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츠커상 (Pritzker Architecture Prize)
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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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Metropolis
프리츠커상은 매년 생존한 건축가 한 명 또는 한 팀에게 수여되는 국제 건축상이다. 한 채의 건물을 평가하는 상이 아니라, 건축가가 오랜 시간 쌓아 온 작업 전체를 본다. 그래서 이 상은 신인을 발굴하는 자리라기보다, 한 시대의 건축적 방향을 만든 인물에게 주는 정점의 인정에 가깝다.
정식 명칭은 프리츠커 건축상(Pritzker Architecture Prize)이다. 1979년 미국 시카고의 제이 A. 프리츠커와 신디 프리츠커 부부가 하얏트 재단(The Hyatt Foundation)을 통해 창설했다. 운영 방식과 상의 형식은 노벨상을 참고했고, 이 때문에 “건축계의 노벨상”이라는 별칭으로 널리 알려졌다.
수상자는 10만 달러의 상금과 인증서, 청동 메달을 받는다. 청동 메달은 1987년부터 수여됐고, 그 전에는 헨리 무어의 한정판 조각이 함께 주어졌다. 메달 디자인은 시카고 건축가 루이스 설리번의 작업에서 따왔으며, 뒷면에는 비트루비우스가 말한 건축의 세 원칙인 견고함, 쓸모, 아름다움이 새겨져 있다.
프리츠커상은 특정 양식이나 건물 유형을 정해 두지 않는다. 초고층 빌딩, 미술관, 주택, 학교, 공공시설, 사회주택, 재생 건축, 임시 구조물까지 모두 평가 대상이 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작품의 규모가 아니라, 그 건축가의 작업이 인류와 건축 환경에 얼마나 지속적인 기여를 했는가다.
역사·연혁
호텔 경험에서 시작한 건축상
프리츠커상의 출발에는 하얏트 호텔이 있다. 프리츠커 가문은 하얏트 호텔 체인을 일군 시카고의 사업가 집안이고, 제이 A. 프리츠커는 호텔을 통해 건축이 사람의 경험과 도시의 이미지를 어떻게 바꾸는지 가까이에서 보았다.
특히 존 포트먼이 설계한 하얏트 리젠시 애틀랜타는 큰 영향을 줬다. 거대한 아트리움으로 유명해진 이 호텔은 건축이 단순한 숙박 시설을 넘어 도시적 장면과 브랜드 경험을 만들 수 있음을 보여줬다. 이런 배경 위에서 프리츠커상은 건축가 개인의 성취를 국제적으로 기리는 상으로 구상됐다.
시카고라는 도시도 중요한 배경이다. 시카고는 마천루의 발상지로 불리며, 루이스 설리번,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 미스 반 데어 로에 같은 인물과 깊게 연결돼 있다. 프리츠커상은 이 도시의 건축 문화와 기업 후원이 만난 결과로 볼 수 있다.
서구 거장 중심의 초기 명단
첫 수상자는 1979년 필립 존슨이었다. 초기 명단은 미국과 유럽, 일본의 유명 건축가를 중심으로 채워졌다. 이 시기 수상자는 이미 국제적으로 이름이 알려진 거장이 많았고, 프리츠커상은 그들의 위치를 다시 확인하는 역할을 했다.
초기 선정은 상의 권위를 빠르게 만들었다. 하지만 동시에 비판의 씨앗도 남겼다. 수상 명단이 서구와 일본 중심으로 기울어졌고, 건축을 한 명의 강한 이름으로 대표하는 방식이 굳어졌기 때문이다.
1988년에는 창설 10주년을 맞아 고든 번샤프트와 오스카르 니에메예르가 함께 수상했다. 이는 프리츠커상이 한 명의 개인에게만 주어지는 상으로 출발했지만, 작업의 성격과 역사적 맥락에 따라 공동 수상을 인정할 수 있음을 보여준 이른 사례였다.
일본 건축가의 강한 존재감
1980년대 후반부터 일본 건축가의 존재감이 커졌다. 단게 겐조, 마키 후미히코, 안도 다다오, 세지마 가즈요와 니시자와 류에, 이토 도요, 반 시게루, 이소자키 아라타, 야마모토 리켄이 차례로 수상하며 일본 건축은 프리츠커상 역사에서 가장 두드러진 흐름 중 하나가 됐다.
이 흐름은 일본 건축이 서구 모더니즘을 받아들이는 데 그치지 않고, 도시 밀도, 빛, 여백, 구조, 재료, 사회적 공간을 자기 방식으로 다시 다뤘다는 점을 보여준다. 프리츠커상은 일본 건축을 국제 건축사의 중심 흐름으로 인정하는 장치가 됐다.
여성과 공동 작업의 가시화
창설 25년 만인 2004년, 자하 하디드가 첫 여성 수상자로 이름을 올렸다. 이후 여성 건축가와 공동 작업 팀의 수상이 이어지며, 프리츠커상은 조금씩 개인 거장의 서사에서 협업과 관계의 서사로 넓어지기 시작했다.
이 변화는 단순한 명단의 확장이 아니다. 건축은 한 사람의 서명만으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사무소, 파트너, 엔지니어, 지역 커뮤니티, 클라이언트가 함께 만드는 작업이다. 공동 수상이 늘어난 흐름은 건축 생산의 실제 조건이 상의 구조 안으로 조금씩 들어온 결과로 볼 수 있다.
지역과 주제의 확장
2010년대 이후 프리츠커상은 지역과 주제 면에서 더 넓어졌다. 중국, 인도, 아프리카, 라틴아메리카의 건축가가 더 자주 주목받았고, 사회주택, 재생 건축, 흙건축, 지역 재료, 공공성 같은 주제가 수상 명단 안으로 들어왔다.
이 변화는 프리츠커상이 스타 건축가의 조형 언어만 평가하던 상에서, 건축이 사회적 조건과 지역의 삶을 어떻게 바꿀 수 있는지 묻는 상으로 이동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화려한 아이콘 건축보다, 장소와 사람, 재료와 공공성을 다루는 작업이 더 큰 비중을 얻기 시작했다.
심사·평가 기준
통산 작업을 보는 상
프리츠커상은 특정 건물 하나를 놓고 평가하지 않는다. 상의 목적은 재능, 비전, 헌신을 갖추고 오랜 시간에 걸쳐 인류와 건축 환경에 중요한 기여를 한 생존 건축가를 기리는 데 있다.
따라서 수상자는 한 해의 유행이나 화제작만으로 결정되지 않는다. 여러 시기와 장소에 걸친 작업이 하나의 태도로 이어지는지, 그 태도가 건축 문화와 사회에 어떤 영향을 남겼는지가 중요하다.
이 기준은 프리츠커상을 일반적인 건축 공모전이나 프로젝트상과 구분한다. 한 작품의 완성도보다 경력 전체의 밀도, 일관성, 변화, 사회적 기여가 더 크게 다뤄진다.
후보 추천과 비공개 심사
후보 추천은 국제적으로 열린다. 사무총장이 과거 수상자, 건축가, 학자, 비평가, 문화계 인사 등에게 후보를 요청하고, 면허를 가진 건축가도 후보를 제안할 수 있다. 공식 안내 기준으로 후보 추천은 매년 11월 1일까지 받는다.
심사는 비공개로 진행된다. 후보 명단이나 쇼트리스트는 공개되지 않는다. 이 방식은 심사 과정의 독립성을 지키는 장치로 설명되지만, 동시에 외부에서 판단 과정을 확인하기 어렵다는 한계도 만든다.
독립 심사위원단
심사위원단은 보통 5명에서 9명 사이로 구성된다. 건축가뿐 아니라 교육, 문화, 출판, 공공 분야의 인물이 참여한다. 프리츠커 가문 구성원이나 외부 참관인은 심의에 들어가지 않는다.
현재 심사위원장은 2016년 수상자인 알레한드로 아라베나다. 사무총장은 마누엘라 루카-다지오이며, 심사위원단과 함께 운영을 지원하지만 투표에는 참여하지 않는다.
이 구조는 프리츠커상의 권위를 뒷받침하는 핵심 장치다. 상이 특정 재단의 이름을 달고 있지만, 수상자는 독립 심사위원단의 판단으로 결정된다는 점을 강조한다.
장소와 의례
프리츠커상의 시상식은 보통 건축적으로 의미 있는 장소에서 열린다. 장소는 수상자가 정해지기 전에 결정되므로, 그해 수상자와 시상식 장소 사이에 의도된 연결은 없다.
이 의례는 상의 메시지를 강화한다. 수상자 한 명만 기리는 행사가 아니라, 건축이 역사적 장소와 공공 기억 속에서 어떤 의미를 갖는지 보여주는 방식이다. 2020년에는 코로나19로 대면 시상식을 열지 못했고, 이후 시상식 영상이 공개되는 방식도 함께 쓰이고 있다.
주요 수상작·하이라이트
초기 수상자가 만든 기준
필립 존슨과 루이스 바라간은 프리츠커상이 어떤 폭을 가질 수 있는지 초기에 보여준 수상자다. 존슨은 모더니즘과 포스트모더니즘 사이를 오가며 건축가의 문화적 영향력을 보여줬고, 바라간은 색, 벽, 물, 빛을 통해 감정과 침묵이 현대 건축의 언어가 될 수 있음을 증명했다.
두 사람은 서로 다른 방향에 서 있었다. 존슨이 미국 건축계의 제도와 담론 안에서 움직였다면, 바라간은 멕시코의 기후와 색, 종교적 고요함을 바탕으로 독자적 세계를 만들었다. 이 대비는 프리츠커상이 초기부터 하나의 양식보다 건축가의 장기적 태도를 보려 했다는 점을 보여준다.
독학과 빛의 건축
안도 다다오의 수상은 프리츠커상 역사에서 가장 강한 서사를 가진 사례 중 하나다. 그는 정규 건축 교육을 받지 않고, 독학과 답사를 통해 자신의 건축 언어를 만들었다.
노출 콘크리트, 빛, 물, 비례를 절제된 방식으로 다루는 그의 건축은 일본 현대 건축을 국제 무대에 각인시켰다. 빛의 교회는 단순한 종교 건축을 넘어, 빛이 벽을 가르고 공간의 긴장을 만드는 장면으로 기억된다.
뒤늦게 인정된 설계
예른 우촌의 수상은 건축이 완공 시점에 곧바로 이해되지 않을 수 있음을 보여준다. 시드니 오페라하우스는 20세기 건축의 대표작이지만, 우촌은 공사 과정의 갈등 끝에 호주를 떠났고 완공된 건물을 직접 보지 못했다.
프리츠커상은 뒤늦게 그의 설계가 가진 시대적 선취성을 인정했다. 이 사례는 건축가의 작업이 당대의 정치, 예산, 기술, 여론과 충돌할 수 있으며, 시간이 지난 뒤에야 본래의 가치가 선명해질 수 있음을 보여준다.
곡선이 현실이 된 순간
자하 하디드는 한동안 도면 속 건축가로 불렸다. 급격한 곡선과 유동적인 공간은 강한 이미지로 남았지만, 실제 건물로 구현되기 어렵다는 시선도 따라붙었다.
그의 수상은 그런 의심이 바뀌는 지점에 있었다. 하디드는 회화적 도면과 디지털 모델 속에서 움직이던 공간 언어를 실제 구조와 동선으로 옮겼다. 이는 건축이 직각과 박스의 질서에서 벗어나, 흐름과 운동감을 본격적으로 다룰 수 있음을 보여준 사건이었다.
사회적 건축의 부상
알레한드로 아라베나, 라카통과 바살, 디에베도 프란시스 케레의 수상은 프리츠커상의 관심이 사회적 건축으로 넓어진 흐름을 보여준다. 이들은 건축을 조형적 대상보다 생활 조건을 바꾸는 도구로 다뤘다.
아라베나는 사회주택과 공공 프로젝트를 통해 제한된 자원 안에서 거주자의 가능성을 키우는 방식을 제안했다. 라카통과 바살은 철거보다 재사용과 확장을 택하며 기존 건물을 다시 살리는 태도를 보여줬다. 케레는 흙, 목재, 환기, 지역 노동을 바탕으로 서아프리카의 기후와 공동체 조건에 맞는 건축을 만들었다.
이 흐름은 프리츠커상이 화려한 조형만이 아니라 부족한 자원, 지역의 기후, 공동체의 노동, 기존 건물의 수명까지 평가의 중심에 놓기 시작했음을 보여준다.
불안정성을 품은 건축
2026년 수상자 스밀랸 라디치 클라크는 칠레 산티아고를 기반으로 활동해 온 건축가다. 그는 반복 가능한 양식보다 프로젝트마다 다른 조건에서 출발하는 작업을 이어 왔다. 돌, 콘크리트, 목재, 유리섬유 같은 재료를 낯설게 조합하고, 견고하면서도 임시 구조물처럼 보이는 건축을 만든다.
2014년 런던 서펜타인 갤러리 파빌리온은 그의 작업을 국제적으로 알린 대표 사례다. 반투명한 유리섬유 껍질을 거대한 돌 위에 얹은 이 구조물은 무거움과 가벼움, 피난처와 임시성, 자연과 인공의 관계를 한 장면에 묶었다.
라디치의 수상은 프리츠커상이 다시 작은 사무소, 주변부의 장소, 실험적 재료, 감정적 공간 경험을 주목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그는 거대한 글로벌 사무소의 확장성보다, 건축이 불안정한 세계 속에서 어떤 피난처를 만들 수 있는지 보여준다.
위상과 비판
건축계 최고 권위
프리츠커상은 건축계에서 가장 권위 있는 상으로 꼽힌다. 수상은 한 건축가의 경력이 국제적으로 정점에 올랐다는 신호가 된다. “건축계의 노벨상”이라는 별칭도 이 상의 상징적 위치를 잘 보여준다.
이 상의 힘은 명단에서 나온다. 20세기 후반과 21세기 초 건축의 주요 인물 상당수가 프리츠커상 수상자로 기록돼 있다. 그래서 프리츠커상은 단순한 시상식이 아니라, 어느 건축가가 한 시대의 기준으로 인정받았는지 보여주는 목록이기도 하다.
성별 불균형과 개인주의 신화
프리츠커상을 향한 가장 오래된 비판 중 하나는 성별 불균형이다. 특히 1991년 로버트 벤투리 단독 수상 당시, 그의 오랜 파트너였던 데니즈 스콧 브라운이 제외된 일은 건축계의 고질적인 성차별과 개인 중심 서사를 단적으로 보여줬다.
이 사건은 단순히 한 사람의 누락 문제가 아니었다. 건축계가 협업으로 만들어진 결과물을 한 명의 이름으로 정리해 온 방식 자체를 드러냈다. 프리츠커상이 공동 작업을 더 자주 인정하게 된 뒤에도, 누가 건축의 주체로 기록되는가라는 질문은 여전히 남아 있다.
서구·스타 중심성
초기 수상 명단은 미국과 유럽 중심이었다. 일본 건축가의 수상은 일찍부터 이어졌지만, 아프리카, 남아시아, 라틴아메리카, 중국의 건축가가 본격적으로 주목받은 것은 비교적 최근의 일이다.
이 흐름은 프리츠커상이 오랫동안 국제 건축계의 중심부에서 이미 인정받은 인물을 주로 선택했다는 비판으로 이어졌다. 동시에 이 상은 거대한 건물을 한 명의 천재가 만든다는 스타 건축가 신화를 강화한다는 지적도 받았다.
협업을 어떻게 인정할 것인가
건축은 혼자 만드는 일이 아니다. 클라이언트, 구조 엔지니어, 조경가, 지역 커뮤니티, 시공자, 사무소 구성원이 함께 결과물을 만든다. 하지만 프리츠커상은 오랫동안 건축가 개인의 이름을 전면에 세워 왔다.
최근 공동 수상이 늘어난 것은 이 문제에 대한 부분적 응답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공동 작업의 범위를 어디까지 인정할 것인지는 여전히 남은 과제다. 부부, 파트너, 공동 설립자뿐 아니라 사무소 전체와 지역 협력자의 기여를 어떻게 볼 것인지가 계속 논의된다.
운영 신뢰의 문제
2026년 논란은 프리츠커상이 건축적 권위만으로 유지되지 않는다는 점을 보여줬다. 상을 후원하는 재단과 가문의 이름이 크게 보이는 구조에서는 운영 주체의 공공 신뢰도도 중요해진다.
프리츠커상 측은 심사위원단의 독립성을 강조해 왔다. 이 독립성은 상의 권위를 지키는 핵심 장치다. 다만 앞으로는 심사 결과뿐 아니라 운영 구조와 공적 책임을 얼마나 투명하게 설명하는지도 함께 요구될 가능성이 크다.
늦었지만 필연적인 확장
최근의 수상 흐름은 상징적 형태나 조형성에 집중하던 과거를 넘어, 지역적 맥락과 사회적 책임을 향해 넓어지고 있다. 글로벌 사우스, 재생 건축, 사회주택, 지역 재료, 기후와 공동체의 조건이 점점 더 자주 상의 언어 안으로 들어온다.
이 변화는 단순히 지역 안배로만 볼 수 없다. 건축의 기준이 바뀌고 있기 때문이다. 오늘날 좋은 건축은 상징적 형태만으로 평가되지 않는다. 누가 쓰는지, 무엇을 남기는지, 어떻게 고치고 이어 쓰는지, 어떤 지역의 조건을 존중하는지가 더 중요해지고 있다.
역대 정보
1979년: 필립 존슨이 첫 수상자가 됐다. 글래스 하우스와 문화시설 작업을 통해 미국 현대 건축의 상징적 인물로 인정받았다.
1980년: 루이스 바라간이 수상했다. 색, 벽, 물, 빛을 통해 멕시코 현대 건축의 독자적 언어를 보여줬다.
1981년: 제임스 스털링이 수상했다. 역사적 참조와 현대적 구성을 결합한 영국 건축가로 평가받았다.
1982년: 케빈 로시가 수상했다. 기업·공공 건축에서 구조와 공간 경험을 함께 다뤘다.
1983년: I. M. 페이가 수상했다. 대형 문화시설과 공공 건축에서 기하학적 명료함을 보여줬다.
1984년: 리처드 마이어가 수상했다. 백색 건축과 질서정연한 평면 구성으로 알려졌다.
1985년: 한스 홀라인이 수상했다. 포스트모던 건축과 전시 디자인, 상업 공간에서 강한 조형 언어를 보여줬다.
1986년: 고트프리트 뵘이 수상했다. 조각적 콘크리트와 종교 건축으로 독일 현대 건축의 한 흐름을 만들었다.
1987년: 단게 겐조가 수상했다. 전후 일본 건축과 메타볼리즘, 국가적 규모의 도시·공공 건축을 이끌었다.
1988년: 고든 번샤프트와 오스카르 니에메예르가 공동 수상했다. 미국 기업 모더니즘과 브라질 현대 건축을 각각 대표하는 인물이었다.
1989년: 프랭크 게리가 수상했다. 비정형 형태와 재료 실험을 통해 해체주의 이후의 건축 이미지를 바꿨다.
1990년: 알도 로시가 수상했다. 도시의 기억과 유형학을 바탕으로 이탈리아 건축 이론과 실천을 연결했다.
1991년: 로버트 벤투리가 수상했다. 포스트모더니즘 건축의 이론과 실천을 대표했다.
1992년: 알바루 시자가 수상했다. 포르투갈의 도시와 지형, 빛을 섬세하게 다룬 건축가로 평가받았다.
1993년: 마키 후미히코가 수상했다. 일본 현대 건축에서 집합형 공간과 도시적 질서를 정교하게 다뤘다.
1994년: 크리스티앙 드 포르장파르크가 수상했다. 도시 블록과 문화시설에서 프랑스 현대 건축의 새로운 방향을 보여줬다.
1995년: 안도 다다오가 수상했다. 노출 콘크리트와 빛, 물, 침묵을 통해 독자적인 공간 언어를 만들었다.
1996년: 라파엘 모네오가 수상했다. 역사적 맥락과 현대적 개입을 조율하는 건축으로 평가받았다.
1997년: 스베레 펜이 수상했다. 노르웨이의 풍경과 빛, 재료를 절제된 건축으로 다뤘다.
1998년: 렌초 피아노가 수상했다. 구조, 기술, 공공성을 결합한 문화시설과 도시 프로젝트로 알려졌다.
1999년: 노먼 포스터가 수상했다. 하이테크 건축과 대형 인프라, 기업 건축을 국제적으로 확장했다.
2000년: 렘 콜하스가 수상했다. 도시, 프로그램, 밀도, 자본주의를 건축 이론과 실천으로 다뤘다.
2001년: 자크 헤르초크와 피에르 드 뫼롱이 공동 수상했다. 표면, 재료, 도시적 변환을 통해 스위스 현대 건축의 위상을 높였다.
2002년: 글렌 머컷이 수상했다. 호주의 기후와 지형에 맞춘 가벼운 주택 건축으로 평가받았다.
2003년: 예른 우촌이 수상했다. 시드니 오페라하우스를 통해 20세기 건축의 상징적 형태를 남겼다.
2004년: 자하 하디드가 수상했다. 첫 여성 수상자로, 곡선과 유동적 공간을 실제 건축으로 구현했다.
2005년: 톰 메인이 수상했다. 모포시스(Morphosis)를 통해 거칠고 복합적인 도시 건축을 보여줬다.
2006년: 파울루 멘데스 다 로샤가 수상했다. 브라질의 공공 건축과 구조적 강인함을 대표했다.
2007년: 리처드 로저스가 수상했다. 하이테크 건축과 도시 공공성, 투명한 구조 표현으로 알려졌다.
2008년: 장 누벨이 수상했다. 장소마다 다른 빛, 표면, 이미지를 다루는 건축으로 평가받았다.
2009년: 페터 춤토르가 수상했다. 재료, 촉각, 침묵, 장소성을 깊게 다루는 건축가로 알려졌다.
2010년: 세지마 가즈요와 니시자와 류에가 공동 수상했다. SANAA를 통해 가볍고 투명한 공간감을 국제적으로 확산시켰다.
2011년: 에두아르두 소투 드 모라가 수상했다. 포르투갈 건축의 무게감과 지형 감각을 보여줬다.
2012년: 왕수가 수상했다. 중국의 지역 재료와 건축 기억을 현대적으로 다뤘다.
2013년: 이토 도요가 수상했다. 구조, 정보, 자연적 흐름을 결합한 일본 현대 건축을 보여줬다.
2014년: 반 시게루가 수상했다. 종이관 구조와 재난 구호 건축을 통해 건축의 사회적 쓰임을 넓혔다.
2015년: 프라이 오토가 수상했다. 경량 구조와 막구조 실험으로 20세기 건축 기술에 큰 영향을 남겼다. 발표 직전 별세해 사후 수상 사례가 됐다.
2016년: 알레한드로 아라베나가 수상했다. 사회주택과 공공 프로젝트를 통해 제한된 자원 안에서 건축의 가능성을 보여줬다.
2017년: 라파엘 아란다, 카르메 피헴, 라몬 빌랄타가 공동 수상했다. RCR 아르키텍테스를 통해 지역성과 재료 감각이 강한 건축을 만들었다.
2018년: 발크리슈나 도시가 수상했다. 인도의 교육 시설, 주거, 도시 환경을 장기적으로 다룬 건축가로 평가받았다.
2019년: 이소자키 아라타가 수상했다. 일본과 세계를 오가며 포스트모던 이후의 국제 건축 언어를 넓혔다.
2020년: 이본 패럴과 셸리 맥나마라가 공동 수상했다. 그래프턴 아키텍츠를 통해 교육 시설과 공공 건축의 밀도를 보여줬다.
2021년: 안 라카통과 장필리프 바살이 공동 수상했다. 철거보다 확장과 재사용을 택하는 건축 태도를 국제적으로 인정받았다.
2022년: 디에베도 프란시스 케레가 수상했다. 부르키나파소 출신 첫 수상자이자 아프리카 첫 수상자로, 지역 재료와 공동체 기반 건축을 보여줬다.
2023년: 데이비드 치퍼필드가 수상했다. 역사적 건축의 복원과 도시적 맥락을 절제된 현대 건축으로 다뤘다.
2024년: 야마모토 리켄이 수상했다. 주거와 공공 공간 사이의 경계를 다루며 공동체의 구조를 설계해 왔다.
2025년: 류자쿤이 수상했다. 중국 청두를 기반으로 지역 기억, 재료, 도시 생활을 건축으로 다뤘다.
2026년: 스밀랸 라디치 클라크가 수상했다. 칠레를 기반으로 불안정성, 재료 실험, 문화적 기억을 다루는 건축을 이어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