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미오카 제사장 (Tomioka Silk Mill)

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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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jeepe

토미오카 제사장(Tomioka Silk Mill)은 일본 군마현 도미오카시에 있는 근대 제사 공장이다. 여기서 제사(製絲)는 누에고치에서 생사를 뽑아 실로 만드는 일을 뜻한다.

메이지 정부는 생사 품질을 높이고 수출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 1872년 이 공장을 세웠다. 프랑스식 기계와 기술자를 들여와 대규모 기계 제사 체계를 만들었고, 이곳에서 배운 기술은 일본 각지 제사 공장으로 퍼졌다.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오른 공식 명칭은 토미오카 제사장과 관련 유산군(Tomioka Silk Mill and Related Sites)이다. 이 세계유산은 토미오카 제사장, 다지마 야헤이 양잠 농가, 다카야마샤 양잠 학교, 아라후네 풍혈까지 네 곳으로 구성된다. 토미오카 제사장은 그중 생사를 대량으로 뽑아내는 공장 단계에 해당한다.

디자인

<img src="https://d2xsxph8kpxj0f.cloudfront.net/310519663429662740/ffcjRzrXsTCDKgX6s8aDwC/articles/1787288127186-b54c6eaa604f5e7b.webp" alt="" data-orientation="landscape_16_9" data-original-src="https://d2xsxph8kpxj0f.cloudfront.net/310519663429662740/ffcjRzrXsTCDKgX6s8aDwC/articles/1787288129004-249a2443de570743.webp" data-source-url="https://www.tomioka-silk.jp/_tomioka-silk-mill/point/?utm_source=" width="600" />

출처: 토미오카 제사장 (© 토미오카 제사장)토미오카 제사장의 핵심은 서양식 공장을 일본의 재료와 시공 방식으로 지었다는 점이다. 프랑스인이 도면을 그리고 일본인 목수와 장인이 시공했다. 그래서 건물은 붉은 벽돌 공장처럼 보이지만, 구조를 자세히 보면 일본 목조건축의 뼈대와 일본식 기와지붕이 함께 들어가 있다.

주요 건물은 목골벽돌조로 지어졌다. 나무로 골조를 세운 뒤 그 사이를 벽돌로 채우는 방식이다. 당시 일본은 독립 벽돌벽보다 목조 시공에 더 익숙했기 때문에, 목구조를 바탕으로 새 재료인 벽돌을 받아들였다. 벽돌은 일본 기와 장인이 프랑스 기술자에게 제조법을 배워 구웠고, 벽돌 사이에는 모르타르 대신 석회를 재료로 한 회반죽을 썼다.

배치는 생산 흐름을 따라 잡혔다. 중앙에는 누에고치에서 실을 뽑는 조업 공간인 조사업소가 놓이고, 양쪽에는 고치를 말리고 보관하는 동치견소와 서치견소가 놓인다. 세 건물은 긴 직사각형을 바탕으로 서로 맞물리며, 보관과 가공이 한 부지 안에서 이어지도록 만들었다.

조사업소는 길이 약 140m에 이르는 긴 공장이다. 창업 당시 프랑스에서 들여온 금속제 조사기 300부가 놓였고, 당시 기계 제사 공장으로는 세계 최대급 규모였다. 내부에는 기둥이 거의 없는 큰 작업 공간이 필요했기 때문에 지붕 구조에 트러스를 썼다. 높은 천장과 큰 유리창은 작업대까지 빛을 끌어들였고, 얇은 실을 다루는 노동을 밝은 공간 안에서 이어가게 했다.

동치견소와 서치견소는 각각 길이 약 104m의 2층 창고다. 2층은 말린 고치를 보관하는 공간으로 쓰였고, 1층은 사무실과 작업장으로 쓰였다. 벽면에는 일정한 간격으로 창을 많이 냈다. 창은 외관의 반복 리듬을 만들 뿐 아니라 고치를 보관하는 데 필요한 환기와 건조를 돕는 장치였다.

외관은 장식보다 구조와 기능이 먼저 드러난다. 붉은 벽돌 벽, 회색빛 목재 골조, 흰색 창문, 일본식 기와지붕이 반복된다. 건물은 서양식 공장을 그대로 복제하지 않는다. 프랑스식 산업 기술, 요코스카 제철소 계열의 서양식 시공 지식, 일본 목수의 손기술, 지역에서 마련한 목재와 석재가 한 구조 안에 합쳐진다.

브루나 관사는 공장 건물과 다른 성격을 보여준다. 프랑스인 지도자 폴 브루나가 가족과 살던 주거 공간으로, 바닥을 높이고 사방에 베란다를 두며 덧문을 설치한 콜로니얼 양식을 따른다. 공장 안에 생산 시설, 주거, 교육, 숙소가 함께 놓였다는 점에서 토미오카 제사장은 단일 건물이 아니라 근대 산업 생활을 담은 작은 단지에 가깝다.

디자이너·스튜디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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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토미오카 제사장 (© 토미오카 제사장)

출처: 토미오카 제사장 (© 토미오카 제사장)

출처: 토미오카 제사장 (© 토미오카 제사장)[[/carousel]]토미오카 제사장은 개인 건축가의 작품이라기보다 메이지 정부가 추진한 국가 산업화 프로젝트다.

프랑스인 폴 브루나(Paul Brunat)는 공장 계획과 기술 도입을 이끈 인물이다. 그는 생사 검사인으로 일한 경험을 바탕으로 공장 부지를 살피고, 프랑스식 제사 설비와 기술자 초빙을 맡았다.

에드몽 오귀스트 바스티앙(Edmond Auguste Bastien)은 건물 도면을 그린 프랑스인 기술자다. 그는 요코스카 제철소 건설에 참여했던 인물로, 토미오카 제사장 주요 건물에 목골벽돌조와 일본식 기와지붕이 결합된 산업 건축 형식을 적용했다.

일본 측에서는 시부사와 에이이치와 오다카 아쓰타다가 사업 추진과 초기 운영에 깊게 관여했다. 오다카 아쓰타다는 초대 공장장으로, 현장 운영과 인력 모집을 맡았다. 실제 시공은 일본인 목수와 장인이 담당했다.

계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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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토미오카 제사장 (© 토미오카 제사장)에도 말기 개항 이후 생사는 일본의 핵심 수출품이 됐다. 수요가 급증하면서 품질이 낮은 생사가 유통됐고, 수입국의 불만도 커졌다. 메이지 정부는 품질을 끌어올리고 기계 제사 기술을 퍼뜨리기 위해 관영 모범 공장을 세우기로 했다.

1870년 정부는 폴 브루나를 고용해 공장 부지를 조사하게 했다. 브루나와 일본 측 담당자는 토미오카 일대를 살피며 지형, 바람, 물 공급 조건을 확인했다. 토미오카는 양잠이 활발한 지역의 중심에 있었고, 공장 운영에 필요한 물과 원료 확보에 유리했다.

1871년 공사가 시작됐다. 1872년 주요 건물이 완성됐고, 같은 해 10월 4일 조업을 시작했다. 창업 초기에는 프랑스인 기술자와 여성 교사가 현장에 머물며 일본인 공녀에게 기계 제사 기술을 가르쳤다.

1876년 외국인 지도자가 떠난 뒤에는 일본인만으로 공장을 운영했다. 관영기 경영이 항상 안정적이었던 것은 아니지만, 토미오카에서 만든 고품질 생사는 해외 시장에서 평가를 받았다. 이 시기 토미오카는 단순한 생산 공장보다 기술 전파를 위한 훈련소에 가까운 역할을 했다.

1893년 정부는 공장을 미쓰이 가문에 넘겼다. 1902년에는 하라 합명회사로 소유가 바뀌었다. 이 시기에는 미노리카와식 다조 조사기 도입, 고품질 생사 대량 생산, 누에 품종 개량 등으로 주목받았다.

1938년에는 주식회사 토미오카 제사소로 독립했다. 1939년에는 일본 최대 제사 회사였던 가타쿠라 제사방적에 합병됐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에는 자동 조사기가 도입되며 공장 기능이 이어졌지만, 일본 제사업 쇠퇴와 함께 1987년 3월 조업을 멈췄다.

가동 중단 뒤에도 가타쿠라공업은 건물을 철거하지 않고 보존했다. 2005년 부지는 국가 사적으로 지정됐고, 2006년 주요 건물은 중요문화재가 됐다. 2014년 6월 토미오카 제사장과 관련 유산군은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됐다. 같은 해 12월 조사업소, 동치견소, 서치견소 세 건물은 일본 국보로 지정됐다.

정보

**이름** 토미오카 제사장

**영문명** Tomioka Silk Mill

**일문명** 富岡製糸場

**위치** 일본 군마현 도미오카시 도미오카 1번지 1

**유형** 근대 산업유산, 기계식 제사 공장

**건설 시작** 1871년

**조업 시작** 1872년 10월 4일

**조업 종료** 1987년 3월

**세계유산 등재** 2014년 6월

**국보 지정** 2014년 12월, 조사업소·동치견소·서치견소

**국가 사적 지정 면적** 55,391.42㎡

**주요 건물** 조사업소, 동치견소, 서치견소, 브루나 관사, 증기부 시설, 검사인관, 여공관, 철수조, 배수 시설

**주요 구조** 목골벽돌조, 트러스 지붕 구조, 일본식 기와지붕

**관련 세계유산 구성** 토미오카 제사장, 다지마 야헤이 양잠 농가, 다카야마샤 양잠 학교, 아라후네 풍혈

비하인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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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토미오카 제사장 (© 토미오카 제사장)토미오카 제사장은 기술 수입의 결과물이지만, 단순한 서구식 복제는 아니었다. 프랑스에서 설비와 기술자를 데려왔지만, 공장 자체는 일본 목수와 장인이 현지 재료를 써서 지었다. 벽돌도 일본에서 구웠고, 목재와 석재도 군마 일대에서 조달했다. 그래서 이 건물은 서양식 공장을 일본에서 처음부터 다시 만든 사례에 가깝다.

초기 공녀 모집은 쉽지 않았다. 프랑스인 기술자와 함께 일하는 것에 대한 불안이 있었고, 붉은 포도주를 피로 오해한 소문까지 돌았다. 초대 공장장 오다카 아쓰타다는 자신의 딸 오다카 유를 먼저 입장시켜 불신을 낮추려 했다. 이후 전국에서 모인 여성 노동자는 이곳에서 기계 제사 기술을 배운 뒤 고향으로 돌아가 각지 공장에 기술을 전했다.

토미오카 제사장의 보존에서 중요한 장면은 1987년 이후다. 공장이 멈춘 뒤에도 가타쿠라공업은 주요 건물을 유지했다. 덕분에 창업 초기 건물 배치와 구조가 큰 틀에서 남을 수 있었다. 근대 공장 건축은 운영이 끝나면 철거되기 쉽지만, 토미오카는 공장 기능이 사라진 뒤 문화재로 역할을 바꾼 사례다.

서치견소 정비는 산업유산 보존 방식에서도 눈에 띈다. 2020년 공개된 정비 사업은 기존 건물 안에 유리와 철골로 된 새 공간을 넣는 하우스 인 하우스 방식을 썼다. 바깥의 역사 구조를 보존하면서 안쪽에는 전시실과 다목적 홀을 넣었다. 오래된 공장 건물을 박제하지 않고, 현재의 관람과 활용에 맞게 조심스럽게 덧댄 방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