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 스테일 (De Stijl)

개요

<img src="https://d2xsxph8kpxj0f.cloudfront.net/310519663429662740/ffcjRzrXsTCDKgX6s8aDwC/articles/1783303505155-3569f3059f1f462e.webp" alt="이브 생 로랑의 몬드리안 컬렉션" data-orientation="landscape_16_10" data-original-src="https://d2xsxph8kpxj0f.cloudfront.net/310519663429662740/ffcjRzrXsTCDKgX6s8aDwC/articles/1783303506163-bb2e5335aa536cf5.webp" data-source-url="https://www.thecollector.com/de-stijl-movement-iconic-works/" width="600" />

출처: The Collector

데 스테일(De Stijl)은 1917년 네덜란드에서 시작된 예술·디자인·건축 사조다. 이름은 네덜란드어로 “양식” 또는 “스타일”을 뜻한다. 테오 반 두스뷔르흐가 창간한 잡지 《데 스테일》에서 이름을 가져왔고, 이 잡지는 사조의 생각을 퍼뜨리는 중심 매체가 됐다.

데 스테일은 회화에서 출발했지만 회화에만 머물지 않았다. 몬드리안의 추상 회화, 리트벨트의 가구, 슈뢰더 하우스, 그래픽 구성, 실내 공간까지 하나의 조형 원리로 묶으려 했다. 수직선과 수평선, 빨강·파랑·노랑의 원색, 흰색·검정·회색의 무채색, 비대칭 균형이 핵심 언어가 됐다.

이 사조의 목표는 자연을 그대로 그리는 것이 아니었다. 나무, 사람, 풍경처럼 눈에 보이는 대상을 지우고, 모든 형태를 가장 기본적인 선과 면, 색의 관계로 줄이려 했다. 데 스테일은 그 단순한 요소들이 새로운 시대의 보편적 조형 언어가 될 수 있다고 믿었다.

피트 몬드리안은 이 원리를 신조형주의(Neoplasticism)라는 이론으로 정리했다. 그는 회화에서 곡선과 사선, 깊이감, 자연색을 줄이고, 수직과 수평, 원색과 무채색의 관계만으로 균형을 만들려 했다. 테오 반 두스뷔르흐는 이 생각을 잡지, 글, 건축, 그래픽, 실내 디자인으로 확장했다.

데 스테일을 단순히 “빨강, 파랑, 노랑과 검은 선”으로만 보면 부족하다. 이 사조는 장식 스타일보다 더 넓은 기획이었다. 회화의 평면 질서를 가구와 건축으로 옮기고, 개인 취향보다 보편 질서를 앞세우며, 예술과 생활을 같은 원리로 다시 짜려 했다.

역사·전개

전쟁 속의 네덜란드

데 스테일은 제1차 세계대전 중립국이던 네덜란드에서 나왔다. 전쟁으로 유럽의 예술가들은 이동에 제약을 받았고, 파리에 있던 몬드리안도 네덜란드에 머물게 됐다.

당시 네덜란드 예술가들은 큐비즘, 미래주의, 신지학, 수학적 질서, 도시와 산업사회의 변화를 함께 받아들이고 있었다. 자연을 그대로 재현하는 회화보다, 형태와 색의 기본 원리를 찾으려는 관심이 커졌다.

데 스테일은 이 분위기 안에서 출발했다. 전쟁의 혼란 속에서 예술가들은 더 순수하고 질서 있는 조형 언어를 찾으려 했다. 이들에게 추상은 단순한 취향이 아니라, 새로운 사회와 생활을 위한 질서의 모델이었다.

잡지 《데 스테일》

1917년 테오 반 두스뷔르흐는 잡지 《데 스테일》을 창간했다. 이 잡지는 사조의 이름이자, 여러 예술가와 건축가를 느슨하게 묶는 플랫폼이 됐다.

잡지는 회화, 건축, 가구, 타이포그래피, 이론 글을 함께 실었다. 반 두스뷔르흐는 잡지를 통해 몬드리안, 바르트 판 데르 레크, 빌모스 후사르, 야코뷔스 요하네스 피테르 오우트, 헤릿 리트벨트 같은 인물의 작업을 연결했다.

데 스테일은 고정된 학교나 단체라기보다 잡지를 중심으로 이어진 네트워크에 가까웠다. 구성원들은 같은 생각을 공유했지만, 서로 다른 방향으로 움직이기도 했다. 몬드리안은 엄격한 수직·수평 구성을 밀고 나갔고, 반 두스뷔르흐는 이후 사선과 더 역동적인 구성을 받아들였다.

몬드리안과 신조형주의

피트 몬드리안은 데 스테일의 조형 원리를 가장 엄격하게 밀어붙인 인물이다. 그는 초기에는 풍경과 나무를 그렸지만, 점차 대상의 형태를 줄이고 선과 면의 관계만 남겼다.

몬드리안의 신조형주의는 자연의 겉모습보다 그 안의 질서를 찾으려 했다. 그는 곡선, 사선, 원근, 명암, 자연색을 줄이고, 수직선과 수평선, 원색과 무채색의 균형으로 화면을 구성했다.

이 회화는 단순히 장식적인 추상이 아니었다. 몬드리안은 화면 안의 균형이 더 넓은 사회적 질서와 연결될 수 있다고 봤다. 개인적 감정이나 자연의 우연성을 줄이고, 보편적인 조형 관계를 찾는 것이 그의 목표였다.

가구와 건축으로의 확장

데 스테일의 큰 성과는 회화의 원리를 가구와 건축으로 옮긴 데 있다. 헤릿 리트벨트는 의자와 주택을 통해 데 스테일의 선과 면을 실제 공간으로 바꿨다.

리트벨트의 적청 의자는 수직·수평 부재와 원색, 검은 구조선으로 구성된다. 의자는 하나의 덩어리처럼 보이지 않고, 여러 막대와 면이 서로 떨어져 놓인 구조처럼 보인다. 사용자는 의자를 단순한 생활 도구가 아니라, 공간 안에 놓인 입체 구성으로 보게 된다.

슈뢰더 하우스는 데 스테일이 건축으로 가장 선명하게 구현된 사례다. 벽, 난간, 창, 지붕, 색면이 하나의 닫힌 덩어리로 묶이지 않고, 서로 분리된 평면처럼 겹치고 밀려난다. 내부도 고정된 방보다 움직이는 패널과 열린 평면을 통해 바뀔 수 있게 설계됐다.

반 두스뷔르흐와 엘레멘타리즘

테오 반 두스뷔르흐는 데 스테일을 넓히는 데 큰 역할을 했지만, 몬드리안과는 점점 다른 방향으로 나아갔다. 그는 수직과 수평만으로는 조형이 지나치게 정지된다고 보고, 사선을 도입한 엘레멘타리즘(Elementarism)을 제안했다.

반 두스뷔르흐에게 사선은 화면과 공간에 움직임을 만들 수 있는 요소였다. 그러나 몬드리안은 사선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수직과 수평의 균형을 데 스테일의 핵심 원리로 보았기 때문이다.

이 차이는 결국 두 사람 사이의 결별로 이어졌다. 데 스테일은 처음부터 완전히 하나의 양식으로 굳어 있지 않았다. 오히려 보편적 질서를 찾으려는 공통 목표 안에서, 구성원마다 다른 해석이 생긴 사조였다.

1930년대 이후

1931년 테오 반 두스뷔르흐가 사망하면서 데 스테일은 하나의 운동으로서 힘을 잃었다. 잡지를 중심으로 이어지던 네트워크도 더 이상 같은 방식으로 유지되기 어려웠다.

하지만 데 스테일의 조형 언어는 사라지지 않았다. 몬드리안은 이후에도 자신의 추상 회화를 발전시켰고, 리트벨트는 가구와 건축에서 데 스테일의 원리를 계속 변형했다.

데 스테일은 바우하우스, 국제주의 양식, 구성주의, 미니멀리즘, 그래픽 디자인, 가구 디자인, 현대 브랜드 디자인에 큰 영향을 줬다. 특히 선, 면, 색, 그리드, 비대칭 균형을 통해 시각 질서를 만드는 방식은 오늘날에도 반복적으로 인용된다.

디자인 특징·시그니처

수직과 수평

데 스테일의 가장 기본적인 조형 요소는 수직선과 수평선이다. 사물과 자연의 복잡한 형태는 수직과 수평의 관계로 줄어든다.

몬드리안의 회화에서는 검은 선이 화면을 나누고, 그 사이에 흰 면과 원색 면이 놓인다. 리트벨트의 의자와 슈뢰더 하우스에서는 막대, 벽, 난간, 창틀, 지붕선이 수직과 수평의 관계를 만든다.

수직과 수평은 단순한 기하학이 아니다. 데 스테일은 이 두 방향이 서로 맞서는 동시에 균형을 만들 수 있다고 봤다. 자연의 우연한 곡선보다, 인간이 만든 질서와 보편적 구조를 앞세운 것이다.

원색과 무채색

데 스테일은 색을 제한했다. 빨강, 파랑, 노랑의 원색과 흰색, 검정, 회색의 무채색을 주로 사용했다.

이 제한은 색을 가난하게 만든 것이 아니다. 오히려 색의 역할을 분명하게 했다. 원색은 화면이나 구조에서 강한 지점을 만들고, 흰색과 회색은 여백과 배경을 만든다. 검은 선은 면과 면을 나누고, 구조의 뼈대를 드러낸다.

리트벨트의 적청 의자는 이 원리를 입체로 옮긴 사례다. 좌판과 등받이는 원색으로 강조되고, 막대 구조는 검정과 노랑으로 나뉜다. 색은 표면을 꾸미는 장식이 아니라 부재의 역할과 관계를 구분하는 장치가 된다.

비대칭 균형

데 스테일은 좌우대칭을 피했다. 화면이나 건물은 중심축을 기준으로 안정되기보다, 서로 다른 크기와 색의 면이 비대칭으로 놓이며 균형을 만든다.

몬드리안의 회화에서 색면은 화면 중앙에 고르게 놓이지 않는다. 작은 원색 면 하나가 큰 흰 면과 긴장 관계를 만들고, 검은 선의 위치가 전체 균형을 조절한다.

이 방식은 가구와 건축에서도 이어진다. 슈뢰더 하우스의 외관은 중심축이 뚜렷한 전통적 정면을 만들지 않는다. 벽과 발코니, 창, 난간이 서로 다른 방향으로 뻗으며, 건물 전체는 비대칭적인 균형을 이룬다.

평면의 분리

데 스테일은 건물을 닫힌 덩어리로 보지 않았다. 벽, 지붕, 바닥, 난간, 창을 서로 분리된 평면처럼 다뤘다.

슈뢰더 하우스는 이 특징을 잘 보여준다. 흰 벽면, 회색 면, 검은 선, 원색 부재가 서로 겹치고 어긋난다. 모서리는 하나의 덩어리로 닫히지 않고, 여러 면이 각자 독립된 채 만나도록 보인다.

이 평면의 분리는 실내에서도 나타난다. 움직이는 패널은 방을 고정된 칸으로 나누지 않고, 필요에 따라 열고 닫을 수 있게 한다. 데 스테일은 공간을 벽으로 막힌 방의 모음보다, 면과 선이 계속 관계를 바꾸는 장면으로 봤다.

입체로 옮긴 회화

데 스테일의 디자인은 회화를 입체로 옮기는 실험이었다. 몬드리안의 화면에서 선과 면이 관계를 만들었다면, 리트벨트의 가구와 건축에서는 나무 부재와 벽면, 난간과 창이 그 관계를 만든다.

적청 의자는 하나의 조각 같은 덩어리가 아니다. 막대와 판이 서로 교차하며 공간 안에 떠 있는 구조처럼 보인다. 슈뢰더 하우스도 마찬가지다. 벽과 지붕, 난간은 한 덩어리로 붙지 않고, 서로 다른 평면으로 흩어져 있다.

이 점에서 데 스테일은 회화와 디자인의 경계를 좁혔다. 그림의 원리가 의자가 되고, 의자의 구조가 건축으로 확장됐다.

보편 언어

데 스테일은 개인적 취향이나 지역 장식보다 보편적인 조형 언어를 찾으려 했다. 수직, 수평, 원색, 무채색, 비대칭 균형은 특정한 장소나 장식 전통에 묶이지 않는다고 봤다.

이 태도는 모더니즘의 국제적 성격과 맞닿아 있다. 데 스테일은 예술과 디자인이 새로운 사회의 질서를 만들 수 있다고 믿었다. 복잡한 장식과 역사 양식을 덜어내고, 가장 기본적인 조형 요소로 생활 전체를 다시 구성하려 했다.

하지만 이 보편성은 비판도 받았다. 장소와 재료, 사람의 생활이 모두 같은 조형 원리로 정리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이 남는다. 데 스테일의 힘은 명확한 질서에 있지만, 그 질서가 지나치게 엄격해질 때 생활의 복잡함을 줄여 버릴 위험도 있다.

주요 사례

잡지 《데 스테일》

잡지 《데 스테일》은 1917년 테오 반 두스뷔르흐가 창간한 예술·건축 잡지다. 데 스테일이라는 사조명도 이 잡지에서 나왔다.

잡지는 단순히 작품을 소개하는 매체가 아니었다. 구성원들의 이론, 선언, 회화, 건축, 가구, 그래픽을 함께 실으며 하나의 조형 원리를 퍼뜨렸다.

데 스테일은 고정된 학교보다 잡지를 통해 움직인 네트워크에 가까웠다. 그래서 이 잡지는 사조의 중심 기관이자, 데 스테일의 생각을 국제적으로 알린 도구였다.

빨강·파랑·노랑의 구성

몬드리안의 빨강·파랑·노랑 계열 구성은 데 스테일 회화를 대표한다. 검은 수직·수평선이 화면을 나누고, 흰 면과 원색 면이 비대칭 균형을 만든다.

이 회화에서 붓질의 감정이나 자연의 형태는 거의 사라진다. 남는 것은 선의 위치, 면의 크기, 색의 무게다. 화면은 단순해 보이지만, 작은 색면 하나와 선의 간격이 전체 균형을 바꾼다.

이 구성은 이후 데 스테일을 상징하는 이미지가 됐다. 다만 몬드리안의 회화를 단순한 패턴으로만 소비하면 부족하다. 그는 화면 안에서 보편적인 질서와 균형을 찾으려 했다.

적청 의자

적청 의자(Red and Blue Chair)는 헤릿 리트벨트가 디자인한 의자다. 처음에는 색이 없는 목재 의자로 만들어졌고, 이후 빨강, 파랑, 노랑, 검정 색채가 적용되며 데 스테일의 대표 가구가 됐다.

이 의자는 전통적인 안락의자처럼 몸을 감싸는 덩어리가 아니다. 막대와 판이 서로 교차하며 좌판, 등받이, 팔걸이, 다리의 역할을 나눈다.

색도 장식으로만 쓰이지 않는다. 좌판과 등받이는 원색 면이 되고, 구조 부재는 검정 선처럼 작동한다. 회화에서 선과 면이 만들던 질서가 가구의 구조로 옮겨진 사례다.

슈뢰더 하우스

슈뢰더 하우스(Rietveld Schröder House)는 헤릿 리트벨트가 트뤼스 슈뢰더 슈라더의 의뢰로 1924년 위트레흐트에 지은 주택이다. 데 스테일 건축의 가장 대표적인 사례다.

외관은 하나의 닫힌 덩어리처럼 보이지 않는다. 흰색과 회색의 평면, 검은 선, 원색 부재가 서로 어긋나고 겹치며 입체 구성을 만든다. 벽과 난간, 지붕, 창틀은 각자 독립된 선과 면처럼 보인다.

내부도 고정된 방의 모음이 아니다. 특히 2층은 움직이는 패널을 통해 공간을 열고 닫을 수 있게 설계됐다. 생활 방식에 따라 방의 경계를 바꿀 수 있다는 점에서, 슈뢰더 하우스는 데 스테일의 조형 원리와 근대적 생활 실험을 함께 보여준다.

카페 데 유니

카페 데 유니(Café De Unie)는 야코뷔스 요하네스 피테르 오우트가 로테르담에 설계한 카페 파사드다. 건물 전체보다 전면 디자인이 데 스테일의 그래픽적 성격을 강하게 보여준다.

파사드는 빨강, 파랑, 노랑, 흰색, 검정의 면과 글자로 구성됐다. 간판과 건축 입면이 분리되지 않고 하나의 평면 구성처럼 작동한다.

카페 데 유니는 데 스테일이 회화와 건축뿐 아니라 도시의 상업적 표면에도 적용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건물의 정면은 단순한 외벽이 아니라, 거리와 소통하는 그래픽 화면이 된다.

오베트

오베트(Aubette)는 프랑스 스트라스부르의 복합 문화 공간으로, 테오 반 두스뷔르흐, 한스 아르프, 조피 토이버 아르프가 실내 디자인에 참여했다.

이 공간에서 반 두스뷔르흐는 벽과 천장, 바닥을 하나의 연속된 색면 구성으로 다뤘다. 특히 사선을 사용한 구성은 몬드리안의 엄격한 수직·수평 원리와 다른 방향을 보여준다.

오베트는 데 스테일의 조형 언어가 회화의 화면을 넘어 실내 공간 전체로 확장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동시에 반 두스뷔르흐가 사선을 통해 더 역동적인 공간을 만들려 했다는 점도 드러낸다.

반 두스뷔르흐의 카운터 컴포지션

반 두스뷔르흐의 카운터 컴포지션(Counter-Composition) 계열은 엘레멘타리즘의 방향을 보여주는 회화다. 화면 안에 사선이 등장하고, 구성은 몬드리안의 수직·수평 원리보다 더 움직임이 강해진다.

이 작업은 데 스테일 내부의 균열을 보여준다. 반 두스뷔르흐는 사선이 새로운 긴장과 속도를 만들 수 있다고 봤지만, 몬드리안은 이를 핵심 원리의 이탈로 받아들였다.

카운터 컴포지션은 데 스테일이 하나의 고정된 양식이 아니라, 내부에서 계속 논쟁한 사조였음을 보여준다.

반응과 평가

위상과 영향

데 스테일은 20세기 모더니즘 디자인의 기본 언어를 만드는 데 큰 영향을 줬다. 선, 면, 색, 그리드, 비대칭 균형을 통해 화면과 사물, 공간을 구성하는 방식은 이후 그래픽 디자인, 가구, 건축, 브랜드 디자인으로 넓게 퍼졌다.

이 사조의 영향은 바우하우스와 국제주의 양식에도 이어졌다. 장식을 줄이고, 기본 요소의 관계로 형태를 만들며, 예술과 생활을 하나의 질서로 묶으려는 태도는 근대 디자인 교육과 산업 디자인에 큰 자극이 됐다.

데 스테일은 회화가 디자인과 건축으로 확장될 수 있음을 보여줬다. 몬드리안의 평면 구성은 리트벨트의 의자와 슈뢰더 하우스에서 입체와 공간으로 바뀌었다. 이 연결 덕분에 데 스테일은 미술사와 디자인사, 건축사를 함께 가로지르는 사조로 남았다.

디자인 반응

데 스테일은 매우 알아보기 쉬운 조형 언어를 남겼다. 수직·수평선, 원색, 무채색, 비대칭 구성은 지금도 포스터, 패션, 가구, 인테리어, 제품 그래픽에서 반복적으로 인용된다.

하지만 많이 인용된 만큼 쉽게 납작해지기도 했다. 데 스테일의 색과 선만 가져오면, 원래의 이론과 사회적 이상은 사라지고 “몬드리안풍 패턴”만 남을 수 있다.

그래서 데 스테일을 볼 때는 표면의 색보다 구조를 봐야 한다. 선이 면을 어떻게 나누는지, 색이 어떤 무게를 갖는지, 가구와 건축이 어떻게 덩어리를 해체하는지까지 봐야 이 사조의 의미가 분명해진다.

비판

데 스테일의 가장 큰 비판은 지나친 엄격함이다. 수직과 수평, 원색과 무채색으로 조형 언어를 제한하면 강한 질서를 만들 수 있지만, 생활의 복잡함과 지역의 차이를 충분히 담기 어렵다.

두 번째 비판은 보편성에 대한 믿음이다. 데 스테일은 개인 취향과 자연의 우연성을 넘어 보편적인 조형 질서를 찾으려 했다. 그러나 어떤 조형 언어가 모든 사람과 장소에 보편적으로 적용될 수 있는지는 여전히 논쟁적이다.

세 번째 비판은 실제 사용성과의 거리다. 적청 의자는 조형적으로 강하지만, 전통적 의미의 편안한 의자와는 거리가 있다. 슈뢰더 하우스의 열린 공간과 움직이는 패널도 혁신적이었지만, 모든 주거 생활에 쉽게 적용될 수 있는 방식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데 스테일이 남긴 성과는 분명하다. 이 사조는 회화, 가구, 건축, 그래픽을 하나의 조형 원리로 연결했고, 선과 면과 색만으로도 강한 질서를 만들 수 있음을 증명했다. 오늘날 데 스테일은 단순한 색채 스타일이 아니라, 디자인을 기본 요소의 관계로 바라보게 만든 근대 조형의 핵심 사례다.

관련·혼동 용어

신조형주의

신조형주의(Neoplasticism)는 몬드리안이 정리한 조형 이론이다. 자연의 형태를 그대로 그리지 않고, 수직·수평선과 원색·무채색의 관계로 보편적 균형을 만들려 했다.

데 스테일과 신조형주의는 깊게 겹치지만 같은 말은 아니다. 신조형주의가 몬드리안의 회화 이론에 가깝다면, 데 스테일은 그 이론을 공유하거나 변형한 예술가·디자이너·건축가들의 더 넓은 운동이다.

네오플라스티시즘

네오플라스티시즘은 신조형주의의 영어식 표기를 그대로 옮긴 말이다. 국내에서는 신조형주의가 더 자연스럽고, 네오플라스티시즘은 검색용 보조어로 함께 쓰는 편이 좋다.

본문에서는 신조형주의를 우선 쓰고, 첫 등장이나 인라인 키워드에서 네오플라스티시즘을 함께 잡으면 된다.

구성주의

구성주의(Constructivism)는 러시아 혁명 전후에 나타난 예술·디자인 사조다. 기하학적 형태, 산업 재료, 사회적 기능, 선전과 생산의 문제를 중요하게 다뤘다.

데 스테일과 구성주의는 추상적 기하학과 새로운 사회에 대한 믿음에서 겹친다. 그러나 구성주의가 정치와 생산, 선전 매체에 더 강하게 연결됐다면, 데 스테일은 보편적 조형 질서와 예술·생활의 통합에 더 집중했다.

바우하우스

바우하우스(Bauhaus)는 1919년 독일에서 설립된 미술·건축·디자인 학교다. 예술, 공예, 산업 생산을 하나로 묶으려 했고, 근대 디자인 교육에 큰 영향을 줬다.

데 스테일은 바우하우스와 직접 같은 조직은 아니지만, 바우하우스의 조형 교육과 건축 담론에 영향을 줬다. 테오 반 두스뷔르흐는 바우하우스 주변에서 강의와 활동을 하며 데 스테일의 생각을 퍼뜨렸다.

국제주의 양식

국제주의 양식은 20세기 모더니즘 건축을 유리, 철골, 장식 없는 볼륨, 규칙적 모듈로 정리한 흐름이다.

데 스테일은 국제주의 양식보다 앞선 시기에 건축의 추상성과 보편 질서를 실험했다. 슈뢰더 하우스처럼 벽과 평면을 분리해 다루는 방식은 이후 근대건축의 공간 실험과도 연결된다.

미니멀리즘

미니멀리즘은 장식과 요소를 줄이고 형태, 재료, 반복, 공간 자체에 집중한 20세기 중후반 미술·디자인 흐름이다.

데 스테일과 미니멀리즘은 단순한 형태와 제한된 요소를 쓴다는 점에서 겹쳐 보일 수 있다. 그러나 데 스테일은 색과 선의 관계를 통해 보편적 조형 질서를 만들려 했고, 미니멀리즘은 사물의 존재와 반복, 공간의 지각에 더 집중했다.

추상미술

추상미술은 눈에 보이는 대상을 그대로 재현하지 않고, 선, 색, 형태, 질감, 구성으로 화면을 만드는 미술 흐름이다.

데 스테일은 추상미술 안에서도 매우 엄격한 기하학적 추상에 속한다. 자연의 형태를 줄이는 데서 멈추지 않고, 수직·수평선과 원색·무채색의 제한된 체계로 화면과 공간을 구성했다.

포스트모더니즘

[[no-link:포스트모더니즘]]은 모더니즘의 보편성, 기능주의, 장식 배제에 반응하며 역사적 인용, 기호, 장식, 대중문화를 다시 끌어들인 사조다.

데 스테일은 모더니즘의 보편적 질서에 가까운 사조다. [[no-link:포스트모더니즘]]은 바로 그런 보편성의 권위를 다시 의심했다. 그래서 두 사조는 선과 색의 사용보다 디자인을 바라보는 태도에서 크게 다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