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탄 (Rattan)

개요·정의

라탄(Rattan)은 동남아시아를 중심으로 자라는 덩굴성 야자류의 줄기를 가공한 소재다. 대나무와 비슷한 외관 때문에 혼동되지만 구조는 다르다. 대나무 줄기는 속이 비어 있는 반면 라탄 줄기는 내부가 차 있어 가늘게 쪼개거나 열과 수분을 이용해 휘어도 비교적 잘 버틴다.

굵은 줄기는 의자와 테이블의 프레임으로 사용하고, 표피를 얇고 길게 벗겨낸 케인은 좌판과 등받이를 엮는 데 주로 사용한다. 국내에서 흔히 말하는 ‘라탄 짜임’은 이처럼 라탄을 이용한 직조를 뜻하는 경우가 많다.

위커(Wicker)는 별도의 식물 이름이 아니라 소재를 엮어 형태를 만드는 제작 방식을 가리킨다. 따라서 라탄으로 만든 위커 가구가 있을 수 있고, 버드나무·대나무·합성섬유로도 같은 방식의 가구를 만들 수 있다.

구조·원리

라탄은 수분과 열을 가하면 줄기가 부드러워진다. 장인은 이 상태에서 줄기를 금형이나 지그에 맞춰 구부린 뒤 건조해 곡선을 고정한다. 굵은 라탄 몇 가닥으로 프레임을 만들고 접합부를 작은 못이나 나사로 고정한 뒤 얇은 케인으로 묶어 마감하는 방식이 전통적으로 사용돼 왔다.

좌판과 등받이에는 가는 스트립을 교차해 엮는다. 여섯 방향으로 줄을 통과시키는 케인 위빙처럼 구멍이 일정하게 반복되는 짜임도 있고, 바구니처럼 촘촘하게 엮거나 불규칙한 직조를 사용하는 방식도 있다.

구조와 표면을 같은 식물에서 만들 수 있다는 점이 라탄의 특징이다. 굵은 줄기는 하중을 받고 얇은 스트립은 몸과 닿는 면을 만든다. 금속이나 목재 프레임 위에 라탄 직조만 결합하는 방식도 널리 쓰인다.

디자인적 의미

라탄 가구는 소재가 가진 곡선과 직조 구조를 굳이 감추지 않는다. 줄기를 어디서 구부렸는지, 어떤 방향으로 엮었는지, 프레임과 좌판이 어디서 만나는지가 그대로 외형이 된다.

촘촘한 목재 판이나 패브릭과 달리 직조 사이로 빛과 배경이 통과하는 것도 중요하다. 등받이와 좌판의 면적이 커도 시각적으로 덩어리가 무겁게 보이지 않는다. 이런 성질 때문에 열대 지역의 가구뿐 아니라 모더니즘 가구에서도 목재나 금속 프레임의 무게를 줄이는 재료로 반복해서 사용됐다.

한동안 라탄은 휴양지나 빈티지 인테리어를 연상시키는 소재로 소비됐지만 2026년 밀라노 디자인 위크에서는 주요 가구 브랜드가 다시 적극적으로 사용했다. 과거 형태를 그대로 복각하기도 하고 금속 프레임이나 가죽과 결합해 라탄을 현대적인 구조 안에 넣기도 했다.

주요 적용 사례

B&B 이탈리아 무어

빈센트 반 두이센이 B&B 이탈리아를 위해 디자인한 무어(Moor)는 2026년 공개된 라탄 셰즈롱이다. 길게 휘어진 라탄 직조면 아래로 브론즈 니켈 프레임이 이어진다.

라탄으로 모든 구조를 만드는 전통적인 방식 대신 금속이 하중을 받고 라탄이 몸을 감싸는 넓은 표면을 맡는다. 직조 소재의 가벼운 인상을 유지하면서 현대적인 라운지 체어의 비례로 확장한 사례다.

제르바소니 R 513

제르바소니는 2026년 비코 마지스트레티가 1980년대 디자인한 R 513을 다시 생산했다. 굵은 라탄을 크게 휘어 팔걸이와 등받이 프레임을 만들고 내부에는 쿠션을 얹는다.

새로운 형태를 발명하기보다 1980년대 라탄 가구가 지금도 유효한 구조를 갖고 있음을 보여준 복각이다. 2026년 라탄의 귀환이 단순한 신소재 유행이 아니라 기존 디자인 아카이브를 다시 꺼내는 흐름과 연결돼 있다는 점도 보여준다.

카시나 오트

필립 스탁이 카시나를 위해 디자인한 오트(Hotte)는 농부가 등에 메던 수확용 바구니에서 형태를 가져왔다. 세로로 세운 라탄 부재 주위에 버드나무를 손으로 엮고 내부에는 가죽 쿠션을 넣었다.

전통 바구니 제작법을 그대로 장식에 붙인 것이 아니라 사람의 등을 둘러싸는 높은 등받이의 구조로 바꿨다. 산업 가구 브랜드가 지역 공예의 직조 원리를 현대 가구의 형태로 가져온 사례다.

장점과 한계

라탄은 가볍고 휘기 쉬우면서도 프레임으로 사용할 수 있을 만큼 강하다. 직조를 이용하면 별도의 두꺼운 판재 없이도 좌판과 등받이를 만들 수 있고 파손된 직조 일부를 다시 엮어 수리할 수도 있다.

반면 천연 소재이기 때문에 장기간 강한 햇빛과 비, 급격한 습도 변화에 노출되면 건조·변색·갈라짐이 생길 수 있다. 천연 라탄과 외관이 비슷한 합성 라탄이 야외 가구에 널리 쓰이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라탄의 핵심은 ‘자연스러운 분위기’라는 이미지보다 구조에 있다. 하나의 줄기를 휘어 프레임을 만들고 더 얇게 쪼갠 같은 재료를 엮어 면을 만든다. 소재와 제작 방식이 가구의 형태에 그대로 나타나는 대표적인 재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