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럼플 존 (Crumple Zone)

개요·정의

<img src="https://d2xsxph8kpxj0f.cloudfront.net/310519663429662740/ffcjRzrXsTCDKgX6s8aDwC/articles/1783338886897-7516025f75bf7ef8.webp" alt="" data-orientation="free" data-original-src="https://d2xsxph8kpxj0f.cloudfront.net/310519663429662740/ffcjRzrXsTCDKgX6s8aDwC/articles/1783338887984-9460a3fc755a74e2.webp" data-source-url="https://lithub.com/crumple-zone-what-car-crashes-reveal-about-human-hubris-and-fragility/" width="600" />

출처: Literary Hub

크럼플 존은 자동차가 충돌할 때 앞뒤 차체 일부가 계획된 순서로 찌그러지며 충격 에너지를 흡수하도록 만든 구역이다. 한국어로는 충격 흡수 구역, 충돌 변형 구역으로 풀 수 있지만, 국내 자동차 문맥에서는 크럼플 존이라는 표현이 더 자연스럽게 쓰인다.

크럼플 존은 차체를 무조건 단단하게 만드는 기술이 아니다. 앞뒤 차체는 찌그러지게 만들고, 승객이 타는 가운데 공간은 버티게 만드는 설계다. 충돌 순간 범퍼 빔, 크래시 박스, 사이드 멤버, 서브프레임이 먼저 에너지를 받아 변형되고, A필러와 B필러, 사이드실, 루프 구조는 탑승 공간을 유지한다.

이 개념은 메르세데스-벤츠의 엔지니어 벨라 바레니가 연구한 안전 차체에서 본격적으로 알려졌다. 바레니는 1951년 승객 안전 셀 관련 특허를 출원했고, 1959년 메르세데스-벤츠 W111 계열 핀테일 세단은 앞뒤 충돌 변형 구역과 단단한 승객 공간을 양산차에 적용한 대표 사례로 남았다.

크럼플 존은 자동차의 겉모습에도 영향을 준다. 보닛 길이, 앞 오버행, 범퍼 위치, 휠하우스 주변 구조, 배터리 팩 배치, 실내 바닥 높이는 충돌 에너지를 어디서 받고 어디로 흘려보낼지에 따라 달라진다.

구조·특성

찌그러지는 앞뒤 구조

크럼플 존의 핵심은 차체 앞뒤가 의도적으로 변형된다는 점이다. 자동차가 벽이나 다른 차와 부딪히면 차체는 매우 짧은 시간 안에 속도를 잃는다. 이때 충격이 승객실로 곧바로 들어오면 사람의 몸에 큰 힘이 걸린다.

크럼플 존은 앞뒤 차체가 접히고 찌그러지는 시간을 늘려 승객에게 전달되는 힘을 줄인다. 사고 뒤 차 앞부분이 크게 망가져 보여도, 그 변형은 승객실을 지키기 위한 설계 결과일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차가 얼마나 멀쩡해 보이는지가 아니다. 충돌 에너지가 앞뒤 구조에서 얼마나 잘 흡수됐는지, 승객 공간이 얼마나 유지됐는지, 페달과 스티어링 휠이 얼마나 밀려 들어왔는지가 더 중요하다.

단단한 승객 공간

크럼플 존이 찌그러지는 구역이라면, 승객 공간은 버티는 구역이다. 이 공간은 세이프티 셀 또는 승객 안전 셀이라고 부른다.

세이프티 셀은 운전자와 승객이 앉은 공간을 최대한 유지하는 구조다. A필러, B필러, 루프 레일, 사이드실, 플로어, 대시 패널 주변 구조가 함께 탑승 공간을 둘러싼다.

차체 앞뒤가 에너지를 흡수하며 변형되더라도, 가운데 공간이 무너지면 안전 설계는 실패한다. 그래서 현대 차체는 앞뒤를 접히게 만들고, 중앙 승객실은 고장력강과 초고장력강, 핫스탬핑 부품으로 더 단단하게 만든다.

하중 경로

하중 경로는 충돌 에너지가 차체 안에서 이동하는 길이다. 전면 충돌에서는 범퍼 빔이 먼저 충격을 받고, 그 뒤의 크래시 박스와 사이드 멤버가 힘을 받아낸다.

충격이 한 줄로만 들어가면 승객실로 힘이 빠르게 전달될 수 있다. 그래서 현대 차체는 여러 갈래의 하중 경로를 만든다. 전면부로 들어온 힘은 사이드 멤버, 서브프레임, 플로어, 사이드실, 대시 패널 방향으로 나뉘어 흐른다.

오프셋 충돌에서는 이 하중 경로가 더 중요해진다. 차체 전면 전체가 아니라 한쪽 일부만 충돌하면, 한쪽 사이드 멤버와 휠하우스 주변 구조에 힘이 몰린다. 이때 하중을 다른 구조로 넘기지 못하면 승객 공간 침입이 커진다.

크래시 박스

크래시 박스는 범퍼 빔 뒤쪽에 붙는 충격 흡수 부품이다. 비교적 낮은 속도의 충돌에서 먼저 변형돼 차체 주요 골격으로 충격이 바로 들어가는 일을 줄인다.

크래시 박스는 소모품에 가까운 역할도 한다. 작은 충돌에서 크래시 박스가 먼저 찌그러지면 사이드 멤버나 프레임 손상을 줄일 수 있다. 수리 범위를 줄이는 데도 도움이 된다.

다만 크래시 박스만으로 충돌 안전이 완성되지는 않는다. 큰 충돌에서는 사이드 멤버, 서브프레임, 플로어 구조, 세이프티 셀이 함께 작동해야 한다.

측면 충돌

측면 충돌은 전면이나 후면 충돌보다 변형 거리가 짧다. 도어와 탑승자 사이의 공간이 좁기 때문이다.

그래서 측면 구조는 긴 크럼플 존을 만들기 어렵다. 대신 도어 안쪽 보강재, B필러, 사이드실, 시트 구조, 사이드 에어백, 커튼 에어백이 함께 탑승 공간 침입을 줄인다.

측면 충돌에서 중요한 것은 충격을 흡수하는 시간뿐 아니라 침입량을 줄이는 일이다. 차체 옆면이 너무 많이 들어오면 에어백과 안전벨트가 있어도 탑승자에게 직접적인 위험이 생긴다.

후방 충돌

후방 충돌에서도 크럼플 존은 필요하다. 뒤쪽 범퍼 빔과 크래시 박스, 리어 사이드 멤버, 트렁크 플로어가 충격을 흡수한다.

후방 구조는 트렁크 공간, 연료 탱크, 배터리, 후륜 서스펜션, 테일게이트 구조와 맞물린다. SUV와 해치백처럼 뒤쪽 개구부가 큰 차는 테일게이트 주변 구조와 리어 플로어 보강이 더 중요해진다.

전기차에서는 후방 충돌 때 배터리 팩과 고전압 부품 보호도 함께 봐야 한다. 단순히 뒤 범퍼가 얼마나 찌그러졌는지보다, 고전압 시스템이 안전하게 차단됐는지가 중요하다.

설계·평가 방식

계획된 변형

크럼플 존은 아무렇게나 찌그러지는 구역이 아니다. 제조사는 부품별로 어느 순서로 접히고, 어디까지 변형되고, 어느 지점부터 버틸지 정해 둔다.

어떤 부품은 잘 접히도록 만들고, 어떤 부품은 끝까지 버티게 만든다. 범퍼 빔과 크래시 박스는 먼저 힘을 받고, 사이드 멤버와 서브프레임은 충격을 여러 방향으로 나누며, 승객실 주변 구조는 침입을 막는다.

이 설계는 소재와 단면, 접합 방식이 함께 만든다. 고장력강, 초고장력강, 알루미늄 압출재, 핫스탬핑 부품을 필요한 위치에 나눠 쓰고, 접합부는 충돌 때 하중이 끊기지 않도록 묶는다.

앞쪽 하중 분산

전면 충돌에서는 앞쪽 구조가 충격을 단계적으로 나눠 받아야 한다. 범퍼 빔은 가장 앞에서 충격을 넓게 받는다. 크래시 박스는 먼저 접히며 에너지를 흡수한다. 사이드 멤버는 남은 힘을 차체 깊은 곳으로 보낸다.

서브프레임도 하중 경로에 들어간다. 엔진, 모터, 서스펜션을 지지하는 구조물이지만 충돌 때는 힘을 아래쪽과 뒤쪽으로 넘기는 역할도 맡는다.

휠하우스 주변 구조도 중요하다. 오프셋 충돌에서는 바퀴와 서스펜션이 뒤로 밀리며 발 공간을 침범할 수 있다. 그래서 휠을 바깥쪽으로 빼내거나, 하중을 플로어와 사이드실로 흘리는 구조가 필요하다.

소재 배치

크럼플 존은 부드러운 소재와 단단한 소재를 함께 쓴다. 전면부 일부는 접히며 에너지를 흡수해야 하고, 승객실 주변은 버텨야 한다.

초고장력강과 핫스탬핑 부품은 B필러, 사이드실, 루프 레일, 승객실 주변에 자주 쓰인다. 알루미늄 압출재는 충격 흡수 구조와 하중 경로를 만드는 데 쓰일 수 있다. 플라스틱 범퍼 커버는 외형을 만들지만, 실제 충돌 하중은 내부 범퍼 빔과 크래시 박스가 받는다.

중요한 것은 소재 이름이 아니라 위치다. 강한 소재를 잘못 배치하면 충격을 흡수하지 못하고 힘을 승객실로 보내 버릴 수 있다. 반대로 너무 약하게 만들면 승객 공간까지 침입이 커질 수 있다.

전기차 배터리 보호

전기차에서는 배터리 팩 보호가 추가된다. 배터리는 보통 차체 바닥에 넓게 깔린다. 그래서 전면 충돌뿐 아니라 측면 충돌, 후방 충돌, 하부 충격을 함께 고려해야 한다.

배터리 케이스, 사이드실 안쪽 보강재, 크로스멤버, 전면 서브프레임, 고전압 차단 장치가 함께 작동한다. 충돌 때 배터리 셀과 냉각 구조가 손상되지 않도록 하중을 우회시키는 구조가 필요하다.

전기차 앞쪽에는 엔진이 없지만, 그 공간을 모두 수납공간으로 쓸 수는 없다. 프렁크 아래에도 충격 흡수 구조, 냉각 장치, 전장 부품, 하중 경로가 들어간다.

보행자 보호

크럼플 존은 탑승자만을 위한 구조가 아니다. 보행자 보호도 전면부 설계에 영향을 준다.

보닛과 단단한 부품 사이에는 일정한 변형 공간이 필요하다. 사람이 차량 앞부분에 부딪혔을 때 머리와 다리에 가해지는 충격을 줄이기 위해서다. 범퍼, 후드 앞쪽, 헤드램프 주변도 보행자 충돌 기준을 고려해 설계된다.

이 때문에 보닛 높이, 후드 라인, 범퍼 모서리, 헤드램프 위치는 디자인만으로 정해지지 않는다. 안전 기준과 패키징, 냉각 구조, 보행자 보호 공간이 함께 형태를 만든다.

충돌 시험

충돌 안전 평가는 정면 전체 충돌만 보지 않는다. 오프셋 충돌, 측면 충돌, 후방 충돌, 전복, 보행자 충돌을 따로 본다.

오프셋 충돌은 차체 전면 일부만 장애물과 부딪히는 시험이다. 이 상황에서는 한쪽 사이드 멤버와 휠하우스 주변 구조에 힘이 몰린다. 차체 한쪽이 무너져도 페달, 스티어링 칼럼, A필러, 플로어가 탑승 공간을 과도하게 침범하지 않아야 한다.

Euro NCAP은 2020년부터 이동식 변형 장벽인 MPDB 시험을 도입했다. 이 시험은 시험 차량과 이동식 장벽이 서로 마주 달려 충돌하는 상황을 만든다. 탑승자 보호뿐 아니라 상대 차량에 주는 영향도 함께 본다.

디자인에서의 활용

보닛과 앞 오버행

크럼플 존은 자동차 비례를 결정하는 숨은 조건이다. 보닛이 너무 짧거나 앞 오버행이 지나치게 줄어들면 전면부에서 충격을 흡수할 거리가 부족해진다.

소형차와 도심형 전기차는 짧은 차체 안에서 범퍼 빔, 크래시 박스, 사이드 멤버를 촘촘하게 배치해야 한다. 앞쪽 공간이 작을수록 하중 경로를 더 정교하게 짜야 한다.

보닛이 길다고 무조건 안전한 것도 아니다. 중요한 것은 충격을 흡수할 구조가 어떻게 배치됐는지다. 긴 앞부분이 있어도 하중 경로가 끊기면 승객실 보호가 어려워질 수 있다.

SUV와 픽업트럭 전면부

차체 높이가 높은 SUV와 픽업트럭은 다른 문제가 생긴다. 무게가 크고 전면부가 높으면 작은 차와 부딪힐 때 상대 차량에 더 큰 힘을 줄 수 있다.

최근 충돌 평가는 자기 차 승객 보호뿐 아니라 상대 차량에 주는 손상도 함께 본다. 차체가 크고 무거운 차량은 앞쪽 구조가 상대 차량의 크럼플 존과 어떻게 맞물리는지도 고려해야 한다.

이 조건은 전면부 디자인에도 영향을 준다. 범퍼 빔 높이, 후드 앞쪽 높이, 하부 구조, 프레임 레일 위치가 충돌 호환성과 연결된다.

전기차 프렁크

전기차는 엔진룸이 사라지면서 앞쪽 공간을 더 자유롭게 쓸 수 있다. 하지만 그 공간을 모두 수납공간으로 바꿀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프렁크 아래에는 범퍼 빔, 크래시 박스, 냉각 장치, 전장 부품, 하중 경로가 들어간다. 전면 충돌 때 이 구조들이 먼저 에너지를 받고, 승객실과 배터리 쪽으로 힘이 바로 들어가지 않도록 해야 한다.

겉으로는 짧고 단순한 전면부처럼 보여도, 내부 구조는 충돌 에너지를 처리할 수 있게 짜인다. 전기차의 매끈한 앞모습 뒤에도 복잡한 충돌 구조가 들어간다.

보행자 보호와 후드 라인

보행자 보호는 전면 디자인을 크게 바꾼다. 보닛 아래에 엔진이나 단단한 부품이 가까이 있으면, 보행자 머리가 부딪혔을 때 충격을 줄일 공간이 부족하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후드 아래 공간을 확보하거나, 액티브 후드처럼 충돌 순간 보닛을 들어 올리는 장치를 쓰기도 한다. 범퍼 하단과 전면 모서리도 보행자 다리 충격을 줄이도록 설계된다.

그래서 후드 라인과 범퍼 형태는 스타일만으로 정해지지 않는다. 냉각, 공력, 보행자 보호, 충돌 구조가 함께 전면부 형태를 만든다.

짧은 전면부의 과제

도심형 전기차와 소형차는 짧은 전면부를 선호한다. 실내 공간을 넓히고, 차체 길이를 줄이며, 귀여운 인상을 만들기 좋기 때문이다.

하지만 짧은 전면부는 크럼플 존을 만들기 어렵게 한다. 충돌 에너지를 흡수할 거리가 줄어들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런 차는 사이드 멤버, 크로스멤버, 배터리 보호 구조, 서브프레임을 더 촘촘하게 배치해야 한다.

전면부가 짧고 단순해 보일수록 내부 구조는 더 복잡해질 수 있다. 작은 차에서 충돌 안전을 확보하는 일이 어려운 이유다.

센서와 수리성

최신차 전면부에는 범퍼 빔과 크래시 박스뿐 아니라 레이더, 카메라, 초음파 센서, 냉각 장치, 전장 부품이 함께 들어간다.

이 배치는 전면 디자인과 수리성에 영향을 준다. 센서가 범퍼 안에 들어가면 외형을 더 매끈하게 만들 수 있지만, 작은 사고 뒤에도 센서 보정과 교체가 필요할 수 있다.

크럼플 존은 충돌 때 찌그러져야 하지만, 그 안에 들어간 센서와 전장 부품은 비싸다. 안전 구조와 첨단 운전자 보조 시스템이 같은 전면부 공간을 나눠 쓰면서 수리비 문제가 커졌다.

대표 적용 사례

메르세데스-벤츠 W111/W112

메르세데스-벤츠 W111/W112는 크럼플 존과 승객 안전 셀을 양산차에 적용한 초기 대표 사례다. 1959년에 등장한 핀테일 계열은 벨라 바레니의 안전 차체 개념을 실제 양산차로 옮겼다.

앞뒤 차체는 충돌 때 찌그러지도록 만들고, 가운데 승객실은 단단하게 남기는 구조를 썼다. 이 방식은 이후 자동차 안전 차체 설계의 기준이 됐다.

이 사례의 의미는 차가 덜 망가지는 쪽이 아니라, 사람이 있는 공간을 지키는 쪽으로 안전 설계가 바뀌었다는 데 있다. 크럼플 존은 “단단한 차가 안전하다”는 단순한 생각을 바꾼 구조다.

메르세데스-벤츠 S-클래스

메르세데스-벤츠 S-클래스는 크럼플 존 이후 수동 안전 기술이 계속 확장된 사례다. S-클래스는 세이프티 셀, 안전벨트, 에어백, 프리텐셔너, 충돌 전 보호 기능처럼 여러 안전 기술을 세대마다 발전시켜 왔다.

크럼플 존 자체는 이미 대부분의 승용차에 들어간 기본 구조가 됐지만, S-클래스는 충돌 전후 안전 기술을 함께 묶어 보여주는 대표 모델로 볼 수 있다. 차체가 충격을 흡수하고, 안전벨트와 에어백이 탑승자 움직임을 제어하며, 전자식 안전 시스템이 사고 직전 준비 동작을 맡는다.

이 사례는 크럼플 존이 독립 기술로 끝나지 않고, 수동 안전과 능동 안전을 함께 묶는 안전 설계 흐름 안으로 들어갔다는 점을 보여준다.

현대 아이오닉 5

현대 아이오닉 5는 전기차 전용 플랫폼에서 크럼플 존이 어떻게 짜이는지 보여주는 사례다. 아이오닉 5는 E-GMP 기반 차체를 쓰며, 전면부 하중 경로를 여러 갈래로 나눠 충격 에너지를 분산한다.

현대차그룹은 E-GMP 전기차의 안전 구조를 설명하며, 범퍼 백빔의 이중 박스 구조와 멀티 로드 패스, 핫스탬핑 센터 필러, 배터리 보호 구조를 함께 제시했다.

아이오닉 5의 사례에서 중요한 점은 전기차에도 크럼플 존이 여전히 필요하다는 것이다. 엔진룸이 없어졌다고 앞쪽 공간을 모두 자유롭게 쓸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충돌 하중을 흘리고, 배터리와 승객실을 보호하는 구조가 반드시 필요하다.

볼보 EX90

볼보 EX90은 최신 전기 SUV에서 크럼플 존과 센서, 배터리 보호, 탑승자 보호가 함께 묶이는 사례다. 전기 SUV는 큰 차체와 무거운 배터리를 갖기 때문에 충돌 에너지 관리가 더 중요해진다.

EX90 같은 최신 전기차는 전면부에 충돌 구조뿐 아니라 라이다, 레이더, 카메라 같은 센서를 함께 넣는다. 이 부품들은 능동 안전 기능을 돕지만, 차체 앞쪽 패키징과 수리성에도 영향을 준다.

이 사례는 크럼플 존이 더 이상 금속 구조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점을 보여준다. 배터리, 센서, 소프트웨어, 수리비, 충돌 평가가 같은 전면부 안에서 만난다.

Euro NCAP MPDB 시험

Euro NCAP의 MPDB 시험은 최신 크럼플 존 설계가 상대 차량까지 고려해야 한다는 점을 보여준다. 2020년부터 도입된 이 시험은 이동식 변형 장벽을 사용해 차와 차가 마주 충돌하는 상황을 더 가깝게 만든다.

이 시험은 시험 차량 안의 탑승자 보호만 보지 않는다. 충돌한 상대 차량에 얼마나 큰 하중을 전달하는지도 함께 평가한다.

MPDB 시험은 크럼플 존의 역할을 넓혔다. 이제 전면부 구조는 자기 차의 승객만 보호하는 장치가 아니라, 충돌 상대와의 하중 호환성까지 고려하는 구조가 됐다.

장단점·한계

크럼플 존의 가장 큰 장점은 충돌 에너지를 차체 변형으로 흡수한다는 점이다. 사고 뒤 차 앞부분이 크게 찌그러져 보일 수 있지만, 그 변형은 승객실을 지키기 위한 설계 결과일 수 있다.

승객 보호도 더 분명해진다. 앞뒤 구조가 충격을 흡수하고, 세이프티 셀이 탑승 공간을 유지하면 안전벨트와 에어백이 더 안정적으로 작동할 수 있다. 차체가 무너지지 않아야 탑승자 보호 장치도 제 역할을 한다.

디자인과 패키징에도 장점이 있다. 충돌 하중을 어디서 받을지 정교하게 설계하면 짧은 전면부, 넓은 실내, 전기차 배터리 보호, 보행자 보호를 함께 다룰 수 있다. 현대차는 단순히 긴 보닛에 기대는 것이 아니라, 하중 경로와 소재 배치로 안전을 만든다.

한계도 있다. 충돌 속도가 너무 높거나, 전신주처럼 좁고 단단한 물체에 부딪히거나, 차체의 하중 경로를 벗어난 위치에 충격이 들어오면 크럼플 존이 의도한 순서대로 접히기 어렵다.

작은 겹침 충돌이 까다로운 이유도 여기에 있다. 충격이 범퍼 빔과 사이드 멤버 전체로 퍼지지 않고, 차체 한쪽 끝에 집중되기 때문이다. 이런 시험은 기존 정면 충돌보다 차체 설계에 더 큰 부담을 준다.

수리비 문제도 생긴다. 최신차 전면부에는 범퍼 빔과 크래시 박스뿐 아니라 레이더, 카메라, 초음파 센서, 냉각 장치, 전장 부품이 함께 들어간다. 가벼운 접촉 사고처럼 보여도 센서 보정과 전장 부품 교체가 필요할 수 있다.

전기차는 배터리 보호가 추가된다. 충돌 뒤 배터리 케이스가 손상됐는지, 냉각수가 새는지, 고전압 차단 장치가 작동했는지, 문이 열리는지까지 확인해야 한다. 그래서 전기차 충돌 안전은 차체 변형만으로 판단하기 어렵다.

관련 기술·용어

세이프티 셀

세이프티 셀은 승객이 타는 공간을 감싸는 단단한 구조다. 크럼플 존이 앞뒤에서 찌그러지며 에너지를 흡수한다면, 세이프티 셀은 사람이 앉은 공간을 최대한 유지한다.

크래시 박스

크래시 박스는 범퍼 빔 뒤쪽에 붙는 충격 흡수 부품이다. 비교적 낮은 속도의 충돌에서 먼저 변형돼 차체 주요 골격으로 충격이 바로 들어가는 것을 줄인다.

범퍼 빔

범퍼 빔은 범퍼 커버 안쪽에 들어가는 가로 구조물이다. 충돌 에너지를 넓게 받아 크래시 박스와 사이드 멤버로 전달한다.

사이드 멤버

사이드 멤버는 차체 앞뒤 방향으로 이어지는 주요 구조재다. 전면 충돌에서는 범퍼와 크래시 박스에서 들어온 힘을 플로어와 승객실 주변 구조로 넘긴다.

서브프레임

서브프레임은 엔진, 모터, 서스펜션 같은 부품을 차체에 연결하는 보조 프레임이다. 충돌 때는 하중을 아래쪽과 뒤쪽으로 나누는 역할도 맡을 수 있다.

하중 경로

하중 경로는 충돌 에너지가 차체 안에서 이동하는 길이다. 전면부로 들어온 충격은 사이드 멤버, 서브프레임, 플로어, 사이드실 방향으로 나뉘어 전달된다.

충돌 안전성

충돌 안전성은 사고가 난 뒤 차가 탑승자를 얼마나 잘 보호하는지를 뜻한다. 크럼플 존, 세이프티 셀, 안전벨트, 에어백, 시트, 헤드레스트가 모두 이 범위에 들어간다.

수동 안전

수동 안전은 사고가 난 뒤 탑승자 피해를 줄이는 기술을 뜻한다. 크럼플 존, 안전벨트, 에어백, 헤드레스트가 대표적이다.

자동 긴급 제동이나 차선 유지 보조처럼 사고를 피하도록 돕는 기술은 능동 안전에 속한다.

능동 안전

능동 안전은 사고가 나기 전에 위험을 줄이거나 피하도록 돕는 기술이다. 자동 긴급 제동, 차선 유지 보조, 사각지대 경고, 차간 거리 제어가 여기에 속한다.

크럼플 존은 사고 뒤 피해를 줄이는 수동 안전 기술이지만, 최신 자동차에서는 능동 안전 센서와 같은 전면부 공간을 나눠 쓴다.

오프셋 충돌

오프셋 충돌은 차체 전면 전체가 아니라 일부만 장애물과 부딪히는 충돌이다. 한쪽 구조에 힘이 몰리기 때문에 하중 경로와 승객실 침입 제어가 중요하다.

MPDB

MPDB는 Mobile Progressive Deformable Barrier의 약자다. Euro NCAP이 2020년부터 도입한 이동식 변형 장벽 시험이다. 차와 차가 마주 부딪히는 상황을 더 가깝게 만들고, 상대 차량에 주는 영향까지 평가한다.

보행자 보호

보행자 보호는 차량이 사람과 부딪혔을 때 머리와 다리에 가해지는 충격을 줄이는 설계다. 후드 라인, 범퍼 형태, 헤드램프 위치, 액티브 후드, 보닛 아래 공간이 모두 관련된다.

고전압 차단 장치

고전압 차단 장치는 전기차 충돌 때 배터리와 고전압 회로를 안전하게 끊는 장치다. 전기차에서는 크럼플 존과 함께 배터리 보호, 냉각수 누출, 화재 위험 관리가 중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