핀 베이커를 위한 실현되지 않은 주택 계획도 남겼다.
조세핀 베이커 주택 계획은 검은색과 흰색의 가로 줄무늬 외관으로 유명하다. 로스가 장식을 무조건 금지한 인물이 아니라 강한 표면과 상징을 특정한 목적에 따라 선택적으로 사용했다는 점을 보여준다.
후기 대표작은 프라하의 뮐러 빌라다. 프란티셰크 뮐러와 밀라다 뮐러 부부를 위해 1928년부터 1930년까지 설계·완공했으며, 체코 건축가 카렐 로타가 협업했다.
뮐러 빌라는 방마다 높이와 위치를 다르게 정하고 짧은 계단과 열린 시선으로 연결한 공간 구성이 가장 정교하게 드러나는 주택이다. 단순한 외부 입방체와 복합적인 내부가 강하게 대비된다.
로스와 로타는 이어 프라하의 빌라 빈터니츠를 설계했다. 1932년 사용 승인을 받은 이 건물은 로스가 생전에 완공을 확인한 마지막 건물이다.
말년의 로스는 건강과 청력 문제로 실무 참여가 줄었고, 로타와 쿨카를 비롯한 협업자들이 설계와 현장 업무에서 큰 역할을 맡았다.
1933년 8월 23일 로스는 빈 근교 칼크스부르크에서 세상을 떠났다. 묘지는 빈 중앙묘지에 있다.
디자인 철학·시그니처
장식보다 재료
로스의 장식 비판은 모든 표면을 흰색으로 만들거나 값싼 재료만 사용하자는 주장과 다르다. 그는 재료가 가진 결이나 무게, 광택과 가공 방식을 공간의 중심에 놓았다.
대리석은 다른 무늬를 덧칠하지 않아도 고유한 결을 가진다. 목재도 나무의 종류와 절단 방향, 표면 처리에 따라 색과 무늬가 달라진다. 로스는 이러한 재료의 차이를 장식으로 가리지 않았다.
그가 비판한 것은 값싼 재료를 비싼 소재처럼 보이게 꾸미거나, 기능과 제작 방식에서 나오지 않은 새 무늬를 표면에 붙이는 일이었다.
이 때문에 로스의 실내는 장식을 줄였음에도 시각적으로 빈약하지 않다. 로스하우스의 대리석과 아메리칸 바의 오닉스, 뮐러 빌라의 목재와 석재가 넓은 표면을 직접 채운다.
로스에게 절제는 재료를 덜 쓰는 일이 아니라, 재료에 없는 이미지를 덧붙이지 않는 일이었다.
외부의 절제와 내부의 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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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프라하 공식 관광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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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프라하 공식 관광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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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프라하 공식 관광 홈페이지
[[/carousel]]로스는 거리에서 보이는 외관과 거주자가 생활하는 내부를 다르게 다뤘다. 공적인 외부는 벽과 창, 건물의 크기와 도시에서의 위치를 명확하게 보여주는 쪽으로 정리했다.
반대로 실내에서는 방의 용도와 사용자의 생활, 사생활의 정도에 따라 재료와 높이, 가구와 시선을 세밀하게 조정했다.
이 차이는 주택에서 특히 강하게 드러난다. 뮐러 빌라와 몰러 하우스는 밖에서 단순한 흰 덩어리처럼 보이지만, 안에서는 응접실과 식당, 서재와 침실이 서로 다른 높이와 재료를 가진다.
외부의 절제는 내부를 가난하게 만들기 위한 것이 아니다. 거리의 보행자에게 거주자의 사생활과 부를 과시하지 않고, 집의 풍부함은 실제로 생활하는 사람에게 돌려주는 방식이다.
로스의 주택은 외관 사진 한 장보다 문을 통과하고 계단을 오르며 방 사이를 이동할 때 더 분명하게 드러난다.
라움플란
<img src="https://d2xsxph8kpxj0f.cloudfront.net/310519663429662740/ffcjRzrXsTCDKgX6s8aDwC/articles/1782836452148-a8759fcb6a822cdb.webp" alt="이미지" width="600" />
출처: 프라하 시립박물관라움플란(Raumplan)은 로스의 주택에서 나타나는 입체적인 공간 구성 방식을 설명하는 용어다. 각 방에 필요한 높이와 넓이, 사회적 위계와 쓰임을 정하고, 이를 하나의 건물 안에서 서로 맞물리게 배치한다.
라움플란이라는 이름은 로스가 직접 사용하지 않았다. 협업자 하인리히 쿨카가 1931년 로스의 건축을 정리한 책에서 이 개념을 설명하며 붙인 명칭이다.
응접실처럼 많은 사람을 맞는 공간은 높고 넓게 만들고, 서재나 서비스 공간은 더 낮고 조밀하게 구성할 수 있다. 방들은 고정된 한 층의 바닥선에 맞추지 않고 몇 개의 계단과 단차로 이어진다.
따라서 라움플란은 단순히 집 안에 스플릿 레벨을 넣는 기법이 아니다. 방마다 다른 기능과 사생활의 정도, 사용자의 위치와 시선을 높이 차이로 드러내는 공간 질서다.
뮐러 빌라에서는 거실과 식당, 부인의 방과 서재가 서로 다른 높이로 배치된다. 사용자는 계단을 따라 이동하며 방의 크기와 재료, 시선이 열리는 방향을 차례로 경험한다.
라움플란은 같은 면적을 효율적으로 나누는 방법인 동시에, 가족과 손님, 주인과 서비스 공간의 관계를 위계적으로 조직한 방식이기도 하다. 공간적 성과와 함께 당시 부르주아 주거의 사회 구조도 담고 있다.
생활을 기준으로 한 근대성
로스는 의복과 가구, 식기, 실내, 주택을 모두 생활 방식의 문제로 다뤘다. 좋은 디자인은 장식의 양보다 사용자의 습관과 사물의 쓰임, 재료의 적합성에서 나와야 한다고 봤다.
이 태도는 빈 공방의 총체예술과 다른 방향이었다. 빈 공방은 건축과 가구, 식기와 그래픽을 하나의 예술적 세계로 통일하려 했다.
로스는 이러한 통합이 사용자의 집과 생활 전체를 건축가나 디자이너 한 사람의 취향에 가둘 수 있다고 비판했다. 집은 전시를 위해 완결된 예술 작품이 아니라 시간이 지나며 사람의 물건과 기억이 쌓이는 장소라고 봤다.
그의 실내는 재료와 가구, 공간의 위치를 강하게 통제하지만, 모든 생활용품을 새로 디자인해 하나의 무늬로 맞추려 하지는 않았다. 이미 오랫동안 사용돼 온 가구와 생활용품도 목적에 맞으면 받아들였다.
로스에게 근대성은 모든 물건을 새로운 스타일로 바꾸는 일이 아니었다. 사용에 문제가 없는 사물을 유행 때문에 폐기하지 않고, 생활을 방해하는 새 장식만 걷어내는 태도에 가까웠다.
기능주의와 다른 절제
로스는 기능주의와 자주 연결되지만 기능이 형태를 자동으로 결정한다고 주장한 건축가로만 정리하기 어렵다.
그는 건축과 사물이 사용 목적에 맞아야 한다고 봤지만, 상징과 고전적 비례, 고급 재료와 분위기를 완전히 버리지 않았다.
아메리칸 바는 작은 상업 공간이라는 기능을 충실히 수행하면서도 오닉스와 거울, 대리석과 목재가 강한 분위기를 만든다. 로스하우스도 위층은 절제했지만 저층 상점에는 고전적인 기둥과 대리석을 사용했다.
시카고 트리뷴 타워 공모안에서는 마천루 전체를 거대한 도리아식 기둥으로 만들었다. 장식을 표면에 붙이지 않았지만 건물 전체를 강한 역사적 상징으로 구성했다.
로스의 절제는 기능만 남긴 빈 상자가 아니다. 불필요하다고 판단한 장식을 덜어낸 뒤, 재료와 비례, 방의 위계와 상징을 더 직접적으로 드러내는 방식이다.
주요 작업
카페 무제움
<img src="https://d2xsxph8kpxj0f.cloudfront.net/310519663429662740/ffcjRzrXsTCDKgX6s8aDwC/articles/1782836587999-96e6dbf20cc12f0a.webp" alt="카페 무제움" width="600" />
출처: Habsburger.net카페 무제움(Café Museum, 1899)은 빈 카를스플라츠 인근에 완성된 로스의 초기 실내 작업이다. 장식적인 카페가 많았던 시기에 흰 벽과 곧은 선, 간결한 목재 가구와 황동 부품을 사용했다.
벽을 무늬와 장식물로 채우지 않고 가구와 조명, 테이블 사이의 간격으로 공간을 정리했다. 예술가와 문인이 모이는 카페였지만 실내 자체를 거대한 예술 작품처럼 만들지는 않았다.
동시대에는 지나치게 비어 있다는 반응을 받았고 카페 니힐리즘이라는 별칭도 얻었다. 이후에는 로스가 장식 중심의 실내에서 벗어난 전환점으로 평가됐다.
다만 현재 공간은 여러 차례 개조와 복원을 거쳤다. 오늘날 보이는 실내 전체를 1899년 로스의 원형과 동일하게 볼 수는 없다.
아메리칸 바
<img src="https://d2xsxph8kpxj0f.cloudfront.net/310519663429662740/ffcjRzrXsTCDKgX6s8aDwC/articles/1782836838983-ecfb274186293fa3.webp" alt="" width="600" />
아메리칸 바(American Bar, 1908)는 빈 중심부 카른트너 거리에 완성된 작은 바다. 카른트너 바와 로스바라는 이름으로도 불린다.
내부 면적은 약 27㎡에 불과하지만 벽과 천장의 거울이 실제 공간을 반복해서 반사한다. 좁은 실내가 여러 방향으로 계속 이어지는 듯한 깊이감을 만든다.
바닥의 흑백 체크 패턴과 짙은 목재, 녹색과 노란색 계열의 대리석과 오닉스, 황동 부품이 작은 공간에 압축돼 있다. 반투명 오닉스와 간접 조명은 벽과 천장을 밝은 표면으로 바꾼다.
아메리칸 바는 로스의 작업이 흰 벽과 무장식만을 뜻하지 않는다는 점을 가장 직접적으로 보여준다. 표면에 새 문양을 덧붙이지 않으면서도 재료의 무늬와 반사, 빛과 비례로 강한 실내를 만들었다.
슈타이너 하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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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타이너 하우스(Steiner House, 1910)는 빈 히칭에 완성된 주택이다. 화가 릴리 슈타이너와 남편 후고 슈타이너를 위해 설계됐다.
도로 쪽 입면은 흰 벽과 작은 창, 둥글게 내려오는 금속 지붕으로 정리됐다. 당시 규정이 도로에서 보이는 층수를 제한했기 때문에 곡면 지붕을 사용해 뒤쪽의 더 높은 주거 공간을 감췄다.
정원 쪽에서는 여러 층과 창이 더 직접적으로 드러난다. 앞과 뒤가 같은 대칭 입면을 갖지 않고 도시 규정과 실내 공간에 따라 서로 다른 모습을 가진다.
슈타이너 하우스는 흰 벽과 단순한 외관 때문에 후대 근대 주택의 선구적 사례로 자주 언급됐다. 다만 형태의 단순함만큼 규제와 대지, 내부 생활에 대응한 비대칭 구성이 중요하다.
로스하우스
<img src="https://d2xsxph8kpxj0f.cloudfront.net/310519663429662740/ffcjRzrXsTCDKgX6s8aDwC/articles/1782837106738-dc62e21b655863c9.webp" alt="로스하우스" width="600" />
출처: 빈 박물관로스하우스(Looshaus, 1909~1911)는 빈 미하엘러 광장에 완성된 상업·주거 복합 건물이다. 정식 명칭은 골드만 & 잘라치 건물이다.
건물 아래쪽에는 남성복 매장과 업무 공간이 들어갔다. 저층부는 녹색 대리석과 기둥, 대형 쇼윈도로 구성해 상업시설의 존재감을 만들었다.
위쪽 주거층은 흰 벽과 일정하게 반복되는 창만 남겼다. 같은 입면에서 고급 상업 공간과 반복되는 임대주택을 재료와 비례로 분명하게 나눈 것이다.
황궁과 마주한 역사적 광장에서 창 주변의 장식을 생략한 선택은 동시대에 큰 논쟁을 불렀다. 하지만 건물 전체가 장식을 거부한 것은 아니다. 저층부의 대리석과 고전적인 기둥은 도시적 상징과 격식을 적극적으로 사용한다.
로스하우스는 장식의 유무보다 어떤 기능과 재료에 어떤 표현을 허용할 것인지 나눈 건물이다. 로스의 건축이 단순한 미니멀리즘으로 환원되지 않는 이유가 이 대비에 있다.
슈오이 하우스
<img src="https://d2xsxph8kpxj0f.cloudfront.net/310519663429662740/ffcjRzrXsTCDKgX6s8aDwC/articles/1782837411022-cc514693d4164816.webp" alt="슈오이 하우스" width="600" />
출처: 아키텍투어첸트룸 빈 컬렉션슈오이 하우스(Scheu House, 1912)는 빈 히칭에 완성된 주택이다. 변호사 구스타프 슈오이와 헬레네 슈오이 가족을 위해 설계됐다.
집은 경사진 대지와 정원을 향해 여러 개의 테라스를 배치했다. 각 층의 생활 공간이 외부 테라스와 바로 연결되며, 도로에서 정원으로 갈수록 건물의 높이와 열린 정도가 달라진다.
외관은 흰 벽과 단순한 창으로 정리됐지만, 테라스와 계단이 건물과 정원의 관계를 입체적으로 만든다.
슈오이 하우스는 닫힌 상자 안에 방을 넣은 주택보다, 생활 공간과 외부 바닥이 층마다 이어지는 집에 가깝다. 이후 로스가 방의 높이와 위치를 더 복합적으로 구성하는 주택으로 나아가는 과정도 보여준다.
루퍼 하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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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Thomas Ledl (© Thomas Ledl)루퍼 하우스(Rufer House, 1922)는 빈 히칭에 완성된 작은 단독주택이다. 정육면체에 가까운 외부 안에 서로 다른 높이와 성격을 가진 방이 맞물린다.
외관의 창은 전통적인 대칭이나 층별 수평선에 맞춰 배치되지 않는다. 각 방의 위치와 내부 높이에 따라 서로 다른 크기와 높이로 놓인다.
내부에서는 식당 바닥을 인접한 거실보다 높게 두고 짧은 계단으로 연결했다. 방은 같은 층에 평평하게 놓이지 않고 사용 목적과 위계에 따라 다른 높이를 가진다.
루퍼 하우스는 후대 연구에서 초기 라움플란 주택의 핵심 사례로 다뤄진다. 단순한 외부 입방체 안에 입체적인 방의 구성을 넣는 로스의 방식이 본격적으로 드러난다.
메종 차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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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Gerd Eichmann (© Gerd Eichmann)메종 차라(Maison Tzara, 1925~1926)는 파리 몽마르트르에 완성된 주택 겸 작업실이다. 다다이스트 시인 트리스탕 차라와 화가 그레타 크뉘트손 부부를 위해 설계됐다.
건물은 경사진 대지에 놓였으며 도로 쪽 입면은 아래쪽의 석재와 위쪽의 밝은 회벽으로 나뉜다. 중앙의 큰 테라스가 입면을 가르며 도시를 바라보는 외부 공간을 만든다.
내부에서는 응접 공간과 작업실, 가족의 사적 공간이 서로 다른 높이와 방향으로 배치된다. 정면에서 보이는 단정한 층 구성과 내부의 복합적인 방 연결이 대비된다.
다다이스트 시인을 위한 집이지만 외관을 불규칙한 표현주의 조형으로 만들지는 않았다. 의뢰인의 작업과 생활을 위한 공간의 높이와 재료, 도시 전망에 집중했다.
몰러 하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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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David Friesacher (© David Friesacher)몰러 하우스(Moller House, 1927~1928)는 빈 되블링에 완성된 주택이다. 섬유 사업가 한스 몰러와 안니 몰러 가족을 위해 설계됐다.
거리 쪽 입면은 흰 벽과 작은 창, 가운데에서 돌출된 상자 형태로 정리됐다. 외부에서는 내부의 복잡한 높이 차이가 거의 드러나지 않는다.
안으로 들어가면 응접실과 식당, 음악실, 서재와 사적 공간이 서로 다른 높이로 맞물린다. 짧은 계단과 낮은 벽, 열린 입구를 통해 한 방에서 다른 방을 부분적으로 바라볼 수 있다.
창가에 높게 배치된 좌석 공간은 거리와 실내를 동시에 바라보는 장소가 된다. 방은 단순히 벽으로 분리되지 않고 높이와 시선의 방향으로 성격이 나뉜다.
몰러 하우스는 뮐러 빌라로 이어지는 후기 공간 실험의 중요한 단계다. 외부의 절제와 내부의 입체적인 방 구성, 재료의 대비가 더 정교하게 결합됐다.
조세핀 베이커 주택 계획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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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Albertina (© Albertina)조세핀 베이커 주택(House for Josephine Baker, 1927)은 파리에 계획됐지만 실현되지 않은 주택이다. 무용가이자 가수인 조세핀 베이커를 위해 검은색과 흰색의 수평 줄무늬 외관을 제안했다.
가로 줄무늬는 표면에 붙인 작은 장식이 아니라 건물 전체를 감싸는 강한 그래픽이 된다. 거대한 입방체와 곡면 모서리가 줄무늬를 따라 더 선명하게 드러난다.
내부 계획에는 수영장과 이를 내려다보는 통로, 서로 다른 높이의 생활 공간이 포함됐다. 외관의 강한 이미지와 내부에서 몸과 시선을 조직하는 공간이 함께 계획됐다.
이 계획안은 로스가 모든 장식과 상징을 거부했다는 통념을 반박한다. 그는 의미 없는 새 장식을 비판했지만, 의뢰인의 대중적 이미지와 건물의 성격을 드러내는 표면은 과감하게 사용할 수 있었다.
뮐러 빌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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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Adolf Loos in Prague (© Adolf Loos in Prague)뮐러 빌라(Villa Müller, 1928~1930)는 프라하의 사업가 프란티셰크 뮐러와 밀라다 뮐러 부부를 위해 설계된 주택이다. 아돌프 로스와 카렐 로타가 협업했다.
외부는 큰 장식 없이 흰색 입방체와 작은 창으로 구성됐다. 외관만 보면 층별로 방이 정리된 단순한 주택처럼 보인다.
내부에서는 거실과 식당, 부인의 방과 서재, 침실과 서비스 공간이 서로 다른 높이로 배치된다. 계단은 한 번에 한 층을 이동하기보다 몇 개의 단차로 방들을 이어 준다.
거실에서는 높게 놓인 부인의 방이 내려다보이고, 여러 공간의 입구와 창이 서로의 시선을 선택적으로 연결한다. 사용자는 방의 크기와 높이, 재료가 바뀌는 과정을 몸으로 경험한다.
공적인 공간에는 대리석과 짙은 목재, 직물과 색을 사용하고, 서비스 공간은 더 밝고 기능적으로 정리했다. 외부의 절제와 내부의 재료적 풍부함이 가장 분명하게 대비되는 작업이다.
뮐러 빌라는 라움플란으로 불리는 공간 구성이 가장 정교하게 완성된 사례다. 단순한 스플릿 레벨이 아니라 방의 기능과 위계, 시선과 이동을 하나의 입체적인 질서로 만든다.
빌라 빈터니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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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Adolf Loos in Prague빌라 빈터니츠(Villa Winternitz, 1931~1932)는 프라하의 변호사 요제프 빈터니츠와 가족을 위해 설계한 주택이다. 아돌프 로스와 카렐 로타가 함께 작업했다.
1932년 9월 사용 승인을 받았으며, 로스가 생전에 완공을 확인한 마지막 건물이다. 당시 건강이 악화된 로스를 대신해 로타가 현장과 설계 실무의 많은 부분을 맡았다.
집은 뮐러 빌라보다 평탄한 대지에 놓여 있고, 라움플란도 여섯 개 높이로 비교적 단순하게 구성됐다. 거실과 식당은 높이가 다른 하나의 큰 생활 공간 안에 연결된다.
대리석과 희귀 목재를 넓게 사용한 뮐러 빌라와 달리 벽돌과 회벽, 목재를 중심으로 실내를 구성했다. 적은 비용 안에서도 방의 높이와 계단, 정원으로 열린 시선을 통해 공간의 차이를 만들었다.
빌라 빈터니츠는 라움플란이 고급 재료와 복잡한 주택에서만 가능한 방식이 아니었음을 보여준다. 후기 로스와 협업자 로타가 공간 구성을 더 압축적으로 적용한 사례다.
시카고 트리뷴 타워 공모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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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미국 의회도서관시카고 트리뷴 타워 공모안(Chicago Tribune Tower Competition Entry, 1922)은 미국 신문사 시카고 트리뷴이 연 국제설계공모에 로스가 제출한 계획이다.
로스는 마천루 전체를 거대한 도리아식 기둥으로 만들었다. 낮은 기단 위에 기둥의 몸통이 고층부 전체를 차지하고, 위쪽의 주두가 건물의 정상부를 이룬다.
고전 기둥을 건물 표면에 장식으로 붙이지 않고 마천루 전체의 구조적 이미지로 확대했다. 장식과 구조, 상징의 구분을 뒤집은 제안이다.
이 계획안은 로스가 고전주의와 상징을 모두 배척하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기능과 관계없이 반복되는 장식은 비판했지만, 도시와 기관의 성격을 한눈에 드러내는 거대한 상징은 사용할 수 있었다.
시카고 트리뷴 타워 공모안은 장식과 범죄를 모든 장식의 금지로 받아들일 수 없게 하는 대표 자료다.
영향 관계
오토 바그너 이후의 빈
로스는 오토 바그너 이후 빈에서 전개된 근대 건축 논의와 같은 시대를 살았다. 바그너는 새로운 재료와 도시 인프라, 현대 생활에 맞는 건축을 주장하며 역사 양식의 반복에서 벗어나려 했다.
로스 역시 과거 양식을 그대로 붙이는 역사주의를 비판했지만, 빈 분리파와 빈 공방이 제안한 새로운 장식 체계에도 거리를 뒀다. 근대 건축을 새로운 스타일의 발명보다 생활과 재료, 사회적 관습의 문제로 봤다.
미국 체류 경험은 이러한 태도를 만드는 중요한 배경이었다. 그는 미국의 상업 문화와 남성복, 일상용품을 유럽의 예술 공예 운동과 대비해 소개했다.
다만 로스가 실제 미국 건축의 모든 면을 정확하게 기록한 것은 아니다. 그가 글에서 제시한 미국은 유럽의 장식 문화를 비판하기 위해 선택하고 이상화한 모델이기도 했다.
로스의 위치는 오토 바그너가 연 근대 건축의 논의를 이어받으면서도, 분리파와 빈 공방이 만든 새 장식에서 다시 벗어나려 한 데 있다.
요제프 호프만과 빈 공방
로스는 요제프 호프만과 자주 대비된다. 호프만과 빈 공방은 건축과 가구, 직물, 식기, 그래픽을 하나의 예술적 질서로 통합하려 했다.
이 방식은 역사주의 장식을 반복하지 않고 현대의 생활환경을 새롭게 만들려는 시도였다. 하지만 로스는 예술가가 의뢰인의 집과 물건 전체를 자기 스타일로 통제한다고 비판했다.
호프만의 실내에서는 벽과 바닥, 가구와 식기의 패턴이 하나의 조형 체계를 만든다. 로스의 실내에서는 석재와 목재, 가구의 종류, 방의 높이와 동선이 서로 다른 출처를 유지하며 함께 놓인다.
로스가 장식을 없애고 호프만이 장식을 더했다는 단순한 차이는 아니다. 두 사람 모두 역사주의를 벗어나려 했지만, 호프만은 새로운 예술적 질서를 만들었고 로스는 생활 전체를 하나의 스타일로 통일하려는 태도를 경계했다.
두 방향의 충돌은 빈 모더니즘이 하나의 미니멀한 스타일로만 전개되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르 코르뷔지에와 근대건축
<img src="https://d2xsxph8kpxj0f.cloudfront.net/310519663429662740/ffcjRzrXsTCDKgX6s8aDwC/articles/1783846444836-7dc06c4cbabccbed.webp" alt="르 코르뷔지에" data-orientation="free" data-original-src="https://d2xsxph8kpxj0f.cloudfront.net/310519663429662740/ffcjRzrXsTCDKgX6s8aDwC/articles/1782872216314-69d5915fb30004d6.webp" width="600" />
출처: 만 레이 (© 만 레이(Man Ray)로스는 르 코르뷔지에와 발터 그로피우스보다 앞서 장식과 현대 생활, 건축의 관계를 논쟁의 중심에 놓았다. 그의 글은 1920년대 근대건축가들이 장식 없는 형태를 정당화하는 과정에서 널리 인용됐다.
장식과 범죄의 프랑스어 번역은 르 코르뷔지에와 아메데 오장팡이 발행한 잡지 레스프리 누보에도 실렸다. 로스의 논지는 국제적인 근대건축 담론 안으로 들어갔다.
다만 로스와 르 코르뷔지에의 주택은 공간을 조직하는 방식에서 차이가 크다. 르 코르뷔지에는 기둥 구조와 자유로운 평면, 수평창을 통해 벽과 방의 배치를 유연하게 만들었다.
로스는 방이라는 단위를 유지하면서 각 방의 높이와 재료, 사회적 위계를 입체적으로 맞물리게 했다. 수평으로 흐르는 자유로운 평면보다 닫힌 방 사이의 높이와 시선, 계단을 중요하게 다뤘다.
로스의 영향은 특정 외관을 복제하게 만든 데보다 건축을 장식과 양식의 문제가 아닌 재료와 생활, 공간 구성의 문제로 다시 보게 한 데 있다.
라움플란의 후대 영향
라움플란은 이후 주거 건축에서 공간을 평면도가 아닌 단면과 입체적인 이동으로 다루는 데 중요한 참고점이 됐다.
하인리히 쿨카는 로스와 함께 이 공간 구성 방식을 발전시키고 1931년 라움플란이라는 이름으로 정리했다. 쿨카는 이후 유럽과 뉴질랜드의 주택에서도 서로 다른 높이의 방을 맞물리는 설계를 이어 갔다.
라움플란은 단순한 스플릿 레벨이나 복층 구조를 뜻하지 않는다. 각 방의 기능과 사회적 위계에 맞춰 높이와 넓이를 정하고, 시선과 이동을 조절하는 공간 계획 방식이다.
이 개념은 주거뿐 아니라 실내건축과 전시, 소규모 상업 공간에서도 반복해서 참고됐다. 같은 바닥 면적 안에서도 높이와 위치, 계단과 열린 시선을 달리하면 서로 다른 공간 경험을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동시에 라움플란은 중립적인 공간 기법이 아니다. 응접실과 가족 공간, 하인과 서비스 공간의 높이와 위치를 나누며 당시 부르주아 가정의 위계와 성 역할을 건축 안에 담았다.
후대에는 공간적 창의성뿐 아니라 어떤 사회 구조를 방의 높이와 동선으로 굳혔는지까지 함께 검토한다.
수상·전시 이력
로스는 생전의 건축상보다 사후 전시와 연구, 건물 복원을 통해 위상이 더 커진 인물이다. 그의 작업은 로스하우스와 아메리칸 바, 뮐러 빌라, 빈과 플젠의 주거 실내를 중심으로 계속 조사되고 공개됐다.
뮐러 빌라는 1998년부터 2000년까지 건물과 정원, 실내와 가구를 함께 복원했다. 2000년 5월 일반에 공개됐고, 복원 작업은 같은 해 유로파 노스트라 문화유산상을 받았다. 2002년에는 수상을 기념하는 명판이 설치됐다.
복원된 뮐러 빌라는 평면도와 사진만으로 파악하기 어려운 라움플란을 직접 경험할 수 있는 대표 장소가 됐다. 원래 가구와 미술품, 재료가 상당 부분 보존돼 주택과 생활 공간을 함께 볼 수 있다.
2020년부터 2021년까지 빈 응용미술관은 로스 탄생 150주년을 맞아 《아돌프 로스: 개인 주택》(ADOLF LOOS: Private Houses) 전시를 열었다.
전시는 알베르티나의 아돌프 로스 아카이브에서 가져온 설계 도면과 사진, 모형을 중심으로 단독주택과 빌라, 전원주택을 조명했다. 조세핀 베이커 주택과 슈타이너 하우스, 메종 차라, 몰러 하우스, 뮐러 빌라 같은 실현·미실현 작업을 함께 다뤘다.
로스의 주택은 오랫동안 한 명의 천재 건축가가 만든 작품으로 소개됐지만, 최근 연구와 전시는 하인리히 쿨카와 카렐 로타를 비롯한 협업자와 의뢰인의 역할도 함께 다룬다.
장식과 범죄와 라움플란은 현재도 근대건축과 디자인 교육에서 반복해서 다뤄진다. 다만 최근에는 로스의 주장과 건축적 성과뿐 아니라 식민주의적 시선과 성별·계급 위계, 1928년 재판까지 함께 연구하는 방향으로 범위가 넓어졌다.
반응과 평가
건축
로스의 건축은 장식을 단순히 제거했다기보다, 장식이 담당하던 역할을 재료와 비례, 공간 구성으로 옮긴 작업으로 평가된다.
로스하우스의 대리석과 흰 벽, 아메리칸 바의 거울과 오닉스, 뮐러 빌라의 목재와 단차는 장식을 덜어낸 뒤 무엇이 건축의 인상을 만드는지 보여준다.
외부는 거리와 도시를 향해 절제하고, 내부는 거주자의 생활과 사생활에 맞춰 재료와 공간을 풍부하게 구성했다. 이 대비는 이후의 기능주의나 국제주의 양식보다 더 복합적이다.
로스는 미니멀리즘의 선구자로 자주 소개되지만, 그의 실내는 비어 있거나 중립적이지 않다. 값비싼 석재와 목재, 전통 가구와 직물, 강한 색을 사용하며 방마다 다른 분위기를 만들었다.
로스 건축의 핵심은 사물을 적게 놓는 데 있지 않다. 새 장식을 덧붙이지 않고 재료와 공간의 위계, 실제 생활의 동작으로 밀도 있는 환경을 만드는 데 있다.
건축사
로스는 초기 유럽 모더니즘의 중요한 건축가이자 비평가다. 그는 건축을 역사 양식의 반복이나 새 장식의 발명에서 떼어내고, 사용과 재료, 생산과 생활 공간의 문제로 옮겼다.
장식과 범죄는 이후 근대건축에서 장식 없는 형태를 정당화하는 가장 강한 글 가운데 하나가 됐다. 다만 로스의 건축이 곧 국제주의 양식으로 이어졌다고 단순하게 설명할 수는 없다.
그의 주택은 흰 외관을 사용했지만 내부에서는 닫힌 방과 사회적 위계, 전통 가구와 고급 재료를 유지했다. 투명한 유리와 열린 평면을 앞세운 후대 모더니즘과 다른 지점이다.
시카고 트리뷴 타워 공모안처럼 건물 전체를 고전 기둥으로 만든 작업도 남겼다. 로스는 전통과 상징을 없애기보다, 표면 장식으로 반복하지 않고 새로운 규모와 맥락에 배치했다.
그의 건축사적 위치는 장식의 폐기 하나에 있지 않다. 역사주의와 새 장식, 기능주의와 상징, 외부의 절제와 내부의 풍부함 사이에서 근대건축의 기준을 흔든 데 있다.
동시대 반응
로스의 작업은 동시대에 강한 반발을 불렀다. 카페 무제움은 장식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카페 니힐리즘이라 불렸고, 로스하우스는 황궁 앞 광장에 어울리지 않는다는 비판을 받았다.
당시 시민과 언론이 낯설게 느낀 것은 흰 벽 자체만이 아니었다. 건물의 지위와 품격을 창 주변의 장식과 조각, 역사 양식으로 표현하던 관습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로스하우스의 저층부에는 고급 대리석과 기둥이 있었지만, 위층 임대주택에는 같은 장식을 반복하지 않았다. 건축의 가치가 표면 전체에 균일한 장식을 배치하는 데 있다는 통념을 흔들었다.
후대에는 이 반발이 로스의 선구성을 증명하는 일화처럼 반복됐다. 그러나 당시 논쟁을 낡은 대중과 진보적 건축가의 단순한 충돌로만 보면 부족하다.
로스의 건물은 도시의 역사와 의뢰인의 경제력, 주거와 상업시설의 위계에 따라 표현을 달리했다. 논쟁은 근대 건축이 공공 공간에서 무엇을 보여줘야 하는지에 관한 충돌이었다.
디자인 반응
로스의 디자인은 오늘날에도 양면적으로 받아들여진다. 불필요한 장식을 걷어내고 재료와 구조, 사용 방식을 직접 드러낸 태도는 산업디자인과 건축에서 여전히 강한 기준으로 남아 있다.
제품이 유행 때문에 빠르게 낡아 보이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비판은 현재의 과잉 생산과 짧은 제품 수명 문제에도 연결된다. 장식과 상품 교체의 관계를 노동과 비용의 문제로 본 시선은 지금도 유효한 질문을 던진다.
반면 장식이 항상 낭비이고 문화적 진보와 반대된다는 그의 논리는 받아들이기 어렵다. 장식은 공동체의 역사와 정체성, 종교와 권력, 개인의 기억을 표현하는 수단이기도 하다.
로스의 실제 건축 역시 장식 없는 순수한 기능으로만 이루어지지 않았다. 재료의 무늬와 고전 기둥, 체크 패턴과 줄무늬, 고급 가구와 직물을 선택적으로 사용했다.
따라서 로스의 디자인은 장식을 금지한 규칙보다, 누가 어떤 사물에 어떤 장식을 만들고 그 비용을 누가 부담하는지 묻는 비판으로 다루는 편이 정확하다.
비판
장식과 범죄는 현재도 논쟁적인 글이다. 로스는 장식의 감소를 문화적 진보와 연결하고, 비서구 사회와 문신을 원시성·범죄성·퇴행의 이미지와 연결했다.
이러한 논리는 당시 유럽의 식민주의와 인종주의적 진화론을 그대로 반영한다. 노동과 소비, 유행을 비판한 부분이 중요하더라도 비서구 문화를 낮은 발전 단계로 놓은 전제를 분리해서 받아들일 수는 없다.
로스의 주거 공간도 계급과 성별의 위계에서 자유롭지 않다. 공적인 응접 공간과 사적인 가족 공간, 서비스 공간을 높이와 동선으로 분리하며 당시 부르주아 가정의 질서를 건축 안에 넣었다.
빌라 빈터니츠에서는 서비스 노동자가 전망에 시선을 빼앗기지 않도록 창턱을 높였다는 설명도 전해진다. 공간의 위계가 아름다운 입체 구성인 동시에 사람의 지위와 행동을 통제하는 장치였음을 보여준다.
개인사에서는 1928년 재판이 가장 무거운 문제다. 로스는 빈 경찰에 아동 성적 학대 혐의로 체포됐고, 여덟 살부터 열 살 사이의 어린이들을 누드 모델로 세운 사건으로 재판을 받았다.
법원은 더 중한 성적 접촉 혐의에는 무죄를 선고했지만, 어린이들에게 외설적인 자세로 누드 모델을 서게 한 혐의에는 유죄 판결을 내렸다.
재판은 당시 빈의 좌우 정치 대립과 모더니즘을 둘러싼 문화적 갈등 속에서 크게 소비됐다. 그러나 재판이 정치적으로 이용됐다는 사실과 로스가 유죄 판결을 받았다는 사실은 별개로 다뤄야 한다.
로스의 건축사적 영향은 분명하지만, 이를 이유로 피해 아동과 재판 기록을 주변적인 스캔들로 축소해서는 안 된다. 로스는 근대건축이 만든 공간적 성과와 유럽 중심주의, 계급적 위계와 개인의 범죄가 함께 놓인 복합적인 인물로 다뤄야 한다.
관련·혼동 용어
Adolf Loos
Adolf Loos는 아돌프 로스의 독일어 표기다. 오스트리아 건축가이자 비평가로, 장식 비판과 라움플란을 통해 초기 근대건축에 큰 영향을 줬다.
「장식과 범죄」
「장식과 범죄」는 로스의 대표 글로 알려져 있다. 유용한 사물에 붙는 장식을 노동과 재료의 낭비로 비판한 텍스트다. 다만 비서구 문화와 진보를 다루는 방식에는 시대적 편견이 담겨 있어 비판적으로 읽어야 한다.
라움플란
라움플란은 방마다 필요한 높이와 크기를 다르게 정하고, 이를 입체적으로 맞물리게 하는 공간 계획 방식이다. 뮐러 빌라에서 가장 분명하게 드러난다.
로스하우스
로스하우스는 빈 미하엘러 광장에 세워진 골드만 & 잘라치 건물의 통용명이다. 장식을 줄인 입면 때문에 동시대 빈에서 큰 논란을 불렀다.
뮐러 빌라
뮐러 빌라는 프라하에 있는 로스의 후기 대표 주택이다. 외부는 단순한 흰 입방체에 가깝지만, 내부는 여러 높이의 방과 단차가 맞물린 라움플란의 대표 사례다.
빈 분리파
빈 분리파는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 빈에서 활동한 예술·디자인 운동이다. 장식과 공예를 통해 새로운 시각 문화를 만들려 했고, 로스는 이 흐름의 장식적 경향을 비판했다.
빈 공방
빈 공방은 요제프 호프만과 콜로만 모저 등이 참여한 디자인·공예 조직이다. 건축, 가구, 공예, 그래픽을 하나의 예술적 생활 환경으로 통합하려 했다. 로스는 이런 총체예술적 태도와 강하게 대비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