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먼 밀러 (Herman Miller)

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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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먼 밀러(Herman Miller)는 가구를 단순한 사물이 아닌 인간의 생활과 업무 방식을 혁신하는 공학적 도구로 재정의한 미국의 디자인 하우스다. 1905년 미시간주 질랜드에서 전통 가구를 만들던 스타 퍼니처 컴퍼니(Star Furniture Company)에서 출발해, 1923년 허먼 밀러 퍼니처 컴퍼니(Herman Miller Furniture Company)라는 이름으로 간판을 바꿔 달며 새 시대를 열었다.

본래 과거의 고전 양식을 답습하던 보수적인 제조사였으나, 1930년대 길버트 로드(Gilbert Rohde)를 영입하며 당대 현대인들의 모던한 생활 방식에 호응하는 가구로 방향타를 틀었다. 이후 조지 넬슨(George Nelson), 찰스와 레이 임스(Charles and Ray Eames) 부부, 알렉산더 지라드(Alexander Girard), 이사무 노구치(Isamu Noguchi) 등 전설적인 거장들을 하나의 네트워크로 엮어내며 20세기 중반 미국 미드센추리 모던(Mid-century Modern) 디자인의 가장 큰 생산 기지 중 하나로 자리 잡았다.

이 브랜드의 척추는 크게 두 갈래로 나뉜다. 하나는 임스 라운지 체어 앤 오토만, 노구치 테이블, 넬슨 플랫폼 벤치로 이어지는 미학적인 모던 홈 가구의 영역이다. 다른 하나는 액션 오피스 시스템을 필두로 어건 체어, 에어론 체어, 임바디 체어로 진화하며 전 세계 사무직의 앉는 방식을 바꾼 하이테크 사무 환경 디자인의 영역이다.

허먼 밀러는 가구를 박제된 조각품이 아니라 삶과 노동의 궤적을 바꾸는 장비로 다루었다. 가정에서는 새로운 재료와 구조를 통해 주거의 자유도를 높였고, 사무실에서는 책상과 의자, 파티션과 동선이 하나의 유기체처럼 맞물려 돌아가는 환경 자체를 발명해 냈다. 현재는 2021년 놀 인수로 출범한 밀러놀(MillerKnoll) 산하의 핵심 헤리티지 브랜드로 남아 있다.

역사·연혁

1905~1929년: 스타 퍼니처와 개칭의 시대

허먼 밀러의 기원은 1905년 설립된 스타 퍼니처 컴퍼니다. 당시 회사는 묵직한 전통 양식의 침실 가구를 만들던 평범한 공장이었다. 1909년 회사명은 미시간 스타 퍼니처 컴퍼니로 변경되었고, 같은 해 디제이 드 프리(D.J. De Pree)가 말단 점원으로 입사하며 훗날의 전환점이 마련됐다.

1919년 젊은 드 프리는 탁월한 수완으로 회사 사장 자리에 올랐다. 1923년 그는 자신의 장인인 허먼 밀러를 설득해 회사 지분을 대거 인수하도록 이끌었고, 이에 대한 경의의 표시로 사명을 허먼 밀러 퍼니처 컴퍼니로 바꿨다. 다만 이 시기까지만 해도 허먼 밀러는 여전히 전통 가구의 복제품을 성실하게 생산하는 과거의 유산에 갇혀 있었다.

1930~1944년: 길버트 로드와 현대 가구로의 전환

1930년대 대공황은 허먼 밀러에게 존립의 위기이자 전환의 계기였다. 회사가 흔들리던 시기, 드 프리는 뉴욕 출신의 진보적인 디자이너 길버트 로드와 만났다. 로드는 무의미한 과거 양식의 반복을 비판하며, 작아진 현대 미국인의 주거 환경과 생활 방식에 맞는 실용적인 가구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허먼 밀러는 이 만남을 기점으로 화려하고 무거운 전통 장식 가구 생산을 포기하고, 간결한 구조와 기능성을 앞세운 모던 가구로 생산 라인을 뜯어고쳤다. 1933년 시카고에서 열린 센추리 오브 프로그레스 엑스포지션(Century of Progress Exposition)에 로드가 디자인한 가구를 출품하며 새로운 방향을 알렸다.

특히 1942년 로드가 제안한 이그제큐티브 오피스 그룹(Executive Office Group)은 모듈식 사무 가구의 초기 원형으로 평가받는다. 이 작업은 허먼 밀러가 기업용 사무 가구 시장이라는 거대한 영역에 들어서는 결정적 계기가 됐다.

1945~1959년: 조지 넬슨과 미드센추리의 황금기

1944년 길버트 로드가 세상을 떠나자 드 프리는 브랜드의 비전을 이끌 새로운 크리에이티브 리더를 찾았다. 1945년 그는 라이프(Life)지에 실린 조지 넬슨의 수납 시스템 스토리지 월(Storage Wall) 기사에 매료되었고, 넬슨을 허먼 밀러 역사상 최초의 디자인 디렉터로 영입했다.

조지 넬슨의 진정한 공적은 자신이 직접 도면을 그린 데서 끝나지 않는다. 그는 허먼 밀러를 당대 최고의 거장들이 모이는 크리에이티브 플랫폼으로 만들었다. 찰스와 레이 임스, 알렉산더 지라드, 이사무 노구치가 허먼 밀러의 깃발 아래로 모였다. 1940년대 후반부터 이 네트워크는 넬슨 플랫폼 벤치, 임스 몰디드 플라이우드 체어, 노구치 테이블 같은 디자인사의 주요 작품을 쏟아냈고, 1956년에는 임스 라운지 체어 앤 오토만을 탄생시켰다.

이 황금기 허먼 밀러 제품들은 장식적 기교보다 구조와 재료의 혁신을 앞세웠다. 몰딩 합판, 유리, 금속, 유리섬유와 성형 플라스틱을 다루며, 집 안의 가구를 무겁고 정적인 덩어리에서 가볍게 이동 가능한 생활 도구로 바꿨다.

1960~1975년: 리서치 디비전과 액션 오피스

1960년대를 기점으로 허먼 밀러의 시선은 가정용 거실에서 업무 환경으로 옮겨갔다. 1960년 회사는 허먼 밀러 주식회사(Herman Miller, Inc.)로 재편되는 동시에, 사무 환경의 과학적 연구를 전담할 허먼 밀러 리서치 디비전(Herman Miller Research Division)을 출범시켰다. 로버트 프로프스트(Robert Propst)가 이 연구 조직의 수장으로 취임하며 오피스 공간에 대한 새로운 실험이 시작됐다.

1964년 프로프스트와 조지 넬슨은 액션 오피스 1(Action Office 1)의 시제품을 설계했고, 1968년 액션 오피스 2(Action Office 2)를 세상에 내놓았다. 이 시스템은 규격화된 패널과 부품을 조합해, 붙박이 책상 중심의 고루한 레이아웃을 부수고 업무의 변화에 맞춰 공간을 다시 구성하는 방식이었다. 이는 훗날 전 세계 현대 사무실 칸막이 문화, 즉 큐비클(Cubicle)의 원형이 되었다.

1976~2020년: 인체공학 의자와 하이테크 장비

사무 환경을 지배한 허먼 밀러는 인간의 척추로 시선을 돌렸다. 1976년 빌 스텀프(Bill Stumpf)가 빚어낸 어건 체어(Ergon Chair)의 출시는, 가구가 더 이상 목공예가 아닌 과학적 데이터에 기반한 인체공학 의자로 진화했음을 알리는 신호탄이었다. 1984년 빌 스텀프와 돈 채드윅(Don Chadwick)이 함께 만든 이퀘아 체어(Equa Chair)가 그 바통을 이었다.

1994년에는 두꺼운 쿠션과 천연가죽 대신 팽팽한 통기성 메시 소재 펠리클(Pellicle)을 입힌 에어론 체어(Aeron Chair)가 등장하며 사무용 의자의 패러다임을 바꿨다. 2008년에는 빌 스텀프의 유작 연구를 제프 웨버(Jeff Weber)가 계승하여 척추의 움직임을 정밀하게 다룬 임바디 체어(Embody Chair)를, 2010년에는 이브 베하르(Yves Béhar)가 조형한 세일 체어(Sayl Chair)를 연이어 내놓았다. 이 흐름은 허먼 밀러가 사무용 의자를 한낱 앉는 도구가 아니라, 인간의 노동 환경을 조절하는 정밀한 하이테크 장비로 다뤄왔음을 보여준다.

2021년 이후: 밀러놀 제국의 시대

2021년 가구 산업의 판도를 흔드는 거대한 지각 변동이 일어났다. 허먼 밀러가 미드센추리 모던의 또 다른 기둥인 라이벌 브랜드 놀(Knoll)을 인수한 것이다. 결합된 회사는 밀러놀(MillerKnoll)이라는 이름으로 새롭게 출범했다.

허먼 밀러와 놀은 무리하게 하나의 얼굴로 합쳐지기보다 각자의 브랜드 아카이브를 유지하고 있다. 밀러놀 체제 아래서 허먼 밀러는 클래식 홈 가구, 고성능 사무용 의자, 업무 공간 솔루션, 홈 오피스, 게이밍 체어, 헬스케어 환경까지 앉고 머무는 공간을 폭넓게 다루는 브랜드로 작동한다.

디자인 철학·언어

라이프스타일에 복종하는 모던 디자인

허먼 밀러의 조형 철학은 불필요한 장식을 깎아내는 시각적 다이어트에 머물지 않는다. 핵심은 인간의 생활과 노동 방식이 바뀔 때, 가구의 구조도 함께 바뀌어야 한다는 합목적성이다. 길버트 로드 시대에는 과거 양식의 모방을 끊어내고 현대인의 작아진 주거 환경에 맞는 가구를 만들었다. 조지 넬슨 시대에는 유연한 수납, 이동성, 새로운 공업 재료와 대량 생산 방식이 디자인의 주요 과제가 됐다.

로버트 프로프스트 이후에는 단일한 책상의 모양을 넘어, 직원이 일하는 방식, 팀이 소통하는 동선, 사무실이라는 생태계 전체가 디자인의 통제 영역으로 들어왔다. 그래서 노구치 테이블의 유리 상판과 교차 목재 받침, 임스 라운지 체어의 몰딩 합판 셸, 에어론 체어의 메시 좌판 등 허먼 밀러의 폼팩터는 억지로 꾸며낸 장식이 아니라, 구조 자체가 외형으로 드러난 기능주의의 결과물이다.

공학적 구조의 당당한 폭로

허먼 밀러의 대표 마스터피스들은 자신을 지탱하는 기계적 뼈대를 천이나 장식 아래로 숨기지 않는다. 임스 라운지 체어는 등받이와 좌판을 분리 지지하는 금속 브라켓과 몰딩 합판 셸의 단면을 그대로 노출한다. 노구치 테이블은 두 개의 기하학적 목재 지지대가 서로 맞물려 하중을 견디는 방식을 투명한 유리 상판을 통해 보여준다. 에어론 체어는 좌판과 등판의 메시 프레임은 물론, 의자를 뒤로 젖히게 만드는 하부 틸트 메커니즘을 겉으로 드러낸다.

이 태도는 가구를 장식적인 예술품이 아니라 정밀하게 통제된 산업 기계나 엔지니어링 산물처럼 보이게 만든다. 허먼 밀러의 아름다움은 표면을 감추는 데서 나오지 않고, 구조가 어떻게 버티고 움직이는지 보여주는 데서 나온다.

천재들의 생태계, 디자이너 플랫폼

허먼 밀러는 브랜드 고유의 단일한 조형 양식을 강요하지 않고, 시대의 거장들을 하나의 플랫폼 안으로 끌어들이는 전략을 통해 진화했다. 디자인 디렉터 조지 넬슨은 이 열린 생태계를 구축한 설계자였다.

건축가와 조각가, 직물 디자이너와 인체공학 연구자까지 출신도 어법도 다른 창작자들이 각자의 실험을 밀고 나가되, 그 결과물은 허먼 밀러라는 거대한 텐트 안에서 하나의 모더니즘 언어로 묶였다. 개별 거장들의 지문이 브랜드의 얼굴이 됐지만, 특정 인물의 양식이 아니라 플랫폼 자체가 시대를 넘어 살아남았다는 것이 이 전략의 본질이다.

변화무쌍한 오피스 아키텍처

액션 오피스 이후 허먼 밀러의 오피스 가구는 책상 하나의 문제가 아니라 업무 환경 전체의 문제가 됐다. 패널과 수납, 작업면과 전원, 의자는 따로 놓인 제품이 아니라 직원의 집중과 협업을 조절하는 공간의 부품으로 다뤄졌다. 기업의 업무 방식이 바뀌면 공간도 몇 번이고 다시 조립될 수 있었다.

이 디자인 언어는 단품 가구의 미학을 넘어 환경의 미학을 다룬다. 의자 하나의 등받이 곡선보다 직원이 걸어 다니는 동선, 타인과의 시선 차단과 개방의 각도, 집중과 협업의 심리학적 균형을 설계하는 것이 이들의 진짜 업무다.

결국 허먼 밀러의 홈 가구가 재료와 구조를 드러낸다면, 오피스 가구는 사람의 몸과 업무의 흐름을 드러낸다. 두 영역은 달라 보이지만, 가구를 생활 방식의 도구로 본다는 점에서 하나로 이어진다.

주요 디자인

넬슨 플랫폼 벤치

넬슨 플랫폼 벤치(Nelson Platform Bench)는 조지 넬슨이 만든 허먼 밀러 초기 모던 가구의 대표작이다. 길고 견고한 목재 살을 일정한 간격으로 평행하게 배열한 단순하고 직선적인 구조물이 핵심이다.

이 기하학적 가구는 사람이 앉는 벤치로만 쓰이지 않는다. 잡지를 올려두는 낮은 커피 테이블이 되기도 하고, 수납 캐비닛을 얹어두는 기초 받침대로도 활용된다. 가구의 용도를 설계자가 하나로 한정하지 않고 사용자의 의도에 따라 바뀌도록 열어둔 점에서, 허먼 밀러가 가구를 고정된 세트가 아니라 조합 가능한 모듈 인프라로 바라보기 시작했음을 보여준다.

임스 몰디드 플라이우드 체어

임스 몰디드 플라이우드 체어(Eames Molded Plywood Chair)는 찰스와 레이 임스 부부가 해군용 부목을 만들며 터득한 3D 합판 성형 기술을 민수용 가구에 옮긴 작품이다. 얇은 합판을 고온의 스팀으로 찌고 휘어내어, 사람의 엉덩이와 척추 곡선을 감싸는 삼차원의 유기적 곡면을 만들어냈다.

무겁고 푹신한 천 소재로 감싼 과거의 장식적 의자가 아니라, 얇은 합판 셸과 고무 충격 흡수재만으로 안락함과 대량 생산의 효율성을 동시에 달성했다. 전후 미국 산업 디자인에서 합판이 얼마나 정교한 구조 재료가 될 수 있는지 보여준 모델이다.

노구치 테이블

노구치 테이블(Noguchi Table)은 조각가 이사무 노구치가 1947년 선보인 대표 커피 테이블이다. 자유로운 눈물방울 곡선의 통유리 상판과, 단 두 개의 기하학적 목재 지지대가 직각으로 맞물려 하중을 떠받치는 하부 베이스로 구성된다.

이 물체는 가구와 조각의 경계를 흐린다. 유리는 거실의 실용적인 평면 역할을 수행하지만, 그 아래 얽힌 목재 구조물은 현대 미술 조각처럼 보인다. 허먼 밀러가 기능주의에만 머물지 않고 순수 예술의 조형 실험까지 포용한 넓은 플랫폼이었음을 보여준다.

임스 라운지 체어 앤 오토만

임스 라운지 체어 앤 오토만(Eames Lounge Chair and Ottoman)은 1956년 등장한 럭셔리 라운지 체어의 대표 아이콘이다. 찰스와 레이 임스는 오래 쓴 1루수 야구 글러브의 따뜻하고 푹신한 감각을 19세기 영국식 클럽 체어에 대입해 현대적으로 바꿨다.

임스 부부의 초기 합판 작업이 서민을 위한 저렴한 대량 생산에 초점을 맞췄다면, 이 모델은 더 노골적으로 호화로움을 겨냥했다. 최고급 장미목 베니어를 구부려 만든 3개의 독립된 곡면 셸이 탑승자의 체중을 분산시키고, 묵직한 천연가죽 쿠션과 알루미늄 베이스가 결합했다. 현대적 구조 공학과 고전적인 사치스러움이 한 실루엣 안에 들어간 모델이다.

액션 오피스

액션 오피스(Action Office)는 로버트 프로프스트와 잭 켈리(Jack Kelley)가 설계해 1968년 출시한 오피스 시스템이다. 묵직하고 고정된 책상 하나가 전부였던 개인 업무 공간을 헐어내고, 칸막이 패널, 확장형 작업면, 매립 수납장, 부착식 액세서리를 조합해 업무 동선에 맞춰 공간을 바꿀 수 있게 했다.

이 시스템은 현대 사무실의 큐비클 문화로 이어지며 기업 인테리어의 지형도를 바꿨다. 본래 의도는 더 유연하고 활동적인 업무 환경이었지만, 이후 많은 기업이 이를 밀도 높은 사무 공간을 만드는 방식으로 사용하면서 허먼 밀러 역사에서 가장 복합적인 유산으로 남았다.

어건 체어

어건 체어(Ergon Chair)는 1976년 빌 스텀프가 선보인 허먼 밀러 인체공학 의자 계보의 출발점이다. 앉는 사람의 자세와 체압 분포를 과학적 데이터로 분석해 좌판과 등받이의 곡률을 도출한, 연구가 형태를 결정한 허먼 밀러의 초기 인체공학 의자다.

폼을 사출 성형한 유기적인 쿠션 덩어리와 조절 가능한 구조는 당시 장식 중심의 임원용 의자 문법과 결별했다. 어건 체어는 이퀘아와 에어론으로 이어질 생체역학 연구의 물꼬를 텄다.

에어론 체어

에어론 체어(Aeron Chair)는 1994년 출시되어 전 세계 닷컴 버블과 실리콘밸리 프로그래머들의 척추를 구원한 세기의 명작이다. 빌 스텀프와 돈 채드윅은 고급 임원용 의자의 불문율이던 두꺼운 폼 쿠션과 천연가죽을 가차 없이 걷어냈다.

대신 펠리클(Pellicle)이라는 팽팽한 메시 직물을 프레임에 씌워, 장시간 착석 시 발생하는 체열과 습기를 배출하고 사용자의 체중 하중을 그물망처럼 분산시켰다. 뼈대와 기어가 드러난 에어론의 기계적인 첫인상은 출시 당시 이질감을 낳았지만, 이후 고성능 사무용 의자의 시각적 표준이 됐다.

임바디 체어

임바디 체어(Embody Chair)는 2008년 등장한 에어론의 후계자다. 빌 스텀프가 평생을 바친 생체역학 연구의 유산을 디자이너 제프 웨버가 이어받아 완성했다.

이 의자의 본질은 후면부에 드러난 리브(Rib) 구조에 있다. 인간의 척추뼈와 늑골 근육을 떠올리게 하는 이 하드웨어 뼈대는 탑승자가 허리를 비틀거나 몸을 움직일 때 작은 단위로 움직이며 지지점을 다시 나눈다. 에어론이 열을 식히는 통기성에 집중했다면, 임바디는 앉아 있는 인간의 육체가 정지해 있지 않고 계속 움직이는 유기체임을 인정한 생체역학 의자다.

세일 체어

세일 체어(Sayl Chair)는 2010년 이브 베하르가 디자인한 허먼 밀러의 주력 오피스 체어다. 딱딱하고 위압적이던 고성능 사무용 의자의 문턱을 한층 가볍고 팝하게 낮춘 모델이다.

샌프란시스코 금문교의 현수교 케이블 구조에서 영감을 받아, 플라스틱 프레임 없이 3D 젤라스토머 소재를 격자처럼 엮어 등받이를 만들었다. 돛단배의 돛처럼 부풀어 오른 구멍 뚫린 등판은 단순한 시각적 장식이 아니라, 프레임을 줄여 무게와 원가를 덜어내면서도 부위별로 장력을 다르게 걸어 허리를 받쳐내는 인체공학 구조다.

디자이너·디자인 조직

허먼 밀러의 크리에이티브 조직은 한 명의 스타 디자이너에게만 기대는 체제가 아니라, 유기적으로 진화하는 거장들의 개방형 네트워크에 가깝다. 경영자 디제이 드 프리는 디자이너에게 강력한 권한을 위임했고, 조지 넬슨은 이 구조를 허먼 밀러만의 브랜드 시스템으로 굳혔다.

초창기 길버트 로드는 무거운 전통 가구의 사슬을 끊고 현대 가구로의 이동을 이끌었다. 조지 넬슨은 가구 도면을 그리는 일을 넘어 로고 그래픽, 쇼룸 인테리어, 카탈로그 타이포그래피, 외부 디자이너 네트워크까지 조율한 브랜드의 마스터플래너였다. 찰스와 레이 임스 부부는 합판과 유리섬유를 다루며 가구의 대량 생산 체계와 구조적 안락함을 확장했고, 알렉산더 지라드는 철제와 합판으로 가득 찬 모더니즘 가구에 따뜻한 직물 패턴과 색채를 더했다.

이사무 노구치는 갤러리의 조형 실험을 거실의 가구로 옮겼고, 로버트 프로프스트와 잭 켈리는 정지된 가구를 해체해 사무실을 움직이는 시스템으로 다시 정의했다. 이후 사무 환경의 무게 중심이 의자로 쏠리며 빌 스텀프와 돈 채드윅이라는 인체공학의 콤비가 등장했다. 이들은 어건, 이퀘아, 에어론으로 이어지는 작업을 통해 의자가 몸을 어떻게 지지하고 열과 압력을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지 과학적으로 다뤘다.

2000년대 이후 현대 허먼 밀러의 바통은 스튜디오 7.5(Studio 7.5), 이브 베하르, 제프 웨버, 샘 헥트와 킴 콜린(Sam Hecht and Kim Colin), 나오토 후카사와(Naoto Fukasawa) 등 전 세계를 아우르는 다국적 크리에이터들이 이어받았다. 허먼 밀러는 단일한 조형 양식에 고착되지 않고, 여러 디자이너의 방식이 하나의 브랜드 플랫폼 안에서 작동하는 구조로 확장됐다.

모디 스코어

> 모디 스코어 — 집계 전

>

> MODY 유저 평가 데이터 · 대표작 집계 기준

반응과 평가

디자인

허먼 밀러의 조형적 가치는 20세기 미국 미드센추리 모던 가구의 미학적 성취와 현대 고성능 오피스 체어의 폼팩터 진화 양쪽에서 공인받는다. 임스 라운지 체어, 에어론 체어, 노구치 테이블 등은 인테리어 시장을 넘어 뉴욕 현대미술관(MoMA)의 영구 소장 컬렉션에 들어가며 산업 디자인사의 주요 문화재처럼 다뤄진다.

특히 에어론 체어는 고급 의자의 패브릭과 폼 쿠션을 걷어내고 메시 구조로 바꾼 전환을 인정받아 1999년 비즈니스위크(BusinessWeek)와 미국산업디자이너협회(IDSA)가 선정한 디자인 오브 더 디케이드(Design of the Decade)의 영예를 안았다. 1985년 월드디자인 콩그레스(Worldesign Congress)는 액션 오피스를 1960년대 이후 중요한 디자인으로, 찰스 임스를 20세기 영향력 있는 디자이너로 각각 선정했다. 2000년 임스 몰디드 플라이우드 체어는 타임(Time)지가 선정한 20세기의 디자인(Design of the Century)으로 꼽히며, 허먼 밀러의 도면이 20세기 서구 산업 디자인의 교과서처럼 받아들여지고 있음을 보여줬다.

품질·안전

B2B 시장 중심의 럭셔리 사무 가구 산업 특성상 자동차의 충돌 안전 등급 같은 획일화된 독립 지표로 허먼 밀러의 품질을 단순 정량화하기는 어렵다. 허먼 밀러의 품질과 신뢰도는 인체공학 연구, 장기 사용성, 실내 공기질 기준, 지속가능성 기준을 함께 통해 평가된다.

에어론 체어는 장시간 노동이 신체에 가하는 부담을 설계 단계에서 줄이려 한 인체공학적 접근으로 높은 평가를 받았다. 2003년 선보인 미라 체어(Mirra Chair)는 제품 설계 초기 단계부터 부품의 재사용과 폐기 후 환경 부담을 계산한 크래들 투 크래들(Cradle to Cradle) 생태 원칙을 사무용 가구에 적극적으로 도입한 사례다. 또한 2004년부터 다수의 주력 제품에 엄격한 실내 공기질 기준인 그린가드(GreenGuard) 인증을 부여받으며, 사무 환경의 건강성과 소재 기준을 함께 관리해 왔다.

브랜드·인물

허먼 밀러는 2021년 놀 인수로 출범한 나스닥 상장사 밀러놀(MillerKnoll, 티커 MLKN)의 중핵 브랜드다. 밀러놀은 허먼 밀러와 놀 외에도 디자인 위딘 리치(Design Within Reach), 헤이(HAY), 가이거(Geiger) 등 프리미엄 브랜드들을 거느린 연 매출 약 40억 달러 규모의 그룹이며, 그 포트폴리오의 얼굴이자 역사적 정통성의 근원이 바로 허먼 밀러다.

찰스 임스가 20세기 가장 영향력 있는 디자이너 중 한 명으로 평가받는 역사적 사실은, 그 도면을 현실의 물성으로 오차 없이 찍어낸 허먼 밀러라는 제조 브랜드의 가치와 분리되지 않는다. 브랜드의 문화적 지위 역시 제품의 궤적과 함께 진화해 왔다. 에어론 체어가 닷컴 시대 실리콘밸리 스타트업 사무실의 상징으로 소비되며 허먼 밀러는 “일 잘하는 공간”의 대명사가 됐고, 2020년대에는 로지텍 G와 협업한 엠바디 게이밍 체어 등으로 e스포츠와 게이밍 셋업 시장까지 영역을 넓혔다.

디자인 반응

허먼 밀러의 기능주의 디자인은 사용자들에게 강한 열광과 낯섦을 동시에 안긴다. 어건과 에어론 체어로 대변되는 오피스 의자들은 메시, 노출된 틸트 프레임, 기계적인 하부 구조를 가감 없이 드러낸다. 한쪽에서는 이를 가장 정직한 고성능 장비의 시각화로 받아들이지만, 거실의 아늑하고 따뜻한 가구 문법에 익숙한 사람들에게는 지나치게 차갑고 기계적인 사무용 조형으로 보이기도 한다.

임스 라운지 체어로 대표되는 홈 가구 라인업 역시 현대적 고급 라운지의 아이콘으로 추앙받지만, 그 압도적인 상징성 탓에 전 세계적으로 조잡한 카피 제품과 조형적 레퍼런스가 끝없이 범람하는 유명세의 저주를 앓고 있다. 미술관에 소장된 오리지널의 가치와, 현실 시장에서 무한 복제되어 일회성 이미지로 소비되는 아이러니가 함께 존재한다.

비판

허먼 밀러 혁신의 역사에서 가장 뼈아픈 비판은 액션 오피스의 변질에서 시작된다. 로버트 프로프스트는 본래 업무자들이 자유롭게 움직이고 필요에 따라 패널을 해체 조합하며 소통할 수 있는 유연하고 인간적인 사무 공간을 구상했다. 그러나 많은 기업들은 이 패널 시스템을 더 많은 직원을 좁은 면적 안에 효율적으로 배치하고 시야를 차단하는 통제의 수단으로 사용했다. 그 결과 인간을 위한 모듈 시스템은 현대 직장인의 답답한 큐비클 문화와 함께 묶이며 강한 비판을 받았다.

기능의 승리가 곧 미학적 합의를 뜻하지도 않았다. 에어론 체어는 사무용 의자의 구조를 바꿨지만, 메시와 노출된 프레임은 여전히 누군가에게 차갑고 낯선 형태로 남는다. 허먼 밀러는 고성능 장비의 정직함과 집 안 가구의 따뜻함 사이에서 계속 긴장을 만든다.

허먼 밀러를 가장 무겁게 짓누르는 또 다른 비판은 가격 장벽이다. 대량 생산을 통한 보편적 합리성을 말했던 미드센추리 모더니즘의 초기 사상과 달리, 오늘날 임스 라운지 체어나 최고급 오피스 체어의 실제 시장 가격은 평범한 대중이 쉽게 접근하기 어렵다.

디자인 교과서에서 칭송받는 일상의 도구라는 역사적 찬사와, 현실 시장에서 부유층의 취향과 계급을 드러내는 인테리어 트로피로 소비되는 괴리. 이 간극이 오늘날 허먼 밀러를 둘러싼 가장 큰 논쟁이다.